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없는 비-권위적 사회
(저항하는 사람이 최고의 인간이다)
그러나 권위주의자들과 전통주의자들은, 비-권위주의적이거나 아버지가 없는 사회는 틀림없이 모든 인간적 가치들의 파괴를 초래한다고 확신했다. 그들이 현명했고 어떤 면에서 더 훌륭한 인식론자들이었다고 나는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틀렸다. 이유인즉 다른 혁명인 명예혁명과 미국 혁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자유세계인 우리의 대서양 공동체가 있다. 그 세계는 우리 자신의 개인적 양심이 상호작용하며 다스려지는 아버지 없는 사회이다. 그리고 내가 여러분을 확신시키려고 노력한 바와 같이, 그 세계는 존재한 최고의 사회이다.
권위주의자들의 오류는 무엇이었던가? 그들의 지혜는 왜 거부되어야 하는가? 우리 자유세계에는 권좌에서 물러난 권위를 성공적으로 대체한 세 가지 요소들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첫 번째는 진리의 권위에 대한 우리의 존경이다: 우리가 발견해야 하는 과제이며 우리의 힘으로 바꿀 수도 없거나 우리가 좋아하는 대로 해석할 힘도 없는, 인격이 개입하지 않는 인간 사이에서 객관적 진리의 권위.
두 번째는 종교전쟁에서 습득된 교훈이다. 이유인즉 이 전쟁들에서 우리가 다음 교훈을 배웠다고 내가 정말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오류로부터 정말로 배웠다 (사회 분야 및 정치 분야에서 이것이 드물고 어려운 것으로 보일지라도). 종교적 신앙과, 다른 신념들은 자유롭고 신실하게 믿어질 때 가치를 띨 수만 있다는 것과, 사람을 강제로 순응하게 만들려는 시도는 무의미했다는 것을 우리는 배웠는데 왜냐하면 저항했던 사람들이 최고의 사람들이었고 정말로 그들의 동의는 받을만한 가치를 지닌 유일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믿음과 상이한 믿음을 관용하는 것뿐 아니라, 상이한 믿음들 및 그 믿음을 신실하게 믿는 사람들을 존중하는 것도 우리가 배웠다. 그러나 이것의 의미는, 우리가 서서히 신실함과 독단적 완고함이나 태만을 구분하기 시작하고 진리가 명백하지 않아서 진리를 알고자 열망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진리는 분명하게 가시적이지 않고 습득하기 어렵다는 탁월한 진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권위적인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 탁월한 진리로부터 배웠고, 그와 반대로 자신들이 진리를 가르칠 권위를 부여받았다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을 의심해야 한다고 우리는 배웠다.
세 번째는 서로의 주장을 경청하고 서로를 비판함에 의하여 우리가 진리에 더 가까이 갈 것임을 우리는 또한 배웠다는 것이다.
이 비판적 형태의 합리주의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객관적 진리라는 권위에 대한 이 믿음이 상호존경에 근거한 자유사회에 필수불가결하다고 나는 믿는다. (독단주의 및 권위주의에 대한 실망과 관련되어 이해 가능한 결과들인 상대주의와 비합리주의와 같은 지적[知的] 오해에 의하여 우리의 사고들이 심각하게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이것이다.)
그러나 이 비판적 접근방식으로 인하여 동시에, 합리주의와 전통주의 사이에 타협의 여지가 남는다. 비판적 합리주의자는 전통을 평가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자신이 진리를 신뢰할지라도 자기 자신이 그 진리를 어떤 방식으로 소유하고 있다고 믿지 않기 때문이다. 비판적 합리주의자는, 가치 있는 것으로서 정말로 매우 귀중한 것으로서 진리를 향한 모든 단계인 모든 접근방식을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전통들이 흔히 그런 단계들을 고취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그리고 또한 지적(知的) 전통 없이 개인이 진리를 향하여 단 한 발자국도 다가갈 수 없을 터임을 비판적 합리주의자는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영국식 중용(中庸: middle way)의 토대였던 것은 합리주의와 회의론 사이의 타협인 합리주의의 대한 비판적 접근이었다: 전통들에 대한 존중이자 동시에 전통들을 개혁할 필요에 대한 인식이었다.
