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서구의 틀을 벗어나 세계를 보다 / 천광싱
| |
고 미조구치 유조의 사상은
더이상 유럽을 기준으로 타인을 가늠하지 않는 다원적 구성이다
지난해 9월초 도쿄에 가서 미조구치 유조 교수 추도회에 참석했다. 나는 소수의 외국인 참석자 중 하나였을 것이다. 일본어도 모르고 친구가 작은 목소리로 해설해주는 데만 의존하면서 일본 학계의 엄숙한 추모의식을 지켜보았다. 미조구치는 78살이던 2010년 7월13일 세상을 떠났다. 학계가 인정하듯 그는 중국 연구의 대가였고 사상사에 정통했다. 중국과 대만에서도 7권의 저서가 번역·출판돼 있고, 오는 8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토론회에서는 싼롄(삼련)서점이 8권으로 기획한 그의 전집 시리즈 중 4권이 출판된다. 이는 그가 현재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일본 학자임을 보여준다. 그는 많은 시간을 들여 동아시아 각 지역에서 지식의 연대를 추진했다. 중국 역사 연구에는 문외한인 내가 어떻게 미조구치로부터 감화를 받게 되었을까?
나는 지난 10여년 동안 아시아 여러 지역의 친구들과 함께 <아시아문화연구>라는 잡지를 출판하고 여러 학술망을 만들기 시작했다. 제일 중요한 동력은 현재의 지식의 곤경을 초월하려는 것이었다. 지난 한 세기 넘게 유럽과 미국의 역사발전 경험과 그에 따라 형성된 지식틀이 아시아 학계에서 유일하게 참고하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 틀로는 더이상 유럽·미국과 그밖의 여러 지역의 역사경험을 해석할 수 없다. 이제 참고할 대상을 어떻게 확대해 다원적 좌표를 만들고 새로운 지식의 방식을 창조해낼 것인지가 전세계 학술계가 마주한 공동의 문제이다. 그 다른 길을 찾는 여정에서 우리는 미조구치가 이미 그 길 위에 서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줄곧 외롭게 그 길을 걸어왔다. 미조구치가 1980년대 제기한 명언인 “중국을 방법으로 하는 것은 세계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는 당시 일본 지식상황에 대한 비판이었다. 이전까지는 ‘세계’를 방법으로 중국을 가늠했다. 하지만 이 ‘세계’는 실제로는 유럽과 미국이었다. 중국을 방법으로 하는 것은 더이상 유럽을 기준으로 타인을 가늠하지 않는 다원적인 구성이다. 유럽, 중국,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모두 이 세계를 구성하는 원소다. 즉 중국의 역사를 입구로 라틴아메리카를 바라보고 아프리카 역사에서 출발해 유럽을 보는 것처럼, 다원적 진리의 대화 과정에서 더 높은 수준의 세계의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인식을 가져야만 이론상에서 ‘제국주의’를 피할 수 있다. 미조구치의 사상은 세계 학계 2등 시민의 우울한 심정에서 ‘평등’한 입장을 만들어내고 세계로 통하는 존엄을 만들려는 것이다. 미조구치의 중국에 대한 이해는 그의 일본에 대한 이해에 기초한 것이다. 방법 면에서는 ‘비교’의 시야인데, 계속 중·일의 긴 역사 사이를 오가며 중국과 일본에 대한 이해를 형성했다. 그가 창의적인 해석을 제기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오고 가는’ 방법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의 임종 전 중국 혁명에 대한 연구는 중국의 내재적 역사 동력을 주요한 흐름으로 삼아 1911년(신해혁명)과 1949년(공산혁명)을 연속성으로 보는 새로운 해석으로 민족주의와 좌우 역사관을 초월한 시야를 제시했다. 미조구치가 세상을 떠난 뒤 가장 상심한 벗은 중국사회과학원 문학연구소의 쑨거 교수일 것이다. 그들이 스무살이 넘는 나이 차이와 국경, 전공을 넘어 친구가 되는 것을 직접 지켜보았다. 미조구치는 떠났고, 쑨거는 오랫동안 슬퍼했다. 쑨거가 추진해온 미조구치 저작의 중국어 번역 계획이 결실을 맺는 것을 보면서 감회가 깊다. 하늘에 있는 미조구치가 미소를 지으며 “당신들이 하는 일을 지지한다”며 우리를 매우 서민적인 중국식당에 데리고 가서 그가 좋아하던 볶음면을 주문할 것만 같다. |
'기사 및 퍼온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민주의’에 갇히지 않고 일본 바라보기 (0) | 2011.09.24 |
---|---|
고전 오디세이 - '자연학'과 '산해경'의 황당한 이야기 왜 닮았나 (0) | 2011.09.17 |
고전 오디세이 - 아킬레우스는 왜 노여움이 달콤하다 했나? (0) | 2011.09.03 |
23년간 아들을 쇠사슬로 묶어 키운 사연? (0) | 2011.08.26 |
이시하라 신타로 (0) | 2011.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