경제

'사람 사는 도시를 만들었더니 '산업'도 함께 살아나더라, 스웨덴 예테보리 / 경향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9. 27. 21:26

[위기의 조선·해운, 새길 찾은 도시들]① ‘사람’ 사는 도시 만들었더니…‘산업’도 함께 살아나더라

예테보리|박병률 기자 mypark@kyunghyang.com

조선업 붕괴 이후 대형 조선소 부지 등을 첨단산업, 주거, 사무 단지로 재개발한 스웨덴 예테보리의 수변 도시 ‘리버시티’의 전경 | 김창길 기자

조선업 붕괴 이후 대형 조선소 부지 등을 첨단산업, 주거, 사무 단지로 재개발한 스웨덴 예테보리의 수변 도시 ‘리버시티’의 전경 | 김창길 기자

①예테보리의 미소

지난 7일 스웨덴 예테보리시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예타강변의 ‘린돌먼 과학단지’에서는 신축건물 공사가 한창이었다. 중국의 글로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화훼이가 입주할 건물이다. 요한 에크만 엘브스브란덴 개발홍보이사는 “에릭슨, 볼보, 사브 등 300여개 첨단기업이 유치돼 2만3000여명이 일하고 있다”며 “시가 각종 지원을 해주는데다 지역 최대 공대인 찰머스대학 연구진과 함께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자율주행자동차 등을 협업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말했다. 취재진 옆으로는 볼보와 찰머스대학이 공동개발하고 있다는 전기자동차가 ‘소리없이’ 지나갔다. 린돌먼 과학단지는 4차산업혁명을 위한 스웨덴의 테스트베드로 꼽힌다.

예테보리의 부활을 한눈에 알 수 있는 곳이 예타강변의 지도를 바꾸고 있는 ‘리버시티’다. 1989년 마스터플랜을 세운 뒤 30년째 추진 중인 리버시티 계획은 옛 조선소 부지를 주거와 사무, 산업단지로 탈바꿈하는 야심찬 계획이다. 린돌먼과학단지는 린돌먼 조선소 부지에 들어선 산·학·연 협력단지다. 1994년 지역최대 공과대학인 찰머스 대학이 예테보리 대학과 공동으로 폐허가 된 조선소 부지에 정보기술(IT)대학을 세우며 과학단지가 조성됐다. 과학단지 부근 컨벤션 센터가 들어선 ‘에릭스버그’지구는 에릭스버그 선박엔진 제조공장이 있던 자리다. 그 옆에 물류창고를 개조한 호텔이 자리잡았다. 선주들이 머물던 집은 카페로, 조선소의 도크시설은 요트 선착장으로 재탄생했다. 야외카페 차양막 아래 의자에 몸매를 드러낸 채 선탠을 하고 있는 남녀의 모습이 이채로웠다.

주택단지에는 5층 이하의 낮은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건물외벽은 조선업이 전성기이던 시절의 대표색깔인 무채색 대신 밝은 색으로 칠해져 있다. 리버시티 거주지역의 특징은‘소셜믹스’다. 고가주택을 소유한 고소득층과 저가주택을 임대해 사는 저소득층이 공존한다.

에테보리의 변신은 지난 30년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뒤에야 완성됐다. 예테보리는 1970년대 세계 두번째로 큰 조선업 지대였였다. 4개의 조선소와 관련업체에서 5만명이 일했다. 전체 노동자의 4분의 1 규모였다. 1973년 1차 석유파동으로 주요 선종인 유조선 수요가 급감하면서 1만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1978년 2차 석유파동은 결정타였다. 몰락 직전의 조선사와 노동자들을 구하기 위해 스웨덴 정부는 ‘국유화’를 단행했다. 덩치를 키우기 위해 지역조선소들을 합병한 뒤 스웨데야드(Swedeyard)사를 세웠다. 정부 재원을 투입해 크루즈, 쇄빙선, 페리, 냉동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들을 만들어내면 조선업이 살아날 걸로 알았지만 결과는 대실패였다. 천문학적인 재정을 쏟아부었지만 조선산업은 끝내 살아나지 못했다.

예테보리의 반격은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 시민들은 수많은 토론을 거친 끝에 예테보리를 환경이 살아있는 지식집약형 미래도시로 만들기로 했다. 조선소 부지인 예타강 북쪽을 먼저 개발했다. 강북은 저소득층과 이민자가 주로 살면서 슬럼화되고 있었다. 10여년에 걸쳐 마이클잭슨, 마돈나 등 유명가수 콘서트를 개최하고 다양한 스포츠행사와 문화행사를 유치하며 이미지를 바꿔 나갔다. 강북에 새로 만든 아파트와 사무실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자신감을 얻은 시는 2006년 예테보리시 전체를 ‘삶의 질이 높은 지속가능한 도시’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런 경로를 거치며 2000년 이후 1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인구는 15만명이 늘어나면서 중앙도심은 2배 확장됐다. 2만5000채의 아파트와 4만5000개의 기업이 생겼고, 1조 스웨덴크로나(132조원)의 투자가 유치됐다. 예테보리는 스웨덴에서 일자리 증가와 성장이 가장 빠른 도시로 자리잡았다. 2000~2014년 연평균 취업자 증가율, 연평균 실질소득 증가율, 연평균 지역내총생산(GRDP) 실질 성장률 등이 모두 스웨덴 전체 평균을 웃돈다.

예테보리의 가장 큰 장점은 완벽한 산업재편이다. 2013년 기준 취업자 분포를 보면 헬스케어(14.9%), 상업분야(13.4%), 비지니스지원(13.2%), 제조업 및 광공업(13.1%), 교육(10.2%) 등이다.

예테보리 산업재편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위력을 발휘했다. 금융위기 당시 볼보에서만 1만명이 실직하는 등 일자리가 크게 감소했지만 1년만에 잃어버린 일자리가 대부분 회복됐다. 예테보리의 경쟁력은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등의 자료를 보면 예테보리는 전세계 도시 중 기업가정신 6위, 도시경쟁력 5위, 성장잠재력 10위, 혁신 12위다.

5년 뒤로 다가온 2021년 도시탄생 400주년 행사는 성공적인 도시부활을 자축하는 행사가 될 예정이다. 마리아 스트룀버그 예테보리공사 클러스터·혁신 부장은 “조선업 실패 때 우리가 깨달은 것은 산업다각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지역경제의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었다”며 “사람이 일자리를 찾는 도시가 아니라 일자리가 사람을 찾는 도시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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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609261858001&code=920100#csidxf2645e9765769b293acd90ad47cf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