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의 내부모순
공산당들은, 노동자들의 일시적인 부르주아화(化)의 원인이 없어지자마자, 비참함의 규모 증가뿐 아니라 강도(强度)의 증가 또한 신뢰하며, 비참함 증가 이론을 엄격하게 고수했다. 이 믿음은 마르크스가 그들 정책의 ‘내부모순’이라고 불렀을 터인 것에 상당히 기여했다.
전술적 상황은 충분히 간단하게 보인다. 마르크스의 예언 덕분에, 공산주의자들은 비참함이 곧 틀림없이 증가하리라고 확신하여 알고 있었다. 그들은 또한 당(黨)이 노동자들을 대신해서, 그리고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자들의 운명을 개선하기 위하여 투쟁하지 않으면 노동자들의 신임을 얻을 수 없음을 알았다. 이 두 가지 근본적인 상정(想定)으로 인하여 그들의 일반적인 전술 원칙이 분명하게 결정되었다. 노동자들이 그들의 몫을 요구하도록 만들라, 노동자들이 빵과 집을 얻기 위해 벌이는 부단한 투쟁의 모든 특정 사건에서 노동자들을 지원하라. 경제적이든 정치적이든, 노동자들의 실제적인 요구를 성취하기 위하여 악착같이 그들과 함께 투쟁하라. 그리하여 당신들은 노동자들의 신임을 얻을 것이다. 동시에, 노동자들은 이 자질구레한 투쟁에 의하여 자신들의 운명을 향상시킬 수 없다는 것과, 전면적인 혁명에 못 미치는 것으로 향상이 이룩될 수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이유인즉 이 모든 자질구레한 싸움이 성공하지 못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르크스로부터, 자본주의자들은 타협을 계속할 수 없을 따름이며, 궁극적으로 비참함이 틀림없이 증가할 것을 안다. 따라서 자신들을 억압하는 사람들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일상적인 투쟁의 유일한 결과는 ㅡ 가치 있는 것이지만 ㅡ 그들의 계급의식 증가이다; 오직 혁명만이 그들의 비참함에서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절박한 인식과 함께, 유일하게 투쟁에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저 단결감이다. 이 단계가 도달될 때, 마지막 결전을 위한 시간이 왔다.
이것이 이론이고, 공산주의자들은 그에 따라서 행동했다. 처음에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개선하려는 투쟁에서 그들은 노동자들을 지원한다. 그러나 모든 기대 및 예언과 반대로, 투쟁은 성공적이다. 요구사항은 허용된다. 명백하게, 이유는 요구사항들이 너무 겸손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더 많이 요구해야 한다. 그러나 요구사항은 다시 허용된다. 그리고 비참함이 줄어듦에 따라서 노동자들은 덜 원한을 갖게 되고, 혁명을 획책하기보다는 임금협상 준비를 더 하게 된다.
이제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정책이 뒤집혀야 함을 발견한다. 비참함 증가 법칙을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 실행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식민지의 소요가 조장되어야 하고 (심지어 성공적인 혁명의 기회가 없는 곳에서도), 노동자들의 부르주아화를 막는 일반적인 목표와 함께, 모든 종류의 파국을 조장하는 정책이 채택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새로운 정책으로 인하여 노동자들의 신뢰가 파괴된다. 공산주의자들은, 현실적 정치투쟁에서 경험이 없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자신들의 당원을 잃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확하게 ‘노동계급의 전위대’로 묘사하는 사람들을 잃는다; 묵시적으로 함축된 그들의 원리인 ‘비참함이 틀림없이 혁명을 재촉하기 때문에, 상황이 악화될수록 상황은 호전된다’로 인하여 노동자들이 의심하게 된다 ㅡ 이 원리가 잘 적용될수록 노동자들이 생각하는 의심이 악화한다. 이유인즉 그들이 현실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사람들은 그들의 운명을 개선하기 위하여 일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 정책은 다시 뒤집혀야 한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노동자들의 운명을 즉각적으로 개선하기 위하여 투쟁해야 하고, 동시에 그 반대현상을 희망해야 한다.
