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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반증

이윤진이카루스 2022. 10. 4.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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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반증

 

게다가, 무제한적이고 비()-개입주의적 체제에 대한 그의 분석의 유효성을 우리가 인정할 수 있을지라도, 심지어 그 경우에도 그의 예언적 주장은 확정적이 아닐 터이다. 이유인즉 마르크스의 자신의 분석에 따라서, 비참함 증가의 경향은 노동시장이 완전히 자유로운 체제 하에서만 완벽하게 무제한적인 자본주의에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노동조합의, 단체협약의, 파업의 가능성을 인정하자마자, 그 분석이 상정(想定)하는 바는 더 이상 적용될 수 없으며, 전체 예언적 주장이 붕괴한다. 마르크스 자신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는 그런 상황전개가 억압되거나, 혹은 사회혁명과 대등할 것이라고 예상해야만 할 터이다. 이유인즉 단체협상이 일종의 노동독점을 확립함에 의하여 자본에 대항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체협상으로 인하여 자본가가 산업상비군을 임금인하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저지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방식으로 단체협상으로 인하여 자본가들은 더 낮은 이윤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는 구호가, 마르크스의 관점에서, 왜 진정으로 무제한적인 자본주의에 대한 유일하게 가능한 답변이었던지를 우리가 여기서 안다.

그러나 왜 이 구호로 인하여 국가개입의 전체 문제가 틀림없이 개방되는지, 그리고 왜 그 구호로 인하여 무제한적인 체제에 종말이 오고 매우 다양한 방향으로 전개될 새로운 체제인 개입주의가 나타날 것 같은지를 우리가 또한 안다. 이유인즉 자본가들이, 노동조합으로 인하여 노동시장에서 경쟁의 자유가 틀림없이 위험에 처한다고 주장하면서, 노동자들의 단결권에 이의를 제기할 것이 거의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개입주의는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문제에 직면한다 (그것은 자유의 역설의 한 부분이다): 어떤 자유를 국가가 보호해야할까? 노동시장의 자유, 혹은 가난한 자들이 단결할 자유? 어떤 결정이 채택되든, 그 결정으로 인하여 경제조건 분야에서 국가의 개입인 노동조합뿐 아니라 국가의 조직된 정치권력 사용이 발생한다. 모든 상황에서, 그 책임이 의식적으로 수용되든 아니든 그 결정으로 인하여 국가의 경제적 책임이 확대된다. 그래서 이것은, 마르크스의 분석이 근거한 상정(想定)이 틀림없이 소멸됨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비참함 증가라는 역사법칙의 도출은 무효이다. 유일하게 남은 것은, 백 년 전에 우세했던 노동자들의 비참함에 대한 충격적인 묘사와, 레닌과 함께 마르크스의 당시 사회 움직임에 대한 경제법칙이라고 (다시 말해서, 백 년 전의 무제한적인 자본주의에 대한 경제법칙) 우리가 지칭할 것의 도움을 받아서 그 비참함을 설명하려는 용감한 시도이다. 그러나 이것이 역사관련 예언으로서 의도되는 한, 그리고 이것이 특정 역사적 상황전개의 불가피성을 추론하는 데 사용되는 한, 그 이론도출은 무효이다.

 

