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은 틀릴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함께 우리가 지적 직관인 능력을 소유하고 있어서 그것으로써 우리는 본질을 시각화할 수 있으며 어느 정의가 올바른 것인지를 알아낼 수 있다고 주장했고, 많은 현대 본질주의자들은 이 교설을 반복했다. 다른 철학자들은, 칸트를 좇아서, 우리는 그런 종류의 것을 소유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나의 견해는 우리가 ‘지적 직관’으로서 기술될 것을 소유하고 있음을 기꺼이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혹은 더 정확하게, 우리가 지닌 지적 경험 중 어떤 것은 그렇게 기술될 것임을. 관념이나 관점, 혹은 예를 들어 곱셈 같은 산술적 방식을, 자신이 ‘그것에 대하여 직관적 지식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이해하는’ 모든 사람은 아마도 저것을 직관적으로 이해한다고 언급될 것이다; 그리고 저런 종류의 지적 경험은 수없이 많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어떤 사람이 아무리 강하게 직관적으로 그것이 사실임에 틀림없다고, 즉 그것은 ‘자명하다’고 느낄지라도, 나는 이 경험들이 우리들의 과학적 노력에 대하여 중요해도 어떤 관념이나 이론의 진리를 확립하는 역할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 직관으로 인하여 논증을 찾는 우리가 고무될지라도, 그런 직관은 심지어 논증으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도 없다. 이유인즉 다른 사람이 동일한 이론이 틀렸다는 똑같이 강한 직관을 가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과학의 길은, 예전에 자명하다고 선언된 폐기된 이론으로 뒤덮여 있다; 예들 들어 프란시스 베이컨은 태양과 별들이 분명히 정지해 있는 지구 주위를 회전한다는 자명한 진리를 부인하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직관은 틀림없이 시인의 삶에서와 꼭 마찬가지로 과학자의 삶에서도 커다란 역할을 수행한다. 직관으로 인하여 과학자는 발견을 하게 된다. 그러나 직관으로 인하여 과학자는 실패를 또한 맛볼 것이다. 그래서 직관은 말하자면 항상 과학자의 개인적인 일로 남는다. 과학은 과학자가 어떻게 관념을 얻는지를 묻지 않고, 모든 사람에 의하여 실험될 수 있는 논증에 흥미를 가질 따름이다. 위대한 수학자 가우스(Gauss)는 예전에 이렇게 소리쳐 이런 상황을 말끔하게 기술했다: ‘나는 결과를 얻었다; 그러나 나는 어떻게 그 결과를 얻는지 아직 모른다.’ 이 모든 것은 물론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소위 본질에 관한 지적 직관이라는 원칙에도 적용되는데, 그 교설은 헤겔에 의하여 전파되었고 우리 시대에는 E. 후설(Husserl)과 그의 수많은 제자들에 의하여 전파되었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본질에 관한 지적 직관’ 즉, 후설이 지칭하는 바의 ‘순수 현상학’이 과학이나 철학의 방법이 아니라는 것 지적된다. (순수 현상학자들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그것이 새로운 창안인지 혹은 데카르트주의나 헤겔주의적 해석인지라는 많이 논쟁된 문제는 쉽게 결정될 수 있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적 해석이다.)
ㅡ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2권, 1971년, 15-16쪽 ㅡ
Aristotle held with Plato that we possess a faculty, intellectual intuition, by which we can visualize essences and find out which definition is the correct one, and many modern essentialists have repeated this doctrine. Other philosophers, following Kant, maintain that we do not possess anything of the sort. My opinion is that we can readily admit that we possess something which may be described as 'intellectual intuition'; or more precisely, that certain of our intellectual experiences may be thus described. Everybody who 'understands' an idea, or a point of view, or an arithmetical method, for instance, multiplication, in the sense that he has 'got the feel of it', might be said to understand that thing intuitively ; and there are countless intellectual experiences of that kind. But I would insist, on the other hand, that these experiences, important as they may be for our scientific endeavours, can never serve to establish the truth of any idea or theory, however strongly somebody may feel, intuitively, that it must be true, or that it is 'self-evident'. Such intuitions cannot even serve as an argument, although they may encourage us to look for arguments. For somebody else may have just as strong an intuition that the same theory is false. The way of science is paved with discarded theories which were once declared self-evident ; Francis Bacon, for example, sneered at those who denied the self-evident truth that the sun and the stars rotated round the earth, which was obviously at rest. Intuition undoubtedly plays a great part in the life of a scientist, just as it does in the life of a poet. It leads him to his discoveries. But it may also lead him to his failures. And it always remains his private affair, as it were. Science does not ask how he has got his ideas, it is only interested in arguments that can be tested by everybody. The great mathematician, Gauss, described this situation very neatly once when he exclaimed: 'I have got my result ; but I do not know yet how to get it.' All this applies, of course, to Aristotle's doctrine of intellectual intuition of so-called essences, which was propagated by Hegel, and in our own time by E. Husserl and his numerous pupils ; and it indicates that the 'intellectual intuition of essences' or 'pure phenomenology', as Husserl calls it, is a method of neither science nor philosophy. (The much debated question whether it is a new invention, as the pure phenomenologists think, or perhaps a version of Cartesianism or Hegelianism, can be easily decided; it is a version of Aristotel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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