미래가 무엇을 우리에게 가져다줄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과거와 우리시대의 업적들로 인하여 인간적으로 무엇이 가능한지가 우리에게 밝혀진다. 그래서 이념들이 위험할지라도 우리가 그 이념들을 어떻게 다룰지를 우리의 실수들로부터 배울 것임을 그 업적들이 우리에게 가르친다; 어떻게 그 이념들에 비판적으로 접근할지, 그 이념들을 어떻게 길들일지. 그리고 숨겨진 진리에 조금 더 가까이 가려는 우리의 싸움을 포함하여 우리의 싸움에서 그 이념들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그 업적들이 우리에게 가르친다.
ㅡ 칼 포퍼, “추측과 논박, 과학적 지식의 성장”, 1989년, 375-376쪽 ㅡ
But the authoritarians and traditionalists were convinced that a non-authoritarian or fatherless society must spell the destruction of all human values. They were wise, I have said, and in a way they were the better epistemologists. And yet, they were wrong. For there were other revolutions, the Glorious Revolution, and the American Revolution. And there is our present free world, our Atlantic Community. It is a fatherless society ruled by the interplay of our own individual consciences. And, as I have tried to convince you, it is the best society that has ever existed.
What was the mistake of the authoritarians? Why must their wisdom be rejected? I believe that there are three elements in our free world which have successfully replaced the dethroned authority.
The first is our respect for the authority of truth: of an impersonal, interpersonal, objective truth which it is our task to find, and which it is not in our power to change, or to interpret to our liking.
The second is a lesson learnt in the religious wars. For I think that in these wars we did learn our lesson; we did learn from our mistakes (though in the social and political field this seems a rare and difficult thing). We learnt that religious faith and other convictions can only be of value when they are freely and sincerely held, and that the attempt to force men to conform was pointless because those who resisted were the best, and indeed the only ones whose assent was worth having. Thus we learnt not only to tolerate beliefs that differ from ours, but to respect them and the men who sincerely held them. But this means that we slowly began to differentiate between sincerity and dogmatic stubbornness of laziness, and to recognize the great truth that truth is not manifest, not plainly visible to all who ardently want to see it, but hard to come by. And we learnt that we must not draw authoritarian conclusions from this great truth but, on the contrary, suspect all those who claim that they are authorized to teach the truth.
The third is that we have also learnt that by listening to one another, and criticizing one another, we may get nearer to the truth.
I believe that this critical form of rationalism and, above all, this belief in the authority of objective truth is indispensable for a free society based on mutual respect. (This is why it is important not to let our thoughts be seriously influenced by such intellectual misunderstanding as relativism and irrationalism, the understandable results of disappointment with dogmatism and authoritarianism.)
But this critical approach makes room, at the same time, for a reconciliation between rationalism and traditionalism. The critical rationalist can appreciate traditions, for although he believes in truth, he does not believe that he himself is in certain possession of it. He can appreciate every step, every approach towards it, as valuable, indeed as invaluable; and he can see that our traditions often help to encourage such steps, and also that without an intellectual tradition the individual could hardly take a single step towards the truth. It is thus the critical approach to rationalism, the compromise between rationalism and scepticism, which for a long time has been the basis of the British middle way: the respect for traditions, and at the same time the recognition of the need to reform them.
What the future will bring us, we do not know. But the achievements of the past and of our own time show us what is humanly possible. And they can teach us that although ideas are dangerous we may learn from our mistakes how to handle them; how to approach them critically, how to tame them, and how to use them in our struggles, including our struggle to get a little nearer to the hidden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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