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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무지에 관하여
총장님, 학장님, 그리고 여러분 나는 먼저, 명예 정치학박사(doctor renum politicanum honoris causa)로 나를 만든 커다란 영예에 대하여 요한 볼프강 괴테 대학의 경제학부에 감사하고 싶다. 요한 볼프강 괴테의 파우스트 박사에서 나오는 훌륭한 첫 번째 독백으로써 나는 이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그들은 나를 스승이라고 그리고 덧붙여 박사라고 부른다...
그러나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나는 어떤 이익도 주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독백의 처음부터 약 12행 전문을 암송하도록 여러분의 허락을 실제로 구해야 하겠다; 그 행들이 매우 유관함을 여러분은 발견할 것이다.
나는 철학을 공부했지
수많은 밤에,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그리고 빛을 소망했지;
약학과 법도 공부했는데
주로 고되고 재미없었지,
그래서 그것들 모두가 공모해서 나의 정신을 폐쇄시켰지.
그 후 나는 신학으로 돌아섰지.
그러나 이 과목은, 하느님 맙소사! 완전히 신성모독이었지.
그래서 이제 나는 여기 서 있는데,
초라하고 어리석은 따분한 사람으로,
1979년 6월 8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Frankfurt am Main) 대학의 대강당에서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에서 행한 강좌.
이전보다 더 많이
알지 못하지.
그들은 나를 스승이라 부르네,
그리고 덧붙여 박사라고,
그러나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나는 어떤 이익도 주지 못하네.
세상을 함께 묶는
위대한 힘들을
발견하기를 나는 갈망했었네.
이제 우리가 눈이 멀었음을 나는 알지.
이유인즉 참된 지식은
이룩될 수 없음을 내가 알기 때문.
그래서 나의 심장은 거의 찢어지고:
나는 깊은 슬픔에 잠기지.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파우스트 박사가 말하는 것은 관련성이 높다: 그는 우리를, 나의 강좌의 제목인 지식과 무지라는 주제에 의하여 선언된 바로 그 주제로 이끈다. 매우 개괄적일 뿐일지라도 나에게는, 이 주제를 역사적으로 다루어 그 주제의 초점을 소크라테스의 가르침들로 만들려는 의도가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탁월한 철학 작품인 플라톤의 저서 재판관들 앞에서 행한 소크라테스의 변명(Apology of Socrates Before His Judges)으로써 시작하겠다.
I
플라톤의 저서 변명(Apology)은 자신에 대한 기소와 관련하여 소크라테스가 자신을 옹호하는 말과 짧은 보고서를 담고 있다. 나는 그의 말을 진짜로서 간주한다. 그 말에서, ‘소크라테스보다 더 현명한 사람이 있는가?’라는 대담한 질문을 받고 델피의 신탁이 다음과 같이 답변한 것을 소크라테스는 듣고 자기가 얼마나 놀라고 경계했는지를 기술한다: ‘아무도 더 현명하지 않다.’ 내가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자문했다: 도대체 아폴로 신은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가? 이유인즉 내가 현명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매우 현명하지도 않고 심지어 조금도 현명하지 않다’고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신탁의 판단에 의하여 신이 의미하는 바를 자신이 풀 수 없음을 소크라테스는 알았기 때문에 그것을 반증해보기로 소크라테스는 결정했다. 그래서 그는 현명한 것으로 간주되던 어떤 사람으로부터 ㅡ 아테네의 정치가들 중 한 명 ㅡ 배우려고 찾아갔다. 소크라테스는 그 결과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변명[Apology] 21D): ‘나는 틀림없이 이 사람보다 더 현명하다: 우리들 중 누구도 훌륭한 것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중요한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나도 역시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뭔가를 아는 척하지 않는다.’ 정치가들과 이야기를 해본 후에 소크라테스는 시인들에게 갔다. 결과는 동일했다. 그다음에 소크라테스는 기술자들에게 갔다. 당시 이 사람들은, 그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정말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많은 다른 것들, 심지어 가장 훌륭한 것들도 또한 알고 있다는 인상을 풍겼다. 그리고 그들의 오만은 그들이 지닌 진정한 지식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는 결국 델피 신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해석에 도달했다: 분명히 신(神)은 소크라테스에 관하여 전혀 말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사람들 중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소크라테스처럼 실제로 자신이 현명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사람이다’라고 주장할 목적으로만 신(神)은 이 이름을 이용했다.
