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우주론과 물질론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 답변하려고 노력했던 문제들은 주로 우주론적 문제들이었지만, 지식론의 문제들 또한 있었다. 철학은 우주론으로 그리고 간단한 지식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모든 사색가들이 관심을 갖는 적어도 한 가지의 철학적인 문제가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는 문제; 그리하여 (그 세상의 일부인) 우리 자신과 그 세상을 이해하는 문제. 모든 과학은 우주론이라고 나는 믿어서, 나에게는 철학에 대한 관심이 과학에 대한 관심보다 전혀 덜하지 않은데, 그 관심은 세상에 대한 우리의 지식
1958년 (이한구 옮김은 ‘1954년’이다: 역주) 10월 13일 아리스토텔레스 학회(Aristotelian Society)의 모임에 앞서서 행한, 회장 강연; 아리스토텔레스 학회 회보 N.S. 59, 1958-9년에 처음 발표되었다. 각주들은 (그리고 부록) 강연의 현재 재인쇄본에 추가되었다.
과 세상에 대한 우리 지식론을 확충하려는 대담한 시도에만 놓여있다. 예를 들어 나는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에 관심을 두는데, 그의 언어 철학 때문이 아니라, 그의 저서 논리철학논고(Tractatus)가 우주론적 논문이었고 (비록 조악한 것일지라도), 그의 지식론이 그의 우주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철학과 과학 모두 저 과제를 포기할 때 ㅡ 그 학문들이 전문화되어 우리의 세상에 있는 수수께끼를 보고 경탄하지 않을 때 ㅡ 나에게서 그 학문들의 매력이 없어진다. 전문화는 과학자들에게 커다란 유혹일 것이다. 철학자에게 전문화는 매우 큰 죄악이다.
II
이 논문에서 나는 비전문가로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아름다운 이야기에 대한 애호가로서 말한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다: 전문가가 어느 단어나 표현을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가 아마도 사용했을 것이고, 어느 단어나 표현은 도저히 사용했을 리가 없다고 주장하기 시작하면, 나는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전문가가 우리가 소유한 가장 오래된 문헌에 근거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더 이상 의미가 없는 ㅡ 아무튼 나에게는 ㅡ 이야기로써 대체할 때, 심지어 비전문가도 옛 전통을 옹호하기 위하여 일어선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하여 나는 적어도 그 전문가의 주장들을 조사하여 그 주장들의 일관성을 검토할 것이다. 이것은 몰입해도 해롭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전문가나 다른 사람이 수고하여 나의 비판을 논박한다면 나는 기쁘고 영광스럽게 느낄 것이다.
나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우주론에 관여하겠지만, 단지 그 우주론들이 내가 지칭하는 바와 같이, 변화의 문제(the problem of change)에 대한 전개에 관계된 정도까지이고,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 지식의 문제에 접근하는 것을 ㅡ 그 철학자들의 이론적 접근뿐 아니라 실제적 접근 또한 ㅡ 이해하기 위하여 그 우주론이 필요한 정도까지만이다. 이유인즉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이론적 접근뿐 아니라 실제적 접근이 그 철학자들이 자신들에게 제기했던 우주론적 및 신학적인 문제들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를 알면 상당히 흥미롭기 때문이다. 그 철학자들의 이론은 ‘이것이 오렌지임을 나는 어떻게 아는가?’나 ‘내가 지금 감지하고 있는 대상이 오렌지임을 나는 어떻게 아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지식론이 아니었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지식론은, ‘세상이 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나 ‘세상은 제신(諸神)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아는가?’ 혹은 ‘우리는 어떻게 제신(諸神)에 대하여 알 수 있을까?’와 같은 질문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지식론의 문제들을 우주에 관한 우리의 지식보다는 오렌지에 관한 우리의 지식과 연관시켜 연구해야 한다는, 내가 생각하기에 다소 멀리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에게서 기인하는, 널리 퍼진 믿음이 있다. 나는 이 믿음과 의견을 달리하여서, 여러분에게 내가 의견을 달리하는 이유 중 몇 가지를 전달하는 것이 나의 논문에 있는 주요 목표 중의 하나이다. 아무튼 우리의 서구 과학은 ㅡ 그리고 다른 과학은 없는 듯하다 ㅡ 오렌지에 대한 관찰을 수집하여 시작한 것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대담한 이론들로써 시작했다는 것을 때때로 기억하는 것이 좋다.
III
전통적인 경험주의적 인식론과 전통적인 과학사 서술은 양쪽 모두, 모든 과학은 관찰에서 시작하여 서서히 그리고 신중하게 이론으로 나아간다는 베이컨식(Baconian) 허구에 의하여 깊은 영향을 받는다. 사실들이 매우 다르다는 것은 초기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을 연구함으로부터 밝혀질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대담하고 매혹적인 관념들을 발견하는데, 그 관념들 중 몇 가지는 우리가 지닌 현대적 관점에 비추어 많은 다른 관념들이 틀린 반면, 현대의 결과들에 대한 이색적이면서도 심지어 충격적인 선례(先例)들이다; 그러나 그 관념들 대부분과 가장 훌륭한 관념들은 관찰과 관련이 없다. 지구의 형태와 위치에 관한 몇 가지 이론들을 사례로 들어보라. 탈레스(Thales)는, ‘지구는 물에 의하여 지탱되고 물 위를 배처럼 지구가 타고 있으며, 지진이 일어난다고 우리가 말할 때 지구는 물의 운동에 의하여 흔들리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우리에게 전해진다. 의심할 바 없이 탈레스(Thales)는 자신의 이론에 도달하기 전에 배의 요동뿐 아니라 지진을 관찰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의 요점은 지구의 지탱이나 부유, 그리고 또한 지구가 물 위에 떠있다는 추측에 의하여 지진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추측에서 (현대의 대륙이동설에 그렇게 특이하게 선례가 되는) 탈레스(Thales) 자신의 관찰에 어떤 근거도 있을 리가 없었다.
베이컨식(Baconian) 허구의 기능은, 관찰이 우리가 지닌 과학적 지식의 ‘참된 근원’임을 지적함에 의하여, 과학적 서술이 참인 이유를 설명하는 것임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된다. 모든 과학적 서술들이 가설이나 상상이나 추측이라는 것과, 이 추측들 대부분이 (베이컨[Bacon]의 추측을 포함하여) 거짓으로 판명된 것을 우리가 깨닫자마자, 베이컨식(Baconian) 허구는 적용 불가능하게 된다. 이유인즉 과학의 추측들이 ㅡ 여전히 수용되는 추측들뿐 아니라 거짓으로 판명된 추측들 또한 ㅡ 모두 관찰로부터 시작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탈레스(Thales)가 주장한 지구의 지탱과 부유에 관한 그리고 지진에 관한 아름다운 이론은, 어떤 의미에서도 관찰에 근거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적어도 경험적이거나 관찰적인 유추(類推)에 의하여 영감을 받았다. 그러나 심지어 이것도 탈레스의 훌륭한 제자인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er)에 의하여 제시된 이론에 대해서는 더 이상 참이 아니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지구 부유 이론은 여전히 고도로 직관적이지만 관찰성 유추들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사실상 그 이론은 반(反)-관찰적으로서 기술(記述)될 것이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이론에 따르면, ‘지구는... 아무 것에 의해서도 떠받쳐 있지 않고,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등거리로 떨어져 있다는 사실 때문에 정지된 상태로 있다. 지구의 형체는... 북(drum)의 형체와 같다... 지구의 다른 평면이 다른 편에 있는 반면, 우리는 지구의 평평한 한 평면에서 걸어 다닌다.’ 북(drum)은 물론 관찰성 유추(類推)이다. 그러나 지구가 공간에 자유롭게 떠있다는 관념과, 지구의 안정성에 대한 설명에는 관찰 가능한 사실들의 전체 분야에서 여하한 유추(類推)도 없다.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er)의 이 관념은 사상사 전체에서 가장 대담하고 가장 혁명적이며 가장 특이한 관념들 중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관념으로 인하여 아리스타코스(Aristarchus)와 코페르니쿠스(Copernicus)의 이론이 가능했다. 그러나 아낙시만드로스가 취한 단계는 아리스타코스와 코페르니쿠스가 취한 단계보다 훨씬 더 어렵고 대담했다. 지구를 공간의 중간에서 자유롭게 균형을 잡은 것으로서 상상하여, ‘지구는 등거리, 즉 균형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낙시만드로스를 부연 설명하는 것처럼) 어느 정도 심지어 뉴튼의 비물질적(immaterial)이고 비가시적인 중력이라는 관념의 선례가 된다.
