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최순실 딸 경고했다고 교수를 교체한 학장, 이게 대학인가
이화여대 교수가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지목돼 온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제적 경고를 했다가 지도교수에서 교체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최씨는 해당 교수에게 “교수 같지도 않은 게…”라며 폭언을 퍼부었다고 한다. 이대가 대통령과 가깝다는 최씨의 심기를 건드릴까 노심초사했고, 최씨는 대통령을 등에 업고 얼마나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해 왔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정황이 아닐 수 없다.
정씨 지도교수였던 이대 체육과학부 함모 교수가 지난 19일 TV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은 충격적이다. 함 교수는 지난 4월 학교에 나오지도 않고 과제도 제출하지 않은 정씨에게 제적 경고를 하려 전화를 걸었다. 딸 대신 전화를 받은 최씨는 학장과 함 교수를 연달아 방문했다. 학장은 “(최씨가) 내려가니까 잘하라”며 함 교수에게 말했고 함 교수는 “뭘 잘해야 되느냐, 내가 뭔 죄를 지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학장은 “(최씨가) 정윤회 부인이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의원 시절 보좌관을 지낸 최측근 정윤회씨의 부인이니 알아서 잘 모시라는 뜻이었음은 삼척동자라도 알 것이다. 최씨가 함 교수에게 “교수 같지도 않고 이런 뭐 같은 게 다 있냐”고 폭언을 퍼부은 것은 심각한 명예훼손이자 갑질이다. 결국 정씨에게 제적 경고를 했던 함 교수는 “물러나라”는 학장의 전화를 받고 지도교수 자리를 내놓아야 했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에서, 그것도 130년 역사를 가진 명문 사학에서 이런 장면이 연출됐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이대가 얼마나 권력 눈치 보기에 급급했길래 이럴 수 있는지 실망스럽다. 최고 권력을 둘러싼 실세와 이대 보직교수들간 유착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그러지 않아도 이대는 올해 실시된 9개 교육부 주요 재정 지원 사업에서 8개에 포함돼 단단한 연줄을 잡고 있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무성했다. 학장 윗선에서 지도교수 축출에 개입하지 않았는지 규명할 필요가 있다. 정의와 진리, 시민적 덕성은 시대를 막론하고 대학이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 소중한 가치다. 그럼에도 이대 측은 권력에 아부하고 무릎 꿇는 법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는 말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최씨 모녀를 둘러싼 의혹은 일파만파 번지며 이대 총장 사퇴까지 불렀다. 보직 교수를 포함해 진상을 아는 이대 관계자들은 이제라도 낱낱이 밝혀야 한다. 그것이 제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하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또 다른 제목은 "나는 점쟁이다"? / 경향신문에서 (0) | 2016.10.22 |
---|---|
‘최순실 게이트’ 닫으라는 대통령 / 경향신문 (0) | 2016.10.21 |
탈주마저 봉쇄된 나라의 이후 / 김윤철 경희대 교수 / 경향신문 (0) | 2016.10.21 |
‘분단’의 정치적 이용, 이제 그만 / 박태균 서울대 교수 / 경향신문 (0) | 2016.10.20 |
진시황 시대의 ‘개그콘서트’와 김제동 / 경향신문 (0) | 2016.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