II
우리의 무지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통찰은 ㅡ 내가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게다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ㅡ 최고로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통찰이 플라톤의 저서 소크라테스의 변명(Apology of Socrates)에서보다 더 분명하게 표현된 적이 없다. 이 소크라테스의 통찰은 흔히 진지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아서 그 통찰은 역설적으로서 간주되었다. 플라톤 자신은 우리의 무지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그리고 그와 함께 소크라테스의 자세를 결국 배척했다 (고르기아스[Gorgias]에서): 지성적 겸손에 대한 요구를 배척했다.
소크라테스의 정치가에 대한 이론을 플라톤의 이론과 우리가 비교한다면 이것은 분명해진다. 이 특수한 요점은 틀림없이 정치학 박사 학위에 특히 중요하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모두가 정치가는 현명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것에는 두 사람 각자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가 있다. 소크라테스에게, 정치가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자신의 무지를 완벽하게 의식해야 함을 그것은 의미한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는 지성적 겸손을 옹호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그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 ‘네가 얼마나 아는 게 없는지를 인식하라!’
대조적으로 플라톤은, 정치가는 현명해야 한다는 요구를 현명한 자의 통치를 위한, 궤변가들의a 통치를 위한 요구로서 해석한다. 교육을 잘 받는 변증가인 박식한 철학자만이 통치할 능력이 있다. 이것이, 철학자들이 왕이 되어야 하고 왕은 완전히 훈련을 받은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플라톤의 유명한 고집이b 의미하는 바이다. 철학자들은 흔히 플라톤이 내건 이 조건에 의하여 깊은 인상을 받았다; 왕들은 오히려 인상을 덜 받았다고 우리는 생각할 것이다.
정치가들이 현명해야 한다는 요건에 대한 두 가지 해석들 사이에서의 더 큰 대조를 우리는 상상할 수 없다.c 그것은, 지성적 겸손과 지성적 오만 사이의 대조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오류가능주의(fallibilism)와 ㅡ 인간 지식의 오류가능성에 대한 인정 ㅡ 과학주의 ㅡ 지식과 지식인에게 그리고 과학과 과학자들에게 그리고 지혜와 현명한 사람에게 그리고 배우는 사람과 배운 사람에게 권위가 부여되어야 한다는 이론 ㅡ 사이의 대조이다.
이것으로부터, 인간 지식에 대한 평가에서의 차이가 ㅡ 다시 말해서, 인식론적 차이 ㅡ 대조되는 윤리-정치학적 목표들과 요건들을 야기할 수 있음이 분명하다.
III
이 단계에서 나는 오류가능주의에 대한 반론을 토론하고 싶다; 나의 의견으로 오류가능주의를 지지하는 논증으로서 거의 이용될 수 있을 터인 반론.
이것은, 지식이란 견해나 억측과 달리 본질적으로 권위의 문제라는 반론이다; 그리고 나아가 일반적인 언어적 용법이d 지식의 권위적 본성 이론을 뒷받침한다는 반론. 그리하여 다음 세 가지 것들이 존재할 때 ‘나는 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문법적으로 올바를 따름이다: 먼저, 내가 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의 진리; 두 번째, 그 진리의 확실성; 그리고 세 번째, 그 진리에 관한 충분한 근거들의 이용 가능성.
그런 분석들은 철학적 토론에 흔히 들을 수 있고 철학 저서들에서 읽힐 수
a 역주: ‘궤변가들’의 원어는 ‘the sophists'인데 박영태 번역은 ’지혜자들‘이다.
b 역주: ‘고집’의 원어는 ‘insistence'인데 박영태 번역은 ’말‘이다.
c 역주: 이 문장의 원문은 One can scarcely imagine a greater contrast between two interpretations of the requirement that the statesman be wise.인데 박영태 번역은 ‘정치가는 현명해야 한다는 요구 사항에 대한 두 사람의 해석이 아주 많이 차이가 난다는 것을 사람들은 거의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이다.
d 역주: ‘일반적인 언어적 용법’의 원어 표현은 general linguistic usage인데 박영태 번역은 ‘이 용어에 대한 일반적인 용법’이다.