IV
어떻게 아낙시만드로스는 이 탁월한 이론에 도달했을까? 틀림없이 관찰에 의해서는 아니고 추론에 의해서이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이론은 자신의 스승이자 친척인 밀레토스학파, 즉 이오니아학파의 창설자인 탈레스가 아낙시만드로스에 앞서서 해답을 제시했던 문제들 중 한 문제를 풀려는 시도이다. 그러므로 아낙시만드로스가 탈레스의 이론을 비판함에 의하여 자신의 이론에 도달했다고 나는 추측한다. 이 추측은, 아낙시만드로스가 내놓은 이론의 구조를 고찰함에 의하여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다음 노선들에 근거하여 탈레스의 이론에 (지구가 물 위에 떠있다는) 반대하여 논증했던 것 같다. 탈레스의 이론은 일관적으로 전개된다면 무한 소급(infinite regress)을 초래할 이론 유형의 표본이다. 지구가 물에 의하여 지탱된다는 ㅡ 지구가 대양(大洋: ocean: 그리스어로는 Okeαnos) 위에 떠있다는 ㅡ 가정에 의하여 우리가 지구의 안정된 위치를 설명한다면 우리는 유사한 가설에 의하여 바다의 안정된 위치를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것은 바다를 지탱하는 것을 찾는 것을 의미할 터이고, 그다음에 그 지탱하는 것을 다시 지탱하는 것을 찾는 것이 될 터이다. 이런 설명 방식은 충족되지 않는다: 우선, 우리가 정확하게 비슷한 문제를 만들어냄에 의하여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그런 지탱 체계에서 하층 지지대 하나를 확보하는 데 실패하면 전체 구조물의 붕괴가 틀림없이 발생한다는 덜 형식적이면서도 더 직관적인 이유 때문이다.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세상의 안정성이 지탱 체계에 의하여 확보될 수 없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안다. 대신 아낙시만드로스는 세상에 대한 내부적 즉, 구조적 균형의 도움을 받는데, 그 균형으로 인하여 붕괴가 선호되어 발생할 수 있는 방향이 없다는 것이 확실하게 된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차이점들이 없는 곳에는 변화가 있을 수 없다는 원리를 적용한다. 이런 방식으로 그는 모든 다른 것들로부터의 지구 등거리에 의하여 지구의 안정성을 설명한다.
이것이 아낙시만드로스의 논증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낙시만드로스의 논증에 의하여, 아마도 철저히 의식적으로가 아니고 완전히 일관적으로가 아닐지라도 절대 방향이라는 관념이 ㅡ ‘위로(upwards)’와 ‘아래로(downwards)’라는 절대적 의미 ㅡ 폐지됨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모든 경험들에 반대가 될 뿐 아니라 이해하기가 악명 높게 어렵기도 하다. 아낙시메네스(Anaximenes)는 그 논증을 무시했던 듯하고, 심지어 아낙시만드로스 자신도 그 논증을 철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 까닭은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의 등거리라는 관념으로 인하여 아낙시만드로스는 지구가 구(球: globe)의 형체를 띤다는 이론을 창안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신 아낙시만드로스는 지구가, 위아래 면이 납작한 북(drum)의 모양을 띠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다른 평면이 반대쪽에 있는 반면, 우리는 지구의 평면 중 한 평면 위에서 걸어 다닌다’라는 언급은 절대적인 윗면은 없지만 반대로 우리가 우연히 걸어 다니는 면은 우리가 아마도 윗면으로 지칭할 면이었다는 암시를 담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무엇 때문에 아낙시만드로스는 지구가 북(drum)보다는 구(球: globe)라는 이론에 도달하지 못했을까?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구의 표면이 대체로 평평하다고 그를 가르친 것은 관찰 경험이었다. 그리하여 아낙시만드로스가 지구의 형체에 대한 올바른 이론에 거의 도달했던 것은 탈레스의 이론을 추상적이고 비판적으로 토론한 사색적(思索的: speculative)이고 비판적인 논증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오류에 빠지게 된 것은 관찰 경험 때문이었다.
V
지구가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 등거리에 있다는 아낙시만드로스의 균형 이론에 명백한 반대의견이 있다. 우주의 불균형은 대양과 달의 존재로부터, 다른 면에서는 태양과 달의 균형을 잡을 것이 없는 반면 특히 태양과 달이 때때로 서로 멀리 떨어지지 않아서 지구의 같은 면에 있게 되는 사실로부터, 쉽게 알려질 수 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이 반대이론을 또 다른 과감한 이론으로 ㅡ 태양과 달 그리고 다른 천체들의 숨겨진 본성에 관한 그의 이론 ㅡ 대처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지구 주위를 선회하는 두 개의 거대한 마차바퀴의 테두리를 상상했는데 한 테두리는 지구 크기의 27배였고 다른 한 테두리는 지구 크기의 18배였다. 이 테두리 즉, 원형 관들(pipes) 각각은 불로 채워져 있는데, 테두리 각각에 불이 보일 수 있는 숨구멍이 있다. 이 숨구멍들을 우리는 각각 태양과 달이라고 부른다. 나머지 마차바퀴들은 보일 수 없는데, 아마도 마차바퀴가 어둡고 (혹은 흐릿하고)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항성들은 (그리고 아마도 행성들) 또한 태양과 달의 마차바퀴들보다 지구에 더 가까운 마차바퀴들 위에 있는 구멍들이다. 항성들의 마차바퀴들은 공동의 축(軸) (우리가 지금 지구의 축[軸]이라고 부르는) 위에서 회전하여 함께 그 마차바퀴들은 지구 둘레에서 천구(天球: sphere)를 형성하며, 그리하여 지구로부터의 등거리라는 상정이 (대략) 충족된다. 이것으로 인하여 아낙시만드로스는 또한 천구이론(theory of the spheres)의 창시자가 된다. (마차바퀴나 원에 대한 그 이론의 관련성에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체론[De Caelo], 289b10에서 290b10까지 참조.)
VI
아낙시만드로스의 이론들이 경험적이라기보다는 비판적이고 사색적이라는 데 전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진리에 대한 접근방식들로서 고찰되면 그의 비판적이고 추상적인 사색들에 의하여 관찰성 경험이나 유추(類推)보다 더 충분하게 그가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이것이 정확하게 아낙시만드로스가 과학자가 아닌 이유라고 베이컨(Bacon) 추종자는 답변할 것이다. 이것이 정확하게 우리가 초기 그리스 과학보다는 초기 그리스 철학에 관하여 말하는 이유라고 답변할 것이다. 철학은 사색적이다: 모든 사람이 이것을 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아는 바와 같이, 사색적 방법이 관찰성 방법에 의하여 대체될 때, 연역이 귀납에 의하여 대체될 때만 과학이 시작된다고 답변할 것이다.
