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블루라이트’ 요코하마, 불황 시작되자 조선소 이전…일본 3대 미항으로 변신 /경향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10. 11. 12:13

[위기의 조선·해운 새길 찾은 도시들](2)‘블루라이트’ 요코하마, 불황 시작되자 조선소 이전…일본 3대 미항으로 변신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지난달 21일 일본 요코하마 랜드마크 타워에서 내려다본 프로젝트 신도시 ‘미나토미라이21’의 도심 전경. 1980년대 일본 조선업이 불황에 빠지면서 요코하마는 낡은 조선시설을 외곽으로 옮기고 조선소가 떠난 항구를 공원과 쇼핑몰 등 시민의 공간인 미나토미라이21로 조성해 일본의 3대 미항으로 거듭났다.   요코하마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지난달 21일 일본 요코하마 랜드마크 타워에서 내려다본 프로젝트 신도시 ‘미나토미라이21’의 도심 전경. 1980년대 일본 조선업이 불황에 빠지면서 요코하마는 낡은 조선시설을 외곽으로 옮기고 조선소가 떠난 항구를 공원과 쇼핑몰 등 시민의 공간인 미나토미라이21로 조성해 일본의 3대 미항으로 거듭났다. 요코하마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일본 3대 미항 중 하나인 요코하마의 프로젝트 신도시 ‘미나토미라이21’의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유수의 기업들이 모여 10만명의 고용창출을 이끌어낸 비즈니스 단지, 바다와 녹지, 역사와 문화의 공간이 어우러지며 미래항구도시로 오랜 시간에 걸쳐 더디게 완성되고 있다. 미나토미라이21은 요코하마시 나카구와 니시구에 걸친 약 1.86㎢의 면적으로, 이 중 0.76㎢는 매립지다. 1980년대 동력을 잃은 조선업 중심도시가 이제는 일본에서 손꼽히는 미항으로 거듭나고 있다.

지난달 21일 일본에서 두 번째로 높은 초고층 빌딩 ‘요코하마 랜드마크 타워’(296m)를 오르니 미나토미라이21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랜드마크 타워가 선 자리는 과거 미쓰비시 조선소의 대형 도크가 있던 곳이다. 시민들은 기능을 잃은 도크를 버리는 대신 1993년 랜드마크 타워가 들어설 때 옆자리로 옮겼다. 길이 107m, 너비 29m, 깊이 10m의 석조 도크에서 만들어진 배는 세계 전역을 누비며 일본 조선업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현대식 초고층 건물 옆에 있는, 세월의 흔적이 묻은 도크의 돌계단은 웅장한 고대 유물을 마주하는 것 같은 착각이 일게 한다.

고도성장을 이어오던 일본 조선산업이 1960년 정체기에 들면서 미쓰비시 조선소는 전환의 계기가 필요했다. 요코하마시도 낡은 항만으로 단절된 도심을 통합하고 인근 도쿄의 산업·주거 기능을 수용해 경제성장의 새 동력을 마련하려고 했다. 이해가 일치한 요코하마시와 미쓰비시 조선소는 1980년 도심 외곽으로 조선시설을 옮기는 데 합의했다.

이어 1983년 조선소가 떠난 항구에서 도크는 시민의 공간으로 거듭났다. 옛 조선소 노동자들이 배를 지으며 오르내리던 가파른 계단은 관람객들이 공연을 즐기는 의자가 됐고, 도크 바닥 벽면엔 식당가와 쇼핑몰로 향하는 출입구가 뚫렸다. 거대한 선박이 자리했던 넓은 공터는 유모차를 끄는 중년 남성, 팔짱을 끼고 걷는 연인, 챙모자로 멋을 낸 노인들이 여유를 즐기는 도심 속 휴식공간이 됐다.

‘역사에 대한 존중이 만든 현재의 풍요’는 미나토미라이21을 관통하는 테마다. 옛날 화물열차가 오가던 철로를 따라 꾸며진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면 도심을 흐르는 운하, 빛바랜 교량, 잎이 무성한 나무와 마주하게 된다. 길 끝에서 ‘아카렌가소코’(빨간 벽돌 창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1913년 완성된 후 제2차 세계대전 군사물자 보급기지로 쓰였던 3층짜리 화물창고는 1989년 6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문화·상업시설로 재탄생했다.

조선소가 떠난 유휴지를 미항으로 거듭날 수 있게 한 원동력은 원칙과 합의다. 이 원칙과 합의를 세우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65년 사업계획이 시작되고 20년 가까이 지나서야 미나토미라이21은 착공에 들어갔다. 시라이 마사카즈 요코하마시 미나토미라이21추진과장은 “1984년 정부와 민간이 함께 참여해 만든 법인인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21(MM21)’이 구성되면서 자발적인 규칙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MM21의 운영자금은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회원(지역 민간사업자)들이 내는 운영비, 자체 수익사업이 각각 3분의 1씩 차지하고 있다.

공동체의 합의는 난개발을 막았다. 미나토미라이21의 건물들은 바다에 가까울수록 낮고 내륙에 가까울수록 높아 측면에서 보면 스카이라인이 비스듬한 선을 그린다. 위치에 따라 미리 정해진 건물 색 때문에 바다 인근에선 하얀색이 주를 이뤘던 건물들이 내륙으로 갈수록 짙은 색으로 바뀌며 풍경과 어울린다. MM21이 정한 ‘마을 가꾸기 기본규정’에는 간판 크기, 건물 간격, 옥상 형태 등에 대한 내용도 담겨 있다. 쾌적한 보행공간, 넓은 주차공간, 바다 경관과 일정 이상의 녹지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도 합의에 따른 결정이다. ‘21세기 미래항구’라는 뜻의 미나토미라이21이라는 이름도 1981년 시민 공모의 산물이다.

체계적인 개발과 전폭적인 정부 지원, 시민들의 협조가 3박자를 이루며 미나토미라이21은 독자적인 방식의 성공을 거뒀다. 미나토미라이21에 입주한 기업은 2010년 1400곳에서 지난해 1770곳까지 늘었다. 같은 기간 고용 규모는 2만명 넘게 늘어 지난해 10만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미나토미라이21을 찾은 관광객은 7600만명에 달한다.

효율성, 속도, 이윤을 앞세우지도 않았다. 요코하마시는 매립지 매각을 입찰에 부칠 때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한 사업자를 택하는 대신 MM21의 이념에 가장 부합하는 사업계획을 제출하는 사업자를 골랐다. 최나영환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전문연구원은 “대상 지역의 가격은 정해둔 상태에서 가장 좋은 활용 방안을 제안하는 사업자에게 토지를 매각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윤의 빈자리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채웠다. 도심 속 건물 숲을 조금만 벗어나면 9만3000㎡ 규모의 린코 공원이 펼쳐진다. 바다를 끼고 넓게 펼쳐진 공원에서 사람들은 낚시를 즐기거나 조깅을 하고 그림을 그린다. 고층 빌딩이 들어설 만한 금싸라기 땅에 푸른 잔디가 깔린 넓은 공원이 있기 때문에 이윤은 ‘0원’이지만 시민들이 느끼는 여유와 만족은 금전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다. 시라이 과장은 “수십년간 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시대적 요청이 있었다. 예를 들어 환경 문제는 과거에 크게 중요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며 “도심의 하드웨어뿐만 아니라 매력적인 소프트웨어를 만들지 못하면 도시 간의 경쟁에서 밀려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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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610101837011&code=920100#csidx9f0ac804258d120bdf828b5018b13b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