있다. 그리고 이 분석들로 인하여, 우리가 매일 ‘지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의미하는 것이 실제로 밝혀진다. 그 분석들로 인하여, 내가 지식의 고전적 개
념으로 부르고 싶은 개념이 분석된다: 이 지식의 고전적 개념은, 알려진 것이
진리이며 확실하다고 암시한다; 그리고 또한 그것이 참이라고 믿을 충분한 이
유들이 우리에게 있다.
소크라테스가 ‘내가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ㅡ 게다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라고 말할 때 그가 이용하고 있던 것은 바로 이 고전적인 지식의 개념이다. 그리고 괴테는 파우스트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말을
시킬 때 지식에 대하여 동일한 고전적 개념을 이용하고 있다:
참된 지식은 이룩되지 않음을 나는 알지
그래서 나의 심장은 거의 찢어지지!a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또는 거의 항상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과 그래서 우리는 ‘지식’의 고전적 의미에서 아는 것이 없거나 극도로 조금 안다는 것을 강조하는 오류가능성이라는 교설인 오류가능주의에 의하여 또한 사용되는 것은 정확하게 지식에 대한 이 고전적 개념인 일상적인 언어의 지식에 대한 개념이다; 혹은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바와 같이, ‘훌륭한 것’을 알지 못한 것을 강조하는.b
우리가 ‘훌륭한 것’을 혹은 더 직역하여 ‘아름답고 훌륭한 어떤 것’을 알지 못한다고 소크라테스가 말했을 때 (변명[Apology] 21 D) 그는 무엇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특히 윤리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결코 윤리적 지식이 불가능하다고 선언하고 있지 않다; 반대로 그는 윤리적 지식에 대한 근거를 찾으려고 시도했다. 그가 그렇게 하는 방식은 비판적인 방식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보였던
a 역주: 파우스트의 독배의 이 두 행의 원문은 I see that true knowledge cannot be achieved
And my heart almost breaks!인데 박영태 번역은 ‘그리고 이제 우리가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네! 이러한 생각을 하니 내 심장은 거의 타버릴(burn) 것만 같다네.’ 인데 박영태는 역주에서 ‘부서질것만(break) 같다네’로 서술했다.
b 역주: 이 문장들의 원문은 Hence it is precisely this classical concept of knowledge, the concept of knowledge of everyday language, which is also used by fallibilism, the doctrine of
of fallibility, to emphasize that we are always or almost always capable of error and that we therefore know nothing or only very little in the classical sense of 'knowledge'; or, as Socrates says, that we know 'nothing that is good'.인데 박영태 번역은 ‘오류 가능주의가 사용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고전적인 지식 개념이며, 일상 언어의 지식 개념이다. 오류 가능주의의 이설(doctrine)은 우리가 항상 또는 거의 모두 오류를 범할 수 있으며, 그러므로 ’지식‘의 고전적 의미에서 우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또는 오직 조금만 안다고, 또는 소크라테스가 말한 바대로 우리가 ’선한 어떤 것도‘ 알지 못한다고 강조한다.’이다.
여하한 것도 비판했다. 그를 오류가능주의로 이끌었던 것과 그와 다른 사람들
이 결코 윤리적 문제들에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통찰로 이끌었던 것은
이 비판적 방식이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도덕철학에서 선구자였다. 우리가 삶에 관하여 타당하고 중요한 규칙을 지닌 것은 그로부터 그리고 그의 동시대인 데모크리투스(Democritus)로부터였다: ‘불의를 가하는 것보다 불의를 당하는 게 낫다.’
IV
그러나 변명(Apology)으로 돌아가서; 좋은 것은 자신에 의해서나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알려진 바가 없다고 소크라테스가 그곳에서 말할 때, 그는 아마도 자연 철학자들인 우리가 지금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로 부르는 저 위대한 그리스 사상가들이자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바의 자연과학의 선조들을 또한 생각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특히 자신의 변명(Apology)에서 조금 후에 언급된 자연 철학자인 아낙사고라스(Anaxagoras)를, 그다지 존경스러운 방식이 아니지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유인즉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성공적이지 못한(αtopos)’으로 기술하는 아낙사고라스의 작품이 기껏해야 아테네의 서점주들에게 1 드라크마의 판매대금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말하기 (변명[Apology] 26 D) 때문이다. 게다가 플라톤의 작품들 중 또 다른 작품인 파이돈(Phaedo)은 소크라테스가 아낙사고라스의 자연철학에 의하여 ㅡ 그리고 자연철학 일반에 의하여 ㅡ 크게 실망했음을 분명하게 밝힌다. 그리하여 ‘내가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ㅡ 게다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라고 소크라테스가 말할 때 그는 자신이 마주친 많은 중대하고 미해결인 문제들 생각하고 있었다고 상상할 이유가 우리에게 있다;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들로부터 자연철학의 문제들까지.