이 답변은 물론, 정의(定義: definition)에 의하여 관찰을 기원으로 하거나 소위 ‘귀납적 과정’을 기원으로 하여 이론들이 과학적이 된다는 (또는 되지 않는다는) 논지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런 정의(定義: definition)로 분류될 터인 물리 이론은 없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나는 왜 기원의 문제가 이런 관계에서 중요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이론에 관하여 중요한 것은 이론의 설명력이고, 그 이론이 비판과 시험들을 견디어내는지 이다. 이론의 기원 문제인 그 이론이 어떻게 이룩되었는지의 ㅡ 몇몇 사람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귀납적 과정’에 의해서인지 또는 직관적 작용에 의해서인지 ㅡ 문제는 특히 이론 창안자의 전기 작가에게는 매우 흥미로울 것이지만, 그 이론의 과학적 위상이나 특징과는 관계가 없다.
VII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 대하여, 물리학에서의 그들의 이론들과 이후 발전 사이에는 가장 완벽한 듯한 사고(思考)의 연속성이 있다고 나는 주장한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이 철학자로 지칭되든 과학자 이전 사람들로 지칭되든, 혹은 과학자들로 지칭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아낙시만드로스의 이론으로 인하여 아리스타코스(Aristarchus), 코페르니쿠스, 케플러(Kepler) 그리고 갈릴레오의 이론들의 길이 열렸다고 나는 정말로 주장한다. 아낙시만드로스가 단순히 이 후대의 사상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아니다; ‘영향(influence)’은 매우 피상적인 범주이다. 나는 그것을 이와 같이 표현하고 싶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업적은 예술작품처럼, 본질적으로 귀중하다. 게다가 그의 업적으로 인하여 다른 업적들이 가능해졌는데, 그 다른 업적들 중에는 방금 언급된 위대한 과학자들의 업적들이 있다.
그러나 아낙시만드로스의 이론들은 거짓이어서 비(非)-과학적이지 않은가? 아낙시만드로스의 이론들은 거짓임을 나는 인정한다; 그러나 지금 거짓으로 믿어질지라도, 현대 과학이 최근까지 수용했고 그 과학적 특징을 누구도 부정하려고 꿈꾸지 않았던, 무수한 실험에 ‘근거한’, 많은 이론들도 거짓이다. (한 가지 사례는 수소의 전형적인 화학적 속성들이 오직 한 종류의 원자에만 ㅡ 모든 원자 중에서 가장 가벼운 원자 ㅡ 속한다는 이론이다.) 자신들이 기술(記述)할 때 더 이상 수용되지 않는 견해를 비과학적으로서 (심지어 미신적으로서) 간주하는 경향을 지녔던 과학역사가들이 있었지만, 이것은 지지를 받을 수없는 태도이다. 거짓 이론은 참인 이론만큼 위대한 업적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많은 거짓 이론들이, 여전히 수용되는 몇 가지 덜 흥미로운 이론들보다 우리가 진리를 탐구하는 데 더 도움이 되었다. 이유인즉 거짓 이론들이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짓 이론들에 의하여 예를 들어 다소 근본적인 수정안들이 제시되어, 비판이 자극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지구가 물 위에 떠있다는 탈레스의 이론은 수정된 형태로 아낙시메네스에게서 다시 나타나고, 더 최근에는 베게너(Wegener)의 대륙이동설의 형태로 다시 나타났다. 탈레스의 이론에 의하여 어떻게 아낙시만드로스가 비판을 자극받았는지는 이미 밝혀졌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이론은 유사하게, 수정된 이론을 ㅡ 우주의 중심에서 자유롭게 균형을 잡고 천체들이 올라탄 천구(天球)에 둘러싸인, 구(球)인 지구라는 이론 ㅡ 제시했다. 그리고 비판을 자극함에 의하여 아낙시만드로스의 이론은 달이 빛을 반사함에 의하여 빛난다는 이론을 또한 낳았다; 피타고라스의 중심 불(central fire) 이론을 낳았고; 궁극적으로 아리스타코스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 세계-체계를 낳았다.
VIII
밀레토스 학파는, 세상을 천막으로 생각했던 그들의 동방 선배들처럼, 세상을 모든 생명체의 가정인 일종의 집으로서 ㅡ 우리의 가정 ㅡ 상상했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하여 세상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물을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 세상의 구조를 조사할 실제적인 필요가 있었다. 세상의 구조, 세상의 기초 설계, 세상의 건축 재료에 대한 의문들이 밀레토스 학파의 우주론에 있던 세 가지 주요 문제를 구성한다. 세상의 기원인 우주 기원론의 문제에 대한 사색적 관심이 또한 있다. 밀레토스 학파의 우주론적인 관심은, 강력한 우주 기원론적 전통 및 어떻게 사물이 만들어졌는지를 기술(記述)함에 의하여 우주 기원론적 형태로 우주론적 설명을 제시하는 거의 거역할 수 없는 경향을 우리가 특히 고찰한다면, 내가 보기에 밀레토스 학파가 지녔던 우주 기원론적 관심을 크게 능가한다. 우주론적 관심은, 이 우주 기원론적 치장이 부분적으로라도 없다면 우주론의 제시에서 우주 기원론적 관심과 비교되어, 틀림없이 매우 강력하다.
처음으로 우주의 건축을 ㅡ 우주의 구조, 기초 설계 그리고 건축 재료 ㅡ 토론했던 사람은 탈레스였다고 나는 믿는다. 아낙시만드로스에게서 우리는 세 가지 문제들 모두에 대한 답변을 발견한다. 나는 구조 문제에 대한 그의 답변을 간단하게 언급했다. 세상의 기초 설계라는 문제에 대하여, 그가 세상에 대한 최초의 지도를 그렸다는 전설에 의하여 지적되는 바와 같이, 그는 이것 또한 연구해서 상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물론 그는 세상의 건축 재료인 ‘비한정자(αperion)’에 ㅡ ‘끝없는(endless)’이나 ‘한계가 없는(boundless)’ 또는 ‘한계가 정해지지 않은(unbounded)’이나 ‘형태가 없는(unformed)’ ㅡ 대한 이론을 가지고 있었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세상에서 모든 종류의 변화들이 발생하고 있었다. 공기와 숨구멍들이 필요한 불(fire)이 있었고, 이 숨구멍들은 간혹 막혀서 (‘obstructed’) 불이 질식했다: 이것이 일식과 월식에 대한 그의 이론이었다. 바람이 있었는데, 바람은 변하는 날씨의 원인이었다. 그리고 수증기들이 있었는데 물과 공기가 말라버리는 것으로부터 생겨나고, 물과 공기는 바람의 원인이자 태양의 ‘회전들’과 (하지와 동지) 달의 ‘회전들’의 원인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곧 뒤따라올 예정인 것에 대한 최초의 암시를 경험한다: 변화라는 일반적인 문제에 대한 최초의 암시로, 그 일반적인 문제는 그리스 우주론의 핵심적 문제가 되었고, 궁극적으로 레우키포스(Leucippus) 및 데모크리토스(Democritus)와 더불어 거의 20세기 초엽까지 현대과학에 의하여 수용된 변화에 관한 일반론을 낳았다. (그 일반론은 1905년 이전에 주목받지 못했던 역사적 사건으로, 맥스웰[Maxwell]이 에테르[ether] 모형들을 붕괴시킴과 동시에 겨우 포기되었다.)
이 변화에 관한 일반적인 문제는 철학적인 문제이다; 정말로 파메니데스(Parmenides)와 제논(Zeno)에 의하여 그 문제는 논리적 문제로 거의 변한다. 어떻게 변화가 가능한가 ㅡ 다시 말해서, 논리적으로 가능한가? 사물은, 자체의 동질성을 잃지 않고, 어떻게 변할 수 있는가? 그 사물이 동일한 것으로 남는다면, 사물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물이 자체의 동질성을 잃어버린다면, 변한 것은 더 이상 그 사물이 아니다.
IX
변화 문제의 발전이라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내가 보기에 원문 비판이라는 하찮은 세부사항이 쌓인 더미 아래서 완전히 매몰되는 위험에 처한다. 그 이야기는 물론, 하나의 짧은 논문에서 전부 언급될 수 없으며 그 논문의 많은 부분에서는 더욱 언급될 수 없다. 그러나 매우 간단한 개요로서, 그 이야기는 이러하다.
