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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를 뭉개는 정치 / 한상희 건국대 교수 / 경향신문

이윤진이카루스 2016. 10. 16. 23:00

[정동칼럼]법치를 뭉개는 정치

한상희 |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 8일 지방변호사회장들이 대한변협에 변호사 수를 “적정”하게 유지할 방안을 촉구하고 나섰다. 최근 변호사가 급증하면서 법률시장에 닥친 위기감을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방향을 잘못 잡았다. 문제는 숫자가 아니라 법률시장 자체를 퇴행시키는 우리의 비리한 정치판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법의 영역에 권모와 술수가 판을 치고 원칙의 자리에 권력과 편법이 횡행한다면 누가 법을 찾으며 누가 변호사를 말하겠는가?

[정동칼럼]법치를 뭉개는 정치

우리가 연발하는 법조비리에 경악하였던 것이 불과 몇달 전이다. 그 끄트머리에 민정수석이 자리하여 국법질서를 농단했다는 의혹은 아직도 세간의 분노를 자아낸다. 검찰의 수사조차 시늉에 그치고 있음도 현재 진행형이요, 자신이 임명한 특별감찰관까지 내친 대통령이 국기 문란 운운으로 입막음에 나선 것도 역시 진행 중인 사건이다. 대통령 주변에서 대기업의 돈을 모아 이런저런 재단을 만들어 세상을 우롱하는 것은 현재 드러나고 있는 사실이며, 그 주변부에서 모 여자대학은 입시와 학사관리의 부정까지도 의심받고 있다.

그뿐 아니다. “이 사람이 아직도 있어요?”라는 대통령의 한 마디가 두 명의 국·과장급 공무원을 파직시키며 신분보장이라는 헌법규정조차 무력화시켰다. 여기에 세월호 참사 등 시국사건에 서명한 문화예술인과 문학인들을 “비국민” 내지는 “불령선인”으로 만들어버린 블랙리스트는 헌법 위에 존재하는 대통령의 관심법(觀心法)이 얼마나 지엄한지 잘 보여준다. 설상가상으로 그렇게 막강한 권력 위에 또 다른 섭정권력이 있어 1순위, 2순위가 따로 있다는 뜬 소문들은 헌정질서의 뿌리까지 흔들며 우리를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고 백남기 농민 사건은 그 절정에 자리한다. 의혹 속의 서울대병원은 의사 한 명이 분명 법문서임에 틀림없는 사망진단서를 휘저어대는 것을 방치하고만 있고, 그동안 수사의 시늉도 않던 검찰은 뜬금없는 빨간 우산 남자를 들먹이며 부검만 외친다. 여기에 법원까지도 필요성과 상당성이 없다던 바로 그 사건에 새삼스러운 부검 영장을 발부하고는 나 몰라라 발뺌한다. 실제 맨몸의 시위자에게 고압의 직사살수를 해대는 것은 일종의 린치이자 사법외적인 즉결처형에 해당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 최악의 국가범죄에 대해 사과는커녕 되레 고인을 비난하며 사고경위를 왜곡하느라 정신이 없다.

정부를 견제해야 할 국회조차 선거법 공소시효 운운하며 무력하게 소일하였다. 그렇다고 그들이 면책된 것도 아니다. 공소시효 막바지에 검찰은, 경선에 출마하지 못하게 겁박한 친박실세는 무혐의 처분하는 대신 13년 전의 지역 민원사업을 소개한 야당 대표를 비롯하여 전체 국회의원의 10%가 넘는 야당과 비박계 의원들을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하였다.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에 걸맞게 검찰 스스로 정계개편의 조역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의 법치는 외인사 판정에 처해진다. 우리 국민의 사법신뢰도가 저 악명 높은 멕시코나 러시아에도 못 미치는 것은 괜한 푸념이 아니다. 그 불신은 사법부를 넘어 총체적인 법 전체를 겨냥한다. 대통령이 법 위에 자리하고 정부와 집권여당이 법을 무시하며 사법관이 법을 우롱하는 상황에서 법을 국민 신뢰의 대상으로 거론하는 것 자체가 상상불능의 망상일 따름이다.

이 반법치의 현실 아래서 변호사의 숫자만 따지는 것은 무의미의 극치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쓰나미처럼 공직사회를 휩쓸고 갈 때, 후안무치한 부검정국이 세상을 어지럽힐 때, 청와대를 등에 업고 대기업에서 재단설립 자금을 ‘수금’해 갈 때, 혹은 그에 돈을 댄 대기업이 탈법으로 그 대가를 찾아 나설 때, 힘없는 변호사들이 법이라는 왜소해진 칼자루를 들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권력자가 법 없이 사는 사회에서 변호사의 손에 들려진 그 작은 글씨의 법조문은 그저 폭력의 다른 표현일 따름이다. 우리 법률시장이 좁아 드는 연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기에 장담한다. 변호사회가 정녕 법률시장을 걱정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법치의 실패에 대한 현 정부의 책임을 추궁하라. 그것이 힘들다면 민정수석 등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고 백남기 농민 사건에 대한 특검을 확보하며 세월호의 진상조사가 제대로 되게끔 입이라도 모아 보라.

거기서 구축되는 법치만으로도 우리의 법률시장은 발전의 토대를 확보하게 된다. 권력과 편법이 삼켜버린 법의 세상이 제대로 펼쳐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작 필요한 것은 “적정 변호사 수 산정 연구를 위한 유관 기관과의 태스크포스”가 아니라, ‘법치의 확립을 위한 대정부투쟁본부’가 된다. 그게 진정한 선결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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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0162111035&code=990308#csidx87357033832646086e9274b8aa2a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