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과 논박 19장
우리시대의 역사: 한 낙관론자의
견해
(번역 수정본)
영감으로 고취되어 성공한 사회 개혁가인 엘리너 래스본(Eleanor Rathbone)을 추념하기 위하여 도입된 일련의 강연에서, 우리 시대의 사회개혁의 문제를 잠정적일지라도 일반적으로 평가하는 문제에 관하여 강연하는 것은 아마도 부적절하지 않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무엇을 이룩했던가? 우리 서구사회는 다른 사회와 어떻게 비교되는가? 이것들이 내가 토론을 제안하는 문제들이다.
나는 ‘우리시대의 역사: 한 낙관론자의 견해’를 나의 강연 제목으로서 선정해서, 이 제목을 설명함에 의하여 강연을 시작해야 한다고 느낀다.
내가 ‘역사’를 말할 때, 나는 특히 우리의 사회 및 정치 역사를 언급하고 싶지만, 우리의 도덕적 및 지적(知的) 역사를 또한 언급하고 싶다. ‘우리(our)’라는 단어에 의하여, 나는 대서양 공동체(the Atlantic Community)라는 자유세계를 ㅡ 특히 영국, 미국, 스칸디나비아 여러 나라들과 스위스 그리고 태평양에 있는 이 세계의 변경(邊境: outposts) 호주와 뉴질랜드를 ㅡ 의미한다. ‘우리시대’에 의하여, 나는 특히 1914년 이후의 기간을 의미한다. 그러나 나는 최근 50 혹은 60년을 ㅡ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아마도 지칭할 것과 같이 보어(Boer) 전쟁이후 혹은 윈스턴 처칠의 시대 ㅡ 또한 의미한다; 최근 100년 ㅡ 다시 말해서 주로 노예제도가 폐지되고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이후 시대; 과거 200년 ㅡ 다시 말해서 주로 미국혁명 이후, 흄(Hume)과 볼테르(Voltaire)와 칸트 그리고 버크(Burke) 이후 시대; 그리고 한계를 더 낮추어, 최근 300년 ㅡ 종교개혁 이후 시대; 로크(Locke) 이후, 그리고 뉴튼 이후
1956년 10월 12일 브리스틀 대학(University of Bristol)에서 행한 제6차 엘리너 래스본 추념 강연(The Sixth Eleanor Rathbone Memorial lecture). (이전에 발표되지 않았다.)
시대. ‘우리시대의 역사’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이만큼만 하자.
이제 나는 ‘낙관론자’라는 단어로 왔다. 첫째 내가 나 자신을 낙관론자라고 자처하면, 미래에 대하여 내가 무엇을 안다고 나는 제시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나는 예언가인척 하고 싶지 않는데 역사적 예언가인척은 전혀 하고 싶지 않다. 반대로 여러 해 동안 역사관련 예언은 일종의 돌팔이 행동이라는 견해를 나는 옹호하려고 노력했다. 역사법칙을 나는 믿지 않으며, 나는 특히 진보의 법칙과 같은 것을 불신한다. 사실상 나는 진보하기보다는 우리가 퇴보하기 훨씬 쉽다고 믿는다.
내가 이 모든 것을 믿을지라도, 나 자신을 낙관론자로서 기술(記述)하는 것이 공정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유인즉 나의 낙관론이 전적으로 현재와 가까운 과거에 대한 나의 해석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나의 낙관론은 우리시대에 대하여 내가 높이 평가하는 관점에 놓여있다. 그래서 여러분이 이 낙관론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든 이 낙관론에는 희소성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사실상 비관론자들의 신음소리는 다소 단조로워졌다. 틀림없이 우리 세상에는 우리가 신경을 쓴다면 올바르게 불평할 것이 많다; 그리고 틀림없이 우리에게 잘못된 것을 발견하는 것이 때때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도 청취할 기회가 주어져야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낙관론적인 견해를 지니는 것은 가까운 과거와 우리시대에 관해서이다. 그래서 이것으로 인하여 나의 제목의 마지막 단어인 ‘견해’라는 단어에 내가 마침내 도달한다. 내가 이 강연에서 겨냥하는 것은 우리시대를 일종의 조감도로 몇 번 개괄하는 것이다. 그 개괄은 틀림없이 매우 개인적인 견해일 ㅡ 기술(記述)이라기보다는 해석 ㅡ 것이다. 그러나 나는 논증에 의하여 그 개괄을 뒷받침하려고 노력하겠다. 그리고 비관론자들이 나의 견해가 피상적이라고 느낄지라도, 나는 적어도 나의 견해를 비관론자들을 반박할 방식으로 제시하겠다.
그래서 나는 반박으로써 시작한다. 나는 폭넓고 매우 다양한 지역에서 믿어지는 듯한 어떤 신조를 반박하겠다; 신심(信心)이 확실한 많은 성직자들에 의해서 뿐 아니라, 내가 인간으로서 그리고 철학자로서도 매우 존경하는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과 같은 몇 명의 합리주의자들에 의하여 믿어지는 신조.
러셀은 내가 반박하고 싶은 신조를 여러 차례 밝혔다. 그는 우리의 지적(知的) 발달이 우리의 도덕적 발달을 능가한다고 불평했다.
러셀에 따르면 우리는 매우 영리해졌는데, 정말로 너무 영리해졌다. 텔레비전, 고속 로켓, 원자폭탄 혹은 여러분이 원한다면 수소폭탄을 포함하여 우리는 탁월한 장치들을 많이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지닌 엄청난 지적(知的) 능력을 이용할 기회를 유일하게 안전하게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도덕적 및 정치적 성장 및 성숙을 우리는 이룩할 수는 없었다. 이것이 우리가 치명적인 위험에 빠져있는 우리 자신을 이제 발견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지닌 사악한 민족적 자존심으로 인하여 우리는 제때에 세계-국가를 탄생시킬 수 없었다.
이 견해를 요약한다: 우리는 영리하다, 아마도 너무 영리하다, 그러나 우리는 사악하기도 하다; 그리고 영리함과 사악함의 이 혼재가 우리가 겪는 고통의 기저에 놓여있다.
이것에 반대하여, 나는 정확하게 반대가 되는 것을 주장하겠다. 나의 첫 번째 논지는 이렇다.
우리는 선량하다, 아마도 다소 너무 선량하다, 그러나 우리는 다소 어리석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가 겪는 고통의 기저에 놓여 있는 것은 이 선량함과 어리석음의 혼재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하여, 내가 ‘우리’라는 단어를 이 논지에서 사용할 때, 내가 나 자신을 포함한다는 것을 강조해야겠다.
여러분은 왜 나의 첫 번째 논지가 낙관적 견해의 일부가 되어야 하는지를 나에게 아마도 물을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다. 한 가지 이유는 사악함이 제한된 정도의 어리석음보다 대처하기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그다지 영리하지 못한 선량한 사람들은 통상적으로 배우기를 매우 열망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절망적으로 어리석다고 내가 생각하지 않으며, 우리가 절망적으로 어리석지 않다는 것이 확실히 낙관적 견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잘못된 것은 우리가 매우 쉽게 우리 자신을 오도한다는 것과, 그래서 새뮤얼 버틀러(Samuel Butler)가 에레혼(Erewhon)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맹종한다’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들 중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도록 여러분이 허용하기를 나는 희망한다: ‘... 에레혼 사람들은 쉽게 맹종하는 순종적이고 오랫동안 고통을 당한 사람들이어서, 그들의 현존 제도가 가장 엄격한 도덕적 원칙에 근거하지 않는다고 설득함에 의하여... 그들을 넋을 앗아가는 철학자가 그들 가운데서 출현할 때 재빨리 논리의 제단에 상식을 갖다 바치는 것이... 알려질 것이다’라고 버틀러는 서술한다.
나의 첫 번째 논지는, 버트런드 러셀과 같은 권위자에게 직접적으로 반대가 될지라도, 결코 독창적이지는 않다는 것을 여러분을 안다. 새뮤얼 버틀러가 유사한 노선들을 따라서 생각했던 듯하다.
이 논지에 대한 버틀러의 언명과 나 자신의 언명은 형태에서 다소 경박하다. 그러나 그 논지는 아마도 이런 방식으로 더 진지하게 표현될 것이다.