아낙시만드로스에게는 우리 자신들의 세상인 우리 자신의 우주적 건축물이 세상들의 한 가지 무한세계에 ㅡ 시공에서 한계가 없는 무한세계 ㅡ 불과했다. 세상들의 이 체제는 영원했고, 움직임도 그러했다. 그리하여 움직임을 설명할 필요도 없었고, 변화에 관한 일반적인 이론을 (우리가 헤라클레이토스에게서 변화에 관한 일반적인 문제를 발견하여 일반적인 이론을 제시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아래 참조) 제시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우리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잘 알려진 변화들을 설명할 필요가 있었다. 가장 명백한 변화들은 ㅡ 파종에서 추수까지 낮과 밤의 변화, 바람과 날씨의 변화, 계절의 변화 그리고 식물과 동물 및 사람의 성장 변화 ㅡ 모두 온도의 대립과, 냉온 사이의 대립 및 건습(乾濕)의 대립과 연결되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태양에 의하여 증발되는 습기로부터 존재하게 되었다’라는 말을 우리가 듣는다; 그래서 냉온 또한 우리 자신의 세상 건축물을 창조하는 데 도움을 준다. 냉온은 반대로 거의 모든 다른 변화들의 원인들로서 상상되던 수증기와 바람의 원인이기도 했다.
아낙시만드로스의 제자이자 후계자인 아낙시메네스(Anaximenes)는 이 관념들을 매우 자세하게 전개했다. 아낙시만드로스처럼 그는 냉온과 건습(乾濕)의 대립에 관심을 두어서, 그는 농축과 희박화(稀薄化: rarefaction)의 이론에 의하여 이 반대되는 것들 사이의 전이(轉移)를 설명했다. 아낙시만드로스처럼 그는 영원한 움직임과 바람의 작용을 신뢰했다; 그리고 그가 아낙시만드로스로부터 벗어났던 두 가지 요점 중 한 요점은, 완전히 한계가 없고 형태가 없던 것(비한정자: 아페리온: the αperion)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직임 속에 있을 수 있었다는 관념을 비판함에 의하여 달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그는 비한정자 아페리온(the αperion)을 공기에 ㅡ 한계가 없고 형태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증기에 대한 아낙시만드로스의 옛 이론에 따라서, 움직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움직임과 변화의 주요 원인이기도 한 ㅡ 의하여 대체했다. 관념들의 유사한 통합이, ‘태양은 흙으로 구성되어 있고, 태양이 움직이는 속도 때문에 태양이 몹시 뜨거워진다’는 아낙시메네스의 이론에 의하여 이룩되었다. 제한되지 않은 아페리온이라는 더 추상적인 이론이 공기라는 덜 추상적이고 더 상식적인 이론에 의하여 대체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이론 대체와 일치한다: 지구의 안정성에 대한 아낙시만드로스의 대담한 이론을, 지구의 ‘평평함이 지구 안정성의 원인이다; 이유인즉 평평함이... 아래에 있는 공기를 뚜껑처럼 덮기 때문이다’라는 더 상식적인 관념에 의하여 대체하는 것. 그리하여 주전자 뚜껑이 증기 위에서 떠있을 것처럼, 혹은 배가 물 위에서 떠있을 것처럼 지구는 공기 위에 떠있다; 탈레스가 지녔던 문제와 탈레스가 내놓은 답변 모두가 다시 시작되고, 아낙시만드로스의 획기적인 논증은 이해되지 않는다. 아낙시메네스는 절충주의자이며 체계화하는 사람이고 경험주의자이며 상식의 사람이다. 세 명의 훌륭한 밀레토스인들 중에서 그는 혁명적인 새로운 관념들을 제일 적게 생산했다; 그의 철학적인 정신은 최하위였다.
세 명의 밀레토스인들은 모두 우리의 세상을 우리의 집으로 간주했다. 이 집 안에는 운동이 있었고 변화가 있었으며, 냉온 및 불과 습기가 있었다. 난로에는 불이 있었고, 난로 위에는 물이 담긴 주전자가 있었다. 그 집은 바람에 노출되어, 틀림없이 다소 공기가 통했다; 그러나 그 집은 가정이어서, 안전과 안정 같은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에게 그 집은 불타고 있었다.
헤라클레이토스의 세상에는 안정성이 남아 있지 않았다. ‘만물은 무상해서, 아무것도 정지해 있지 않다.’ 만물은 무상하다, 세상이 만들어진 건축 자재들인 심지어 들보와 목재도 무상하다: 흙과 바위, 혹은 청동가마솥 ㅡ 그것들 모두가 무상하다. 들보는 썩고 있고, 흙은 물에 휩쓸려가고 바람에 날려가며, 바로 바위는 쪼개져서 약해지고, 청동가마솥은 푸른 녹으로 변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표현하는 바와 같이, ‘만물은 항상 움직인다, 이것이 우리의 감각들을 피한다... 할지라도’. 무지하여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연료가 타는 그릇은 (딜스-크란츠[DK], A4와 비교하라) 변하지 않는 반면 오직 연료만 탄다고 믿는다; 그 까닭은 우리가 그릇이 타는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릇은 불탄다; 그릇은 담고 있는 불에 의해서 먹힌다. 우리는 자식들이 자라서 변하고 늙는 것을 보지 못하지만, 자식들은 자라서 변하고 늙는다.
그리하여 분명한 형체를 유지하는 물체는 없다. 사물들은 실제로 사물들이 아니고, 과정이며 무상하다. 사물들에게 확정된 형체가 있을지라도, 과정이고 물질의 흐름이며 강(江)인 화염과 같이, 불을 닮았다. 만물은 화염이다: 불은 바로 우리의 세상의 건축 재료이다; 그래서 만물의 피상적인 안정성은 우리 세상 속의 과정들이 복속되어 있는 법칙들 즉, 척도들에 기인할 따름이다.
이것이 헤라클레이토스의 이야기라고 나는 믿는다: 그것은 헤라클레이토스의 ‘취지(message)’이자 ‘진실한 말(word: the logos)’로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내 말이 아니라 참된 설명을 들으면서, 만물이 하나임을 인정하는 것이 현명하다’: 만물은 ‘척도들로 불타오르고 척도들로 사그라지는 영원한 불’이다.
여기서 다시 서술된 헤라클레이토스 철학에 대한 전통적 해석이 현재 일반적으로 수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비판자들은 그 해석을 대신해서 아무것도 ㅡ 다시 말해서 철학적 흥미로운 아무것도 ㅡ 내놓지 못한다. 나는 다음 절에서 그 비판자들의 새로운 해석을 간단하게 토론하겠다. 여기서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이, 사고(思考)와 단어와 논증과 이성의 도움을 받음에 의하여, 그리고 사물들이 변함을 우리가 안다 할지라도 사물들의 변화가 우리의 감각을 피해가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을 지적함에 의하여, 두 가지 문제들을 ㅡ 변화의 문제와 지식의 문제 ㅡ 초래했다는 것을 나는 강조하고 싶을 따름이다. 이 문제들은 변화에 대한 헤라클레이토스 자신의 설명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만큼 더 절박했다. 그러나 이것은, 헤라클레이토스가 변화라는 바로 그 관념에 포함된 난제들을 자신의 선배들보다 더 분명하게 알았다는 사실에 기인한다고 나는 믿는다.
이유인즉 모든 변화가 어떤 것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변화는 변하는 어떤 것을 전제한다. 그리고 변화는, 변하는 동안에 이 어떤 것이 틀림없이 똑같은 것으로 남아있다고 전제한다. 녹색 나뭇잎이 갈색으로 변할 때 우리는 녹색 나뭇잎이 변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녹색 나뭇잎을 갈색 나뭇잎으로 대체할 때 우리는 녹색 나뭇잎이 변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이 변하는 동안에 자체의 동질성을 유지한다는 것이 변화의 관념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그 물체는 틀림없이 다른 것이 된다: 그 물체는 녹색이었다가 갈색이 된다; 그 물체는 축축했다가 건조해진다; 그 물체는 뜨거웠다가 차갑게 된다.
