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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삶] ‘도둑이자 강도’가 아닌 지배계층이 어디 있는가? / 경향신문에서

이윤진이카루스 2016. 10. 15. 13:35

[책과 삶]‘도둑이자 강도’ 케냐 지배계층을 고발하다

심혜리 기자 grace@kyunghyang.com

ㆍ십자가 위의 악마
ㆍ응구기 와 티옹오 지음·정소영 옮김 |창비 | 448쪽 | 1만4000원
ㆍ한 톨의 밀알
ㆍ응구기 와 티옹오 지음·왕은철 옮김 |은행나무 | 388쪽 | 1만4000원

최근 소설 두 편을 국내에 번역·출간한 아프리카 현대문학의 거장 응구기 와 티옹오.

최근 소설 두 편을 국내에 번역·출간한 아프리카 현대문학의 거장 응구기 와 티옹오.

올해 노벨문학상 발표 직전까지 영국의 온라인 도박사이트 래드브록스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와 필립 로스를 제치고 수상 유력 1위로 꼽혔던 아프리카 현대문학의 거장 응구기 와 티옹오(78). 그의 소설 2권이 나란히 출간됐다.

<십자가 위의 악마>는 응구기가 영어를 버리고 케냐의 토착어인 기쿠유어로 돌아와 쓴 첫 작품으로 국내에서 초역이다. <한 톨의 밀알>은 ‘응구기 소설의 최정점’이라 평가받는 작품으로 개정판이다. 작가가 기존 판본의 오류들을 바로잡아 낸 최신 버전인 셈이다.

[책과 삶]‘도둑이자 강도’ 케냐 지배계층을 고발하다

<십자가 위의 악마>는 응구기가 케냐의 지배층을 풍자한 희곡을 썼다는 죄로 교도소에 수감돼 있으면서 화장지에 몰래 써내려간 작품이다. 영국에 유학하며 영어로 집필한 소설들을 통해 세계적 명망을 얻은 작가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영어 대신 기쿠유어를 자신의 문학 언어로 삼아 창작활동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압제자의 언어로는 온전히 진실해질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선언 이후 그는 탈식민주의 문학의 기수가 된다. ‘제임스 응구기’라는 영어식 이름도 버린다. 작품에 기쿠유어를 사용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내용에 기쿠유의 민담이나 설화, 노래를 적극적으로 넣는다. 그의 사상적·문학적 변화가 잘 드러나는 작품이 <십자가 위의 악마>이다.

이 소설은 독립 이후의 케냐에서 일자리를 찾아 수도 나이로비에 온 젊은 여성 자신타 와링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현대판 도둑질과 강도질 경연 대회’라는 기이한 모임에 가게 된 와링가와 그 일행은 케냐 민중을 등쳐먹는 다양한 지배계층의 탐욕을 확인하고 사람들을 모아 그곳을 습격하기에 이른다. 소설은 체포를 피한 와링가가 그날의 기억을 마음에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는 2년 뒤를 배경으로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응구기는 이 작품을 김지하의 <오적>에서 영향받아 집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식민지배와 해방 이후 피식민지가 겪는 고통은 한국과 케냐가 닮아 있다. 제국주의 세력에 빌붙었던 자들과 열강은 해방 후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를 통해 새로운 식민주의를 운영한다. 그리고 이 소설은 그들에 맞서 공동체적 삶을 복원하고 지배계급 및 제국주의 세력에 저항해야 함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응구기에게 본격적으로 국제적 명성을 안긴 <한 톨의 밀알>은 첫 장편소설 <울지 마, 아이야>(1964) 출간 뒤 작가가 3년 만에 발표한 작품이다.

1963년 12월12일 케냐 독립일을 나흘 앞둔 시점에 평범한 농부 무고에게 마을의 원로와 무장 독립투쟁 영웅, 게릴라군이 찾아오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설은 마우마우 운동을 비롯한 독립투쟁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케냐의 근대사를 다루고 있다.

작품의 시간적 배경은 독립일 앞뒤 며칠간에 집중돼 있지만 실제로는 1950년 마우마우 독립운동, 1920년대 격변기, 더 나아가 케냐의 근현대 전 역사를 아우르고 있다. 또 한 명의 주인공을 찾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인물들의 각기 다른 목소리가 케냐의 시대 상황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과거에 경찰서장을 암살한 키히카는 투쟁과 희생의 인물이다. 키히카를 배반해 식민 당국에 넘긴 카란자는 기회주의와 변절을 상징하며, 남편 기투아를 수용소에 떠나보내고 카란자의 아이를 낳은 뭄비는 시간을 견디는 사랑과 치유를 보여준다. 작가가 한 명의 영웅을 중심인물로 내세우지 않은 것은 마지막 장의 제목이기도 한 ‘하람베’, 즉 ‘공동체 정신’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로터스 문학상, 노니노 국제문학상 등 다수의 국제 문학상 수상 경력이 있는 응구기는 지난달 20일엔 ‘박경리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현재 미 캘리포니아대학 어바인캠퍼스 교수로 재직 중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60205&artid=201610141917005#csidx4729340f8c62a66ac3dd72b8899435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