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측과 논박 20장
휴머니즘과 이성
(번역 수정본)
스위스에서 발간된 총서 인문학 연구(Studia Humanitatis) 제1권은,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적(Humanist)’ 작가들에 관심을 가진 이탈리아 학자인 에르네스토 그라시(Ernesto Grassi)와 독일 생물학자 야코프 폰 우엑스퀼(Jacob von Uexküll)의 아들로 자신의 저서 이론 생물학(Theoretical Biology)으로 유명한 투레 폰 우엑스퀼(Thure von Uexküll)이라는 두 명의 친구들에 의하여 저술되었다. 정신과학과 자연과학의 기원 및 한계(The Origin and the Limits of the Moral and the Natural Sciences)를 다룬 그 저서는 인문주의자들의 정신 일깨우기를 겨냥한 상당히 흥미로운 운동의 일부이다. 이 신(新)-인문주의 운동은 20세기 동안 유럽대륙이 겪은 재난으로부터 태어난 특징적으로 중부유럽적이다; 그리고 검토되고 있는 그 저서가 학문적일 뿐 아니라 평온할지라도, 그 저서의 정조(情調: moods) 어떤 면과 도출된 결론 몇 가지는 이 유럽 사상가들이 살면서 경험했던 운명인 사회분열에 대한 충격적인 경험을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라면 쉽게 평가되지 않을 것이다. 신(新)-인문주의 운동은, 중부유럽이 겪어야 했던 인간적인 모든 것의 광범위한 타락과 도착(倒錯: perversion)에 관한 원인들과 치유책을 알고 있다는 신념에 (다른 몇 가지 운동도 공유한 신념) 의하여 고취된다. 그 운동의 요체는 인간과 인간의 ‘본질적 본성’에 ㅡ 인간이 지닌 문화적 창조성 ㅡ 대한 이해만이 인간이 겪는 해악을 경감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라시의 ‘서문’에
이 논평은 1951년에 쓰여서 철학계간(The Philosophical Quarterly), 2, 1952년에 (지면을 줄이기 위하여 편집자에 의하여 많이 삭제되어)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의하여 분명해지는 바와 같이, 그래서 그 운동은 인간의 철학을 발전시켜 저 중요한 인간 활동인 과학을 발전시키는 과제를 다시 떠맡는다. 이 철학에 따르면 과학은 ‘인문주의’의 일부로서 재해석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인문주의를 ‘인문학(humanities)’에 ㅡ 다시 말해서 역사적, 문헌학적 그리고 문학적 연구에 ㅡ 국한하는 ‘인문주의’와 ‘인문주의적(humanistic)’이라는 의미는 너무 편협한 것으로서 배척된다.
그리하여 그 저서는, 인문학과 자연과학 양쪽을 제자리에 두는 인간에 대한 새로운 철학을 겨냥한다고 언급될 것이다. 그 저서는 두 부분으로 ㅡ 그라시가 집필한 인문학(Geisteswissen-shaften)의 근원과 한계에 관하여(On the Origin and the Limits of the Humanities)와 우엑스퀼이 집필한 자연과학의 기원에 관하여(On the Origin of the Natural Sciences)로 ㅡ 구성된다. 그 두 부분은, 실용주의적 견해에 대한 거부와 결합되어 모호한 상대주의적 실용주의에 (인문주의자로 또한 자처했던 F. C. S. 쉴러[Schiller]를 상기시키는) 의하여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틀림없이 저자들은 이 견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며, 이 견해를 논평자가 자신들이 주장하는 요점을 알 능력이 없다는 증거로서 저자들이 간주할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견해 일치를 강조하는 그들의 다양한 시도들이 다소 억지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하여 그 저서 전체나 두 부분의 가치 혹은 흥미가 감소하지 않는다.
그라시가 집필한 첫 번째 부분은 인문주의의 본질에 관한 철학적 논문이다. 그 주제는 독일어 도야(Bildung)에 (흔히 ‘교양[culture]’으로 번역된다) 의하여 적시되는데, 그 단어는 여기서 인간 정신의 성장, 발전 혹은 자기-형성으로서 이해된다; 그리고 그 주제는, 옛 인문학의 교육적 목표(the old humanistische Bildungsideal: the educational aim of the humanities)에 대항하여 제기된 비판에 대처하려고 고안된 정신적 성장이라는 교육적 이상(理想)을 재확립하려고 시도하는데, 그라시에 따르면 그 주제가 뿌리를 두고 있던 사회적 및 문화적 전통이 사라짐으로 인하여 그 옛 인문학의 교육적 목표는 무의미해졌다. 그라시의 신(新)-인문주의적 설교가 근거한 원전은, 법률학과 의학의 상대적 장점들에 관한 논쟁인 C. 살루타티(Salutati)의 법률학과 의학의 우위성에 대하여(De nobilitate legum et medicinae)였다. (1390년에 집필되어 15세기 중엽에 출판되었다; E. 가린[Garin]이 저술한 비평본이 플로렌스[Florence]의 철학 연구원[Instituto di studi filosofici]에 의하여 1947년에 출판되었다. 의술인에 대한 페트라르크[Petrarch]의 유명한 공격과 더불어 그것은 아마도 칸트가 집필한 학부간의 논쟁(Streit der Fakultäten)의 최초 조상일 것이다.) 그라시는 이것을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상대적 장점들에 대한 토론으로서, 그리고 인문학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입증으로서 생각한다. 이 우월성은 오늘날보다 자연과학이 확립되었던 때 훨씬 더 잘 이해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주장되는 우월성은 세 가지이다. 