그리하여 모든 변화는 한 물체가, 어느 정도 반대의 특성을 지닌 어떤 것으로 전이(轉移: transition)하는 것이다 (아낙시만드로스와 아낙시메네스가 안 바와 같이). 그러나 변하는 동안에 변하는 물체는 자체와 동일한 상태로 남아있어야 한다.
이것이 변화의 문제이다. 그 문제로 인하여 헤라클레이토스는 실재와 현상을 (부분적으로 파메니데스의 선례가 되면서) 구분하는 이론에 도달했다. ‘사물의 본성은 자신을 숨기기를 매우 좋아한다. 피상적이지 않은 조화는 피상적인 조화보다 더 강하다.’ 사물들은 피상적으로는 (그리고 우리들에게) 반대되는 것들이지만, 실제로는 (그리고 신[God]에게는) 동일하다.
‘삶과 죽음, 깨어있는 것과 잠든 것, 젊음과 늙음, 이 모든 것들은 동일하다... 이유인즉 한 가지를 돌려놓으면 다른 것이고 다른 것을 돌려놓으면 처음 것이기 때문이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동일한 길이다.... 선과 악은 동일하다.... 신(God)에게는 만물이 아름답고 선하고 정의롭지만, 사람들이 어떤 것들은 불의하고, 다른 것들은 정의롭다고 상상한다.... 참된 지식을 소유하는 것이 신의 본성에는 속할지라도 인간의 본성이나 특징에 있지 않다.’
그리하여 실제로 (그리고 신[God]에게) 반대되는 것들은 동일한 것들이다; 반대되는 것들이 동일하지 않게 보이는 것은 오직 인간에게만 이다. 그래서 만물은 하나다 ㅡ 만물은 모두 세상의 과정인 영원한 불의 일부이다.
변화에 관한 이 이론은 ‘참된 단어’의, 로고스(logos)의, 이성의 도움을 받는다; 헤라클레이토스에게 변화보다 더 실재적인(real) 것은 없다. 그러나 세상의 하나임(oneness)에 관한, 반대되는 것들의 동일성에 관한, 그리고 현상과 실재에 관한 그의 교설로 인하여 변화의 실재에 관한 그의 교설이 위협을 받는다.
이유인즉 변화는 반대되는 것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의 전이(轉移)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실제로 반대되는 것들이 동일하다면, 그것들이 다르게 보일지라도, 변화 자체가 아마도 피상적일 뿐이다. 실제로, 그리고 신(God)에게 만물이 하나라면, 정말로 변화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이 결과는, 하나인 신(God)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던 유일신론자인 크세노파네스(Xenophanes)의 제자인 (버넷[Burnet]과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죄송하지만 내가 동의할 수 없는) 파메니데스(Parmenides)에 의하여 도출되었다: ‘신(God)은 움직이지 않고, 동일한 장소에 항상 머문다. 신(God)이 여러 시간에 여러 곳으로 틀림없이 다닌다는 것은 적합하지(fitting) 않다... 신(God)은, 육체나 사고(思考)에서 인간과 조금도 비슷하지 않다.’
크세노파네스의 제자 파메니데스는 실재 세상은 하나이어서 그 세상은 움직이지 않고, 항상 동일한 장소에 있다고 가르쳤다. 실재 세상이 여러 시간에 여러 곳을 틀림없이 간다고 하는 것은 적합하지(fitting) 않았다. 그 세상은 인간에게 보이는 것과 전혀 유사하지 않았다. 그 세상은 하나였고 분리되지 않은 전체였고 부분이 없었으며 동질적이었고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임은 그런 세상에서 불가능했다. 실제로 변화는 없었다. 변화의 세상이란 망상이었다.
파메니데스는 불변하는 실재라는 이 이론을 논리적 증명 같은 것에 근거시켰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단일 전제로부터 진행되는 것으로 제시될 수 있는 증명.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무(無: nothing)는 ㅡ 존재하지 않는 것 ㅡ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도출할 수 있다; 파메니데스가 공허(void)은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하기 위하여 해석한 결과이다. 그리하여 세상은 충만하다: 세상은, 부분들로의 분할이 공허(void)에 의한 부분들의 분리 때문일 수 있을 따름이기 때문에, 분할되지 않은 한 개의 덩어리로 구성된다. (이것이 여신[女神]이 파메니데스에게 계시한 ‘완벽한 진리’이다.) 이 충만한 세상에는 움직임을 위한 공간이 없다.
오직 반대되는 것들의 실재에 대한 기만적 믿음으로 ㅡ 있는 것이 존재한다 뿐 아니라 없는 것 또한 존재한다는 믿음 ㅡ 인하여 변화의 세상이라는 망상이 생긴다.
파메니데스의 이론은 세상에 대한 최초의 가설-연역적 이론으로서 기술(記述)될 것이다. 원자론자들은 그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들은 움직임이 정말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 이론이 경험에 의하여 논박되었다고 주장했다. 파메니데스가 내놓은 논증의 형식적 유효성을 수용하면서 원자론자들은 파메니데스의 결론에 있는 거짓으로부터 파메니데스의 전제에 있는 거짓을 추론했다. 그러나 이것은 무(無: nothing)가 ㅡ 공허 즉, 텅 빈 공간 ㅡ 존재함을 의미했다. 결과적으로 ‘존재하는 것’에는 ㅡ 충만한 것, 어떤 공간을 채우는 것 ㅡ 부분들이 없다고 전제할 필요가 당시 없었다; 이유인즉 그 부분들이 공허에 의하여 이제 분리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많은 부분들이 있고, 각 부분은 ‘충만’하다: 세상에는 충만한 입자들이 있는데, 각 입자는 ‘충만’하여 분리되지 않으며 분리될 수 없고 불변하기 때문에 빈 공간에 의하여 분리되어 빈 공간에서 움직일 수 있다. 그리하여 존재하는 것은 원자들과 공허이다. 이런 방식으로 원자론자들은 변화 이론에 ㅡ 1900년까지 과학적 사고(思考)를 지배했던 이론 ㅡ 다다랐다. 그것은 모든 변화, 그리고 특히 모든 질적 변화는 물질의 불변하는 조각들의 공간적 움직임에 의하여 ㅡ 공허에서 움직이는 원자들에 의하여 ㅡ 설명되어야 한다는 이론이다.
우리의 우주론과 변화 이론에서 위대한 다음 발걸음은 맥스웰(Maxwell)이, 패러데이(Faraday)의 어떤 관념들을 발전시켜 이 이론을 변화하는 장(場)의 강도(a theory of changing intensities of fields)라는 이론에 의하여 대체했을 때 이룩되었다.
ㅡ 칼 포퍼, “추측과 논박, 과학적 지식의 성장”, 1989년, 136-146쪽 ㅡ
The questions which the Presocratics tried to answer were primarily cosmological questions, but there were also questions of the theory of knowledge. It is my belief that philosophy must return to cosmology and to a simple theory of knowledge. There is at least one philosophical problem in which all thinking men are interested: the problem of understanding the world in which we live; and thus ourselves (who are part of that world) and our knowledge of it. All science is cosmology, I believe, and for me the interest of philosophy, no less than of science, lies solely in its bold attempt to add to our knowledge of the world, and to the theory of our knowledge of the world. I am interested in Wittgenstein, for example, not because of his linguistic philosophy, but because his Tractatus was a cosmological treatise (although a crude one), and because his theory of knowledge was closely linked with his cosmology.
