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윤리
22장: 역사주의의 도덕론
마르크스가 자본론(Capital)에서 스스로 세웠던 과제는 사회발전에 관한 철칙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사회기술자에게 유용할 경제법칙의 발견이 아니었다. 그것은 또한 공정가격, 부(富)의 균등분배, 안전, 합리적인 생산계획,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유와 같은 사회주의적 목적 실현을 허용할 터인 경제상황을 분석하는 것도 아니고, 이 목적을 분석하여 설명하려는 시도도 아니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사회주의적 목적을 도덕적으로 합리화하려는 시도뿐 아니라 유토피아적 기술(技術: technology)에 강력하게 반대할지라도, 그의 글에는, 윤리이론이 함축적으로 포함되었다. 이것을 그는 주로 사회제도에 대한 도덕적 평가에 의하여 표현했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규탄은 도덕적 규탄이었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 완전한 ‘형식적’ 정의(正義) 및 공정과 결합된 자본주의체제 속에 내재한 잔인한 불의(不義) 때문에 그 체제는 규탄을 받는다. 그 체제는, 착취자로 하여금 피착취자들을 노예화하도록 강요함으로써 그들의 양쪽 자유 모두를 빼앗기 때문에, 규탄을 받는다. 마르크스는 부(富)와 싸우지 않았고, 가난을 찬양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본주의를 증오했는데, 자본주의가 부(富)를 축적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소수 독점적 특성 때문이었다; 이 체제에서 부(富)는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권력이라는 의미에서 정치권력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는 자본주의를 증오했다. 노동력은 상품이 되어버린다; 그것은 사람이 시장에서 자신을 팔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르크스는 그 체제가 노예제도를 닮았기 때문에 그 체제를 증오했다.
사회제도의 도덕적인 면을 그렇게 강조함에 의하여, 마르크스는 우리의 행동이 낳는 더 장기적인 사회적 파장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강조했다; 예를 들어, 사회적으로 부당한 제도의 생명을 연장하는 데 도움을 줄 그런 행동이 낳는 사회적 파장.
그러나 자본론(Capital)이 실제로 주로 사회윤리에 관한 논문일지라도, 이 윤리 관념들은 그렇게 제시된 적이 없다. 암시가 매우 분명하기 때문에 그 윤리 관념들은 함축적으로만 표현되고, 그 이유로 해서 유효성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마르크스는 설교하기를 혐오했기 때문에 명시적인 도덕론을 회피했다고 나는 믿는다. 보통 물(water)을 설교하고 술을 마시는 도덕주의자들을 깊이 불신하여, 마르크스는 자신의 윤리적 확신을 명시적으로 언명하기를 주저했다. 인간성(humanity)과 품위(decency)는 그에게 토론이 필요 없는 문제인 당연한 문제였다. (이 분야에서도 그는 낙관주의자였다.) 자신이 비도덕적이라고 느꼈던 사회질서에 대한 아첨꾼으로 도덕주의자들을 그가 보았기 때문에 마르크스는 그들을 공격했다; 그들이 지닌 자기만족 때문에, 자유를 파괴했던 사회체제 내부에 당시 존재하던 형식적 자유와 자유를 동일시했기 때문에 그는 자유주의 칭송자들을 공격했다. 그리하여, 함축적으로 그는 자유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인정했다; 그리고 철학자로서 전체론 향한 자신의 편견에도 불구하고, 그는 틀림없이 집단주의자가 아니었는데 이유인즉 국가가 ‘소멸할 것’을 희망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신념은 근본적으로 열린사회에 대한 신념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기독교에 대한 마르크스의 견해는 이 신념과, 그리고 자본주의적 착취에 대한 위선적 옹호는 그의 시대에 공식적 기독교의 특징이었다는 사실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의 견해는 기독교 윤리의 위대한 개혁가로 자신의 시대의 공식적 기독교 도덕을 반[反]-기독교적이고 반[反]-인도주의적인 위선으로 폭로했던 동시대인인 키르케고르[Kierkegaard]의 견해와 다르지 않았다.) 이런 종류의 기독교를 전형적으로 대표했던 사람은, 인류의 복지를 원하는 사람에 의한 빈민법 논고(A Dissertation on the Poor Laws, by a Wellwisher of Mankind)의 저자로 고(高)-교회파(High Church) 사제인 J. 타운센드(Townsend)로 마르크스가 폭로했던 착취를 매우 조잡스럽게 옹호한 사람이었다. ‘굶주림은 평온하고 조용하며, 지속되는 압력일 뿐 아니라, 근면과 노동의 가장 자연스러운 동기로서, 굶주림은 가장 강력한 노력을 불러일으킨다’고 자신의 찬사를 타운센드는 시작한다. 타운센드의 ‘기독교적’ 세계질서에서, 모든 것이 굶주림을 노동계급 가운데서 영구적으로 만드는 것에 달려있다 (마르크스가 관찰하는 바와 같이); 그래서 이것이 진정으로 인구증가 원리의 신성한 목적이라고 타운센드는 믿는다; 왜냐하면 그가 계속하여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틀림없이 어느 정도까지는 미래를 대비하지 못하여 공동체 안에서 가장 노예적이고 가장 더럽고 가장 비천한 직종을 채울 어떤 사람들이 항상 있을 것은 자연법칙으로 보인다. 보다 연약한 사람들이.. 자신의 기질에 알맞은 직업을 방해 받지 않고 추구하는 자유에 남겨진 반면, 인간 행복의 재고(在庫)는 그리하여 많이 증가한다.’ 마르크스가 이 언급 때문에 그를 지칭하는 바와 같이, 빈민법이 굶주린 사람들을 도움에 의하여, 그 ‘연약한 사제(司祭) 아첨꾼에게, 하느님과 자연이 세상에 설립한 체제의 조화와 미(美), 그리고 평형과 질서를 파괴하는 경향이 있다’고 마르크스가 부언한다.