IV

마르크스가 분석한 것의 중요성은 크게 주로 잉여인구가 그의 시대와 우리 시대까지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에 (내가 전에 말한 바와 같이, 아직 실제로 만족스러운 설명을 받지 못한 한 가지 사실) 의존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고용된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게 유지하기 위하여 자본주의 생산구조가 필요한 잉여인구를 항상 만들어내는 것은 자본주의 생산구조 자체라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마르크스의 주장을 우리는 아직 논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이론은 본질적으로 기발하고 흥미로울 뿐 아니라; 그 이론에는 동시에, 마르크스가 주장하는 경기순환 이론과 일반적인 경기침체에 관한 이론이 포함된다. 그 이론은, 자본주의 체제가 틀림없이 유발하는 체제가 비정한 비참함 때문에 그 체제의 추락 예언과 분명히 관련된다. 마르크스의 이론에 대하여 가능한 한 강력한 사례를 만들기 위하여, 나는 그 이론을 다소 바꾸었다 (, 하나는 생산확대만을 위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생산강화를 위한 두 종류의 기계류 구분을 도입함에 의하여). 그러나 이 변경으로 인하여 마르크스주의 독자의 의심이 생길 필요는 없다; 이유인즉 내가 그 이론을 조금도 비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변경된 잉여인구와 경기순환 이론은 다음과 같이 개괄될 것이다. 자본축적은 자본가가 자신의 이윤 일부를 새로운 기계류에 쓰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가의 실질이윤 일부가 기계의 본질적 부분인 반면, 그 이윤의 일부만이 소비재의 본질적 부분이라고 말함에 의하여 이것이 또한 표현될 것이다. 이 기계들은, 나중에, 산업의 확장을 위해서 혹은 새로운 공장들 기타 등등을 위한 의도이거나 아니면 기존 산업에서 노동생산성을 증가시킴에 의하여 생산 강화를 위한 의도일 것이다. 전자(前者)의 기계류로 인하여 고용증가가 가능해지고 후자(後者) 종류에는 노동자들을 넘쳐나게 만드는 효과인 이 과정이 마르크스 시대에 지칭되었던 것처럼 노동자들을 자유롭게 두는효과가 있다. (오늘날 그것은 간혹 기술적 실업으로 지칭된다.) 이제 자본가들의 생산구조는, 경기순환에 관한 변경된 마르크스주의적 이론에 의하여 예상되는 바와 같이, 대략 이렇게 작동한다. 우리가 우선, 이런저런 이유로 산업이 일반적으로 확대된다고 상정(想定)한다면, 산업상비군의 일부는 흡수될 것이고 노동시장에 가해지는 압력은 완화될 것이며 임금은 인상되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호황기가 시작된다. 그러나 임금이 상승하는 순간, 생산을 강화하고 이전에 낮은 임금 때문에 이롭지 않던 특정 기계의 개선이 이롭게 될 것이다 (그런 기계류의 비용이 상승하기 시작하는 경향이 있을지라도). 그리하여 노동자들을 자유롭게 두는종류의 기계류가 더 많이 생산될 것이다. 이 기계들이 생산되는 과정에 있을 따름이라면, 호황은 계속되거나 증가한다. 그러나 새로운 기계 자체가 생산을 시작하면, 상황은 변한다. (이 변화는, 마르크스에 따르면 이익률 감소에 의하여 강화되는데, 아래 (v)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노동자들은 자유롭게 놓일것인데, 즉 굶주림에 처해진다. 그러나 많은 소비자들이 사라짐으로 인하여 내수시장이 틀림없이 붕괴한다. 결과적으로, 확장된 공장의 수많은 기계들이 놀게 되고 (효율이 떨어지는 기계류가 먼저), 이로 인하여 더 심한 실업증가와 더 심한 시장붕괴가 발생한다. 다수의 기계류가 이제 운휴상태에 있다는 사실은, 많은 자본이 무가치해졌음과, 많은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의무를 이룩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금융위기가 전개되어 자본재, 기타 등등의 생산에서 완전한 침체가 발생한다. 그러나 불황이 (혹은, 마르크스가 지칭하는 바와 같이 위기) 정상적으로 지나가는 동안, 상황은 회복을 위하여 익어가고 있다. 이 상황은 산업상비군의 증가와 기아임금을 수용하려는 노동자들의 결과적인 각오를 주로 본질로 한다. 심지어 불황에 처한 시장의 낮은 가격에도 매우 낮은 임금으로 생산하여 이윤을 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생산이 시작되자마자, 자본가는 다시 축적하여 기계류를 구매하기 시작한다. 임금이 매우 낮기 때문에, 노동자들을 자유롭게 두는 종류의 새로운 기계류를 (아마도 그 동안에 발명된)사용하는 것으로 아직 이익을 발생되지 않음을 자본가는 발견할 것이다. 처음에 그는 생산을 확대할 계획으로 오히려 기계류를 구매할 것이다. 이로 인하여 서서히 고용이 확대되고 내수시장이 회복된다. 호황이 다시 한 번 찾아온다. 그리하여 우리는 출발점에 다시 선다. 순환은 닫히고, 과정은 한 번 더 시작될 수 있다.