우리시대의 주요 고통들은 ㅡ 그리고 우리가 고통스런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나는 부인하지 않는다 ㅡ 우리의 도덕적 사악함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가 지닌 흔히 오도되는 도덕적 열정에 기인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향상시키려는 우리의 고민에 기인한다. 우리들이 벌이는 전쟁들은 근본적으로 종교전쟁들이다; 그 전쟁들은 나은 세상을 설립하는 방법에 대하여 상충하는 이론들이 벌이는 전쟁이다. 그리고 우리의 도덕적 열정이 흔히 오도되는데 왜냐하면 분명히 과도하게 단순한 우리의 도덕적 원칙들을 우리가 그 원칙들을 적용해야 한다고 느끼는 복잡한 인간적 및 정치적 상황에 적용하기가 흔히 어렵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분이 나의 논지나 버틀러의 논지에 즉시 동의하리라고 물론 기대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러분이 버틀러의 논지에 동조할지라도, 나의 논지에 동조할 것 같지 않다. 버틀러는 빅토리아 시대의 사람이었다고 아마도 여러분은 말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악함의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는 견해를 내가 어떻게 지닐 수 있을까? 나는 히틀러와 스탈린을 잊은 것일까? 나는 잊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히틀러와 스탈린이 나 자신에게 과도한 인상을 남기지 않도록 할 것이다. 그들에도 불구하고 나는 상황을 파악하고 낙관론자로 남는다. 그들과 그들의 측근 조력자들은 이런 환경에서 제외될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거대한 독재자들이 매우 많은 추종자들 거느렸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나의 첫 번째 논지나 혹은, 여러분이 선호한다면 버틀러의 논지가 그 독재자들의 추종자들 대부분에게 정말로 적용된다고 나는 주장한다. 히틀러와 스탈린을 따랐던 사람들 대부분은, 버틀러의 표현을 빌려서, 자신들이 ‘맹종한다’는 바로 그 이유로 독재자들을 추종했다. 거대한 독재자들은 모든 종류의 두려움과 희망, 편견과 선망 그리고 심지어 증오도 정말로 이용했다고 인정된다. 그러나 그들의 주요 매력은 일종의 도덕성에 ㅡ 의심할 바 없이 의심스러운 도덕성 ㅡ 관한 매력이었다. 그 독재자들은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그들은 희생을 요구했다. 도덕성에 관한 호소가 얼마나 쉽게 오용될 수 있는지를 알면 참담하다. 그러나 거대한 독재자들이 자신들의 백성에게 자기들이 더 높은 도덕성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다고 설득하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었다는 것은 사실일 뿐이다.
나의 요점을 예시하기 위하여 나는 여러분에게 1942년에 출판된 괄목할만한 책자를 상기시킬 것이다. 이 책자에서 당시 브래드포드의 주교(the Bishop of Bradford)는 자신이 ‘부도덕’하고 ‘비기독교적’으로서 기술(記述)한 특정 형태의 사회를 공격하고, 그 사회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일이 분명히 악마의 소행일 때,... 그 소행의 파괴를 위하여 노력하지 않아도 교회목사를 면죄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주교의 견해로 악마의 소행이었던 사회는 히틀러의 독일도 스탈린의 러시아도 아니었다; 그 소행은 대서양 공동체라는 자유로운 세계인 우리 자신의 서구사회였다. 게다가 주교는 진정으로 악마적인 스탈린의 체제를 지원하기 위하여 쓰인 책자에서 이 말을 언급했다. 나는 주교의 도덕적 비판이 충정이었다고 전적으로 확신한다. 그러나 도덕적 열정으로 인하여 그의 눈이 멀어서, 그와 같은 많은 사람들처럼 다른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었던 사실들을 그는 보지 못했다; 예를 들어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스탈린의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보지 못했다.
여기서 그것들이 명백한 사실들일지라도, 사실들에 대한 직시를 전형적으로 거부하는 사례를 여러분이 경험하기에 나는 우려한다; 전형적인 비판 결여의 사례를 여러분이 경험하기에 나는 우려한다; (버틀러의 단어들을 다시 사용하여) ‘맹종하려는’ 전형적인 열의의 사례; 우리의 ‘현존 제도들이 가장 엄격한 도덕적 원칙들에 근거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맹종하는 것. 지나치게 많은 선(善)이 지나치고 적은 합리적 비판과 결합된다면 그 선(善)이 얼마나 위험하게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사례를 여러분이 여기서 경험한다.
그러나 그 주교만의 사례가 아니다. 약 4, 5년 전 스탈린을 최고의 과학자로서 기술(記述)했다고 언급되는 유명한 영국 물리학자에 대한 반박되지 않은 보고서가 프라하에서 와서 더 타임즈(The Times)에 실린 것을 여러분 중 몇 분은 기억할 것이다. 잠시 동안만이라도 스탈린의 사악한 행동에 관한 교설이 공산당 노선 자체의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음을 고찰하면 이 유명한 물리학자가 어떻게 말할지를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더 높은 도덕성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출현하면 우리는 얼마나 놀랍게 맹종하기 쉬운지가 이 모든 것으로 인하여 밝혀진다.
스탈린을 신봉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오늘날 참담한 광경이 제시된다. 그러나 우리가 기독교의 순교자들을 찬양한다면, 러시아의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는 동안에도 스탈린을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우리는 마음 내키지 않는 찬사마저도 완전히 철회할 수 없다. 그들이 지녔던 믿음은 우리가 나쁘다고 알고 있는 명분에 대한 믿음이었다; 오늘날 심지어 공산당원들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철저히 신실하게 그것을 믿었다.
거대한 독재자들 모두가 인간의 선량함에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음을 우리가 기억한다면, 우리가 겪는 고통의 이 양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가 안다. 거대한 독재자들은 자신들이 믿지 않던 도덕성에 어쩔 수 없이 입에 발린 말을 내뱉을 뿐이다. 공산주의와 민족주의는 모두 도덕성과 신앙으로서 신봉된다. 이것이 공산주의와 민족주의의 유일한 힘이다. 지적(知的)으로 그것들은 어불성설과 비슷하다.
공산주의적 믿음은 명백하게 어불성설이다. 인간 자유에 대한 신념에 호소하여, 공산주의적 믿음은 역사상 유례없는 억압 체제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민족주의적 신념도 동등하게 터무니없다. 나는 여기서 히틀러의 인종적 신화(神話)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오히려, 소위 인간이 지녔다는 천부적 권리이다 ㅡ 소위 민족의 자결권이다. 심지어 마사리크(Mararyk)같이 훌륭한 인도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도 이 황당함을 인간의 천부적 인권의 하나로서 지지할 수 있었다는 것 때문에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것으로 인하여 철학자 왕들의 지혜에 대한 사람의 신념이 충분히 흔들리며, 우리가 선량하지만 어리석다기보다는 영리하지만 사악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숙고해야 한다. 이유인즉 민족자결주의라는 원칙을 잠시 노력하여 비판하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그 원칙의 철저한 부조리가 틀림없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그 원칙은 각각의 국가가 민족-국가여야 한다는 요건에 해당한다: 각각의 국가는 자연적인 국경 안에 국한되어야 하며, 이 국경은 민족 무리의 위치와 일치해야 한다는 요건에 해당한다; 그리하여 국가의 자연적인 경계를 결정하여 보호해야 하는 것은 인종 무리인 ‘민족’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민족-국가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아이슬란드도 ㅡ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예외 ㅡ 이 규칙에 표면적일 예외일 따름이다. 이유인즉 아이슬란드의 경계가 인종 무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북대서양에 의하여 ㅡ 그 경계가 아이슬란드 민족에 의해서가 아니라 북대서양조약에 의하여 보호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ㅡ 결정되기 때문이다. 민족주의자들이 꿈꾸는 ‘민족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민족-국가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적인 국경이 있는 나라 안에서 오랫동안 정착한 동질적 인종 무리들은 없거나 거의 없다. 인종적 무리들과 언어적 무리들은 (방언들도 흔히 언어적 장애물에 해당한다) 도처에서 밀접하게 뒤섞여있다. 마사리크의 체코슬로바키아는 민족-자결의 원칙에 근거하여 건국되었다. 그러나 체코슬로바키아가 건국되자마자, 슬로바키아 사람들은 이 원칙의 이름으로 체코인들의 지배로부터 자유를 요구했다; 그래서 결국 체코슬로바키아는 동일한 원칙의 이름으로 그 국가의 독일인 소수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새로운 국가의 국경을 결정하는 데 민족자결의 원칙이 적용된 실제로 모든 경우에서 유사한 상황들이 발생했다: 아일랜드에서, 인도에서, 이스라엘에서, 유고슬라비아에서 발생했다. 도처에 인종적 소수들이 있다. 합당한 목표는 그 소수들 모두를 ‘해방시키는’ 것이 될 수 없다; 오히려 그 목표는 그 소수들 모두를 보호하는 것이어야 한다. 민족 무리들에 대한 압제는 커다란 악이다; 그러나 민족자결은 온당한 처방이 아니다. 게다가 영국, 미국, 캐나다, 스위스는 여러 면에서 민족성 원칙을 위반하는 국가들에 대한 네 가지 명백한 사례들이다. 그 국가들은 국경이 하나의 정착 무리에 의하여 결정되도록 하는 대신, 각 국가들은 다양한 인종 무리들을 연합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므로 그 문제는 해결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모든 명백한 사실들에 직면해서도 민족자결의 원칙은 계속해서 우리들의 도덕적 신념의 한 조항으로서 널리 수용된다; 게다가 그 원칙은 본격적으로 도전을 받지도 않는다. 어느 키프로스 사람이 최근, 더 타임즈(The Times)에 보낸 편지에서 이 원칙에 호소하였다. 그는 그 원칙을 보편적으로 수용되는 도덕성의 원리로서 기술(記述)하였다. 이 원칙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신성한 인간의 가치들과 인간의 천부 인권을 (분명히 심지어 의견을 달리하는 자기들 자신의 동포들을 테러할 때도) 옹호하고 있었다고 그는 자랑스럽게 주장했다. 이 편지가 키프로스의 소수인종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 편지가 공표되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 주제에 관하여 길게 계속된 편지들에서 그 편지의 도덕적 교설이 철저히 답변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었다는 사실, 이 모든 것은 나의 첫 번째 논지를 증명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정말로, 사악함 때문이라기보다는 도덕적으로 옳다는 어리석음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살해당하는 것이 내가 보기에 가능하다.