이런 종류의 ‘기독교’가 오늘날 지구 대부분의 표면으로부터 사라졌다면, 그것은 마르크스가에 의하여 초래된 도덕적 개혁에 기인하는 바가 적지 않다.영국에서 교회가 가난한 자들을 향하여 지녔던 태도에 대한 개혁이 마르크스가 영국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오래 전에 시작되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특히 유럽대륙에서 이 상황전개에 영향을 미쳤고, 사회주의의 발흥으로 인하여 영국에서도 그 상황전개가 강화되는 효과가 발생했다. 기독교에 대한 마르크스의 영향력은 아마도 루터가 로마 교회에 끼친 영향력과 비교될 것이다. 두 사람의 영향력은 도전이었으며, 두 사람의 영향력으로 인하여 그들의 적의 진영에서 반대-개혁(counter-reformation)이자 그들의 적들이 지녔던 윤리적 기준에 대한 수정과 재평가 발생했다. 기독교는, 겨우 30년 전에 추구하고 있던 길과 다른 길로 오늘날 들어섰다면, 마르크스의 영향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자신의 저서 심판의 책(Book of the Judge)에서 자신의 행동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던 키르케고르의 목소리에 교회가 귀를 기울인 것은 심지어 부분적으로 마르크스의 영향력 때문이다: ‘자신의 임무가 교정적 관념을 내는 것인 사람은, 기존질서의 부패한 부분을 정확하고 깊이 연구하여 ㅡ 그 다음에, 가능한 한 가장 편파적인 방법으로, 그 질서의 정반대를 강조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하기 때문에 명백하게 영리한 사람은 교정적 관념에 반대하여 편파성의 반론을 쉽게 제기할 것이고 ㅡ 그는 일반인들로 하여금 이것이 그것에 대한 전체 진실이었다고 믿도록 만들 것이다’라고 부언한다.) 이런 의미에서 초기 마르크스주의가, 지체의 윤리적 혹독함인 단순히 말 대신 행동을 강조함과 함께, 아마도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교정적 관념이었다고 우리가 아마도 말할 것이다. 이것으로 인하여 마르크스주의가 지닌 엄청난 도덕적 영향력이 설명된다.
사람은 행동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요구는 마르크스의 초기 저작 몇 편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이 견해는, 아마도 그의 행동주의로서 기술될 것인데, 그의 저서 포이어바흐에 관한 논문(Theses on Feuerbach) 말미에서 매우 분명하게 언명된다: ‘철학자들은 세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해왔을 따름이다; 그러나 요점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나 동일한 ‘행동주의적’ 경향을 보이는 많은 다른 구절들이 있다; 특히 사회주의를, 그 안에서 인간이 ‘자기 자신의 사회적 환경의 주인’이 될 왕국인 ‘자유의 왕국’으로, 마르크스가 언급하는 많은 다른 구절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를 그 속에서 현재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비합리적인 힘으로부터 우리가 대체로 자유로운,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의 이성이 능동적으로 인간사(人間事)를 통제할 수 있는, 기간으로 구상했다. 이 모든 것에 의하여, 그리고 마르크스의 일반적인 도덕적 및 정서적 견해에 의하여 판단하면, ‘우리가 우리 운명의 창조자가 될 것인가, 혹은 그 운명의 예언자가 되는 데 우리가 만족할 것인가?’라는 선택에 직면하면 그는 단순히 예언자가 아니라 창조자가 되기를 결심했었으리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마르크스의 이 강력한 ‘행동주의적’ 경향은 그의 역사주의에 의하여 무력화된다. 역사주의 영향 하에서, 그는 주로 예언자가 되었다. 적어도 자본주의 하에서, 우리가 ‘냉엄한 법칙’에 복종해야 하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자본주의 진화의 자연스런 단계들’의 ‘산고(産苦)를 줄이거나 경감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에 복종해야 한다고 그는 결정했다. 마르크스의 행동주의와 그의 역사주의 사이에는 커다란 격차가 있으며, 역사의 순전히 비합리적인 힘에 우리가 복종해야 한다는 그의 교설에 의하여 그 격차는 한층 더 커진다. 그 까닭은 그가 미래에 대비하여 계획을 세우기 위하여 우리의 이성을 이용하려는 어떤 시도도 유토피아적이라고 비난해서 보다 이성적인 세상을 구현하는데 이성이 어떤 역할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관점은 옹호될 수 없고, 틀림없이 신비주의를 초래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내가 교량이 온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지라도, 이 격차에 교량을 놓는 이론적 가능성이 있는 듯하다는 것을 나는 인정해야 한다. 이 교량을, 그 교량에 관해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글에서 발견될 겨우 개략적 계획만 있는데, 나는 그들의 역사주의 도덕이론으로 부른다.
