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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위선과 싸운 마르크스

이윤진이카루스 2022. 10. 30.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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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의 위선과 싸운 마르크스

 

마르크스는 설교하기를 혐오했기 때문에 명시적인 도덕론을 회피했다고 나는 믿는다. 보통 물(water)을 설교하고 술을 마시는 도덕주의자들을 깊이 불신하여, 마르크스는 자신의 윤리적 확신을 명시적으로 언명하기를 주저했다. 인간성(humanity)과 품위(decency)는 그에게 토론이 필요 없는 문제인 당연한 문제였다. (이 분야에서도 그는 낙관주의자였다.) 자신이 비도덕적이라고 느꼈던 사회질서에 대한 아첨꾼으로 도덕주의자들을 그가 보았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그들을 공격했다; 그들이 지닌 자기만족 때문에, 자유를 파괴했던 사회체제 내부에 당시 존재하던 형식적 자유와 자유를 동일시했기 때문에 그는 자유주의 칭송자들을 공격했다. 그리하여, 함축적으로 그는 자유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인정했다; 그리고 철학자로서 전체론 향한 자신의 편견에도 불구하고, 그는 틀림없이 집단주의자가 아니었는데 이유인즉 국가가 소멸할 것을 희망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신념은 근본적으로 열린사회에 대한 신념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기독교에 대한 마르크스의 견해는 이 신념과, 그리고 자본주의적 착취에 대한 위선적 옹호는 그의 시대에 공식적 기독교의 특징이었다는 사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의 견해는 기독교 윤리의 위대한 개혁가로 자신의 시대의 공식적 기독교 도덕을 반[]-기독교적이고 반[]-인도주의적인 위선으로 폭로했던 동시대인인 키르케고르[Kierkegaard]의 견해와 다르지 않았다.) 이런 종류의 기독교를 전형적으로 대표했던 사람은, 인류의 복지를 원하는 사람에 의한 빈민법 논고(A Dissertation on the Poor Laws, by a Wellwisher of Mankind)의 저자로 고()-교회파(High Church) 사제인 J. 타운센드(Townsend)로 마르크스가 폭로했던 착취를 매우 조잡스럽게 옹호한 사람이었다. ‘굶주림은 평온하고 조용하며, 지속되는 압력일 뿐 아니라, 근면과 노동의 가장 자연스러운 동기로서, 굶주림은 가장 강력한 노력을 불러일으킨다고 자신의 찬사를 타운센드는 시작한다. 타운센드의 기독교적세계질서 에서, 모든 것이 굶주림을 노동계급 가운데서 영구적으로 만드는 것에 달려있다 (마르크스가 관찰하는 바와 같이); 그래서 이것이 진정으로 인구증가 원리의 신성한 목적이라고 타운센드는 믿는다; 왜냐하면 그가 계속하여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틀림없이 어느 정도까지는 미래를 대비하지 못하여 공동체 안에서 가장 노예적이고 가장 더럽고 가장 비천한 직종을 채울 어떤 사람들이 항상 있을 것은 자연법칙으로 보인다. 보다 연약한 사람들이.. 자신의 기질에 알맞은 직업을 방해 받지 않고 추구하는 자유에 남겨진 반면, 인간 행복의 재고(在庫)는 그리하여 많이 증가한다.’ 마르크스가 이 언급 때문에 그를 지칭하는 바와 같이, 빈민법이 굶주린 사람들을 도움에 의하여, 연약한 사제(司祭) 아첨꾼에게, 하느님과 자연이 세상에 설립한 체제의 조화와 미(), 그리고 평형과 질서를 파괴하는 경향이 있다고 마르크스가 부언한다.

이런 종류의 기독교가 오늘날 지구 대부분의 표면으로부터 사라졌다면, 그것은 마르크스에 의하여 초래된 도덕적 개혁에 기인하는 바가 적지 않다. 영국에서 교회가 가난한 자들을 향하여 지녔던 태도에 대한 개혁이 마르크스가 영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오래전에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특히 유럽대륙에서 이 상황전개에 영향을 미쳤고, 사회주의의 발흥으로 인하여 영국에서도 그 상황전개가 강화되는 효과가 발생했다. 기독교에 대한 마르크스의 영향력은 아마도 루터가 로마 교회에 끼친 영향력과 비교될 것이다. 두 사람의 영향력은 도전이었으며, 두 사람의 영향력으로 인하여 그들의 적의 진영에서 반대-개혁(counter-reformation)이자 그들의 적들이 지녔던 윤리적 기준에 대한 수정과 재평가 발생했다. 기독교는, 겨우 30년 전에 추구하고 있던 길과 다른 길로 오늘날 들어섰다면, 마르크스의 영향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자신의 저서 심판의 책(Book of the Judge)에서 자신의 행동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던 키르케고르의 목소리에 교회가 귀를 기울인 것은 심지어 부분적으로 마르크스의 영향력 때문이다: ‘자신의 임무가 교정적 관념을 내는 것인 사람은, 기존질서의 부패한 부분을 정확하고 깊이 연구하여 ㅡ 그다음에, 가능한 한 가장 편파적인 방법으로, 그 질서의 정반대를 강조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하므로 명백하게 영리한 사람은 교정적 관념에 반대하여 편파성의 반론을 쉽게 제기할 것이고 ㅡ 그는 일반인들이 이것이 그것에 대한 전체 진실이었다고 믿도록 만들 것이다라고 부언한다) 이런 의미에서 초기 마르크스주의가, 지체의 윤리적 혹독함인 단순히 말 대신 행동을 강조함과 함께, 아마도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교정적 관념이었다고 우리가 아마도 말할 것이다. 이것으로 인하여 마르크스주의가 지닌 엄청난 도덕적 영향력이 설명된다.

