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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정권에 대한 조언의 딜레마 / 대니 로드릭

이윤진이카루스 2011. 4. 23. 08:10

세계의 창] 독재정권에 대한 조언의 딜레마 / 대니 로드릭
한겨레
» 대니 로드릭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경제학
리비아 사태가 일어나기 전, 하버드대 동료 학자가 내게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지도자의 아들 사이프 알이슬람이 미국을 방문해 나를 만나고 싶어한다는 편지를 보냈다. 사이프는 영국 런던정경대 박사학위를 가진 흥미로운 인물이라고 했다. 난 즐거운 대화를 기대했고 경제문제에 관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와의 만남은 실망스러웠다. 사이프는 내게 여러가지 질문을 던졌지만, 내 전공 분야와는 거리가 먼 국제 비정부기구(NGO)들의 역할에 관한 것들이었다. 대화가 끝날 즈음 사이프는 나를 리비아로 초청하겠다고 했고 나는 기꺼이 초청에 응하겠다고 했다.

그 뒤로 사이프의 초청도, 나의 리비아 방문도 없었다. 만일 실제로 초청이 왔다면 내가 리비아를 방문해 그의 측근들과 카다피를 만났을까? 또 “우리는 경제발전에 애쓰고 있으며 당신이 우리를 도울 수 있다”는 말에 마음이 끌렸을까? 다시 말해, 나도 카다피와 의견을 나누고 조언을 하고 그 대가를 받았던 대학 동료들의 전철을 따랐을까?

일부 학자들은 최근 언론으로부터 카다피의 환심을 사려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하워드 데이비스 런던정경대 학장은 사이프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하고 리비아 정부의 기금을 받았다는 이유로 사임했다. 세간에는 학계나 연구소가 불쾌한 정권과 협력하는 것은 중대한 일탈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리비아 시위대에 대한 카다피의 가혹한 태도는 최근 몇년 동안 보여줬던 온건한 태도와는 거리가 먼, 그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또 사이프가 아버지를 지지한 것을 보면, 그도 알려진 것처럼 자유주의적 개혁가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뒤늦게 그런 결론을 내리기는 쉽다. 아랍권의 혁명이 리비아까지 번지기 이전에 카다피를 대할 때 분명하게 도덕적 목소리를 높였는가? 질문의 범위를 좀더 넓혀, 아랍 혁명 이전에도 조언자들이 독재정권은 피해야 한다는 점이 그처럼 명백했던가?

지금 세계의 모든 대학들이 앞다퉈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다수 학자들은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만날 기회가 생기면 즉각 수용할 것이다. 그런 만남은 문제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며, 이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중국이 정치적 반대자들을 가혹하게 다루는 억압적 정권이라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에티오피아 같은 나라는 또 어떤가? 나는 얼마 전 아디스아바바에서 멜레스 제나위 총리와 집중적으로 경제정책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멜레스의 민주주의 약속에 대한 환상은 내게 없다. 그러나 나는 그가 자국 경제를 발전시키려 하고 있으며, 경제발전이 에티오피아의 보통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란 믿음으로 정책 조언을 한다.

전체주의 정권들에 대한 정책 조언의 딜레마는 ‘더러운 손들’이라는 오랜 철학적 문제와도 닮았다. 테러리스트가 다수의 인질을 붙잡은 채 그들에게 줄 물과 음식을 요구한다. 당신은 높은 도덕적 기준에 따라 “나는 테러리스트와는 결코 협상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경우 인질들을 도울 기회는 놓치게 된다. 대다수 도덕철학자들은 그런 상황에서 설사 테러리스트를 돕는 결과를 낳을지라도 인질을 돕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그러나 더 큰 선의를 위한 행동이라도 도덕적 비난의 여지는 남게 된다. 테러리스트나 독재자를 돕는 순간 우리의 손은 더럽혀진다.

전체주의 정권에 대한 조언자들은 이런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독재자들은 종종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조언을 구한다. 그 경우 외국의 조언자들은 엄정해야 한다. 그러나 조언자가 자신의 일이 독재자가 붙잡고 있는 인질들에게 이로운 것이라고 확신할 경우엔 조언을 할 의무가 있다. 그런 경우에도 조언자는 일정 정도 ‘도덕적 공범’으로 연루돼 있음을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대니 로드릭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경제학



기획연재 : [사외] 세계의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