자신들의 윤리관념이 어떤 의미에서도 궁극적이고 스스로 정당하다고 인정하기를 꺼리며,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신들의 인도주의적 목적을 사회적 환경의 산물이나 반영으로서 설명하는 이론에 비추어 고려하기를 선호했다. 그들의 이론은 다음과 같이 기술될 수 있다. 사회개혁가나, 혁명가가 자신이 ‘불의(不義)’에 대한 증오에 의하여, ‘정의(正義)’에 대한 사랑에 의하여, 고무된다고 믿는다면, 그는 대체로 환상의 희생자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예를 들어 구질서[舊秩序: the old order] 옹호자들처럼). 그렇지 않으면, 더 정확하게 표현하여, ‘정의’와 ‘불의’에 대한 그의 도덕관념들은 사회적 및 역사적 발전의 부산물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그 작동구조에 의하여 발전이 스스로 추진하는 작동구조이기 때문에, 중요한 종류의 부산물이다. 이 요점을 예시하기 위하여, 적어도 ‘정의’에 대한 (즉 ‘자유’와 ‘평등’에 대한) 두 가지 관념이 항상 존재하며, 이 두 가지 관념은 진정으로 매우 크게 다르다. 하나는 지배계급이 이해하는 바와 같은 ‘정의’ 관념이며, 다른 하나는 피지배 계급이 이해하는 바와 같은 동일한 관념이다. 물론 이 관념들은 계급상황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그 관념들이 계급투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ㅡ 그 관념들은 자체들의 투쟁을 수행하기 위하여 자체들에게 필요한 저 훌륭한 양심을 양쪽에 틀림없이 제공한다.
이 도덕성 이론은, 모든 도덕적 범주는 역사적 상황에 의존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역사주의적으로 특정될 것이다; 그 이론은 윤리 분야에서 역사상대주의(historical relativism)로서 통상적으로 기술된다. 이 관점으로부터 판단하면, 이렇게 질문하는 것은 불완전한 질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정당한가? 완벽한 질문은 이렇게 진행될 것이다: 15세기 봉건적 도덕성이라는 의미에서, 이런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정당한가? 혹은 아마도: 19세기 프롤레타리아 도덕성이라는 의미에서, 이런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정당한가? 이 역사상대주의는 엥겔스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언명되었다: ‘어떤 도덕성이 오늘날 우리에게 설교되는가? 첫째로 과거 수세기로부터 전승된, 기독교-봉건적 도덕성이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도덕성 두 가지로 주로 분기하는데, 그다음에 제수이트-가톨릭(Jesuit-Catholic)과 정통-프로테스탄트에서 느슨한 ‘진전된’ 도덕성에 이르기까지, 빠지지 않고 추가로 분기한다. 이것들과 나란히, 우리는 현대 부르주아 도덕성을 발견하며, 그 도덕성과 함께, 미래의 프롤레타리아 도덕성을 발견한다..’
그러나 소위 이 ‘역사상대주의’로 인하여 마르크스주적 도덕이론의 역사주의적 특징이 전혀 망라되지 않는다. 그런 이론을 지닌 사람들, 예를 들어 마르크스 자신에게 우리는 이렇게 질문한다고 상상하자: 왜 당신은 그런 방식으로 행동하는가? 왜 당신은, 예를 들어, 당신의 혁명적 활동을 중단한 것에 대하여 부르주아 계급으로부터 뇌물을 받는 것이 더럽고 구역질나는 일이라고 생각할까? 나는 마르크스가 그런 질문에 답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아마도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행동했다거나 혹은 어쩔 수 없는 느낌으로 행동했을 뿐이라고 주장하며, 아마도 그 질문을 회피하려 했을 터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지닌 문제와 관련되지 않는다. 자신의 삶의 실제적 결정에서 마르크스가 매우 엄격한 도덕률을 따랐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가 자신의 협력자로부터 높은 도덕기준을 요구했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이것들에 적용된 용어사용법이 무엇이든, 우리를 마주하는 문제는 그가 다음과 같은 질문에 아마도 대답했을 답변을 어떻게 찾는가이다: 왜 당신은 그런 방식으로 행동하는가? 왜 당신은, 예를 들어, 압박을 받는 사람들을 도우려고 하는가? (마르크스 자신은, 태생적으로나 양육에 의하여 또는 자신의 삶의 방식으로도, 이 계급에 속하지 않았다.)