소크라테스는 확실히 괴테의 파우스트와 많은 것 모두를 공유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통찰로 인하여 소크라테스의 가슴에도 또한 불이 붙었다고 우리는 상상할 것이다: 파우스트처럼 그도 모든 진정한 과학자들이 지닌 이룩되지 않은 욕망으로부터 강력한 고통을 받았다고:
이 세계를a 통합하는
있을지도 모르는 힘들을 아는 것.
a 역주: ‘세계’의 원어 단어는 word인데 world의 오기로 보이고 박영태 번역에도 역주로 ‘원문과 대조하면’으로 지적되어 ‘세계’로 번역되었다.
그러나 현대 자연과학으로 인하여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실현 불가능한 목표에 다소 근접했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의 무지라는 자세가 현대 자연과학에 의하여 초월된 것으로 밝혀지지 않았는지를 우리는 물어야 한다.
V
사실상 뉴튼의 중력이론은 완전히 다른 상황을 가져왔다. 이 이론은, 2000년 이상이 지나서 소크라테스 이전 자연 철학자들의 원래 연구 프로그램이 실현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리고 뉴튼 자신은, 자신의 저서 제목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Mathematical Principles of Natural Philosophy)로 선택했을 때, 자신의 이론을 이것에 비추어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고대 세계의 대담한 꿈들을 뒤로 멀리 떨쳐낸 깨달음이었다.
그것은 전례 없는 진보였다. 데카르트의 이론은, 뉴튼 이론에 의하여 차츰 대체되었는데, 비교되지 않는다. 데카르트의 이론은 행성 움직임에 대하여 매우 모호한 정성적(定性的: qualitative) 설명만 제공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당시에도 잘 확립된 사실들과 모순을 이루었다. 다른 것들 가운데서, 태양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행성들이 가장 빨리 움직여서 관찰들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하게는 케플러의 제3 법칙과도 모순을 이루는 파멸적인 결과를 데카르트의 이론이 불러왔다.
대조적으로 뉴튼의 이론은 케플러의 법칙들을 설명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법칙들 수정하기도 했는데 왜냐하면 그 이론이 이 법칙들로부터의 사소한 일탈들을 올바르게 정량적으로(定量的으로: quantitative) 예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VI
그래서 뉴튼 이론은 새로운 지성적 상황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독보적인 지성적 승리였다. 뉴튼 이론의 예측들은 믿을 수 없이 정확하게 입증되었다. 그리고 천왕성에a 대하여 뉴튼에 의하여 예측된 사소한 궤도 이탈들이 발견되었을 때, 애덤스(Adams)와 르베리에(Leverrier)가 뉴튼 이론의 도움을 받아서 (그리고 수많은 행운이 따라서) 새롭고 미지의 한 행성의 위치를 계산한 것을 바
a 역주: 천왕성의 원어는 Uranus인데 박영태 번역은 ‘해왕성(Neptune)’이고 박영태는 저자 포퍼가
‘해왕성에 대한 사실을 천왕성에 대한 사실로 잘못 기술했다’고 역주로 설명했다.
로 이 일탈들로부터였는데 그 행성은 그다음에 갈레(Galle)에 의하여 즉시 발
견되었다. 게다가 뉴튼 이론은 천체들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지구 표면에서의 물체 움직임인 지구역학도 설명했다.
여기에 정말로 지식이 있었던 듯이 보였다; 참이고 확실하고 충분히 정당화된 지식. 그것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의심이 확실히 있을 리 없었다.