민족주의적 종교는 강력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 종교가 도덕적으로 훌륭하고 실제로 참이라고 굳건히 믿기에, 그 종교를 위하여 순교할 각오를 한다. 그러나 그들은 틀렸다; 자신들의 동료인 공산주의자들만큼 틀렸다. 민족성 원칙의 도덕성에 대한 믿음보다 더 많은 증오와 잔혹 및 무의미한 고통을 초래한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원칙이 민족 압제라는 고통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아직도 널리 믿어진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아무런 의심 없이 이 원칙이 여전히 수용되는 ㅡ 심지어 그들의 정치적 관심사가 명백하게 그 원칙과 반대가 되는 사람들의 의해서도 ㅡ 거의-만장일치를 바라볼 때 나의 낙관론이 다소 흔들림을 나는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소위 이 도덕적 원칙의 황당함과 잔혹함이 어느 날 사고하는 모든 사람들에 의하여 인식될 것이라는 희망을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이 오도된 도덕적 열정에 대한 참담한 이야기들을 모두 떠나서, 우리 자신이 만든 자유세계로 향하자. 나의 첫 번째 논지를 뒷받침하는 추가 논증을 내놓으려는 유혹을 뿌리치고, 나는 이제 나의 두 번째 논지로 나아가겠다.
나는 낙관론자라고 말했다. 철학적 신조로서의 낙관론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모든 가능한 세상들 중에서 최고라는 유명한 교설로서, 라이프니츠(Leibniz)에 의하여 상세하게 주장되어 잘 알려져 있다. 라이프니츠의 이 논지가 참이라고 나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우리의 자유로운 세상을 ㅡ 대서양 공동체 사회(the Society of the Atlantic Community) ㅡ 언급하는 나의 두 번째 논지를 들을 때 여러분이 나에게 낙관론자라는 행복한 명칭을 부여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나의 두 번째 논지는 이렇다.
우리가 겪는 크고 심각한 고통들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가능한 최고의 사회가 분명히 아니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자유세계가 인류 역사상 존재한 단연코 최고의 사회라고 나는 주장한다.
그리하여 나는 라이프니츠와 함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가능한 모든 세상들 가운데서 최고의 세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또한 나는 우리의 사회적 세상이 가능한 모든 사회적 세상들 가운데서 최고의 사회적 세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의 논지는 단지 우리 자신의 사회적 세상이 존재한 최고의 사회적 세상이라는 ㅡ 적어도 우리가 역사적으로 알고 있는 최고의 사회적 세상 ㅡ 것이다.
여러분은 지금쯤 나 자신을 낙관론자라고 부를 권리를 나에게 허락할 것이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여러분은 내가 유물론자인지 ㅡ 우리의 사회가 역사상 가장 부유한 사회이기 때문에 최고라고 부르는지 ㅡ 아마도 의심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우리사회를 최고라고 부르는 이유가 아님을 나는 여러분에게 확신시킬 수 있다. 물론 나는 기아와 빈곤을 퇴치하는 데 성공했거나 거의 성공했던 것이 훌륭한 일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내가 주로 찬양하는 것은 나일론도 영양음식도 아니며, 폴리에스테르 제품이나 텔레비전도 아니다. 내가 우리 사회를 ‘최고’라고 부를 때, 나는 겨우 14년 전(前) 브래드포드의 주교가 악마의 소행으로 낙인을 찍도록 만들었던 바로 그 동일한 가치들을 나는 염두에 두고 있다: 나는 그리스로부터 그리고 성지(聖地)로부터 기독교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 내려온 규범들과 가치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 소크라테스로부터, 그리고 신약과 구약으로부터 기독교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진 규범들과 가치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
어느 다른 시대와 다른 장소에서도 우리 시대에서보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존중되었던 적이 없다. 과거에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이 그렇게 존중되었던 적은 없고,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특히 자신들보다 덜 행복한 사람들을 위하여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커다란 희생을 각오했던 적은 과거에 없다.
나는 이것들이 사실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 사실들은 더 상세하게 검토하기 전에, 내가 다른 사실들도 또한 매우 인식한다는 것을 나는 강조하고 싶다. 권력은 심지어 우리 세상에서도, 여전히 부패한다. 공무원들은 때때로 공무원들이 아니고 주인들처럼 행동한다. 조무래기 독재자들이 여전히 많다; 그리고 의학적 충고를 구하는 평범하게 영리한 사람은, 자신의 건강에 지적(知的)인 관심을 ㅡ 다시 말해서, 비판적 관심 ㅡ 보이면, 다소 피곤하게 만드는 유형의 천치로서 취급받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호의가 없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서툴음과 완전한 무능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을 상쇄시킬 것이 많다. 예를 들어 자유세계에 속하는 몇몇 나라들에서 (나는 벨기에를 생각하고 있다), 민감한 사람들에 대하여 그리고 현재 우세한 관행에 의하여 자존심이 상처를 받을 사람들에 대하여 적절하게 고려를 하면서, 의료기관들은 침울한 장소들이라기보다는 즐거운 장소들로 만들려는 분명한 목표로써 매우 성공적으로 구조조정이 되고 있다. 그리고 의사와 환자 사이에 진솔하고 지적(知的)인 협조관계를 확립하여, 심지어 환자가 자신에 관한 자신의 최종적 책임을 포기할 것을 종용받지 않도록 확실히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곳에서 이해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들로 선회하자. 우리가 살고 있는 자유로운 세상은 지금까지 사람들의 사회생활을 에워싸고 있던 가장 큰 해악들을 제거하는 데, 완전히는 아닐지라도 매우 근접하게 성공했다.
사회적 협력에 의하여 고쳐지거나 완화될 수 있는 저 해악들 중에서 가장 큰 몇 가지 해악들이라고 내가 믿는 것의 목록을 여러분에게 제시하겠다. 그 해악들은 다음과 같다:
빈곤
실업과 몇 가지 유사한 형태의 사회적 불안
질병과 통증
형벌의 잔혹성
노예제도와 다른 형태의 예속
종교적 및 인종적 차별
교육받을 기회의 결여
엄격한 계급 격차
전쟁
무엇이 성취되었는지 살펴보자; 여기 영국에서 복지국가를 통하여서 뿐 아니라, 자유세계 도처에서 이런저런 방법에 의하여 또한 성취된 것을 살펴보자.
비참한 빈곤은 실제로 없어졌다. 대규모 현상인 대신 그 문제는 아직 계속되는 동떨어진 사례들을 탐지하는 문제들 중 하나가 되었다.
실업과 몇 가지 다른 형태의 사회불안 문제들은 완전히 바뀌었다. 이제 대량-실업의 문제가 대개 해소되었다는 사실로 인하여 발생하는 새로운 문제들에 우리가 직면하고 있다.
질병과 통증 문제를 다루면서 상당히 지속적 진보가 이룩되고 있다.
형법 개혁으로 인하여 이 분야의 잔혹성이 대체로 없어졌다.
노예제도에 대항하는 성공적 투쟁의 이야기는 영국과 미국의 영원한 자존심이 되었다.
종교적 차별이 실제로 사라졌다. 인종차별은, 감소를 가장 원하는 사람들의 소망을 능가하는 정도까지 감소했다. 이 두 가지 업적을 훨씬 더 놀랍게 만드는 것은, 종교적인 편견과 심지어 그렇게 인종적인 편견들이 50년 전만큼 아마도 널리 퍼져있거나, 매우 거의 그 정도라는 사실이다.
교육받을 기회들의 문제는 여전히 매우 심각하지만 그 문제는 성실하고 열심히 다루어지고 있다.
계급 격차들은 도처에서 엄청나게 감소하였다. 스칸디나비아와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서 우리는 사실상 계급 없는 사회에 근접하는 사회를 경험한다.
나의 여덟 번째 요점은 전쟁이었다. 이 요점을 나는 더 자세하게 논의해야한다. 내가 여기서 말해야 할 것을 나의 세 번째 논지로서 언명하는 것이 매우 좋을 것이다.
나의 세 번째 논지는 보어 전쟁(the Boer War) 이래, 자유세계의 어떤 민주정부도 공격전쟁을 수행할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떤 민주정부도, 자신들 배후에서 국민들을 단결시키지 못할 터이기 때문에, 그 쟁점에 관하여 단합할 수 없을 터이다. 공격전쟁은 거의 도덕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보어 전쟁으로 인하여 영국에서 평화를 선호하는 도덕적 개종과 대등한 혐오감이 일었다. 영국이 독일 황제(Kaiser)에게 항전하기를 주저하여, 벨기에가 침략당한 다음에서야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것은 이 태도 때문이었다. 영국이 히틀러를 관대하게 대한 것도 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군대가 라인지방(Rhineland)에 들어왔을 때, 이것은 부인할 수 없이 히틀러의 입장에서 공격 행위였다. 그러나 영국의 여론으로 인하여 그 공격 행위에 정부가 대처하는 것이 ㅡ 그 상황에서 정부가 대처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조치였을지라도 ㅡ 불가능했다. 다른 한편으로, 에티오피아에 대한 무솔리니의 공개적 공격이 영국의 여론에 그렇게 많이 분노를 일으켜 무솔리니와 히틀러를 갈라놓으려고 현명하게 노력했던 호어-라발 계획(the Hoare-Laval plan)이 대중의 분노가 폭발하여 휩쓸려갔다.