For me, both philosophy and science lose all their attraction when they give up that pursuit - when they become specialisms and cease to see, and to wonder at, the riddles of our world. Specialization may be a great temptation for the scientist. For the philosopher it is the mortal sin.
The Presidential Address, delivered before the meeting of the Aristotelian Society on 13th October 1958; first published in the Proceedings of the Aristotelian Society, N.S. 59, 1958-9. The footnotes (and the Appendix) have been added in the present reprint of the address.
II
In this paper I speak as an amateur, as a lover of the beautiful story of the Presocratics. I am not a specialist or an expert: I am completely out of my depth when an expert begins to argue which words or phrases Heraclitus might, and which he could not possibly, have used. Yet when some expert replaces a beautiful story, based on the oldest texts we possess, by one which - to me at any rate - no longer makes any sense, then I feel that even an amateur may stand up and defend an old tradition. Thus I will at least look into the expert's arguments, and examine their consistency. This seems a harmless occupation to indulge in; and if an expert or anybody else should take the trouble to refute my criticism I shall be pleased and honoured.
I shall be concerned with the cosmological theories of the Presocratics, but only to the extent to which they bear upon the development of the problem of change, as I call it, and only to the extent to which they are needed for understanding the approach of the Presocratic philosophers to the problem of knowledge - their practical as well as their theoretical approach. For it is of considerable interest to see how their practice as well as their theory of knowledge is connected with the cosmological and theological questions which they posed to themselves. Theirs was not a theory of knowledge that began with the question, 'How do I know that this is an orange?' or, 'How do I know that the object that I am now perceiving is an orange?' Their theory of knowledge started from problems such as, 'How do we know that the world is made of water?' or, 'How do we know that the world is full of gods?' or, 'How can we know anything about the gods?'
There is a widespread belief, somewhat remotely due, I think, to the influence of Francis Bacon, that one should study the problems of the theory of knowledge in connection with our knowledge of an orange rather than our knowledge of the cosmos. I dissent from this belief, and it is one of the main purposes of my paper to convey to you some of my reasons for dissenting. At any rate it is good to remember from time to time that our Western science - and there seems to be no other - did not start with collecting observations of oranges, but with bold theories about the world.
III
Traditional empiricist epistemology and the traditional historiography of science are both deeply influenced by the Baconian myth that all science starts from observation and then slowly and cautiously proceeds to theories. That the facts are very different can be learned from studying the early Presocratics. Here we find bold and fascinating ideas, some of which are strange and even staggering anticipations of modern results, while many others are wide of the mark, from our modern point of view; but most of them, and the best of them, have nothing to do with observation. Take for example some of the theories about the shape and position of the earth. Thales said,
I am glad to be able to report that Mr G. S. Kirk had indeed replied to my address; see below, notes 4 and 5, and the Appendix to this paper.
we are told, 'that the earth is supported by water on which it rides like a ship, and when we say that there is an earthquake, then the earth is being shaken by the movement of water'. No doubt Thales had observed earthquakes as well as the rolling of a ship before he arrived at his theory. But the point of his theory was to explain the support or suspension of the earth, and also earthquakes, by the conjecture that the earth floats on water; and for this conjecture (which so strangely anticipates the modern theory of continental drift) he could have had no basis in his observations.
We must not forget that the function of the Baconian myth is to explain why scientific statement are true, by pointing out that observation is the 'true source' of our scientific knowledge. Once we realize that all scientific statements are hypotheses, or guesses, or conjectures, and that the vast majority of these conjectures (including Bacon's own) have turned out to be false, the Baconian myth becomes irrelevant. For it is pointless to argue that the conjectures of science - those which have proved to be false as well as those which are still accepted - all start from observation.
However this may be, Thales' beautiful theory of the support or suspension of the earth and of earthquakes, though in no sense based upon observation, is at least inspired by an empirical or observational analogy. In fact it may be described as counter-observational. According to Anaximander's theory, 'The earth... is held up by nothing, but remains stationary owing to the fact that it is equally distant from all other things. Its shape is... like that of drum... We walk on one of its flat surfaces, while the other is on the opposite side.' The drum, of course, is an observational analogy. But the idea of the earth's free suspension in space, and the explanation of its stability, have no analogy whatever in the whole field of observable facts.
In my opinion this idea of Anaximander's is one of the boldest, most revolutionary, and portentous ideas in the whole history of human thought. It made possible the theories of Aristarchus and Copernicus. But the step taken by Anaximander was even more difficult and audacious than the one taken by Aristarchus and Copernicus. To envisage the earth as freely poised in mid-space, and to say 'that it remains motionless because of its equidistance or equilibrium' (as Aristotle paraphrases Anaximander), is to anticipate to some extent even Newton's idea of immaterial and invisible gravitational forces.
Aristotle himself understood Anaximander in this way; for he caricatures Anaximander's 'ingenious but untrue' theory by comparing the situation of its earth to that of a man who, being equally hungry and thirsty yet equidistant from food and drink, is unable to move. (De Caelo, 295b32. The idea has become known by the name 'Buridan's ass'.) Clearly Aristotle conceives this man as being held in equilibrium by immaterial and invisible attractive forces similar to Newtonian forces; and it is interesting that this 'animistic' or 'occult' character of his forces was deeply (though mistakenly) felt by Newton himself, and by his opponents, such as Berkeley, to be a blot on his theory.
IV
How did Anaximander arrive at this remarkable theory? Certainly not by observation but by reasoning. His theory is an attempt to solve one of the problems to which his teacher and kinsman Thales, the founder of the Milesian or Ionian School, had offered a solution before him. I therefore conjecture that Anaximander arrived at his theory by criticizing Thales' theory. This conjecture can be supported, I believe, by a consideration of the structure of Anaximander's theory.
Anaximander is likely to have argued against Thales' theory (according to which the earth was floating on water) on the following lines. Thales' theory is a specimen of a type of theory which if consistently developed would lead to an infinite regress. If we explain the stable position of the earth by the assumption that it is supported by water - that it is floating on the ocean (Okeanos) - should we not have to explain the stable position of the ocean by an analogous hypothesis? But this would mean looking for a support for the ocean, and then for a support for this support. This method of explanation is unsatisfactory: first, because we solve our problem by creating an exactly analogous one; and also for the less formal and more intuitive reason that in any such system of supports or drops failure to secure any one of the lower props must lead to the collapse of the whole edifice.
From this we see intuitively that the stability of the world cannot be secured by a system of supports or props. Instead Anaximander appeals to the internal or structural symmetry of the world, which ensures that there is no preferred direction in which a collapse can take place. He applies the principle that where there are no differences there can not be change. In this way he explains the stability of the earth by the equality of its distances from all other things.
This, it seems, was Anaximander's argument. It is important to realize that it abolishes, even though not quite consciously perhaps, and not quite consistently, the idea of an absolute direction - the absolute sense of 'upwards' and 'downwards'. This is not only contrary to all experiences but notoriously difficult to grasp. Anaximenes ignored it, it seems, and even Anaximander himself did not grasp it completely. For the idea of an equal distance from all other things should have led him to the theory that the earth has the shape of a globe. Instead he believed that it had the shape of a drum, with an upper and a lower flat surface. Yet it looks as if the remark, 'We walk on one of its flat surfaces, while the other is on the opposite side', contained a hint that there was no absolute upper surface, but that on the contrary the surface on which we happened to walk was the one we might call the upper.
What prevented Anaximander from arriving at the theory that the earth was a globe rather than a drum? There can be little doubt: it was observational experience which taught him that the surface of the earth was, by and large, flat. Thus it was a speculative and critical argument, the abstract critical discussion of Thales' theory, which almost led him to the true theory of the shape of the earth; and it was observational experience which led him astray.
V
There is an obvious objection to Anaximander's theory of symmetry, according to which the earth is equally distant from all other things, The asymmetry of the universe can be easily seen from the existence of sun and moon, and especially from the fact that sun and moon are sometimes not far distant from each other, so that they are on the same side of the earth, while there is nothing on the other side to balance them. It appears that Anaximander met this objection by another bold theory - his theory of the hidden nature of the sun, the moon, and the other heavenly bodies.