그 지성적 상황의 참신함이 파악되기까지는 두드러지게 긴 시간이 걸렸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깨달은 사람은 극소수였다. 위대한 철학자 중 한 명이 데이비드 흄(David Hume)은 위대한 진보가 이룩된 것을 알았지만 인간 지식에서 이 진보가 실제로 얼마나 위대하고 얼마나 근본적인지 그는 이해하지 못했을 따름이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여전히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해서 나는 우려한다.
VII
이마누엘 칸트는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한 최초의 사상가였다. 흄에 의하여 회의론으로 전향하여 그는 이 새로운 지식에a 있는 역설적이고 거의 비논리적인 특성을 알았다. 뉴튼 과학과 같은 것이 어떻게 조금이라도 가능할 수 있는지 자문했다.
이 질문과 칸트의 답변이 칸트의 저서 순수이성비판의 핵심적인 쟁점이 되었다. 이 저서에서 칸트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제기했다:
어떻게 순수 수학은 가능한가?
그리고
어떻게 순수 자연과학은 가능한가?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이 과학들이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에, 어떻게 그 과학들이 존재하는지를 묻는 것은 전적으로 합당하다; 이유인즉 그 과학들이 틀림없이 가능하다는 것은 그 과학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의하여 증명되기 때문이다.’
칸트의 경악은 ㅡ 뉴튼 이론의 존재에 대한 그의 합당한 경악인데 그 존
a 역주; ‘지식’의 원어는 knowledge인데 박영태 번역은 ‘인식론’이다.
재를 칸트는 ‘순수 자연과학’으로서 규정했다 ㅡ 분명히 인식된다.
그 문제에 관하여 견해를 지녔던 모든 사람과 달리, 뉴튼의 이론은 실험적이거나 귀납적 방법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 정신인 인간 지성의 창조물임을 칸트는 알았다.
‘어떻게 순수 자연과학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칸트의 답변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의 지성은 자체 법칙들을 [자연의 법칙들] 자연에서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의 법칙들을 자연에 부과한다.
다시 말해서 뉴튼의 법칙들은 자연으로부터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더 정확하게는 뉴튼의 작품으로 그 법칙들은 뉴튼의 지성의 산물이고 뉴튼이 발명한 것이다: 인간의 지성은 자연의 법칙들을 발명한다.
칸트가 믿은 이 극도로 참신한 인식론적 입장은 칸트 자신에 의하여 지식론에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으로서 기술되었다. 칸트의 견해로, 뉴튼의 과학은 고전적 의미에서의 지식이다: 진리이고 확실하고 충분히 정당화된 지식. 게다 이와 같은 지식은 가능한데 왜냐하면 인간의 경험 자체가, 우리의 인식 장치에 의하여 특히 우리의 지성에 의하여 감각 자료들을 능동적으로 처리하여 해석한 산물이기 때문이다.
칸트의 이 지식론은 중요하고 대부분 옳다. 그러나 어떻게 지식이, 다시 말해서, 고전적 의미에서의 지식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자신의 이론이 답변했다는 그의 믿음에서 칸트는 틀렸다.
진리이고 안전하고 충분히 정당화된 지식으로서 과학의 고전적 개념은 심지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번성한다. 그러나 그 개념은 아인슈타인의 혁명에 의하여 60년 전에 추월당했다;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에 의하여.
이 혁명의 결과는, 참이든 허위이든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고전적 의미에서의 지식인 안전한 지식이자 확실성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밝힌다는 것이다. 칸트는 옳았다: 우리의 이론들은 우리의 지성이 자유롭게 창조한 것들인데 우리가 그 이론들을 자연에 부과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진리를 추측함에서 우리는 성공하기가 드물 따름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성공했는지를 결코 확신할 수 없다. 우리는 추측성 지식으로 살아가야 한다.
VIII
여기서 나는, 뉴튼의 중력이론과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 사이의 논리적 연관성들에 관하여 몇 가지 간략한 논평들을 해야겠다.
뉴튼의 이론과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서로 모순이 된다: 특정 배경 지식을 고려하면 양립될 수 없는 두 가지 이론들의 특수한 결과들이 있다. 그래서 두 가지 이론 모두가 참이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두 가지 이론들은 근사치를 통하여 서로 관련된다. 그 이론들이 지닌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결론들 사이의 격차들이 너무 작아서a, 뉴튼 이론을 입증하고 뒷받침하는 셀 수 없이 많은 관찰된 모든 사례들이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동시에 입증하고 뒷받침한다.