그러나 훨씬 더 강력한 사례는 러시아에 대한 예방 전쟁(preventive war)의 쟁점을 향한 대중적 태도이다. 여러분은 1950년경 심지어 버트런드 러셀도 예방 전쟁을 옹호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예방 전쟁을 선호하는 강력한 이유들이 있었다는 것이 인정되어야 한다. 러시아는 아직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은 러시아가 수소폭탄을 개발하는 것을 막는 마지막 기회였다.
나는 미국 대통령이 지닌 그런 무시무시한 대안들 사이에서 결정할 권한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한 가지 대안은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다. 다른 대안은 스탈린이 세계를 파괴할 힘을 습득하도록 허용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주어져서는 물론 안 되는 힘을 습득하도록 허용하는 것이었다. 순전히 합리적 관점에서 두 번째 대안이 첫 번째 대안보다 훨씬 더 나쁘다고 주장한 데서 버트런드 러셀은 의심할 바 없이 옳았다. 그러나 결정은 다른 방향으로 갔다. 공격전쟁은, 심지어 이 결정적인 상황에서조차도 그리고 당시 승리가 실질적으로 확실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덕적으로 불가능했다.
자유세계는 아직도 전쟁을 할 준비가 되어있다. 과거에 여러 번 그랬던 것과 같이 자유세계는 커다란 위험 상황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치를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확실한 공격에 직면한다는 조건에서만 자유세계는 전쟁을 치를 것이다. 그리하여 자유세계 자체에 관한 한 전쟁은 정복되었다.
내가 주장하는 여덟 가지 커다란 사회악의 목록을 나는 간단하게 논의하였다.
자유세계가 무엇을 성취했는지를 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나는 믿는다. 이유인즉 우리가 우리 자신에 관해서 부당하게 회의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긍심 같은 것을 의심하고, 우리는 자화자찬을 불쾌하게 받아들인다. 우리가 배운 위대한 것들 중 하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관용적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혹시 옳아서 완전히 더 훌륭한 사람이 아닌지를 심각하게 자문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도 자신의 명분에서 재판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근본적인 도덕적 진리를 우리가 배웠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어떤 도덕적 성숙의 징후이다; 그러나 사람은 교훈을 지나치게 잘 배울지도 모른다. 자긍심이라는 죄악을 발견하고 우리는 자긍심이 정형화된 도착(倒錯: inversion)에 빠져버렸다: 자기-평가절하라는, 도착(倒錯)된 자긍이라는 정형화된 태도에 빠져버렸다. 사람은 자신의 명분에서 재판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우고, 우리는 우리의 적(敵)들을 옹호하는 사람이 되려는 유혹받는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의 업적에 눈이 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경향은 거부되어야 한다.
흐루쇼프 소련 수상이 인도 방문에서 영국의 식민주의를 비난했을 때, 그는 틀림없이 자신이 말한 모든 것의 진실을 확신했다. 자신이 내뱉은 비난이, 레닌을 통하여, 주로 영국 자료에서 나왔다는 것을 그가 알고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가 알았다면 그는 아마도 자신이 말하는 것을 신뢰하는 데 대한 추가 근거로서 그 사실을 생각했을 터이다. 그러나 그는 오류를 저질렀을 터이다; 이유인즉 이런 종류의 자기-비난은 특유하게 영국적 악행일 뿐 아니라 특유하게 영국적 미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진실은 인도의 독립이라는 관념이 영국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현대의 정치적 자유라는 일반적인 시상이 그랬던 바와 같이 인도의 독립이라는 관념이 영국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레닌과 흐루쇼프에게 도덕적 탄약을 제공했던 저 영국인들은 인도에 독립이라는 사상을 제공했던 영국인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거나 심지어 동일인이었다.
흐루쇼프에게 답변을 했던 훌륭한 영국 정치가가 스스로에 대하여 그리고 우리의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하여 할 말이 그렇게 없었던 것에 대하여 나는 항상 유감스러울 것이다. 나는 그가 흐루쇼프에게 어떤 인상도 끼치지 못했다고 철저히 확신한다. 그러나 그는 흐루쇼프에게 인상을 끼칠 수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가 다음 사례를 들어 우리 자유세계와 공산주의 세계의 차이점을 지적했더라면, 흐루쇼프가 그의 말을 이해했을 터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우리 정치가는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터이다:
‘당신 나라와 나의 나라 사이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소. 나의 상관 앤소니 경(Sir Anthony)이 내일 갑자기 사망한다고 상상하시오.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도 잠시 동안이라도 제정신으로 내가 앤소니 경을 살해했을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당신을 확신시킬 수 있소. 심지어 영국인 공산주의자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요. 이것으로 인하여 우리가 일을 처리하는 각자의 방식들 사이의 간단한 차이점이 예시되오. 그것은 확실히 인종적 차이점이 아닌데, 이유인즉 그다지 오랜 이야기가 아니지만 우리 역시 저 다른 방식으로 우리가 사건들을 처리했다는 것을 우리가 셰익스피어로부터 배웠기 때문이오.’
흔히 영국의 자료로부터 흘러나와서 오늘날의 세상에서 통상적인, 영국에 반대하는 황당하지만 지독한 저 모든 비난들에 답변할 중요성을 나는 신뢰한다. 이유인즉 거짓이면서 해로운 이념들의 힘을 포함하여 이념들의 힘을 내가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이념들의 전쟁이라고 아마도 부를 것을 나는 신뢰한다.
이념들의 전쟁은 그리스 사람들의 발명품이다. 그 전쟁은 가장 중요한 발명품 중의 하나이다. 정말로 칼로 싸우는 대신 말로 싸우는 가능성은 우리 문명의 그리고 특히 우리 문명의 모든 법률제도 및 의회제도의 토대이다. 그리고 말과 이념들로 싸우는 이 관습은 철의 장막의 양편에 걸친 세상들을 여전히 연결하는 극소수의 것들 중 하나이다 (다른 편에서는 말이 칼을 불충분하게 대체했을 뿐이어서, 때때로 살인 준비에 사용될지라도). 그리스시대 이래 이념들이 얼마나 강력해졌는지를 알기 위하여, 우리는 모든 종교전쟁이 이념전쟁이었으며, 모든 혁명들은 이념혁명들이었음을 기억할 필요만 우리에게 있다. 이 이념들이 참이어서 도움이 되었다기보다는 흔히 거짓이어서 해로웠을지라도, 충분히 강력하고 지적(知的)인 지지를 받는다면 나은 이념들 몇 가지가 생존할 특정 경향이 아마도 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네 번째 논지에서 언명될 것이다. 그 논지는 다음과 같다.
이념들의 힘, 특히 도덕적 및 종교적 이념들의 힘은 적어도 물리적 근원에서 나온 이념만큼 중요하다.
몇몇 정치학도들은 이 논지에 강력히 반대한다는 사실을 나는 잘 인식하고 있다; 그들이 지칭하는 바와 같이 ‘이념들(ideologies)’이 정치적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그리고 그것들이 지닌 모든 영향이 틀림없이 해롭다고 선언하는 소위 정치적 현실주의자들로 구성된 영향력이 있는 학파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잘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옹호될 수 있는 견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기독교는 역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터이다; 그리고 미국의 탄생은 설명될 수 없을 터이거나, 단지 해로운 실수의 결과일 터이다.
나의 네 번째 논지인 이념들의 힘이라는 교설은 18세기 및 19세기의 자유주의적이고 합리주의적인 사상의 특징이다.
그러나 자유주의 운동은 이념의 힘만을 믿지는 않았다. 그 운동은 내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견해를 또한 지지했다. 상충하는 이념들이 싸움에 합류할 필요는 없다고 믿어졌다. 이것은 진리란 제시되자마자 항상 인지될 것이라고 그 운동이 상상했기 때문이었다. 그 운동은 진리가 명백하다는 ㅡ 진리를 억압하고 왜곡하는 데 관심을 갖는 세력들이 제거되자마자 진리를 놓칠 수 없다는 ㅡ 이론을 신뢰했다.
이 중요하고 영향력이 있는 이념은 ㅡ 진리가 명백하다는 것 ㅡ 내가 지지할 수 없는 낙관론의 한 가지 형태이다. 나는 그 이념이 틀렸으며, 반대로 진리는 습득하기가 어렵고 흔히 고통스럽다고 확신한다. 그러므로 이것이 나의 다섯 번째 논지이다.
진리는 습득하기가 어렵다.
이 논지로 인하여 종교전쟁들이 어느 정도 설명된다. 그리고 그 논지가 인식론의 편린일지라도, 그 논지로 인하여 르네상스 이래 그리고 심지어 고전적인 고대시대 이래 유럽 역사를 많이 밝혀질 수 있다.
이제 나는 남은 시간에 이 역사를 ㅡ 우리시대의 역사, 특히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이래의 역사를 ㅡ 간단히 일견하고 싶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은 진리가 명백하다는 ㅡ 진리는 선의를 지닌 모든 사람에 의하여 읽히도록 그곳에 있는 펼쳐진 책이라는 ㅡ 이념과, 진리는 숨겨져 있다는 이념: 진리는 오직 선택된 자들에 의해서 감지될 수 있다는 이념; 책은 교회의 성직자들에 의해서만 판독되어서 교회의 권위에 의해서만 해석되어야 한다는 이념 사이의 갈등으로서 간주될 것이다.