He envisages the rims of two huge chariot wheels rotating round the earth, one 27 times the size of the earth, the other 18 times its size. Each of these rims or circular pipes is filled with fire, and each has a breathing-hole through which the fire is visible. These holes we call the sun and the moon respectively. The rest of the wheel is invisible, presumably because it is dark (or misty) and far away. The fixed stars (and presumably the planets) are also holes on wheels which are nearer to the earth than the wheels of the sun and the moon. The wheels of the fixed stars rotate on a common axis (which we now call the axis of the earth) and together they form a sphere round the earth, so the postulate of equal distance from the earth is (roughly) satisfied. This makes Anaximander also a founder of the theory of the spheres. (For its relation to the wheels or circles see Aristotle, De Caelo, 289b10 to 290b10.)
VI
There can be no doubt whatever that Anaximander's theories are critical and speculative rather than empirical: and considered as approaches to truth his critical and abstract speculations served him better than observational experience or analogy.
But, a follower of Bacon may reply, this is precisely why Anaximander was not a scientist. This is precisely why we speak of early Greek philosophy rather than of early Greek science. Philosophy is speculative: everybody knows this. And as everybody knows, science begins only when the speculative method is replaced by the observational method, and when deduction is replaced by induction.
This reply, of course, amounts to the thesis that, by definition, theories are (or are not) scientific according to their origin in observation, or in so-called 'inductive procedures'. Yet I believe that few, if any, physical theories would fall under this definition. And I do not see why the question of origin should be important in this connection. What is important about a theory is its explanatory power, and whether it stands up to criticism and to tests. The question of its origin, of how it is arrived at - whether by an 'inductive procedure', as some say, or by an act of intuition - may be extremely interesting, especially for the biographer of the man who invented the theory, but it has little to do with its scientific status or character.
VII
As to the Presocratics, I assert that there is the most perfect possible continuity of thought between their theories and the later developments in physics. Whether they are called philosophers, or pre-scientists, or scientists, matters very little, I think. But I do assert that Anaximander's theory cleared the way for the theories of Aristarchus, Copernicus, Kepler, and Galileo. It is not that he merely 'influenced' these later thinkers; 'influence' is a very superficial category. I would rather put it like this: Anaximander's achievement is valuable in itself, like a work of art. Besides, his achievement made other achievements possible, among them those of the great scientists mentioned.
But are not Anaximander's theories false, and therefore non-scientific? They are false, I admit; but so are many theories, 'based' upon countless experiments, which modern science accepted until recently, and whose scientific character nobody would dream of denying, even though they are now believed to be false. (An example is the theory that the typical chemical properties of hydrogen belong only to one kind of atom - the lightest of all atoms.) There were historians of science who tended to regard as unscientific (or even as superstitious) any view no longer accepted at the time they were writing, but this is an untenable attitude. A false theory may be as great an achievement as a true one. And many false theories have been more helpful in our search for truth than some less interesting theories which are still accepted. For false theories can be helpful in many ways; they may for example suggest some more or less radical modifications, and they may stimulate criticism. Thus Thales' theory that the earth floats on water reappeared in a modified form in Anaximenes, and in more recent times in the form of Wegener's theory of continental drift. How Thales' theory stimulated Anaximander's criticism has been shown already.
Anaximander's theory, similarly, suggested a modified theory - the theory of an earth globe, freely poised in the centre of the universe, and surrounded by spheres on which heavenly bodies were mounted. And by stimulating criticism it also led to the theory that the moon shines by reflecting light; to the Pythagorean theory of a central fire; and ultimately to the heliocentric world-system of Aristarchus and Copernicus.
VIII
I believe that the Milesians, like their oriental predecessors who took the world for a tent, envisaged the world as a kind of house, the home of all creatures - our home. Thus there was no need to ask what it was for. But there was a real need to inquire into its architecture. The questions of its structure, its ground-plan, and its building material, constitute the three main problems of Milesian cosmology. There is also a speculative interest in its origin, the question of cosmogony. It seems to me that the cosmological interest of the Milesians far exceeded their cosmogonical interest, especially if we consider the strong cosmogonical tradition, and the almost irresistible tendency to describe a thing by describing how it has been made, and thus to present a cosmological account in a cosmogonical form. The cosmological interest must be very strong, as compared with the cosmogonical one, if the presentation of a cosmological theory is even partially free from these cosmogonical trappings.
I believe that it was Thales who first discussed the architecture of the cosmos - its structure, ground-plan, and building material. In Anaximander we find answers to all three questions. I have briefly mentioned his answer to the question of structure. As to the question of the ground-plan of the world, he studied and expounded this too, as indicated by the tradition that he drew the first map of the world. And of course he had a theory about its building material - the 'endless' or 'boundless' or 'unbounded' or 'unformed' - the 'αperion'.
In Anaximander's world all kinds of changes were going on. There was a fire which needed air and breathing-holes, and these were at times blocked up ('obstructed'), so that the fire was smothered: this was his theory of eclipses, and of the phases of the moon. There were winds, which were responsible for the changing weather. And there were the vapours, resulting from the drying up of water and air, which were the cause of the winds and of the 'turnings' of the sun (the solstices) and of the moon.
We have here the first hint of what was soon to come: of the general problem of change, which became the central problem of Greek cosmology, and which ultimately led, with Leucippus and Democritus, to a general theory of change that was accepted by modern science almost up to the beginning of the twentieth century. (It was given up only with the breakdown of Maxwell's models of the ether, an historic event that was little noticed before 1905.)
This general problem of change is a philosophical problem; indeed in the hands of Parmenides and Zeno it almost turns into a logical one. How is change possible - logically possible, that is? How can a thing change, without losing its identity? If it remains the same, it does not change; yet if it loses its identity, then it is no longer that thing which has changed.
I do not suggest that the smothering is due to blocking breathing-in holes: according to the phlogiston theory, for example, fire is smothered by obstructing breathing-out holes. But I do not wish to ascribe to Anaximander either a phlogiston theory of combustion, or an anticipation of Lavoisier.
In my address, as it was originally published, I continued here 'and indeed for all other changes within the cosmic edifice', relying on Zeller who wrote (appealing to the testimony of Aristotle’ Meteor. 353b6): 'Anaximander, it seems, explained the motion of the heavenly bodies by the currents of the air which are responsible for the turning of the stellar spheres.' (Phil. d. Griechen, 5th edn., vol. I, 1892, p. 223; see also p. 220, n. 2; Heath, Aristarchus, 1913, p. 33; and Lee's edition of the Meteorologica, 1952, p. 125.) But I should perhaps not have interpreted Zeller's 'currents of air' as 'winds', especially as Zeller should have said 'vapours' (they are evaporations resulting from a process of drying up). I have twice inserted 'vapours and' before 'winds', and 'almost' before 'all' in the second paragraph of section ix; and I have replaced, in the third paragraph of section ix, 'winds' by 'vapours'. I have made these changes in the hope of meeting Mr G. S. Kirk's criticism on p. 332 of his article (discussed in the appendix to the present chapter).
IX
The exciting story of the development of the problem of change appears to me in danger of being completely buried under the mounting heap of minutiae of textual criticism. The story cannot, of course, be fully told in one short paper, and still less in one of its many sections. But in briefest outline, it is this.
For Anaximander, our own world, our own cosmic edifice, was only one of an infinity of worlds - an infinity without bounds in space and time. This system of worlds was eternal, and so was motion. There was thus no need to explain motion, no need to offer a general theory of change (in the sense in which we shall find a general problem and a general theory of change in Heraclitus; see below). But there was a need to explain the well-known changes occurring in our world. The most obvious changes - the change of day and night, of winds and of weather, of the seasons, from sowing to harvesting, and of the growth of plants and animals and men - all were connected with the contrast of temperatures, with the opposition between the hot and cold, and with that between the dry and the wet. 'Living creatures came into being from moisture evaporated by the sun', we are told; and the hot and the cold also administer to the genesis of our own world edifice. The hot and cold were also responsible for the vapours and winds which in their turn were conceived as the agents of almost all other changes.