내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뉴튼의 이론은 탁월한 경험적 입증에 의하여 뒷받침되었다; 그것은 아마도 최적의 입증이라고 언급될 것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 이론의 발견과 창안으로 인하여 이 탁월한 입증들을, 심지어 이 두 가지 이론들 중 한 가지 이론이 참이고 확실한 것으로서 간주하기 위한 이유들로서 우리가 간주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똑같은 이유들 때문에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이론의 수용을 참이고 확실한 것으로서 또한 지지할 터이다. 그러나 두 가지 양립될 수 없는 이론들 모두가 참이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으로부터, 심지어 제일 잘 입증된 과학 이론들도 고전적 의미에서의 지식으로서 해석한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배운다. 심지어 가장 잘 시험되어 가장 잘 입증된 우리의 과학 이론들도 성공적인 가설들이자 추측들일 뿐이고 그것들은 영원히 추측들이나 가설들로 남는다는 선고를 받는다.
IX
지식은 진리 탐구이다; 그리고 우리의 이론들 중 많은 이론들이 사실상 참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그 이론들이 참일지라도 우리는 결코 이것을 확실하게 알 수 없다.
이것은 시인이자 음유시인이었던 제노파네스(Xenophanes)에 의하여 이미 깨우쳐졌는데 그는 소크라테스보다 약 100년 앞서서 그리고 예수의 탄생보다 5백 년 앞서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나의 번역):
a 역주: ‘그 이론들이 지닌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결론들 사이의 격차들이 너무 작아서’의 원어 표현은 The discrepancies between their empirically verifiable consequences are so small인데
박영태 번역은 ‘이 이론들이 경험적으로 상충한다는 것을 검증할 수 있는 결과들이 너무 적기 때문에’이다.
그러나 확실한 진리에 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했고,
아무도 그것을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신(gods)에 대해서도,
내가 말하는 모든 것들에a 대해서도.
그리고 우연히 누가 완벽한 진리를 발설할 터이라도
그 자신은 그 진리를 알지 못할 터이다:
이유인즉 모든 것을 추측들로 짜여진 그물일 따름이기 때문.
그러나 심지어 당시에도 제노파네스는, 우리의 진리 탐구에서 진전이 있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유인즉 그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기 때문이다:
신들(gods)은 처음부터 밝히지 않았다,
우리에게 모든 것들을;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추구를 통하여 우리는 배우고 사물들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b.
내가 인용한 제노파네스의 이 단편 글들은 아마도 다음 두 가지 논지들로 요약될 것이다:
1. 진리에 대한 기준은 없다; 심지어 우리가 진리에 도달했을 때도 우리는 결코 그것을 확신할 수 없다.
2. 진리 탐구에는 진전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이 있고 그리하여 과학적 진보에 대한 기준이 있다.
두 가지 논지들 모두가 옳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진리 탐구에서 무엇이 과학적 진보에 대한, 우리의 가설들에서의, 우리의 추측들에서의 진보에 대한 합리적인 기준인가? 언제 한 가지 과학적 가설이 또 다른 과학적 가설보다 나은가?
답변은: 과학은 비판적 활동이다. 우리는 우리의 가설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우리는 그 가설들을 비판하여, 오류들을 제거하고 그리하여 진리에 더 근접하려는 희망에서 우리는 오류들을 발견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가설인 한 가지 가설이 다음 세 가지 요건들을 충족한다면. 우리는 그 가설이 또 다른 가설보다 나은 것으로 간주한다. 먼저, 새로운 가설은 옛 가설이 성공적으로 설명한 모든 것들을 설명해야 한다. 저것이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요점이다. 두 번째, 새로운 가설은 적어도 옛 가설의 오
a 역주: ‘모든 것들’의 원어 표현은 all the things인데 박영태 번역은 ‘모든 사물들의 진리’이다.
b 역주: ‘알게 될 것이다’의 원어 표현은 may know인데 박영태 번역은 ‘알게 되었다네’이다.