이것이 실업과 경기순환에 관하여 변경된 마르크스의 이론이다. 내가 약속한 바와 같이, 나는 그 이론을 비판하지 않을 예정이다. 경기순환 이론은 매우 어려운 문제여서, 우리는 틀림없이 그 이론에 관하여 아직 충분히 알지 못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개괄된 이론이 불완전하다는 것과, 특히 신용창출에 부분적으로 근거한 화폐체제의 존재와 같은 면모 및 매점매석 효과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개연성이 크다. 그러나 이것이 어떠하든, 경기순환은 쉽게 주장되어버려질 수 없는 사실이며, 그 중요성을 사회적 문제로서 강조한 것은 마르크스의 가장 큰 장점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인정되어야 할지라도, 마르크스가 자신의 경기순환 이론에 근거시키려는 예언을 우리가 비판할 것이다. 우선, 불황이 그 범위에서뿐 아니라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의 강도(强度)에서도, 점점 더 악화될 것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이것을 뒷받침하는 논증을 내놓지 않는다 (아마도, 곧 논의될 수익률의 감소 이론을 별도로 하고). 그래서 우리가 실제 상황전개를 바라본다면, 노동자들이 이제는 실업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나라에서조차 실업의 효과와 특히 심리적 효과가 지독할지라도 노동자들의 고통은 마르크스 시대에 비교될 수 없이 더 나빴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우리는 말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요점이 아니다.