이런 방식으로 재촉을 받았다면, 내가 생각하기에 마르크스는 자신의 도덕적 신념을 다음 용어들로 언명했을 텐데, 그 신념은 내가 그의 역사주의 도덕론이라고 부르는 것의 핵심을 형성한다. 사회과학도로서 (그는 아마도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우리가 지닌 도덕관념들이 계급투쟁에서 무기임을 나는 안다. 과학자로서, 그 관념들을 채택하지 않고 나는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자로서 이 투쟁에서 어쩔 수 없이 편을 들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또한 안다; 심지어 냉담함과 같은 어떤 자세도 어느 정도 편을 드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 그러므로 나의 문제는 이런 형태를 띤다: 내가 어느 편을 들까? 내가 특정 편을 선택할 때, 물론 나는 내가 지닌 도덕성을 또한 결정했다. 내가 지지하기로 결정한 계급의 이익과 반드시 연계된 도덕체계를 나는 채택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근본적인 결정을 내리기 전에, 내가 나의 계급의 도덕적 전통으로부터 나 자신을 풀어놓을 수 있다면 나는 어떤 도덕체계도 채택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물론, 상충하는 도덕체계에 관하여 의식적이고도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이제 결정은 이전에 수용된 도덕규범에 관련해서만 ‘도덕적’이기 때문에, 내가 내린 근본적 결정은 전혀 ‘도덕적’일 리가 없다. 그러나 그 결정은 과학적 결정이 될 수 있다. 이유인즉 사회과학도로서, 나는 무슨 일이 발생할 예정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계급이 그 도덕체계와 함께 사라지기 마련임을, 그리고 프롤레타리아는 새로운 도덕체계와 함께 승리하기 마련임을, 나는 알 수 있다. 나는 이 상황전개가 불가피함을 안다. 중력의 법칙에 저항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미친 짓임과 꼭 같이, 그 상황전개에 저항하는 수고는 미친 짓일 터이다. 이것이 나의 근본적인 결정이 프롤레타리아와 그 도덕성을 지지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 결정은 과학적 선견지명인 과학적인 역사관련 예언에만, 근거한다. 그것이 어떤 도덕체계에도 근거하지 않기 때문에 그 자체가 도덕적 결정은 아닐지라도, 그것으로 인하여 특정 도덕체계를 채택하게 된다. 요컨대, 나의 근본적인 결정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피압박자들을 도우려는 감상적인 결정이 아니라, 사회발전 법칙에 헛되게 저항하지 않으려는 과학적이고도 합리적인 결정이다. 내가 이 결정을 내린 후에만, 어쨌든 도래하기 마련인 것을 위한 투쟁에서 필요한 무기인 저 도덕적 감정들을 나는 수용하여 철저하게 이용할 준비를 갖춘다. 이런 방식으로, 나는 도래하는 시대에 관한 사실들을 내가 지닌 도덕성의 기준으로 채택한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이성에 의하여 계획되지 않고도 보다 이성적인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명백한 역설을 나는 해결한다; 이유인즉 이제 채택된 나의 도덕적 기준에 따라서, 미래 세상은 틀림없이 나을 것이고 그리하여 더 이성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행동주의와 나의 역사주의 사이의 격차에 교량을 나는 또한 놓는다. 그 까닭은 내가 사회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자연법칙을 발견했을지라도, 내가 펜을 한 번 들어 세상으로부터 사회진화의 자연적인 단계를 내칠 수 없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만큼을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진화의 산고(産苦)를 줄이고 경감시키는 데 능동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이, 마르크스의 답변이었을 터이고, 내가 ‘역사주의적 도덕이론’이라고 지칭했던 것의 가장 중요한 형태를 나에게 제시하는 것은 이 답변이다. 엥겔스가 다음과 같이 서술할 때 언급하는 것은 이 이론이다: ‘틀림없이, 지속될 예정인 최다수의 요소를 포함하는 저 도덕성은, 현재 시간 안에서, 현재 시간의 전복을 대표하는 도덕성이다; 그것은 미래를 대표하는 도덕성이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 도덕성이다... 이 구상에 따라서, 모든 사회적 변화와 정치적 혁명의 궁극적 요인들이 정의(正義)를 점점 더 통찰하는 것이 아니다; 그 궁극적 요인들은 철학에서 추구될 수 없고 관련된 시대의 경제학에서 탐색될 수 있다. 현존하는 사회제도가 비합리적이고 불의하다는 깨달음의 확대는 증상일 뿐이다..’ 그것은 현대 마르크스주의자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이론이다: ‘사회주의적 열망을, 도덕적 토대 위에서 정당화 시키는 대신, 사회발전의 합리적인 경제법칙 위에 세우면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사회주의가 역사적 필연이라고 선언했다.’ 그것은 매우 널리 주장되는 이론이다; 그러나 그 이론은 분명하고 명시적으로 언명된 적이 없다. 그러므로 그 이론에 대한 비판은 아마도 처음 보기에 깨달아지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우선, 그 이론이 주로 올바른 역사관련 예언의 가능성에 근거한다는 것은 충분히 명백하다. 이것이 의문시 된다면 ㅡ 그리고 그것은 틀림없이 의문시 되어야 한다 ㅡ 그 이론은 자체의 힘 대부분을 잃는다. 그러나 그 이론을 분석할 목적으로, 나는 처음에 역사관련 예지(叡智)는 기정사실이라고 상정(想定)하겠다; 그리고 나는 이 역사관련 예지는 제한된다고 규정만 할 것이다; 나는 우리가, 가령, 향후 500년에 관한 예지를 가진다고 규정할 것인데, 심지어 마르크스주의적 역사주의의 가장 대담한 주장도 틀림없이 제한하지 않는 규정이다.
