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주의는 야만 지역에서 나타난다
서유럽과,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로마제국 통치에 들지 않아서 로마 평화의 다시 말해서 로마 문명의 축복을 향유하지 못했던 저 지역들과 매우 근접하게 일치하는 중부유럽 지역 사이의 문화적 경계가 여전히 있다는 것은 아마도 우연일 것이지만 아무튼 괄목할만한다. 동일한 ‘야만인’ 지역들은, 신비주의를 창안하지 않았을지라도, 신비주의에 의하여 특히 영향을 받기 쉽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Bernard de Clairvaux)는 독일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그곳에서 에크하르트(Eckhart)와 그의 학파가 번창했고 보엠(Boehme) 또한 그러했다.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는 수도승이었는데 가톨릭 성인으로 신비론자였고 에크하르트는 독일 카톨릭 신학자로 신비론자였으며 보엠은 독일 철학자로 기독교 신비론자였다: 역주.)
ㅡ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 II권, 353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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