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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또 기업에서 210억 걷은 대통령의 관치 스타일 / 경향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9. 30. 23:26

[사설]또 기업에서 210억 걷은 대통령의 관치 스타일

 

지능정보기술연구원은 인공지능을 연구하기 위해 지난 7월 출범한 민간연구원이다. 자본금 210억원은 삼성전자, LG전자, SK텔레콤, KT, 네이버, 현대자동차, 한화생명 등이 각각 30억원을 출자했다. 민간연구원이니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설립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출자 대기업들은 스스로 연구원을 만들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적이 없었다. 출범 전부터 연구원은 각종 의혹에 시달렸다. 인공지능과의 연관성을 찾기 힘든 보험회사가 출자하기도 했다. 업계에는 “정부 관계자가 대기업을 돌면서 출자를 강요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결국 사실로 확인됐다.

더불어민주당 김성수 의원이 지난 28일 공개한 미래창조과학부의 ‘대통령 지시사항 카드’를 보면 박근혜 대통령이 ‘민간 주도의 지능정보연구원 설립’을 사실상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또 연구원에 한 해 150억원씩 5년간 750억원 규모의 연구과제를 맡기는 특혜를 주기로 했다.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대기업 상대 800억원 기부금 할당과 비슷하다.

박 대통령은 전에도 대기업을 쥐어짜 준조세 성격의 자금을 끌어모은 적이 있다. 박 대통령이 제안해 지난해 10월 설립된 청년희망재단의 펀드 모금에는 병상에 있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00억원,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150억원 등을 내놨다. 자발적일 수 없는 모금이었다. 지금까지 1400억원이 걷혔지만 기본재산 10억원을 제외하면 재단 마음대로 쓸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기조인 창조경제를 구현한다는 창조경제혁신센터도 마찬가지이다. 전국 17곳 센터마다 전담 대기업을 지정해 운영을 떠맡겼다. 전담 대기업 중에는 지금까지 기부금과 프로그램 운영, 건물 제공 등 센터 운영에 100억원 넘게 지원한 곳도 있다. 대기업의 한 임원은 “지금 상황이 좀 어렵지 않나.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대기업을 상대로 금품을 강요하고 혜택을 주는 박 대통령의 ‘관치경제’는 1970년대 개발경제 시대의 구태를 떠올리게 한다. 과거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은 재벌 총수일가를 살찌우게 했을 뿐이다. 중소기업의 성장을 가로막고, 노동자 임금을 착취한 결과이기도 하다. 대기업은 보은 차원에서 정권에 막대한 정치자금을 내놨다. 정경유착이다. 과거에 은밀했던 자금이 지금은 ‘자발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수면 위로 올라왔을 뿐이다. 박 대통령이 아무리 권위주의에 익숙하다 해도 지시 한마디로 민간기업의 돈을 걷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관치경제를 즐겨서는 안된다. 기업 활력을 죽이는 관치와 구태를 당장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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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9292119005&code=990101#csidxce940e087c751129bbd52462ec9a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