이제 문제의 도덕체계의 하나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근본적인 결정이 그 자체로 도덕적 결정이 아니라는 역사주의적 도덕이론을 먼저 검토하자; 그 근본적 결정이 도덕적 사고나 감정에 근거하지 않고, 과학적인 역사관련 예언에 근거한다는 역사주의적 도덕이론의 주장. 이 주장은 옹호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을 완전히 명백하게 하기 위하여, 이 근본적 결정에 함축된 행동지침이나 행동원리를 명시적으로 만들면 충분할 것이다. 그것은 다음 원리이다: 미래의 도덕체계를 채택하라! 아니면: 그들의 행동이 미래를 낳는 데 매우 유용한 사람들이 지닌 도덕체계를 채택하라! 이제 향후 500년이 어떨지 우리가 정확히 안다는 상정(想定)에 심지어 근거하여, 우리가 그런 원리를 채택한다는 것이 조금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내가 보기에 명백하다. 예를 들어, 1764년에 프랑스의 상황전개를, 가령, 1864년까지 예견했던 볼테르(Voltaire)의 어떤 인도주의적인 제자가 그 전망을 아마도 혐오했었을 것임은 적어도 상상될 수 있다; 그는 이 상황전개가 다소 불쾌하여 나폴레옹3세의 도덕기준을 자신의 도덕기준으로 채택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결정했을 것임은 적어도 상상될 수 있다. 그는 아마도 자신의 인도주의적 기준에 충실할 것이고 그 기준을 자신의 제자들에게 가르칠 것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 기준들은 이 기간에서 살아남아 아마도 언젠가 승리할 것이다. 우리가 노예제도의 시대를 향하여 가고 있다, 우리가 중단된 사회라는 새둥지로 돌아갈 예정이다, 혹은 심지어 우리는 동물로 돌아가려 하고 있다고 확신적으로 오늘날 예견하는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임박한 기간의 도덕적 기준을 채택하지 않기로 결정하지만, 아마도 희미한 미래에 자신의 도덕성이 부활할 것을 희망하면서, 자신이 지닌 인도주의적 이상(理想)의 생존에 최선을 다해 기여하겠다고 결정할 것은 동등하게 상상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최소한 상상가능하다. 그것은 아마도 ‘가장 현명한’ 결정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결정이 예지(叡智)에 의해서나 여하한 사회학적 혹은 심리학적 법칙에 의하여도 배제되지 않는다는 사실로 인하여 역사주의적 도덕론의 첫 번째 주장이 옹호될 수 없음이 밝혀진다. 미래의 도덕성이 단지 미래의 도덕성이라는 이유로 우리가 미래의 도덕성을 수용해야 하는지, 이것은 본질적으로 도덕적 문제일 따름이다. 근본적인 결정은 미래에 대한 어떤 지식으로부터도 도출될 수 없다.
앞의 여러 장에서 나는 도덕실증주의인 (특히 헤겔의) 존재하는 도덕기준을 제외하고 도덕기준이 없다는 이론을 언급했다; 존재하는 것은 이성적이며 선하다는 것; 그리하여 힘은 정의라는(might is right) 것. 이 이론의 실제적 모습은 이것이다. 현존하는 사건들의 상태에 대한 도덕적 비판은 불가능한데 왜냐하면 이 상태 자체로 인하여 사물의 도덕기준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가 고찰하고 있는 역사주의적 도덕이론은 도덕실증주의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다. 이유인즉 그 도덕이론이 다가오는 힘이 정의다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미래는 현재를 대체한다 ㅡ저것이 전부다. ‘현재’와 ‘미래’ 사이의 차이점은 여기서, 물론, 단지 정도의 문제이다. 우리는 미래가 내일, 혹은 500년 후에, 혹은 100년 후에,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들의 이론적 구조 속에는 도덕보수주의, 도덕현대주의와 도덕미래주의 사이에 차이점은 없다. 또한 도덕적 감정에 관하여 그들 사이에는 선택할 것이 많지 않다. 도덕미래주의자가 존재할 힘의 편을 드는 도덕보수주의의 비겁을 비판한다면, 도덕보수주의자는 그 비판을 되받아칠 수 있다; 도덕미래주의자는 존재할 힘의 편인 내일의 통치자들의 편을 들기 때문에 비겁자라고 도덕보수주의자는 말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이런 함의(含意)를 고려했더라면, 마르크스는 역사주의적 도덕이론을 거부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마르크스를 사회주의로 이끌었던 것은 과학적 판단이 아니라 도덕적 충동, 피압박자를 도우려는 희망, 파렴치하게 착취당하여 비참한 노동자들을 해방시키려는 희망이었음을 수많은 언급들과 수많은 행동들이 증명한다. 그의 가르침의 영향력이 지닌 비결은 이 도덕적 매력임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매력의 힘은 그가 도덕성을 추상적으로 설교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하여 엄청나게 강화되었다. 그는 그렇게 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누가 자기 자신의 기준에 따라서, 그 기준이 그다지 낮은 것이 아니라면, 사는가?라고 그는 자문했던 듯하다. 윤리적 문제에서 그가 절제된 서술에 의지하게 되고, 자신이 느낀 것보다 예언적 사회과학에서 도덕적 문제에서의 권위가 더 신뢰될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은 이 느낌이었다.