처음에 ‘그 책(the book)’은 성경을 의미했을지라도, 후속적으로 자연의 책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 자연의 책은 열린 책이라고 베이컨(Bacon)이 믿었다. 그 책을 오독한 사람은 편견과 조급증 그리고 ‘기대(anticipation)’에 의하여 오도되었다. 여러분이 편견 없이, 인내하며 그리고 원문을 지레 예상하지 않고 책을 읽는다는 조건으로만, 여러분은 오류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오류는 항상 여러분 자신의 잘못이다. 오류는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 앞에 놓인 명백한 진리를 보지 않으려는 타락하고 죄악으로 찬 거부의 행동이다.
진리는 명백하다는 이 고지식하고, 내가 생각하기에 잘못된 견해는 현대에서 학습 증진을 위한 영감이 되었다. 그 견해는, 그리스인들이 지녔던 더 회의적인 고전적 합리주의와 반대로, 현대 합리주의의 토대가 되었다.
사회적인 이념들이라는 분야에서, 진리가 명백하다는 교설로 인하여 개인적인 도덕적 및 지적(知的) 책임과 자유라는 교설이 출현했다; 그 교설에 의하여 개인주의(individualism)와 합리주의적 자유주의가 탄생한다. 이 교설로 인하여 교회의 정신적 권위와 진리에 대한 교회의 해석이 불필요하게 되고, 심지어 해롭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진리를 향한 보다 회의적인 태도로 인하여 교회의 권위에 대한 강조와, 다른 형태의 권위주의가 발생한다. 이유인즉 진리가 명백하지 않다면, 여러분은 각 개인에게 진리를 해석하는 일을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까닭은 이것으로 인하여 필연적으로 혼란과 사회적 분열 및 종교적 분열 그리고 종교전쟁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책은 더 우세한 권위에 의하여 해석되어야 한다.
여기서 쟁점은 개인주의적 합리주의와 권위주의적 전통주의 사이의 쟁점으로 기술(記述)될 수 있다.
합리주의와 권위주의적 전통주의 사이의 쟁점은 또한 한편으로, 인간에 대해서 즉, 인간의 이성에 대해서 뿐 아니라 인간의 선량함에 대한 믿음과, 다른 한편으로 인간에 대한 불신 즉, 인간의 이성에 대한 그리고 인간의 선량함에 대한 불신 사이의 쟁점으로서 기술(記述)될 수 있다.
인간에 대한 믿음과 인간에 대한 불신 사이의 쟁점에서, 고지식한 자유주의적 낙관론자들의 인식론이 완전히 틀렸다고 그리고 진리는 사실상 습득하기가 어렵다고 나의 이성이 나에게 말할지라도, 나의 감정들은 모두 그 고지식한 자유주의적 낙관론자들의 편에 선다고 나는 고백할 것이다. 사람들을 보호와 권위 하에 두는 생각에 의하여 나는 염증을 느낀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권위와 전통의 쇠퇴를 우려한 비관론자들이 현명한 사람들이었음을 나는 인정한다. 대규모 종교전쟁들의 그리고 프랑스와 러시아 혁명들의 지독한 경험에 의하여 그들의 지혜와 선견지명이 증명된다.
그러나 이 전쟁들과 혁명들에 의하여 신중한 비관론자들이 현명했음이 증명될지라도, 그 비관론자들이 옳았음이 증명되지 않는다. 반대로 역사의 심판은 ㅡ 나는 물론 우리시대의 역사를 의미한다 ㅡ 대체로 인간을 그리고 인간이 지닌 이성을 신뢰했던 사람들에게 호의적인 듯이 보인다.
이유인즉 종교개혁 이후 우리의 자유세계라는 사회가 정말로 다른 시대에서 유례가 없는 권위의 쇠퇴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 사회는 권위 없는 사회, 혹은 사람들이 아마도 지칭할 것과 같이, 아버지 없는 사회이다.
종교개혁은, 개인의 양심을 강조함에 의하여, 인간 세상에 책임을 지는 통치자로서의 신(神)을 권좌에서 몰아냈다: 신(神)은 우리의 가슴 속에서, 그리고 우리의 가슴을 통해서만 통치할 수 있을 뿐이다. 신(神)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인간 자신의 인간적 양심을 통해서라고 신교도는 믿는다. 세상에 대한 책임은 나의 것이자 너의 것이다: 이것이 신교도의 신앙이다; 그래서 브래드포드의 주교는 악마의 소행이었던 사회적 세상을 파괴하라고 자신의 성직자들에게 호소했을 때, 훌륭한 신교도로서 말했다.
그러나 권위주의자들과 전통주의자들은, 비-권위주의적이거나 아버지가 없는 사회는 틀림없이 모든 인간적 가치들의 파괴를 초래한다고 확신했다. 그들이 현명했고 어떤 면에서 더 훌륭한 인식론자들이었다고 나는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틀렸다. 이유인즉 다른 혁명인 명예혁명과 미국 혁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자유세계인 우리의 대서양 공동체가 있다. 그 세계는 우리 자신의 개인적 양심이 상호작용하며 다스려지는 아버지 없는 사회이다. 그리고 내가 여러분을 확신시키려고 노력한 바와 같이, 그 세계는 존재한 최고의 사회이다.
권위주의자들의 오류는 무엇이었던가? 그들의 지혜는 왜 거부되어야 하는가? 우리 자유세계에는 권좌에서 물러난 권위를 성공적으로 대체한 세 가지 요소들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첫 번째는 진리의 권위에 대한 우리의 존경이다: 우리가 발견해야 하는 과제이며 우리의 힘으로 바꿀 수도 없거나 우리가 좋아하는 대로 해석할 힘도 없는, 인격이 개입하지 않는 인간 사이에서 객관적 진리의 권위.
두 번째는 종교전쟁에서 습득된 교훈이다. 이유인즉 이 전쟁들에서 우리가 다음 교훈을 배웠다고 내가 정말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오류로부터 정말로 배웠다 (사회 분야 및 정치 분야에서 이것이 드물고 어려운 것으로 보일지라도). 종교적 신앙과, 다른 신념들은 자유롭고 신실하게 믿어질 때 가치를 띨 수만 있다는 것과, 사람을 강제로 순응하게 만들려는 시도는 무의미했다는 것을 우리는 배웠는데 왜냐하면 저항했던 사람들이 최고의 사람들이었고 정말로 그들의 동의는 받을만한 가치를 지닌 유일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믿음과 상이한 믿음을 관용하는 것뿐 아니라, 상이한 믿음들 및 그 믿음을 신실하게 믿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것도 우리가 배웠다. 그러나 이것의 의미는, 우리가 서서히 신실함과 독단적 완고함이나 태만을 구분하기 시작하고 진리가 명백하지 않아서 진리를 알고자 열망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진리는 분명하게 가시적이지 않고 습득하기 어렵다는 탁월한 진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권위적인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 탁월한 진리로부터 배웠고, 그와 반대로 자신들이 진리를 가르칠 권위를 부여받았다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을 의심해야 한다고 우리는 배웠다.
세 번째는 서로의 주장을 경청하고 서로를 비판함에 의하여 우리가 진리에 더 가까이 갈 것임을 우리는 또한 배웠다는 것이다.
이 비판적 형태의 합리주의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객관적 진리라는 권위에 대한 이 믿음이 상호존경에 근거한 자유사회에 필수불가결하다고 나는 믿는다. (독단주의 및 권위주의에 대한 실망과 관련되어 이해 가능한 결과들인 상대주의와 비합리주의와 같은 지적[知的] 오해에 의하여 우리의 사고들이 심각하게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이것이다.)
그러나 이 비판적 접근방식으로 인하여 동시에, 합리주의와 전통주의 사이에 타협의 여지가 남는다. 비판적 합리주의자는 전통을 평가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자신이 진리를 신뢰할지라도 자기 자신이 그 진리를 어떤 방식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비판적 합리주의자는, 가치 있는 것으로서 정말로 매우 귀중한 것으로서 진리를 향한 모든 단계인 모든 접근방식을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전통들이 흔히 그런 단계들을 고취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그리고 또한 지적(知的) 전통 없이 개인이 진리를 향하여 단 한 발자국도 다가갈 수 없을 터임을 비판적 합리주의자는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영국식 중용(中庸: middle way)의 토대였던 것은 합리주의와 회의론 사이의 타협인 합리주의의 대한 비판적 접근이었다: 전통들에 대한 존중이자 동시에 전통들을 개혁할 필요에 대한 인식이었다.
미래가 무엇을 우리에게 가져다줄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과거와 우리시대의 업적들로 인하여 인간적으로 무엇이 가능한지가 우리에게 밝혀진다. 그래서 이념들이 위험할지라도 우리가 그 이념들을 어떻게 다룰지를 우리의 실수들로부터 배울 것임을 그 업적들이 우리에게 가르친다; 어떻게 그 이념들에 비판적으로 접근할지, 그 이념들을 어떻게 길들일지. 그리고 숨겨진 진리에 조금 더 가까이 가려는 우리의 싸움을 포함하여 우리의 싸움에서 그 이념들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그 업적들이 우리에게 가르친다.
ㅡ“추측과 논박, 과학적 지식의 성장”, 1989년, 칼 포퍼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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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ISTORY OF OUR TIME:
AN OPTIMIST VIEW
IN A SERIES of lectures instituted to keep alive the memory of that inspired and successful social reformer, Eleanor Rathbone, it is perhaps not out of place to devote a lecture to a general though tentative assessment of the problem of social reform in our time. What have we achieved, if anything? How does our western society compare with others? These are the questions which I propose to discuss.
