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위하여

북핵보다 무서운 것은 남한의 시스템 마비이다 / 장덕진 서울대 교수 / 경향신문에서

이윤진이카루스 2016. 9. 30. 23:34

[시대의 창]종말론적 예감과 단식투쟁

장덕진 서울대 교수·사회학

[시대의 창]종말론적 예감과 단식투쟁

온 나라가 불길한 종말론적 예감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가 탄 배는 엄청난 속도로 암초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배의 조종을 맡은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으니 말이다. 세월호 참사 때 박근혜 대통령은 눈물을 흘리며 희생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그에 대한 정치적 반대자들에게조차 그것은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장면이었다. 그러면서 “국가대개조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국가대개조가 약속대로 이루어졌더라면 우리가 탄 배는 암초를 피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의 약속이 있은 지 하루이틀도 지나지 않아 우리가 본 것은 무엇이었던가. 국가대개조가 아니라 ‘유병언 찾기 놀음’이었다. 오죽하면 YBS(유병언 브로드캐스팅 시스템)라는 말이 다 나왔을까. 우리는 그에 대해 알 필요가 없는 소소한 것들까지 너무 많이 알게 됐고, 그 와중에 국가대개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도 애타게 찾던 유병언은 시신으로 돌아왔고, 우리는 유병언 대신 그의 아들을 ‘여성 호위무사’와 함께 찾아낸 것으로 만족해야 했으며, 이제는 아무도 국가대개조를 기억하지 않는다. 새로 만들어진 국민안전처가 지진 난리에도 태연히 두 손 놓고 있는 것을 보면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불안감은 이런 것이다. 세월호 참사 때 갑판에 놓여 있던 46개의 구명정 중에 막상 사고가 일어나니 펼쳐진 것은 한 개밖에 없었다. 이건 세월호에만 국한된 문제일까? 사고가 나기 직전까지 그 배를 탔던 수많은 사람들은 갑판에 놓인 46개의 구명정을 보면서 안도했을 것이다. 혹시라도 사고가 나면 구명정이 있으니까. 해경이 아직 반쯤 수면 위에 떠 있는 세월호 앞에 도착했을 때 승객과 가족은 물론이고 전 국민이 안도했을 것이다. 다행히 완전 침몰하기 전에 해경이 와주었구나! 이때 해경이 단 한 명도 배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따라서 단 한 명도 배 안에서 구출해내지 못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해경에만 국한된 것일까? 만에 하나 안보위험이 현실화되어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사드 같은 최첨단 무기는 둘째 치고 재래식 무기들은 제대로 작동할까? 그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되겠지만, 잊을 만하면 터지는 방산비리와 군납비리를 보면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원전 안전성 이야기만 나오면 정부가 앞장서서 누누이 안전을 강조해왔는데, 막상 지진이 일어나고 보니 진앙이 어디인지도 모르겠고 어느 원전이 지진 단층대에 올라앉아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고 한다. 지금 경주를 중심으로 수백회 발생하고 있는 지진이 지나간 지진의 여진인지 닥쳐올 더 큰 지진의 전조인지조차 정확히 판단하지 못한 상태에서, 어느 날 후쿠시마 같은 사태가 한반도에 터지는 것은 아닐까? 심지어 쉬쉬하는 그들은 위험성을 알면서도 사익을 위해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절대 일어나면 안될 일이지만, 심지어 원전에조차 가짜 부품 납품비리가 종종 일어나는 걸 보면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위기는 언제든 찾아오지만, 위기에 대처하지 못하고 위기를 키우는 것은 시스템의 결함이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암초를 눈앞에 보면서도 방향타를 돌리지 못하게 만드는 바로 그 결함 말이다.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심각한 시스템 결함은 의회의 견제기능 마비이다. 설사 비용이 들고 시간이 걸리고 다소 시끄럽다 하더라도 의회는 행정부를 견제해야 한다. 의회가 이러한 견제에 실패하면 정권은 독주하고 위기는 폭발한다는 것이 수많은 사회과학적 연구들의 일치된 결론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총선 이전까지 몇 차례의 선거를 연달아 이긴 새누리당은 승리에도 불구하고 위기의 정당이었다. 집권여당이라는 특성상 한편으로는 국정운영의 책임을 나눠가져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의회의 견제기능을 잃지 않아야 하는 모순된 입장에 처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수많은 기호와 역사가 축적된 박근혜라는 개인이 강력한 카리스마의 대선후보가 되고 대통령이 된 이후 새누리당은 의회의 기능을 상실하고 대통령의 심기경호에만 충실함으로써 위기의 정당이 됐다. 그 심기경호를 방패 삼아 청와대는 폭주한다. 북핵 위기보다 더 심각한 위기는 어떤 위기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시스템 마비에 있다.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은 국회의 해임결의안을 거부했고 여당 대표는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다. 유병언 찾기에 국가대개조가 묻혀버린 것처럼, “대통령을 무릎 꿇리려고 하지 말라”는 그 단식투쟁이 어떤 위기들을 묻어버리고 있는지, 이정현 대표와 새누리당은 진지하게 돌아볼 것을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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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100&artid=201609292123015#csidx62b4f041291429e9de2128c96ee4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