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과수 김선춘 “가습기 살균제 피해 막았을 ‘중독센터’ 서둘러야”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ㆍ독성 물질 국가관리 강조 김선춘 국과수 법독성연구실장
지난 28일 오전 강원 원주시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본원의 법독성학과 사무실. 연구원들이 모여 ‘제비고깔’이라는 식물을 바닥에 깔아놓고 말리고 있었다. 제비고깔로 담근 술을 마신 뒤 탈이 나 응급실에 온 환자가 최근 보고됐다. 국과수 연구원들은 이 환자가 마신 술을 분석하고 어떤 독성 성분이 있는지를 알아보고 있었다.
미국과 유럽에는 24시간 생활화학제품이나 농약, 식물 등 독성이 있는 물질에 노출된 사람들로부터 피해 신고를 받아 응급조치를 하고 독성 분석과 이상징후를 체크하는 ‘중독센터’가 설치돼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중독센터가 없는 나라는 한국뿐입니다.” 이날 만난 국과수 법독성학과 김선춘 법독성연구실장(47·사진)의 말이다.
김 실장은 중독센터 설치를 15년 전부터 고민해왔다. 한 발짝이라도 내디뎌 보고자 충북대병원과 협력해 환자들을 대상으로 증상과 원인 물질 등을 분석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무언가에 중독돼 사망한 뒤 국과수에 오는 시신을 많이 보다보니 ‘그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더라고요. 중독센터가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겁니다.”
한국에서도 1년에 3000여명이 중독으로 응급실을 찾는다고 한다. 흡입했을 때 폐섬유화를 일으키는 화학물질이 들어 있어 사망으로까지 이어진 가습기 살균제 사태도 겪었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화학물질 관리에 취약하다. 지난해부터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이 시행되면서 시장에 나오기 전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1차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사람들이 사용하면서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부분은 걸러지지 않고 있다.
김 실장은 제초제인 ‘파라콰트’를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동물실험에서 독성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나 저독성 농약으로 분류됐던 파라콰트는 판매 이후 음독하는 사람들 사례를 분석하면서 독성이 알려졌다. 지금은 파라콰트를 한 모금만 먹어도 사망한다는 결론이 내려졌고 전 세계적으로 생산과 판매가 금지돼 있다.
“시장에 나온 화학물질이 어떻게 노출돼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모니터링하는 중독센터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는 “한국엔 통계가 전혀 없다”며 “어떤 물질에 노출돼 피해가 있어도 치료에만 중점을 두지 피해의 원인이 된 물질에 대해선 알려고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 ‘휴먼 데이터’를 관리하는 컨트롤타워가 중독센터이고, 병원에서도 보고하는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중독센터 설립이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재정투자는 물론 독성을 연구하면서 데이터베이스를 보고 모니터링과 분석을 할 수 있는 연구인력 양성도 필요하다. 환경부·산업통상자원부·고용노동부·보건복지부 등 화학물질과 관련된 여러 부처들의 벽을 넘나들어야 한다.
김 실장은 “외국처럼 데이터베이스가 쌓이고 실질적으로 기능을 하려면 최소 10년은 필요하다”며 “그럼에도 이 시스템은 중요하고, 국가적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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