류들 중 몇 가지 오류들을 피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가설은 가능한
곳에서 옛 가설이 통과할 수 없었던 비판적 시험들 중 몇 가지 시험들을 통과해야 한다. 세 번째, 새로운 가설은 가능한 곳에서 옛 가설에 의하여 설명되거나 예측될 수 없었던 것들을 설명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것이 과학적 진보의 기준이다. 그 기준은 특히 자연과학에서 매우 널리 그리고 보통 무의식적으로 이용된다. 적어도 앞선 가설에 의하여 성공적으로 설명된 모든 것을 설명한다면 그리고 게다가 새로운 가설이 옛 가설의 특정 오류들을 피하기를 약속하거나 새로운 예측들을 ㅡ 가능한 곳에서, 시험될 수 있는 예측들a ㅡ 내놓는다면 새로운 가설은 진지하게 고려될 따름이다.
X
진보에 대한 이 기준은 진리에 대한 근사치의 기준으로서 또한 간주될 수 있다. 이유인즉 가설이 진보의 기준을 충족한다면 그리하여 적어도 앞선 가설이 통과한 만큼 잘 우리의 비판적 시험들을 통과한다면, 우리는 이것을 우연의 일치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설이 비판적 시험들을 더 훨씬 더 잘 통과한다면 그 가설은 앞선 가설보다 진리에 더 근접한다고 우리는 전제한다.
그리하여 진리는 과학의 목표이다: 과학은 진리 탐구이다. 그리고 제노파네스가 안 바와 같이, 우리가 이 목표를 성취했는지 우리가 알 수 없을지라도 우리가 진리에 더 근접했다고 생각할 매우 훌륭한 이유들이 우리에게 있다; 혹은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바와 같이, 우리가 올바른 길에 있다고.
XI
내가 말한 것으로부터 몇 가지 결론을 도출함에 의하여 나는 끝내고 싶다.
소크라테스의 무지라는 교설은, 나의 견해로, 극도로 중요하다. 뉴튼의 자연과학이 지식에 대한 고전적 개념을 통하여 칸트에 의하여 해석되었음을 우리는 알았다. 이 해석은 아인슈타인 이래 수용이 불가능해졌다. 심지어 자연과학에서 습득된 최고의 지식도 고전적 의미에서 지식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말해서 그 지식은 평범한 언어의 ‘지식’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이제
a 역주: ‘가능한 곳에서, 시험될 수 있는 예측들’의 원어 표현은 where possible, testable predictions인데 박영태 번역은 ‘검증될 수 있는 가능한 추측들’이다.
안다. 이로 인하여 지식 개념의 진정한 혁명이 발생한다: 자연과학의 지식은 추측성 지식이다; 그 지식은 대담한 추측이다. 그래서 뉴튼의 기념비적인 업적에 대한 칸트의 동조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소크라테스는 옳다. 그러나 지식은 합리적 비판에 의하여 단련된 추측이다.
이로 인하여 독단적인 사고에 대항하는 싸움이 의무로 변한다. 이로 인하여 또한 최고의 지성적 겸손이 의무가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로 인하여 단순하고 허식 없는 언어를 가꾸어야 할 의무가 생긴다: 모든 지성인들의 의무.
위대한 자연 철학자들 모두는 지성적으로 겸손했다; 그리고 뉴튼은 다음과 같이 말해서 그들 전부를 대변한다: ‘내가 세상에 무엇을 보일지 나는 모르지만, 거대한 진리의 바다가 전혀 발견되지 않은 채 내 앞에 놓여있는 반면, 내가 보기에 나는 해변에서 놀면서 평범한 조개껍데기보다는 더 부드럽고 더 아름다운 조개껍데기를 간혹 발견하는 소년일 뿐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빤짝 인기몰이(a nine-day wonder)라고 불렀다.
게다가 위대한 과학자들 모두는, 과학적 문제에 대한 모든 해답은 많은 새롭고 미해결인 문제들을 제기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세상에 대하여 더 많이 알수록,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자 우리의 무지에 대하여 우리가 지닌 소크라테스적 지식은 점점 더 의식적이고 상세하고 정확해진다. 과학적 탐구는, 우리 자신에 관하여 그리고 우리의 무지에 관하여 정보를 얻기 위하여 우리가 지닌 최고의 방법이다. 과학적 탐구로 인하여, 우리가 혹시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것의 사소한 세부사항들과 관련하여 우리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점들이 있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우리의 무한한 무지에서 동등하다는 통찰에 우리는 다다른다.