I have chosen as the title of my lecture 'The History of Our Time: An Optimist's View', and I feel that I should begin by explaining this title.
When I say 'History', I wish to refer particularly to our social and political history, but also to our moral and intellectual history. By the word 'our', I mean the free world of the Atlantic Community - especially England, the United States, the Scandinavian countries and Switzerland, and the outposts of this world in the Pacific, Australia and New Zealand. By 'our time' I mean, in particular, the period since 1914. But I also mean the last fifty or sixty years - that is to say the time since the Boer War, of the age of Winston Churchill, as one might call it; the last hundred years - that is, in the main, the time since the abolition of slavery and since John Stuart Mill; the last two hundred years - that is, in the main, the time since the American Revolution, since Hume, Voltaire, Kant, and Burke; and to a lesser
The sixth Eleanor Rathbone Memorial lecture, delivered at the University of Bristol on October 12th 1956. (Not previously published.)
extent, the last three hundred years - the time since the Reformation; since Locke, and since Newton. So much for the phrase 'The History of Our Time'.
Now I come to the word 'Optimist'. First let me make it quite clear that if I call myself an optimist, I do not wish to suggest that I know anything about the future. I do not wish to pose as a prophet, least of all as a historical prophet. On the contrary, I have for many years tried to defend the view that historical prophecy is a kind of quackery. I do not believe in historical laws, and I disbelieve especially in anything like a law of progress. In fact, I believe that it is much easier for us to regress than to progress.
Though I believe all this, I think that I may fairly describe myself as an optimist. For my opinion lies entirely in my interpretation of the present and the immediate past. It lies in my strongly appreciative view of our own time. And whatever you might think about this optimism you will have to admit that it has a scarcity value. In fact the wailings of the pessimists have become somewhat monotonous. No doubt there is much in our world about which we can rightly complain if only we give our mind to it; and no doubt it is sometimes most important to find out what is wrong with us. But I think that the other side of the story might also get a hearing.
Thus it is with respect to the immediate past and to out own time that I hold optimistic views. And this brings me finally to the word 'view' which is the last word of my title. What I shall be aiming at in this lecture is to sketch, in a few strokes, a kind of bird's-eye view of our time. It will no doubt be a very personal view - an interpretation rather than a description. But I shall try to support it by argument. And although pessimists will feel that my view is superficial, I shall at least try to present it in a way that may change them.
And so I begin with a challenge. I will challenge a certain belief which seems to be widely held, and held in widely different quarters; not only by many Churchmen whose sincerity is beyond doubt, but also by some rationalists such as Bertrand Russell, whom I greatly admire as a man and as a philosopher.
Russell has more than once expressed the belief I wish to challenge. He has complained that our intellectual development has outrun our moral development.
We have become very clever, according to Russell, indeed too clever. We can make lots of wonderful gadgets, including television, high-speed rockets, and an atom bomb, or a thermonuclear bomb, if you prefer. But we have not been able to achieve that moral and political growth and maturity which alone could safely direct and control the uses to which we put our tremendous intellectual powers. This is why we now find ourselves in mortal danger. Our evil national pride has prevented us from achieving the world-state in time.
To put this view in a nutshell: we are clever, perhaps too clever, but we are also wicked; and this mixture of cleverness and wickedness lies at the root of our troubles.
As against this, I shall maintain precisely the opposite. My first thesis is this.
We are good, perhaps a little too good, but we are also a little stupid; and it is this mixture of goodness and stupidity which lies at the root of our troubles.
To avoid misunderstanding, I should stress that when I use the word 'we', in this thesis, I include myself.
You may perhaps ask me why my first thesis should be part of an optimist's view. There are various reasons. One is that wickedness is even more difficult to combat than a limited measure of stupidity, because good men who are not very clever are usually very anxious to learn.
Another reason is that I do not think that we are hopelessly stupid, and this is surely an optimist's view. What is wrong with us is that we so easily mislead ourselves, and that we are so easily 'led by the nose' by others, as Samuel Butler says in Erewhon. I hope you will let me quote from one of my favourite passages: 'It will be seen', Butler writes, '... that the Erewhonians are a meek and long-suffering people, easily led by the nose, and quick to offer up common sense at the shrine of logic, when a philosopher arises among them, who carries them away... by convincing them that their existing institutions are not based on the strictest principles of morality.'
You see that my first thesis, although it is directly opposed to such an authority as Bertrand Russell, is far from original. Samuel Butler seems to have thought along similar lines.
Both Butler's formulation of this thesis and my own are somewhat flippant in form. But the thesis might be put more seriously in this way.
The main troubles of our time - and I do not deny that we live in troubled times - are not due to our moral wickedness, but, on the contrary, to our often misguided moral enthusiasm: to our anxiety to better the world we live in. Our wars are fundamentally religious wars; they are wars between competing theories of how to establish a better world. And our moral enthusiasm is often misguided, because we fail to realize that our moral principles, which are sure to be over-simple, are often difficult to apply to the complex human and political situations to which we feel bound to apply them.
I certainly do not expect you to agree at once, either with my thesis or with Butler's. And even if you sympathize with Butler's, you are hardly likely to sympathize with mine. Butler, you might say, was a Victorian. But how can I hold the view that we do not live in a world of wickedness? Have I forgotten Hitler and Stalin? I have not. But I do not allow myself to be over-impressed by them. In spite of them, and my eyes open, I remain an optimist. They, and their immediate helpers, may be set aside in this context. What is more interesting is the fact that the great dictators had a very large following. But I contend that my first thesis or, if you like, Butler's thesis, does not apply to most of their followers. Most of those who followed Hitler and Stalin did so precisely because, to use Butler's phrase, they were 'easily led by the nose'. Admittedly, the great dictators did appeal to all sorts of fears and hopes, to prejudices and to envy, and even to hatred. But their main appeal was an appeal to a kind of morality - no doubt a dubious morality. They had a message: and they demanded sacrifices. It is sad to see how easily an appeal to morality can be misused. But it is simply a fact that the great dictators were always trying to convince their people that they knew the way to a higher morality.
To illustrate my point, I may remind you of a remarkable pamphlet, published as recently as 1942. In this pamphlet the then Bishop of Bradford attacked a certain form of society which he described as 'immoral' and 'un-Christian', and of which he said: 'when something is so plainly the work of the devil,... nothing can excuse a minister of the Church from working for its destruction'. The society which, in the Bishop's opinion, was the work of the devil was not Hitler's Germany or Stalin's Russia; it was our own Western society, the free world of the Atlantic Community. And the Bishop said these things in a pamphlet which was written in order to support the truly satanic system of Stalin. I am absolutely convinced that the Bishop's moral condemnation was sincere. But moral fervour blinded him, and many like him, to facts which others could easily see; for example, to the fact that countless innocent people were being tortured in Stalin's prisons.
Here, I am afraid, you have an example of a typical refusal to face facts, even if they are obvious facts; of a typical lack of criticism; of a typical readiness to be 'led by the nose' (to use Butler's words again); to be led by the nose by anybody who claims that our 'existing institutions are not based on the strictest principles of morality'. You have here an example of how dangerous goodness can be if too much of it is combined with too little rational criticism.
But the Bishop does not stand alone. Some of you may remember an uncontradicted report from Prague in The Times, about four or five years ago, in which a famous British physicist was said to have described Stalin as the greatest of all scientists. One wonders what this famous physicist will say now that the doctrine of Stalin's satanism has become, if only for the time being, an essential component of the party line itself. It all shows how astonishingly liable we are to be led by the nose if anybody arises who claims to know the way to a higher morality.
The believers in Stalin offers a sad spectacle today. But if we admire the martyrs of Christianity, we cannot completely withhold a reluctant admiration from those who retained their faith in Stalin while being tortured in Russian prisons. Theirs was a faith in a cause we know to be bad; today even party members know it. But they believed in it in all sincerity.
We see how important this aspect of our troubles is if we remember that the great dictators were all forced to pay homage to the goodness of man. They were forced to pay lip-service to a morality in which they did not believe. Communism and nationalism are both believed in as moralities and religions. This is their only strength. Intellectually they border on absurdity.
The absurdity of the communist faith is manifest. Appealing to the belief in human freedom, it has produced a system of oppression without parallel in history.
But the nationalist faith is equally absurd. I am not alluding here to Hitler's racial myth. What I have in mind is, rather, an alleged natural right of man - the alleged right of a nation to self-determination. That even a great humanitarian and liberal like Masaryk could uphold this absurdity as one of the natural rights of man in a sobering thought. It suffices to shake one's faith in the wisdom of philosopher kings, and it should be contemplated by all who think that we are clever but wicked rathe than good but stupid. For the utter absurdity of the principle of national self-determination must be plain to anybody who devotes a moment's effort to criticizing it. The principle amounts to the demand that each state should be a nation-state: that it should be confined within a natural border, and that this border should coincide with the location of an ethnic group; so that it should be the ethnic group, the 'nation', which should determine and protect the natural limits of the state.