사람은 행동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요구는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 몇 편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이 견해는, 아마도 그의 행동주의로서 기술될 것인데, 그의 저서 포이에르바흐에 관한 논문(Theses on Feuerbach) 말미에서 매우 분명하게 언명된다: ‘철학자들은 세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해왔을 따름이다; 그러나 요점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동일한 행동주의적경향을 보이는 많은 다른 구절들이 있다; 특히 사회주의를, 그 안에서 인간이 자기 자신의 사회적 환경의 주인이 될 왕국인 자유의 왕국으로, 마르크스가 언급하는 많은 다른 구절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를 그 속에서 현재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비합리적인 힘으로부터 우리가 대체로 자유로운,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의 이성이 능동적으로 인간사(人間事)를 통제할 수 있는, 기간으로 구상했다. 이 모든 것에 의하여, 그리고 마르크스의 일반적인 도덕적 및 정서적 견해에 의하여 판단하면, ‘우리가 우리 운명의 창조자가 될 것인가, 혹은 그 운명의 예언자가 되는 데 우리가 만족할 것인가?라는 선택에 직면하면 그는 단순히 예언자가 아니라 창조자가 되기를 결심했었으리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ㅡ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II, 1971, 199-201쪽 ㅡ

 

Marx, I believe, avoided an explicit moral theory, because he hated preaching. Deeply distrustful of the moralist, who usually preaches water and drinks wine, Marx was reluctant to formulate his ethical convictions explicitly. The principles of humanity and decency were for him matters that needed no discussion, matters to be taken for granted. (In this field, too, he was an optimist.) He attacked the moralists because he saw them as the sycophantic apologists of a social order which he felt to be immoral ; he attacked the eulogists of liberalism because of their self-satisfaction, because of their identification of freedom with the formal liberty then existing within a social system which destroyed freedom. Thus, by implication, he admitted his love for freedom; and in spite of his bias, as a philosopher, for holism, he was certainly not a collectivist, for he hoped that the state would 'wither away'. Marx's faith, I believe, was fundamentally a faith in the open society.

Marx's attitude towards Christianity is closely connected with these convictions, and with the fact that a hypocritical defence of capitalist exploitation was in his day characteristic of official Christianity. (His attitude was not unlike that of his contemporary Kierkegaard, the great reformer of Christian ethics, who exposed the official Christian morality of his day as anti-Christian and anti-humanitarian hypocrisy.) A typical representative of this kind of Christianity was the High Church priest J. Townsend, author of A Dissertation on the Poor Laws, by a Wellwisher of Mankind, an extremely crude apologist for exploitation whom Marx exposed. 'Hunger', Townsend begins his eulogy, 'is not only a peaceable, silent, unremitted pressure but, as the most natural motive of industry and labour, it calls forth the most powerful exertions.' In Townsend's 'Christian' world order, everything depends (as Marx observes) upon making hunger permanent among the working class ; and Townsend believes that this is indeed the divine purpose of the principle of the growth of population ; for he goes on : 'It seems to be a law of nature that the poor should be to a certain degree improvident, so that there may always be some to fulfil the most servile, the most sordid, the most ignoble offices in the community. The stock of human happiness is thereby much increased, whilst the more delicate.. are left at liberty without interruption to pursue those callings which are suited to their various dispositions.' And the 'delicate priestly sycophant', as Marx called him for this remark, adds that the Poor Law, by helping the hungry, 'tends to destroy the harmony and beauty, the symmetry and order, of that system which God and nature have established in the world.'

If this kind of 'Christianity' has disappeared to-day from the face of the better part of our globe, it is in no small degree due to the moral reformation brought about by Marx. I do not suggest that the reform of the Church's attitude towards the poor in England did not commence long before Marx had any influence in England ; but he influenced this development especially on the Continent, and the rise of socialism had the effect of strengthening it in England also. His influence on Christianity may be perhaps compared with Luther's influence on the Roman Church. Both were a challenge, both led to a counter-reformation in the camps of their enemies, to a revision and re-valuation of their ethical standards. Christianity owes not a little to Marx's influence if it is to-day on a different path from the one it was pursuing only thirty years ago. It is even partly due to Marx's influence that the Church has listened to the voice of Kierkegaard, who, in his Book of the Judge, described his own activity as follows : 'He whose task it is to produce a corrective idea, has only to study, precisely and deeply, the rotten parts of the existing order - and then, in the most partial way possible, to stress the opposite of it (이 문장에서 whose task it isit은 불필요하다. 문법적 오류로 보인다. - 역자 주).' ('Since that is so', he adds, 'an apparently clever man will easily raise the objection of partiality against the corrective idea - and he will make the public believe that this was the whole truth about it.') In this sense one might say that the early Marxism, with its ethical rigour, its emphasis on deeds instead of mere words, was perhaps the most important corrective idea of our time. This explains its tremendous moral influence.

The demand that men should prove themselves in deeds is especially marked in some of Marx's earlier writings. This attitude, which might be described as his activism, is most clearly formulated in the last of his Theses on Feuerbach : 'The philosophers have only interpreted the world in various ways ; the point however is to change it.' But there are many other passages which show the same 'activist' tendency ; especially those in which Marx speaks of socialism as the 'kingdom of freedom', a kingdom in which man would become the 'master of his own social environment'. Marx conceived of socialism as a period in which we are largely free from the irrational forces that now determine our life, and in which human reason can actively control human affairs. Judging by all this, and by Marx's general moral and emotional attitude, I cannot doubt that, if faced with the alternative 'are we to be the makers of our fate, or shall we be content to be its prophets ?' he would have decided to be a maker and not merely a proph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