Anaximenes, a pupil of Anaximander and his successor, developed these ideas in much detail. Like Anaximander he was interested in the oppositions of the hot and the cold and of the moist and the dry, and he explained the transitions between these opposites by a theory of condensation and rarefaction. Like Anaximander he believed in eternal motion and in the action of the winds; and it seems not unlikely that one of the two main points in which he deviated from Anaximander was reached by a criticism of the idea that what was completely boundless and formless (the αperion) could yet be in motion. At any rate, he replaced the αperion by air - something that was almost boundless and formless, and yet, according to Anaximander's old theory of vapours, not only capable of motion, but the main agent of motion and change. A similar unification of ideas was achieved by Anaximenes' theory that 'the sun consists of earth, and that it gets very hot owing to the rapidity of its motion'. The replacement of the more abstract theory of the unbounded αperion by the less abstract and more commonsense theory of air is matched by the replacement of Anaximander's bold theory of the stability of the earth by the more commonsense idea that the earth's 'flatness is responsible for its stability; for it... covers like a lid the air beneath it'. Thus the earth rides in air as the lid of a pot may ride on steam, or as a ship may ride on water; Thales' question and Thales' answer are both re-instituted, and Anaximander's epoch-making argument is not understood. Anaximenes is an eclectic, a systematizer, an empiricist, a man of common sense. Of the three great Milesians he is least productive of revolutionary new ideas; he is the least philosophically minded.
The three Milesians all looked on our world as our home. There was movement, there was change in this home, there were hot and cold, fire and moisture. There was a fire in the hearth, and on it a kettle with water. The house was exposed to the winds, and a bit draughty, to be sure; but it was home, and it meant security and stability of a sort. But for Heraclitus the house was on fire.
There was no stability left in the world of Heraclitus. 'Everything is in flux, and nothing is at rest.' Everything is in flux, even the beams, the timber, the building material of which the world is made: earth and rocks, or the bronze of a cauldron - they are all in flux. The beams are rotting, the earth is washed away and blown away, the very rocks split and wither, the bronze cauldron turns into green patina, or into verdigris: 'All things are in motion all the time, even though... this escapes our senses', as Aristotle expressed it. Those who do not know and do not think believe that only the fuel is burned, while the bowl in which it burns (cp. DK, A 4) remains unchanged; for we do not see the bowl burning. And yet it burns; it is eaten up by the fire it holds. We do not see our children growing up, and change, and grow old, but they do.
Thus there are no solid bodies. Things are not really things, they are processes, they are in flux. They are like fire, like a flame which, though it may have a definite shape, is a process, a stream of matter, a river. All things are flames: fire is the very building material of our world; and the apparent stability of things is merely due to the laws, the measures, which the processes in our world are subject to.
This, I believe, is Heraclitus' story; it is his 'message', the 'true word' (the logos), to which we ought to listen: 'Listening not to me but to the true account, it is wise to admit that all things are one': they are 'an everlasting fire, flaring up in measures, and dying down in measures'.
I know very well that the traditional interpretation of Heraclitus' philosophy here restated is not generally accepted at present. But the critics have put nothing in its place - nothing, that is, of philosophical interest. I shall briefly discuss their new interpretation in the next section. Here I wish only to stress that Heraclitus' philosophy, by appealing to thought, to the word, to argument, to reason, and by pointing out that we are living in a world of things whose changes escape our senses, though we know that they do change, created two new problems - the problem of change and the problem of knowledge. These problems were the more urgent as his own account of change was difficult to understand. But this, I believe, is due to the fact that he saw more clearly than his predecessors the difficulties that were involved in the very idea of change.
For all change is the change of something: change presupposes something that changes. And it presupposes that, while changing, this something must remain the same. We may say that a green leaf changes when it turns brown; but we do not say that the green leaf changes when we substitute for it a brown leaf. It is essential to the idea of change that the thing which changes retains its identity while changing. And yet it must become something else: it was green, and it becomes brown; it was moist, and it becomes dry; it was hot, and it becomes cold.
Thus every change is the transition of a thing into something with, in a way, opposite qualities (as Anaximander and Anaximenes had seen). And yet, while changing, the changing thing must remain identical with itself.
This is the problem of change. It led Heraclitus to a theory which (partly anticipating Parmenides) distinguishes between reality and appearance. 'The real nature of things loves to hide itself. And unapparent harmony is stronger than the apparent one.' Things are in appearance (and for us) opposites, but in truth (and for God) they are the same.
'Life and death, being awake and being asleep, youth and old age, all these are the same... for the one turned round is the other and the other turned round is the first.... The path that leads up and the path that leads down are the same path.... Good and bad are identical... for God all things are beautiful and good and just, but men assume some things to be unjust, and others to be just.... It is not in the nature or character of man to possess true knowledge, though it is in the divine nature.'
Thus in truth (and for God) the opposites are identical; it is only to man that they appear as non-identical. And all things are one - they are all part of the process of the world, the everlasting fire.
This theory of change appeals to the 'true world', to the logos, to reason; nothing is more real for Heraclitus than change. Yet his doctrine of the oneness of the world, of the identity of opposites, and of appearances and reality threatens his doctrine of the reality of change.
For change is the transition from one opposite to the other. Thus if in truth the opposites are identical, though they appear different, then change itself might be only apparent. If in truth, and for God, all things are one, there might, in truth, be no change.
This consequence was drawn by Parmenides, the pupil (pace Burnet and others) of the monotheist Xenophanes who said of the one God: 'He always remains in the same place, never moving. It is not fitting that He should go to different places at different times... He is in no way similar to mortal men, neither in body nor in thought.'
Xenophanes' pupil Parmenides taught that the real world was one, and that it always remained in the same place, never moving. It was not fitting that it should go to different places at different times. It was in no way similar to what it appeared to be to mortal men. The world was one, and undivided whole, without parts, homogeneous and motionless: motion was impossible in such a world. In truth there was no change. The world of change was an illusion.
Parmenides based this theory of an unchanging reality on something like a logical proof; a proof which can be presented as proceeding from the single premiss, 'What is not is not'. From this we can derive that the nothing - that which is not - does not exist; a result which Parmenides interprets to mean that void does not exist. Thus the world is full: it consists of one undivided block, since any division into parts could only be due to separation of the parts by the void. (This is 'the well-rounded truth' which the goddess revealed to Parmenides.) In this full world there is no room for motion.
Only the delusive belief in the reality of opposites - the belief that not only what is exists but also what is not - leads to the illusion of a world of change.
Parmenides' theory may be described as the first hypothetico-deductive theory of the world. The atomists took it as such; and they asserted that it was refuted by experience, since motion does exist. Accepting the formal validity of Parmenides' argument, they inferred from the falsity of his conclusion the falsity of his premiss. But this meant that the nothing - the void, or empty space - existed. Consequently there was now no need to assume that 'what is' - the full, that which fills some space - had no parts; for its parts could now be separated by the void. Thus there are many parts, each of which is 'full': there are full particles in the world, separated by empty space, and able to move in empty space, each of them being 'full', undivided, indivisible, and unchanging. Thus what exists is atoms and the void. In this way the atomists arrived at a theory of change - a theory that dominated scientific thought until 1900. It is the theory that all change, and especially all qualitative change, has to be explained by the spatial movement of unchanging bits of matter - by atoms moving in the void.
The next great step in our cosmology and the theory of change was made when Maxwell, developing certain ideas of Faraday's, replaced this theory by a theory of changing intensities of fiel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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