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Life)

긴즈버그 미 대법관의 ‘인생 조언’ “스스로 삶을 꾸려갈 수 있는 독립적인 사람이 돼라” / 경향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10. 3. 08:41

긴즈버그 미 대법관의 ‘인생 조언’ “스스로 삶을 꾸려갈 수 있는 독립적인 사람이 돼라”

정환보 기자 botox@kyunghyang.com

긴즈버그 미 대법관의 ‘인생 조언’ “스스로 삶을 꾸려갈 수 있는 독립적인 사람이 돼라”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83·사진). 1993년 여성으로서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대법관에 오른 그는 1999년 직장암, 2009년 췌장암을 이겨내고 24년째 활동하고 있는 현역 최고령 대법관이다. 2014년에는 심장 수술까지 받았지만 수술 후 닷새 만에 법복을 입고 출근했다. 미국에서 연방대법관은 대통령보다 범접하기 어렵고 근엄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하지만 긴즈버그는 동성결혼식 주례까지 설 정도로 소수자를 중시해 진보 성향의 젊은이들에게 특히 인기를 얻었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대법관’으로 불리며 ‘소셜미디어 스타’가 된 이유다. 그런 그가 뉴욕타임스 일요판에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인생을 위한 조언’이란 제목의 기고문을 실었다.

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에 올라온 글에서 그는 여든 평생 이룬 성취를 모두 주변의 도움 덕택으로 돌렸다. 기고문 첫머리는 여성 법률가로서의 삶을 돌아보는 것으로 시작했다. 대법원 견학을 온 학생들은 늘 그에게 “항상 판사가 되길 꿈꿨나요”라고 묻지만 1933년생인 그가 하버드대 로스쿨에 입학한 1956년에는 미국에서 여성 법률가는 3%도 채 되지 않았다. “연방법원에는 항소법원에 딱 1명의 여성 판사만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에서 법학도의 절반은 여성이며 대법관도 8명 가운데 3명이 여성이다.” 긴즈버그의 회고다.

미국이 이렇게 변할 때까지, 그가 법률가로서 여성 차별을 없애는 데 투신할 수 있기까지는 어머니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스스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독립적인 사람이 되거라”는 말을 꾸준히 해줬다고 한다. 긴즈버그가 젊은이들에게 건네는 충고이기도 하다. 적확한 단어와 알맞은 어순 배열이 생각을 전달하는 데 큰 영향을 줄 수 있음을 가르쳐 준 것은 코넬대 재학시절 유럽문학을 사사한 <롤리타>의 저자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였다.

긴즈버그는 ‘함께 나누고 싶은 삶의 지혜’로 시어머니가 결혼식 날 해 준 조언을 꼽았다. “결혼을 잘 유지하려면 어느 정도는 귀머거리가 돼야 한다”는 충고였다. ‘일과 삶의 균형’도 중요하다고 했다. 맏딸 제인을 키우며 로스쿨에 다녔던 그는 오후 4시 이후를 ‘제인의 시간’으로 정했다. 놀이터에서 함께 뛰놀고 그림책을 읽어주고 씻기고 이유식을 먹였다. 제인이 잠든 이후 그는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법률 서적과 씨름했다. 힘든 일이었지만 “법학만 파고든 동료들에게는 부족할 수 있는 ‘한숨 돌리는 법’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법원의 신뢰는 법률의 부러진 부분을 고치는 데서 나온다”면서 법률 조문 자체에 매달리기보다 취지를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상에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정답’은 거의 없으며 대법관들 사이에서도 극단적으로 의견이 엇갈릴 때가 종종 있다. 긴즈버그는 지난 2월 세상을 떠난 강경 보수파 앤터닌 스캘리아 대법관과 평생 우정을 유지했다. 긴즈버그는 스캘리아가 좋아하던 표현인 “극복해버려”를 인용하면서, 법률가들에게는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긴즈버그는 세상과 평등에 대한 낙관론으로 끝을 맺었다. “아직도 세계의 여성들은 임금 수준이 낮다. 출산과 양육에 편의를 제공하는 직장은 별로 없으며, 직장 내 성희롱과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많다. 그러나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 사람들’이 해 온 노력이 계속될 것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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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70201&artid=201610022129015#csidxf5ab52eb82939d9bf8103099e5312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