마르크스의 시대에, 아무도 당시 ()-경기순환 정책(counter-cycle policy)’이라고 불리는 국가 개입의 기법을 생각한 적이 없다; 그리고 정말로, 그런 생각은 무제한적인 자본주의 체제에 완전히 틀림없이 생소하다. (그러나 심지어 마르크스 시대 이전에도, 불황기 동안 영국은행[the Bank of England]이 편 신용정책의 지혜에 대한 의심이 시작되었고 심지어 그 지혜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었음을 우리는 발견한다.) 그러나 실업보험은 국가의 개입을, 그리하여 국가의 책임 증가를, 의미하여 역()-경기순환 정책에서 실험을 유발하기 십상이다. 나는 이 실험들이 틀림없이 반드시 성공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 문제는 결국 그다지 매우 어렵지 않다고 판명될 것이며, 특히 스웨덴이 이 분야에서 무슨 일이 이룩될 수 있는지를 이미 증명했다고, 내가 정말로 믿을지라도). 그러나 실업을 점진적 조치들에 의하여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믿음은, 하늘을 비행하는 문제가 항상 해결 불가능한 채로 남을 터라는 수많은 물리적 증거들과 (심지어 마르크스 이후에 살았던 사람들에 의하여 제시된) 동일한 독단의 수준에 놓여있다고 나는 가장 강조하여 주장하고 싶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때때로 그렇게 하는 것처럼,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마르크스가 역()-경기순환 정책의 유용성과 유사한 점진적 조치들의 유용성을 증명하였다고 말할 때, 그들은 진실을 말하지 않을 따름이다; 마르크스는 무제한적인 자본주의를 조사했고 개입주의를 꿈꾼 적이 없다. 그러므로 그는 경기순환에 체계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을 조사한 적이 없고, 그 개입의 불가능에 대한 증거를 제시한 적은 더욱 없다. 인간의 고통에 직면한 자본가들의 무책임에 대하여 불평하는 동일한 사람들이, 이런 종류의 독단적 주장으로써, 인간의 고통을 경감할 방법을 (마르크스가 말했을 터와 같이, 어떻게 사회적 환경의 주인이 되는 방법) 우리가 배울 실험들에 반대하고, 우리의 행동이 야기하는 몇 가지 원치 않는 사회적 파장효과들을 억제하는 방법을 우리가 배울 실험에 반대할 정도로 무책임하다는 것을 발견하면 이상하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변호자들은 자신들이 지닌 기득권의 이름으로 자신들이 진보에 대항하여 투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인식하지 못한다; 마르크스주의가 곧 모든 종류의 기득권을 대표하게 되는 것이 마르크스주의 같은 운동의 위험이라는 것과, 물질적인 투자뿐 아니라 지적(知的) 투자 또한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또 다른 요점이 여기서 진술되어야 한다. 우리가 안 바와 같이, 실업이 근본적으로 임금을 낮게 유지하는 기능을 지닌 자본주의적 작동구조의 장치이며, 고용된 노동자의 착취를 더 수월하게 만드는 기능을 지닌 자본주의적 작동구조의 장치라고 마르크스는 믿었다; 비참함 증가에 항상 고용된 노동자의 비참함 증가가 또한 포함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구상의 전체 요점이다. 그러나 이 관점이 그의 시대에 정당화되었다고 우리가 상정(想定)할지라도 예언으로서 그 관점은 나중 경험에 의하여 확실하게 반박되었다. 고용된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은 마르크스 시대이래 모든 곳에서 높아졌다; 그리고 (파크스[Parkes]가 마르크스에 대한 비판에서 강조한 바와 같이) 고용된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임금보다 가격이 더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불황기에 심지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 임금은, 예를 들어, 지난 대공황 동안에도 증가했다). 이것은 마르크스에 대한 매우 명백한 반박인데, 특히 실업보험의 주요 부담을 노동자들이 아니고 기업가들이 지게 되어, 기업가들은 그리하여 마르크스의 기획에서처럼 간접적으로 이익을 보는 대신에, 실업을 통하여 직접적으로 손해를 보았음이 그로 인하여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II, 1971, 178-183

 

Moreover, even if we could admit the validity of his analysis for an unrestrained, a non-interventionist system, even then would his prophetic argument be inconclusive. For the tendency towards increasing misery operates, according to Marx's own analysis, only under a system in which the labour market is free - in a perfectly unrestrained capitalism. But once we admit the possibility of trade unions, of collective bargaining, of strikes, then the assumptions of the analysis are no longer applicable, and the whole prophetic argument breaks down. According to Marx's own analysis, we should have to expect that such a development would either be suppressed, or that it would be equivalent to a social revolution. For collective bargaining can oppose capital by establishing a kind of monopoly of labour ; it can prevent the capitalist from using the industrial reserve army for the purpose of keeping wages down ; and in this way it can force the capitalists to content themselves with lower profits. We see here why the cry 'Workers, unite !' was, from a Marxian point of view, indeed the only possible reply to an unrestrained capitalism.

But we see, too, why this cry must open up the whole problem of state interference, and why it is likely to lead to the end of the unrestrained system, and to a new system, interventionism, which may develop in very different directions. For it is almost inevitable that the capitalists will contest the workers' right to unite, maintaining that unions must endanger the freedom of competition on the labour market. Non-interventionism thus faces the problem (it is part of the paradox of freedom) : Which freedom should the state protect ? The freedom of the labour market, or the freedom of the poor to unite ? Whichever decision is taken, it leads to state intervention, to the use of organized political power of the state as well as of unions, in the field of economic conditions. It leads, under all circumstances, to an extension of the economic responsibility of the state, whether or not this responsibility is consciously accepted. And this means that the assumptions on which Marx's analysis is based must disappear.