But nation-states of this kind do not exist. Even Iceland - the only exception I can think of - is only an apparent exception to this rule. For its limits are determined, not by its ethnic group, but by the North Atlantic - just as they are protected, not by the Icelandic nation, but by the North Atlantic Treaty. Nation-states do not exist, simply because the so-called 'nations' or 'peoples' of which the nationalists dream do not exist. There are not, or hardly any, homogeneous ethnic groups long settled in countries with natural borders. Ethnic and linguistic groups (dialects often amount to linguistic barriers) are closely intermingled everywhere. Masaryk's Czechoslovakia was founded upon the principle of national self-determination. But as soon as it was founded, the Slovaks demanded, in the name of this principle, to be free from Czech domination; and ultimately it was destroyed by its German minority, in the name of the same principle. Similar situations have arisen in practically every case in which the principle of national self-determination has been applied to fixing the borders of a new state: in Ireland, in India, in Israel, in Yugoslavia. There are ethnic minorities everywhere. The proper aim cannot be to 'liberate' all of them; rather, it must be to protect all of them. The oppression of national groups is a great evil; but national self-determination is not a feasible remedy. Moreover, Britain, the United States, Canada, and Switzerland, are four obvious examples of states which in many ways violate the nationality principle. Instead of having its borders determined by one settled group, each of them has managed to unite a variety of ethnic groups. So the problem does not seem insoluble.
Yet, in the face of all these obvious facts, the principle of national self-determination continues to be widely accepted as an article of our moral faith; and it is rarely challenged outright. A Cypriot appealed recently, in a letter to The Times, to this principle. He described it as a universally accepted principle of morality. The defenders of this principle, he proudly claimed, were defending the sacred human values and the natural rights of man (apparently even when terrorizing their own dissenting countrymen). The fact that this letter did not mention the ethnic minority of Cyprus; the fact that it was printed; and the fact that its moral doctrines remained completely unanswered in a long sequence of letters on this subject, all go a long way towards proving my first thesis. Indeed, it seems to me possible that more people are killed out of righteous stupidity than out of wickedness.
The nationalist religion is strong. Many are ready to die for it, fervently believing that it is morally good, and factually true. But they are mistaken; just as mistaken as their communist bedfellows. Few creeds have created more hatred, cruelty, and senseless suffering than the belief in the righteousness of the nationality principle; and yet it is still widely believed that this principle will help to alleviate the misery of national oppression. My optimism is a little shaken, I admit, when I look at the near-unanimity with which this principle is still accepted, even today, without any hesitation, without any doubt - even by those whose political interests are clearly opposed to it. But I refuse to abandon the hope that the absurdity and cruelty of this alleged moral principle will one day be recognized by all thinking men.
But let us now leave all these sad stories of misguided moral enthusiasm, and turn to our own free world. Resisting the temptation to offer further arguments in support of my first thesis, I will now proceed to my second.
I have said that I am a optimist. Optimism as a philosophical creed is best known as the famous doctrine, elaborately defended by Leibniz, that this world of ours is the best of all possible worlds. I do not believe that this thesis of Leibniz is true. But I am sure you will concede me the happy title of optimist when you hear my second thesis which refers to our free world - the Society of the Atlantic Community. My second thesis is this.
In spite of our great and serious troubles, and in spite of the fact that ours is surely not the best possible society, I assert that our own free world is by far the best society which has come into existence during the course of human history.
Thus I do not say, with Leibniz, that our world is the best of all possible worlds. Nor do I say that our social world is the best of all possible social worlds. My thesis is merely that our own social world is the best that has ever been - the best, at least, of which we have any historical knowledge.
I suppose you will by now concede me the right to call myself an optimist. But you may perhaps suspect me of being a materialist - of calling our society the best because it is the wealthiest which history has ever seen.
But I can assure you that this is not the reason why I call our society the best. Admittedly, I believe it to be a great thing to have succeeded, or very nearly succeeded, in abolishing hunger and poverty. But it is neither nylons nor nutritions, neither terylene nor television, which I chiefly admire. When I call our social world 'the best', I have in mind the very same values which led the former Bishop of Bradford to brand it as the work of the devil, only fourteen years ago: I have in mind the standards and values which have come down to us through Christianity from Greece and from the Holy Land; from Socrates, and from the Old and New Testaments.
At no other time, and nowhere else, have men been more respected, as men, than in our society. Never before have their human rights, and their human dignity, been so respected, and never before have so many been ready to bring great sacrifices for others, especially for those less fortunate than themselves.
I believe that these are facts.
But before examining these facts more closely, I wish to stress that I am very much alive to other facts also. Power still corrupts, even in our world. Civil servants still behave at times like uncivil masters. Pocket dictators still abound; and a normally intelligent man seeking medical advice must be prepared to be treated as a rather tiresome type of imbecile, if he betrays an intelligent interest - that is, a critical interest - in his physical condition.
But all this is not so much due to lack of good intentions as to clumsiness and sheer incompetence. And there is much to balance it. For example, in some countries belonging to the free world (I am thinking of Belgium), hospital services are being most successfully reorganized with the obvious aim of making them pleasant rather than depressing places, with due consideration for the sensitive, and for those whose self-respect may be wounded by practices now prevailing. And it is realized there how important it is to establish a genuine and intelligent co-operation between doctor and patient, and to ensure that a man, even a sick man, should never be encouraged to surrender his final responsibility for himself.
But let us turn to larger problems. Our free world has very nearly, if not completely, succeeded in abolishing the greatest evils which have hitherto beset the social life of man.
Let me give you a list of what I believe to be some of the greatest of those evils which can be remedied, or relieved, by social co-operation: They are:
Poverty
Unemployment and some similar forms of Social Insecurity
Sickness and Pain
Penal Cruelty
Slavery and other forms of Serfdom
Religious and Racial Discrimination
Lack of Educational Opportunities
Rigid Class Differences
War
Let us see what has been achieved; not only here in Great Britain, through the Welfare State, but by one method or another everywhere in the free world.
Abject poverty has been practically abolished. Instead of being a mass phenomenon, the problem has almost become one of detecting the isolated cases which still persist.
The problems of unemployment and of some other forms of insecurity have changed completely. We are now faced with new problems brought into being by the fact that the problem of mass-unemployment has largely been solved.
Fairly continuous progress is being made in dealing with the problems of sickness and pain.
Penal reform has largely abolished cruelty in this field.
The story of the successful fight against slavery has become the everlasting pride of this country and of the United States.
Religious discrimination had practically disappeared. Racial discrimination has diminished to an extent surpassing the hopes of the most hopeful. What makes these two achievements even more astonishing is the fact that religious prejudices, and even more so racial prejudices, are probably as widespread as they were fifty years ago, or very nearly so.
The problem of educational opportunities is still serious, but it is being tackled sincerely and with energy.
Class differences have diminished enormously everywhere. In Scandinavia, the United States, Canada, Australia and New Zealand, we have, in fact, something approaching classless societies.
My eighth point was war. This point I must discuss more fully. It may be best to formulate what I have to say here as my third thesis.
My third thesis is that since the time of the Boer War, none of the democratic governments of the free world has been in a position to wage a war of aggression. No democratic government would be united upon the issue, because they would not have the nation united behind them. Aggressive war has become almost a moral impossibility.
The Boer War led to a revulsion of feeling in Great Britain, amounting to a moral conversion in favour of peace. It was because of this attitude that Great Britain hesitated to resist the Kaiser, and that it entered the first world war only after the violation of Belgium. It was under its influence that Britain was ready to make allowances for Hitler. When Hitler's army entered the Rhineland, this was undeniably an act of aggression on his part. Yet public opinion in this country made it impossible for the Government to meet the challenge - although it would have been the most reasonable course to take, under the circumstances. On the other hand, Mussolini's open attack on Ethiopia so much outraged British public opinion that the Hoare-Laval plan, which wisely tried to keep Mussolini and Hitler apart, was swept away by an outburst of public indignation.
But a still stronger example is the public attitude towards the issue of preventive war against Russia. You may remember that, around 1950, even Bertrand Russell advocated a preventive war. And it must be admitted that there were strong reasons in favour of it. Russia was not yet in possession of an atomic arsenal; and it was the last opportunity of preventing Russia from acquiring the hydrogen bomb.
I do no envy the American President his power to decide between such terrible alternatives. The one alternative was to begin a war. The other was to allow Stalin to acquire the power to destroy the world; a power with which he certainly ought not to have been entrusted. Bertrand Russell was no doubt right in maintaining that from a purely rational point of view the second alternative was even worse than the first. But the decision went the other way. An aggressive war, even in these crucial circumstances, and with the then practical certainty of victory, had become morally impossible.
The free world is still ready to go to war. It is ready to go to war against heavy odds, as it has done more than once in the past. But it will do this only if faced with unambiguous aggression. Thus as far as the free world itself is concerned war has been conquered.
I have briefly discussed my list of eight great social evils.
I believe that it is most important to say what the free world has achieved. For we have become unduly sceptical about ourselves. We are suspicious of anything like self-righteousness, and we find self-praise unpalatable. One of the great things we have learned is not only to be tolerant of others, but to ask ourselves seriously whether the other fellow is not perhaps in the right, and altogether the better man. We have learned the fundamental moral truth that nobody should be judge in his own cause. This, no doubt, is a symptom of a certain moral maturity; yet one may learn a lesson too well. Having discovered the sin of self-righteousness, we have fallen into its stereotyped inversion: into a stereotyped pose of self-depreciation, of inverted smugness. Having learned that one should not be judge in one's own cause, we are tempted to become advocates for our opponents. Thus we become blind to our own achievements. But this tendency must be resisted.