틀림없이, 마르크스의 실천윤리학에서 자유와 평등 같은 그런 범주가 주요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결국 1789년의 이상을 진지하게 수용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유’ 같은 관념이 얼마나 파렴치하게 왜곡될 수 있는지를 알았다. 이것이 그가 자유를 말로 설교하지 않은 이유이다 ㅡ 그가 자유를 행동으로 설교한 이유. 그는 사회를 개선하고자 원했고 그 개선은 더 많은 자유, 더 많은 평등, 더 많은 정의(正義), 더 많은 안전, 더 높은 생활수준, 그리고 특히 즉각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얼마간의 자유를 주는 저 노동일 단축을 그에게 의미했다. 그가 자신의 도덕적 신념을 역사주의적 언명 뒤에 숨기게 된 영향은, 그의 놀라운 낙천주의인 이 모든 것이 가까운 장래에 성취되리라는 그의 믿음과 함께, 그가 지녔던 위선에 대한 증오인 이 ‘높은 이상들’에 관하여 말하기를 주저함이었다.
도덕미래주의의 형태로 된 도덕실증주의가 미래의 권력을 정의로 인정한다는 의미임을 마르크스가 알았더라면, 그 도덕실증주의를 진지하게 옹호하지 않았으리라고 나는 확언한다. 그러나 인류에 대하여 그가 지녔던 열정적인 사랑을 소유하지 않은, 이 함의(含意) 때문에만 도덕미래주의자들인 다시 말해서 승자 편에 서기를 원하는 기회주의자들인 다른 사람들이 있다. 도덕미래주의는 오늘날 널리 퍼져있다. 도덕미래주의의 더 깊은, 비(非)-기회주의적 토대는 아마도 선량함이 틀림없이 ‘궁극적으로’ 사악함을 이긴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도덕미래주의자들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현재 사건의 ‘궁극적’ 결과를 목격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망각한다. ‘역사가 우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공이 재판하리라는 것. 성공과 미래의 힘을 숭배하는 것은 아마도 현재의 힘이 정의(正義)라는 것을 결코 인정하지 않으려는 많은 사람들의 최고 기준이다. (그들은 현재가 과거의 미래라는 것을 완전히 망각한다.) 이 모든 것의 토대는 도덕낙천주의와 도덕회의주의 사이의 내키지 않는 타협이다. 사람의 양심을 믿는 것은 어려운 듯이 보인다. 그리고 승자의 편에 서려는 충동에 저항하는 것은 어려운 듯하다.
이 모든 비판은 우리가 미래를, 가령 향후 500년 동안의 미래를 예언할 수 있다는 상정(想定)과 일치한다. 그러나 우리가 완전히 허구적인 이 상정(想定)을 포기한다면, 역사주의적 도덕이론은 그 이론이 지닌 모든 타당성을 잃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상정을 포기해야 한다. 그 까닭은 도덕체계를 선택하는 데서 우리에게 도움을 줄 예언적 사회학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선택에 관한 우리의 책임을 다른 어떤 사람에게, 심지어 ‘미래’에도 전가할 수 없다.
마르크스의 역사주의적 도덕론은, 물론, 사회과학의 방법에 관한 그의 관점의 결과인 우리 시대에 다소 유행하게 된 그의 사회학적 결정론의 결과이다. 우리의 도덕기준을 포함하여 우리의 모든 견해들은 사회와 사회의 역사관련 상태에 달려있다고 언급된다. 그 견해들은 사회의 산물 혹은 특정 계급상황의 산물이다. 교육은 특수한 과정으로서 정의되는데 그 과정에 의하여 공동체가 자신의 구성원들에게 ‘그 기준에 따라서 구성원들이 살아가게 할 기준을 포함하여 공동체의 문화’를 ‘전승하려는’ 시도이고, ‘현존 질서에 대한 교육이론 및 관행의 상대성’이 강조된다. 과학 또한 과학연구자, 기타 등등의 사회적 계층에 달려있다고 언급된다.
우리가 지닌 견해의 사회학적 의존을 강조하는 이런 종류의 이론은 때때로 사회학주의(sociologism)로 지칭된다; 역사관련 의존이 강조된다면, 그것은 전통적 역사주의(historism)로 지칭된다. (역사의존론적 역사주의[historism]는, 물론, 역사결정론적 역사주의[historicism]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사회학주의와 역사의존론적 역사주의(historism) 모두는, 그것들이 사회나 역사에 의하여 과학적 지식의 결정을 주장하는 한, 다음 두 장에서 논의될 것이다. 사회학주의가 도덕이론에 관련되는 한, 몇몇 언급들이 여기서 부언될 것이다. 그러나 세부사항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이 헤겔화하는 이론들에 관한 나의 견해를 분명히 하고 싶다. 나는 그 이론들이 예언적 철학의 은어(隱語)로 옷을 차려입고 시시한 소리를 지껄인다고 믿는다.