The derivation of the historical law of increasing misery is thus invalid. All that remains is a moving description of the misery of the workers which prevailed a hundred years ago, and a valiant attempt to explain it with the help of what we may call, with Lenin, Marx's 'economic law of the movement of contemporary society' (that is, of the unrestrained capitalism of a hundred years ago). But in so far as it is meant as an historical prophecy, and in so far as it is used to deduce the 'inevitability' of certain historical developments, the derivation is invalid.

 

IV

The significance of Marx's analysis rests very largely upon the fact that a surplus population actually existed at his time, and down to our own day (a fact which has hardly received a really satisfactory explanation yet, as I said before). So far, however, we have not yet discussed Marx's argument in support of his contention that it is the mechanism of capitalist production itself that always produces the surplus population which it needs for keeping down the wages of the employed workers. But this theory is not only ingenious and interesting in itself ; it contains at the same time Marx's theory of the trade cycle and of general depression, a theory which clearly bears upon the prophecy of the crash of the capitalist system because of the intolerable misery which it must produce. In order to make as strong a case for Marx's theory as I can, I have altered it slightly (namely, by introducing a distinction between two kinds of machinery, the one for the mere extension, and the other for the intensification, of production). But this alteration need not arouse the suspicion of Marxist readers ; for I am not going to criticize the theory at all.

The amended theory of surplus population and of the trade cycle may be outlined as follows. The accumulation of capital means that the capitalist spends part of his profits on new machinery ; this may also be expressed by saying that only a part of his real profits consists in goods for consumption, while part of it consists in machines. These machines, in turn, may be intended either for the expansion of industry, for new factories, etc., or they may be intended for intensifying production by increasing the productivity of labour in the existing industries. The former kind of machinery makes possible an increase of employment, the latter kind has the effect of making workers superfluous, of 'setting the workers at liberty' as this process was called in Marx's day. (Nowadays it is sometimes called 'technological unemployment'.) Now the mechanism of capitalist production, as envisaged by the amended Marxist theory of the trade cycle, works roughly like this. If we assume, to start with, that for some reason or other there is a general expansion of industry, then a part of the industrial reserve army will be absorbed, the pressure upon the labour market will be relieved, and wages will show a tendency to rise. A period of prosperity begins. But the moment wages rise, certain mechanical improvements which intensify production and which were previously unprofitable because of the low wages may become profitable (even though the cost of such machinery will begin to rise). Thus more machinery will be produced of the kind that 'sets the workers at liberty'. As long as these machines are only in the process of being produced, prosperity continues, or increases. But once the new machines are themselves beginning to produce, the picture changes. (This change is, according to Marx, accentuated by a fall in the rate of profit, to be discussed under (v), below.) Workers will be 'set at liberty', i.e. condemned to starvation. But the disappearance of many consumers must lead to a collapse of the home market. In consequence, great numbers of machines in the expanded factories become idle (the less efficient machinery first), and this leads to a further increase of unemployment and a further collapse of the market. The fact that much machinery now lies idle means that much capital has become worthless, that many capitalists cannot fulfil their obligations ; thus a financial crisis develops, leading to complete stagnation in the production of capital goods, etc. But while the depression (or, as Marx calls it, the 'crisis') takes its course, the conditions are ripening for a recovery. These conditions mainly consist in the growth of the industrial reserve army and the consequent readiness of the workers to accept starvation wages. At very low wages, production becomes profitable even at the low prices of a depressed market ; and once production starts, the capitalist begins again to accumulate, to buy machinery. Since wages are very low, he will find that it is not yet profitable to use new machinery (perhaps invented in the meanwhile) of the type which sets the workers at liberty. At first he will rather buy machinery with the plan of extending production. This leads slowly to an extension of employment and to a recovery of the home market. Prosperity is coming once again. Thus we are back at our starting point. The cycle is closed, and the process can start once more.

