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박근혜 정권은 NLL 소동 피운 것부터 사과하라
18대 대선전이 달아오르던 2012년 10월8일 당시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통일부 국정감사에서 뭔가를 폭로했다. “2007년 10월3일 오후 3시 평양 백화원 초대소에서 남북 정상이 단독회담을 가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북방한계선(NLL)을 주장하지 않겠다고 구두로 약속했다. 북한 통일전선부가 녹음한 내용을 비밀리에 우리 측 비선라인과 공유했다. 통일부와 국가정보원에 기록이 보관돼 있다.” 새누리당은 이 폭로가 무슨 신호인 양 당력을 총결집해 노 대통령이 나라를 팔아먹은 것처럼 공세를 폈다. 정수장학회 설립 과정의 강압 문제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궁지에 몰린 때였다. 남북정상회담 발언은 공개될 수 없는 비밀 자료다. 오히려 그 때문에 새누리당이 제기한 의혹은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됐다. 그러나 문제의 발언은 없었음이 확인됐다.
대선 후 잠잠하던 NLL 공세는 2013년 6월 재개됐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이 드러나 국민적 비난이 확산되는 시점이었다. 새누리당의 주장은 녹취록이 폐기됐다는 것이었다. 검찰은 “(대통령 재임 시 국정 자료를 담고 있는) 봉하 이지원에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및 삭제본을 발견했다”며 거들었다. 국정원도 나섰다. 자체 보관 중인 정상회담 회의록 발췌본을 국회 정보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열람시켰고, 서상기 정보위원장은 ‘노 대통령의 NLL 포기 취지 발언’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백종천 당시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등을 법정에 세웠다.
그로부터 2년 반이 지난 2015년 2월, 이들은 전부 무죄를 받았다. 반대로 정문헌 전 의원에 대해서는 벌금 1000만원이 선고됐다. 그제서야 흑색선전에 앞장서던 새누리당 의원이 꼬리를 내렸다. 윤상현 의원은 “노 대통령께서는 포기라는 말씀을 한번도 쓰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대선 5일 전 부산에서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한 증거라며 사전 유출된 것으로 의심되는 회의록을 줄줄 읽던 김무성 전 대표도 사과했다. 온 나라가 1년 넘게 난리를 피운 NLL 논쟁이 정치 공세였다는 점을 자인한 것이다.
이번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파문도 판박이다. 새누리당과 청와대가 회고록 공세에 뛰어든 속도가 빨라졌을 뿐이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북한과 사실상 내통한 것”이라고,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사실이라면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라고 은근히 부추겼다. 청와대와 여당이 수세에 몰리고, 대선을 앞둔 시기라는 점에서 NLL 소동 때와 유사하다. 비선 실세 최순실과 미르·K스포츠 재단을 둘러싼 의혹이 드러나고,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공세가 시작됐다는 점은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NLL 소동 때처럼 이번에도 진실공방으로 끝없는 소모전을 펼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새누리당은 국정은 어찌 되든 이 문제가 블랙홀처럼 모든 현안을 빨아들이기를 기대하는 것 같다. 논쟁의 방향이 사안의 본류와 논점에서 이탈하는 점도 비슷하다. NLL 공방 때도 문제의 본질에 관한 이성적 판단은 뒷전이었다. 앞뒤 다 자르고, 노 전 대통령 발언의 극히 일부에 집착하며 왜곡을 일삼았다. 송민순 전 장관이 이번에 지적한 것은 대북정책의 일관성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이런 취지는 논외로 치고 “북한의 의견을 듣고 결정하자”는 자구 하나에 매달리고 있다. 지엽말단에 기댄 치졸한 트집 잡기다.
NLL 포기 주장은 새누리당이 대선에서 이기고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작한 사건으로 결론이 났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도록 허용해서는 안된다. 똑같은 문제로 두번 속아 넘어갈 줄 알면 오산이다. 시민들은 이 정권이 NLL 문제로 정치갈등, 사회분열, 국력낭비를 초래한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시민들은 새누리당이 안보 문제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활용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반역이니 종북이니 허무맹랑한 공격을 다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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