이 도덕‘사회학주의’를 조사해보자. 사람과, 사람의 목표는 어떤 의미에서 사회의 산물이라는 것은 지당하다. 그러나 사회가 사람과 사람이 지닌 목표의 산물이라는 것과 사회가 점점 더 그렇게 되리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주요 문제는: 인간과 사회 사이의 관계라는 이 두 가지 측면 중 어느 측면이 더 중요한가? 어느 측면이 강조되어야 하는가?
사람과 사람이 지닌 목표가 전통 및 환경의 산물이라는 유사한 ‘자연주의적’ 관점과 사회학주의를 비교한다면 우리는 사회학주의를 더 잘 이해할 것이다. 다시 우리는 이것이 지당함을 틀림없이 인정한다. 그러나 사람의 환경이 점점 더 큰 범위로 사람과 사람이 지닌 목표의 산물이라는 것이 (제한적으로, 심지어 인간의 전통에 관해서도 동일한 언급이 아마도 가능할 것이다) 또한 완전히 확실하다. 다시 우리는 물어야 한다: 두 측면 중에서 어느 측면이 더 중요한가, 더 비옥한가? 우리가 그 질문에 다음과 같은 더 실용적인 형태를 부여한다면 답변은 더 용이할 것이다. 현재 살아가고 있는 세대인 우리와 우리의 정신 및 견해들은 주로 우리 부모의, 우리 부모들이 우리를 양육한 방식의, 산물이다. 그러나 다음 세대는, 비슷한 정도로, 우리 자신의 산물이며 우리 행동의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양육하는 방식의 산물일 것이다. 두 측면 중 어느 측면이 오늘날 우리에게 더 중요한 측면인가?
우리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찰하면, 결정적인 요점이 우리의 정신, 우리의 견해가 주로 우리가 받은 양육에 의존할지라도 절대적으로 의존하지는 않음을 우리는 발견한다. 우리의 정신과 견해가 우리가 받은 양육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면, 우리가 자기비판을 할 수 없고 사물을 보는 우리 자신의 방식으로부터, 우리의 경험으로부터 우리가 배울 수 없다면 두말할 것 없이 우리가 바로 앞 세대에 의하여 양육된 방식으로 인하여 우리가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방식이 결정될 터이다. 그러나 이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은 완벽하게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비판적 능력을 집중하여, 우리 자신이 양육된 방식보다 낫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어려운 문제를 처리할 수 있다.
사회학주의에 의하여 그렇게 많이 강조된 상황은 정확하게 유사한 방식으로 다루어질 수 있다.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견해가 어느 정도 ‘사회’의 산물이라는 것은 하찮게 사실이다. 우리 환경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그 환경의 사회적 부분이다; 사고(思考)는, 특히 사교적 교류에 매우 크게 의존한다; 사고(思考)의 매체인 언어는 사회적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고(思考)를 검토할 수 있다는 것, 우리가 사고(思考)를 비판하여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아가 우리의 변화되고 향상된 사고(思考)에 따라서 우리의 물리적 환경을 우리가 변화시키고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은 부인될 수 없을 따름이다. 그리고 우리의 사회적 환경에 관해서도 똑같이 그렇다.
이 모든 고찰은 형이상학적인 ‘자유의지의 문제’와는 완전히 별개이다. 심지어 비(非)-결정론자도 전통에 대한 일정량의 의존성 및 환경적, 특히 사회적 영향에 대한 일정량의 의존성을 인정한다. 다른 한편으로, 결정론자는 우리의 견해와 행동이 전통과 교육 및 사회적 영향에 의하여 완전히 그리고 전적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고 틀림없이 동의한다. 그는 다른 요인들, 예를 들어, 사람의 일생동안에 축적된 더 ‘우연적인’ 경험들이 있다는 것과, 이 경험들 또한 자체의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틀림없이 인정한다. 결정론이나 비결정론은, 그것들이 자체의 형이상학적 한계 내부에 남아있다면, 우리가 지닌 문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요점은 그것들이 이 한계를 침범할 것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형이상학적 결정론이 사회학적 결정론 즉, ‘사회학주의’를 고취할 것이라는 점. 그러나 이 형태로, 그 이론은 경험과 마주할 수 있다. 그리고 경험으로 인하여 그 이론이 틀림없이 허위임이 밝혀진다.