This is the amended Marxist theory of unemployment and of the trade cycle. As I have promised, I am not going to criticize it. The theory of trade cycles is a very difficult affair, and we certainly do not yet know enough about it (at least I don't). It is very likely that the theory outlined is incomplete, and, especially, that such aspects as the existence of a monetary system based partly upon credit creation, and the effects of hoarding, are not sufficiently taken into account. But however this may be, the trade cycle is a fact which cannot easily be argued away, and it is one of the greatest of Marx's merits to have emphasized its significance as a social problem. But although all this must be admitted, we may criticize the prophecy which Marx attempts to base upon his theory of the trade cycle. First of all, he asserts that depressions will become increasingly worse, not only in their scope but also in the intensity of the workers' suffering. But he gives no argument to support this (apart, perhaps, from the theory of the fall in the rate of profit, which will be discussed presently). And if we look at actual developments, then we must say that terrible as are the effects and especially the psychological effects of unemployment even in those countries where the workers are now insured against it, there is no doubt that the workers' sufferings were incomparably worse in Marx's day. But this is not my main point.

In Marx's day, nobody ever thought of that technique of state intervention which is now called 'counter cycle policy' ; and, indeed, such a thought must be utterly foreign to an unrestrained capitalist system. (But even before Marx's time, we find the beginning of doubts about, and even of investigation into, the wisdom of the credit policy of the Bank of England during a depression.) Unemployment insurance, however, means intervention, and therefore an increase in the responsibility of the state, and it is likely to lead to experiments in counter cycle policy. I do not maintain that these experiments must necessarily be successful (although I do not believe that the problem may in the end prove not so very difficult, and that Sweden, in particular, has already shown what can be done in this field [괄호 속의 이 종속절은 I do not believe 때문에 andor로 바꾸어야 한다. - 역자 주]). But I wish to assert most emphatically that the belief that it is impossible to abolish unemployment by piecemeal measures is on the same plane of dogmatism as the numerous physical proofs (proffered by men who lived even later than Marx) that the problems of aviation would always remain insoluble. When the Marxists say, as they sometimes do, that Marx has proved the uselessness of a counter cycle policy and of similar piecemeal measures, then they simply do not speak the truth (이 문장에서 truth는 동사 tell과 함께 쓰기 때문에 speaktell로 바꾸어 써야 한다. - 역자 주) ; Marx investigated an unrestrained capitalism, and he never dreamt of interventionism. He therefore never investigated the possibility of a systematic interference with the trade cycle, much less did he offer a proof of its impossibility. It is strange to find that the same people who complain of the irresponsibility of the capitalists in the face of human suffering are irresponsible enough to oppose, with dogmatic assertions of this kind, experiments from which we may learn how to relieve human suffering (how to become masters of our social environment, as Marx would have said), and how to control some of the unwanted social repercussions of our actions. But the apologists of Marxism are quite unaware of the fact that in the name of their own vested interests they are fighting against progress ; they do not see that it is the danger of any movement like Marxism that it soon comes to represent all kinds of vested interests, and that there are intellectual investments, as well as material ones.

Another point must be stated here. Marx, as we have seen, believed that unemployment was fundamentally a gadget of the capitalist mechanism with the function of keeping wages low, and of making the exploitation of the employed workers easier ; increasing misery always involved for him increasing misery of the employed workers too ; and this is just the whole point of the plot. But even if we assume that this view was justified in his day, as a prophecy it has been definitely refuted by later experience. The standard of living of employed workers has risen everywhere since Marx's day ; and (as Parkes has emphasized in his criticism of Marx) the real wages of employed workers tend even to increase during a depression (they did so, for example, during the last great depression), owing to a more rapid fall in prices than in wages. This is a glaring refutation of Marx, especially since it proves that the main burden of unemployment insurance was borne not by the workers, but by the entrepreneurs, who therefore lost directly through unemployment, instead of profiting indirectly, as in Marx's sche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