When Mr Krushchev on his Indian tour indicted British colonialism, he was no doubt convinced of the truth of all he said. I do not know whether he was aware that his accusations were derived, via Lenin, largely from British sources. Had he known it, he would probably have taken it as an additional reason for believing in what he was saying. But he would have been mistaken; for this kind of self-accusation is a peculiarly British virtue as well as a peculiarly British vice. The truth is that the idea of India's freedom was born in Great Britain; as was the general idea of political freedom in modern times. And those Britishers who provided Lenin and Mr Krushchev with their moral ammunition were closely connected, or even identical, with those Britishers who gave India the idea of freedom.
I shall always regret that the great British statesman who answered Mr Krushchev had so little to say for himself, and for our different way of life. I am quite sure that he made no impression at all on Mr Krushchev. But I think he could have done so. Had he pointed to the difference between our free world and the communist world by way of the following example, I am sure Mr Krushchev would have understood him. Our statesman might have spoken thus:
'The difference between your country and mine can be explained as follows. Imagine that my chief, Sir Anthony, suddenly dies tomorrow. I can assure you that in our country nobody in his senses would even for a moment consider the possibility that I had murdered Sir Anthony. Not even a British communist would think so. This illustrates the simple difference between our respective ways of conducting our affairs. It is not a racial difference, to be sure, for we may learn from Shakespeare that not so very long ago we too conducted our affairs in that other manner.'
I believe in the importance of answering all those absurd but terrible accusations against Great Britain, often originating from British sources, which are current in the world today. For I believe in the power of ideas, including the power of false and pernicious ideas. And I believe in what I might call the war of ideas.
The war of ideas is a Greek invention. It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inventions ever made. Indeed, the possibility of fighting with words instead of fighting with swords is the very basis of our civilization, and especially of all its legal and parliamentary institutions. And this habit of fighting with words and ideas is one of the few things which still unite the worlds on the two sides of the Iron Curtain (although on the other side, words have only inadequately replaced swords, and are sometimes used to prepare for the kill). To see how powerful ideas have become since the days of the Greeks, we only need to remember that all religious wars were wars of ideas, and that all revolutions were revolutions of ideas. Although these ideas were more often false and pernicious than true and beneficial there is perhaps a certain tendency for some of the better ones to survive, provided they find sufficiently powerful and intelligent support.
All this may be formulated in my fourth thesis. It is as follows.
The power of ideas, and especially of moral and religious ideas, is at least as important as that of physical resources.
I am well aware of the fact that some students of politics are strongly opposed to this thesis; that there is an influential school of so-called political realists who declare that 'ideologies', as they call them, have little influence upon political reality, and that whatever influence they have must be pernicious. But I do not think that this is a tenable view. Were it true, Christianity would have had no influence on history; and the United States would be inexplicable, or merely the result of pernicious mistake.
My fourth thesis, the doctrine of the power of ideas, is characteristic of the liberal and rationalist thought of the eighteenth and nineteenth centuries.
But the liberal movement did not believe only in the power of ideas. It also upheld a view which I consider mistaken. It believed that there was little need for competing ideas to join battle. This was because it supposed that truth, once put forward, would always be recognized. It believed in the theory that truth is manifest - that it cannot be missed once the powers which are interested in its suppression and perversion are destroyed.
This important and influential idea - that truth is manifest - is one form of optimism which I cannot support. I am convinced that it is mistaken, and that, on the contrary, truth is hard, and often painful, to come by. This, then, is my fifth thesis.
Truth is hard to come by.
This thesis explains to some extent the wars of religion. And although it is a piece of epistemology, it can throw much light upon the history of Europe since the Renaissance, and even since classical antiquity.
Let me now, in the time that remains, try to give a brief glimpse of this history - of the history of our time, especially since the Renaissance and the Reformation.
The Renaissance, and the Reformation, may be considered as the conflict between the idea that truth is manifest - that it is an open book, there to be read by anybody of good will - and the idea that truth is hidden: that it is discernible only by the elect; that the book must be deciphered only by the ministry of the Church, and interpreted only by its authority.
Although 'the book' meant, in the first instance, the Bible, it subsequently came to mean the book of nature. This book of nature, Bacon believed, was an open book. Those who misread it were misled by prejudice, impatience, and 'anticipation'. If only you will read it without prejudice, patiently, and without anticipating the text, you will not err. Error is always your own fault. It is your own perverse and sinful refusal to see the truth which is manifest before you.
This naïve and, I believe, mistaken view that truth is manifest became the inspiration for the advancement of learning in modern times. It became the basis of modern rationalism, as opposed to the more sceptical classical rationalism of the Greeks.
In the field of social ideas, the doctrine that truth is manifest leads to the doctrines of individual moral and intellectual responsibility and of freedom; it leads to individualism, and to a rationalist liberalism. This doctrine makes the spiritual authority of the Church and its interpretation of the truth superfluous, and even pernicious.
A more sceptical attitude towards truth, on the other hand, leads to an emphasis upon the authority of the Church, and to other forms of authoritarianism. For if the truth is not manifest, then you cannot leave it to each individual to interpret it; for this would of necessity lead to chaos, to social disintegration, to religious schisms, and to religious wars. Thus the book must be interpreted by an over-riding authority.
The issue here can be described as one between individualistic rationalism and authoritarian traditionalism.
The issue between rationalism and authoritarian traditionalism can also be described as that between, on the one hand, faith in man, in human goodness as well as in human reason, and, on the other hand, distrust of man, of his goodness and of his reason.
I may confess that in the issue between faith in man and distrust of man, my feelings are all on the side of the naïve liberal optimists, even though my reason tells me that their epistemology was all wrong, and that truth is in fact hard to come by. I am repelled by the idea of keeping men under tutelage and authority. But I must admit, on the other hand, that the pessimists who feared the decline of authority and tradition were wise men. The terrible experience of the great religious wars, and of the French and Russian revolutions, prove their wisdom and foresight.
But although these wars and revolutions prove that the cautious pessimists were wise, they do not prove that they were right. On the contrary, the verdict of history - I mean, of course, the history of our time - seems, by and large, to favour those who had faith in man and in human reason.
For the society of our free world since the Reformation had indeed seen a decline of authority without parallel in any other epoch. It is a society without authority, or, as one might call it, a fatherless society.
The Reformation, by stressing the conscience of the individual, has dethroned God as the responsible ruler of Man's world: God can only rule in our hearts, and through our hearts. The Protestant believes that it is through his own human conscience that God rules the world. The responsibility for the world is mine and your: this is the Protestant faith; and the Bishop of Bradford spoke as a good Protestant when he appealed to his ministers to destroy a social world which was the work of the devil.
But the authoritarians and traditionalists were convinced that a non-authoritarian or fatherless society must spell the destruction of all human values. They were wise, I have said, and in a way they were the better epistemologists. And yet, they were wrong. For there were other revolutions, the Glorious Revolution, and the American Revolution. And there is our present free world, our Atlantic Community. It is a fatherless society ruled by the interplay of our own individual consciences. And, as I have tried to convince you, it is the best society that has ever existed.
What was the mistake of the authoritarians? Why must their wisdom be rejected? I believe that there are three elements in our free world which have successfully replaced the dethroned authority.
The first is our respect for the authority of truth: of an impersonal, interpersonal, objective truth which it is our task to find, and which it is not in our power to change, or to interpret to our liking.
The second is a lesson learnt in the religious wars. For I think that in these wars we did learn our lesson; we did learn from our mistakes (though in the social and political field this seems a rare and difficult thing). We learnt that religious faith and other convictions can only be of value when they are freely and sincerely held, and that the attempt to force men to conform was pointless because those who resisted were the best, and indeed the only ones whose assent was worth having. Thus we learnt not only to tolerate beliefs that differ from ours, but to respect them and the men who sincerely held them. But this means that we slowly began to differentiate between sincerity and dogmatic stubbornness of laziness, and to recognize the great truth that truth is not manifest, not plainly visible to all who ardently want to see it, but hard to come by. And we learnt that we must not draw authoritarian conclusions from this great truth but, on the contrary, suspect all those who claim that they are authorized to teach the truth.
The third is that we have also learnt that by listening to one another, and criticizing one another, we may get nearer to the truth.
I believe that this critical form of rationalism and, above all, this belief in the authority of objective truth is indispensable for a free society based on mutual respect. (This is why it is important not to let our thoughts be seriously influenced by such intellectual misunderstanding as relativism and irrationalism, the understandable results of disappointment with dogmatism and authoritarianism.)
But this critical approach makes room, at the same time, for a reconciliation between rationalism and traditionalism. The critical rationalist can appreciate traditions, for although he believes in truth, he does not believe that he himself is in certain possession of it. He can appreciate every step, every approach towards it, as valuable, indeed as invaluable; and he can see that our traditions often help to encourage such steps, and also that without an intellectual tradition the individual could hardly take a single step towards the truth. It is thus the critical approach to rationalism, the compromise between rationalism and scepticism, which for a long time has been the basis of the British middle way: the respect for traditions, and at the same time the recognition of the need to reform them.
What the future will bring us, we do not know. But the achievements of the past and of our own time show us what is humanly possible. And they can teach us that although ideas are dangerous we may learn from our mistakes how to handle them; how to approach them critically, how to tame them, and how to use them in our struggles, including our struggle to get a little nearer to the hidden truth.
-"Conjectures and Refutations, The Growth of Scientific Knowledge", Karl R. Popp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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