XII
과학주의에 ㅡ 다시 말해서, 자연과학의 방법의 권위에 대하여 그리고 그 방법의 결과들에 대하여 독단적인 믿음을 갖는 ㅡ 대한 비난은 그리하여, 자연과학의 비판적 방법을 겨냥하거나 혹은 위대한 자연과학자들을 겨냥한다면 전혀 합당하지 않다; 특히 지식 개념의 개혁을 우리가 소크라테스, 니콜라스 다 쿠사(Nicolas da Cusa), 에라스무스, 볼테르, 레싱(Lessing), 괴테 그리고 아인슈타인에게 빚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괴테는, 위대한 과학자 모두가 또한 그러한 것처럼, 과학주의인 권위에 대한 믿음에 반대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는 뉴튼의 광학(光學: Optics)을 자신이 비판하는 문맥에서 과학주의에 반대하여 싸웠다. 뉴튼에 반대하는 그의 논증들은 아마도 타당하지 않았지만 위대한 자연과학자들 모두가 때때로 오류를 저질렀다a; 권위에 대한b 뉴튼의 독단적 믿음에 반대하는 괴테의 강력한 공격은 틀림없이 합당했다. 과학주의에 대한 공격은 ㅡ 다시 말해서 독단론에 대한, 권위의 그리고 지식에 대한 오만한 전제의 믿음에 대한 공격 ㅡ 지식사회학과 과학의c 희생양인 위대한 자연과학자들보다 지식사회학과 과학을c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훨씬 더 빈번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추측하는 정도까지 나는 여기서 심지어 그렇게 멀리 나아갈 터이다. 사실상 자신을 과학주의에 대한 비판자들로서 간주하는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자연과학들을 독단적으로, 이념적으로 그리고 권위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인데그것들에 대하여 그들은 슬프게도 이해하는 게 너무 없다.
우선적으로 자연과학에는 객관적이고 비-이념적인 진보 기준이 있다는 것을 그들을 알지 못한다: 진리를 향한 진보의 기준.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케플러 그리고 뉴튼 이래, 파스퇴르와 클로드 베르나르(Claude Bernard)d 이래 자연과학의 발전을 지배한 것은 저 간단하고 합리적인 기준이었다. 그 기준이 항상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연과학자들은 (심지어 몇몇 훌륭한 물리학자들에게 발생했던 바와 같이, 그 과학자들이 유행에 희생되었을 때를 제외하고), 자신들이 그 기준을 적용하는 것을 완전히 의식하는 경우가 드물지라도, 일반적으로 그 기준을 확신적으로 그리고 정확하게 사용한다. 사회과학에서는 이 합리적 기준의 힘이 훨씬 적게 확보된다. 그리하여 이성에 대한 그리고 자연과학에 대한 반대와 함께, 유행성 이념들과 감정적인 단어들의 힘이e 발달했다.
괴테는 이 반(反)-과학적인 이념을 또한 잘 알았고f 그리하여 그는 그 이념을 비난했다. 악마 자신은 우리가 그 이념을 포옹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괴테가 악마의 입을 빌려 표현하는 단어들은 명백하다:
이성과 과학을 너는 경멸하지,
정신이 지닌 최고의 능력들인?
지옥의 기꺼운 노예! 네 종류의 다른 사람들과 동시에
너는 나의 사업이 거두는 소득들이지.
a 역주: ‘오류를 저질렀다’의 원어 표현은 have made mistakes인데 박영태 번역은 ‘오류를 범할
수 있다’이다.
b 역주: ‘권위에 대한’의 원어 표현은 (belief) in authority인데 박영태 번역은 ‘권위를 부리는’이다.
c 역주: ‘과학’은 박영태 번역에서 누락되었다.
d 역주: Bernard의 박영태 표기는 Bernardo이다.
e 역주: ‘감정적인 단어들의 힘’의 원어 표현은 the power of great words인데 박영태 번역은
‘논쟁의 효력’이다.
f 역주: ‘잘 알았다’의 원어 표현은 was acquainted인데 박영태 번역은 ‘직면했으(며)’이다.
여러분, 이번에 내가 악마 자체가 마지막 발언을 하도록 할지라도 여러분이 나를 비난하지 않기를 나는 소망한다.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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