이것으로써, 그 이론의 ‘내부 모순’으로 인하여 혼란의 마지막 단계가 만들어진다. 배신은 충성일 것이고 충성이 배신일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누가 배신자인지 알기 어려운 단계이다. 그것은, 당(黨)이 그들에게 인도주의적 목적을 지닌 유일한 활기찬 운동으로 보였다는 (내가 염려하는 바, 옳게) 이유뿐 아니라, 특히 그것이 과학적 이론에 근거한 운동이었다는 이유로, 당(黨)을 추종했던 사람들이 당(黨)을 떠나든지, 자신들의 지적(知的) 솔직함을 희생해야 하는 단계이다; 그 까닭은 이제 그들이 어떤 권위를 맹목적으로 신뢰하는 것을 틀림없이 배웠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그들은 틀림없이 신비주의자가 되어 이성적 논쟁에 적대적이 된다.
자본주의의 몰락을 초래하려고 위협하는 내부 모순 하에서 고생을 하는 것은 자본주의만이 아닌 듯 보인다...
ㅡ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II권, 1971년, 190-192쪽 ㅡ
They strictly adhered to the theory of increasing misery, believing in an increase not only of its extent but also of its intensity, once the causes of the temporary bourgeoisification of the workers were removed. This belief contributed considerably to what Marx would have called 'the inner contradictions' of their policy.
The tactical situation seems simple enough. Thanks to Marx's prophecy, the Communists knew for certain that misery must soon increase. They also knew that the party could not win the confidence of the workers without fighting for them, and with them, for an improvement of their lot. These two fundamental assumptions clearly determined the principles of their general tactics. Make the workers demand their share, back them up in every particular episode in their unceasing fight for bread and shelter. Fight with them tenaciously for the fulfilment of their practical demands, whether economic or political. Thus you will win their confidence. At the same time, the workers will learn that it is impossible for them to better their lot by these petty fights, and that nothing short of a wholesale revolution can bring about an improvement. For all these petty fights are bound to be unsuccessful ; we know from Marx that the capitalists simply cannot continue to compromise and that, ultimately, misery must increase. Accordingly, the only result - but a valuable one - of the workers' daily fight against their oppressors is an increase in their class consciousness ; it is that feeling of unity which can be won only in battle, together with a desperate knowledge that only revolution can help them in their misery. When this stage is reached, then the hour has struck for the final show-down.
This is the theory and the Communists acted accordingly. At first they support the workers in their fight to improve their lot. But, contrary to all expectations and prophecies, the fight is successful. The demands are granted. Obviously, the reason is that they had been too modest. Therefore one must demand more. But the demands are granted again. And as misery decreases, the workers become less embittered, more ready to bargain for wages than to plot for revolution.
Now the Communists find that their policy must be reversed. Something must be done to bring the law of increasing misery into operation. For instance, colonial unrest must be stirred up (even where there is no chance of a successful revolution), and with the general purpose of counteracting the bourgeoisification of the workers, a policy fomenting catastrophes of all sorts must be adopted. But this new policy destroys the confidence of workers. The Communists lose their members, with the exception of those who are inexperienced in real political fights. They lose exactly those whom they describe as the 'vanguard of the working class' ; their tacitly implied principle : 'The worse things are, the better they are, since misery must precipitate revolution', makes the workers suspicious - the better the application of this principle, the worse are the suspicions entertained by the workers. For they are realists ; to obtain their confidence, one must work to improve their lot.
Thus the policy must be reversed again ; one is forced to fight for the immediate betterment of the workers' lot and to hope at the same time for the opposite.
With this, the 'inner contradictions' of the theory produce the last stage of confusion. It is the stage when it is hard to know who is the traitor, since treachery may be faithfulness and faithfulness treachery. It is the stage when those who followed the party not simply because it appeared to them (rightly, I am afraid) as the only vigorous movement with humanitarian ends, but especially because it was a movement based on a scientific theory, must either leave it, or sacrifice their intellectual integrity ; for they must now learn to believe blindly in some authority. Unfortunately, they must become mystics - hostile to reasonable argument.
It seems that it is not only capitalism which is labouring under inner contradictions that threaten to bring about its downf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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