윤리학 분야와 일정한 유사점을 지닌 미학(美學) 분야로부터 예를 들면, 베토벤은 틀림없이 어느 정도 음악교육과 전통의 산물이어서, 그에게 흥미를 갖는 많은 사람들은 그의 작품의 이 측면에 의하여 감명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측면은, 그 또한 음악을 생산하는 사람이었고, 그리하여 음악적 전통과 음악교육의 생산자였다는 것이다. 나는 베토벤이 작곡한 모든 소절이 전통적 및 환경적 영향의 어떤 결합에 의하여 결정되었다고 주장할 형이상학적 결정론자와 논쟁하고 싶지 않다. 그런 주장은 경험적으로 완전히 무의미한데 왜냐하면 아무도 그가 작곡한 단 하나의 소절을 이런 방식으로 실제로 ‘설명’할 수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작곡한 것이 그의 선배의 음악작품에 의해서도, 그가 살았던 사회적 환경에 의해서도, 그의 청력상실에 의해서도, 그의 가정부가 그를 위하여 요리한 음식에 의해서도,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인정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경험적 조사로 밝혀질 명백한 환경적 영향이나 상황에 의해서도, 혹은 그가 받은 전통에 관하여 우리가 아마도 알 수 있을 어떤 것에 의해서 설명될 수 없다.
나는 베토벤의 작품에 특정 흥미로운 사회학적 측면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작은 교향곡 오케스트라에서 큰 교향곡 오케스트라로 변천하는 것은 어느 정도 사회-정치적 상황전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오케스트라는 군주들의 개인적 취미가 더 이상 아니고, 적어도 부분적으로 그들이 지닌 음악에 대한 흥미가 크게 증가하는 중간계급에 의하여 지지를 받는다. 나는 이런 종류의 여하한 사회학적 ‘설명’도 기꺼이 평가할 것이고 그러한 측면들은 과학적으로 연구할 가치가 있다고 인정한다. (나 자신이 이 저서에서, 예를 들어 내가 플라톤을 다루면서 유사한 시도를 했다는 것이 기억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더 정확하게, 내가 공격하는 대상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런 종류의 측면에 대한 과장과 일반화이다. 위에 암시된 방식으로 베토벤의 교향곡 오케스트라를 우리가 ‘설명한다’면, 우리가 설명한 것이 없다. 자체를 해방시키는 과정 속에 있는 부르주아 계급을 대표하는 것으로 우리가 베토벤을 기술한다면,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우리가 말하는 것은 없다. 그런 기능은 확실히 나쁜 음악 생산과 연결될 수 있다 (우리가 바그너[Wagner]로부터 아는 바와 같이).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베토벤의 천재성을 설명하려고 시도할 수 없고, 어떤 방식으로도 전혀 시도할 수 없다.
마르크스 자신의 견해가 사회학적 결정론을 경험적으로 반박하기 위하여 동일하게 사용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유인즉 우리가 두 가지 이론인 행동주의와 역사결정론적 역사주의 그리고 그 이론들이 마르크스의 이론체계에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투쟁을 이 교설에 비추어 고찰하면, 역사결정론적 역사주의가 혁명가나 심지어 개혁가보다 보수옹호주의자에 더 알맞은 관점일 것이라고 우리가 말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역사결정론적 역사주의는 헤겔에 의하여 저 경향으로써 사용되었다. 마르크스가 헤겔로부터 역사결정론적 역사주의를 떠맡았을 뿐 아니라, 결국 그것으로 인하여 자신의 행동주의가 추방되었다는 사실에 의하여, 그리하여 사회적 투쟁에서 사람이 선택하는 편이 항상 그 사람의 지적(知的) 판단들을 반드시 결정하지 않음이 밝혀질 것이다. 마르크스의 경우에서처럼 이 판단들은 그가 지지하는 계급의 진정한 이익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선배의 영향과 같은 우연한 요인들에 의해서나, 아마도 단견(短見)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다. 그리하여 이 경우에, 사회학주의로 인하여 헤겔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촉진될 것이지만, 마르크스 자신의 사례로 인하여 사회학주의가 정당화되지 않은 일반화로서 폭로된다. 유사한 경우는 마르크스가 자신이 지닌 도덕적 관념의 중요성을 평가절하한 것이다; 이유인즉 그가 지녔던 종교적 영향력의 비결은 그 도덕적 매력 안에 있다는 것,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은 주로 도덕적 비판으로서 유효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사회체제와 같은 것이 불의일 수 있음을 밝혔다; 체제가 나쁘면, 그 체제로부터 이익을 보는 개인의 모든 정의로움은 가짜 정의로움일 뿐이며, 위선일 뿐임을 마르크스는 밝혔다. 왜냐하면 우리의 책임은 체제에까지, 우리가 존속을 허용하는 제도까지 확대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영향력을 설명하는 것은 그의 이 도덕적 근본주의이다; 그리고 저것은 본질적으로 희망적인 사실이다. 이 도덕적 근본주의는 아직도 살아있다. 그 근본주의를 살아있게 만드는 것, 마르크스의 정치적 근본주의가 틀림없이 갈 방향으로 그 근본주의가 가는 것을 막은 것이 우리의 임무이다. ‘과학적’ 마르크스주의는 죽었다. 마르크주의의 사회적 책임감과 자유에 대한 사랑은 살아남아야 한다.
ㅡ “열린사회와 그 적들”, 1971년, 2권 헤겔과 마르크스, 칼 포퍼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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