먼저 다양한 자연과학들에 과학이나 지식(scientia 혹은 epistēmē)의 특징이라기보다는 ‘기술(arts)’의 (artes = technai라는 의미에서) 특징이 있었다고 주장된다; 살루타티의 관점에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양한 자연과학들이 자체의 ‘원리들’을 (베이컨의 ‘중간 원리들[middle principles]’과 일치하는) 다른 곳에서, 다시 말해서 철학적 지식에서 가져와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다양한 자연과학들이 그러므로 자체의 원리를 확립하는 저 학문 분야들보다 논리적으로 열등하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유래하며, 레오나르도[Leonardo]와 같은 후대 사상가들에 의해서 뿐 아니라 살루타티의 동시대인들에 의해서도 공유되었다.) 두 번째로 자연과학은 기교(techniques) 혹은 더 정확하게 기술(technologies)이라는 의미에서 기예(技藝: arts: artes)라고 주장된다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과 함께) ㅡ 자연과학들이 우리에게 힘을 준다고 주장된다; 그러나 그런 힘은, 베이컨이 생각한 바와 같이, 지식이 아닌데 이유인즉 진정한 지식이 두 번째나 중간 원리들로부터라기보다는 첫 번째 원리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이 기술들이 인간의 하인일지라도 그리고 이 기술들이 인간이 자신의 정신적 성장을 증진시키는 궁극적이고 필수적인 과제에서 인간에게 얼마간 도움이 될지라도, 이 과제를 성취하는 데로 인간을 데려갈 수는 없다; 이유인즉 이 기술들이, 자체의 특정 부차적 원리 없이는 소용없을 그 부차적 원리의 좁은 한계 속에서만 실재를 탐구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과 반대로, 법률학은 정치 과학인데, 옳고 그름의 학문이다. 그 자체로 법률학은 인간에게 유용할 (‘법은... 유익하다[ius.. a iuvando]’라고 살루타티는 말한다) 뿐 아니라, 본질적 의미에서 유용한데 그 까닭은 법률학이 ‘인간의 인간성을 구제한다’이기 때문이며, ‘인간의 완성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프로타고라스(Protagoras)가 가르친 바와 같이, 오직 원시적 정글과 숲(hūlē)을 떠나 질서 잡힌 정치적 공동체에 안주함에 의하여 사람들은 짐승을 초월한다. 이것이 인간의 정신적 성장(Bildung)에서 첫 번째 단계이며 모든 다른 단계들의 초석이 된다; 그리고 ‘인간의 역사는, 정치적 및 사회적 분야에서 공동체 생활이 전진하도록 만들 수 있는, 인간이 고안한 규준들의 성공이나 실패에 지나지 않는다’ (106쪽).
이것은 그라시의 기고문에 대한 완전한 개요가 전혀 아닌데, 그 기고문은 모든 시(詩)는 모방이다와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교설과 같은 문제와 비극론의 문제 특히 카타르시스(katharsis)의 문제 그리고 시간의 철학을 상세하게 다룬다. 그러나 이 나중의 화제를 토론하면서 불충분한 명료성과 일관성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된다; 그 토론들이 몇 가지 흥미로운 여담을 담고 있을지라도 논의되는 문제들을 새롭게 조명하지 못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토론들 중에서 탁월한 것은 인간 본성과 정신적 성장에서 본질적 요소로서 그라시가 상상력(imaginative power: Phantasie)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자연과학들에서 상상력의 역할이 자연과학들의 구조를 추적하는 역할에 국한된다는 그라시의 암시는 (102-3쪽) 내가 보기에 자연과학들을 공정하게 평가하지 않는다. 교육적이거나 독학적(獨學的) 관점에서 유래하는 가장 흥미로운 언급들 중 하나는 ‘정신적 성장의 인문주의적 개념’을 (Bildung) 그라시가 분석한 것에 포함되어 있다. 문학적 구절을 해석하려고 시도하면서 우리는 문제의 문맥에서 단어들에 특이하고 심지어 새로운 의미가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이것으로 인하여 우리는 새롭고 예기치 않은 것에 이른다. 예상치 않은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ㅡ 그래서 우리는 “성장한다” (und dabei "bilden" wir uns)’.
자연과학자는 자신이 자연현상의 새로운 ‘해석’을 채택하도록 강요당할 때 정확하게 동일한 방식으로 자연과학자의 정신이 ‘성장’할 수 있다고 그라시는 매우 공정하게 인정한다; 그러나 이 인정으로 인하여, 인문학의 교육적 우선순위를 확립하기 위하여 살루타티의 논증을 이용하려는 그의 시도가 파괴된다고 나는 본다.
그라시의 핵심적 주장으로 ㅡ 인문학의 세 가지 우월성 ㅡ 돌아가서 자연과학들이 기술들로서 교육된다면, 정신적 성장을 촉진하는 대신 정신적 성장을 질식시킬 위험에 빠져 있음을 나는 인정한다 (회화[繪畵: painting]와 시[詩]에 대해서도 아마도 동일하다); 그리고 자연과학들이 인간의 업적들로서, 인간 정신의 위대한 모험들로서, 인간 관념들의 역사에서 장들(章들: chapters)로서, 신화(神話) 만들기의 (내가 다른 곳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역사의 장들(章들: chapters)로서 그리고 그 신화(神話)를 비판하는 역사의 장들(章들: chapters)로서 취급되어야 (회화나 시[詩]처럼) 함을 나는 인정한다. 과학에 대한 그런 인문주의적 접근 가능성도, 그 접근의 필요성도 그라시에 의하여 언급되지 않는다; 반대로 구원은 자연과학들의 열등한 기술적 특징을 깨달아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것에 ㅡ 다시 말해서 자연과학들이 자체의 위치를 지키도록 만드는 데 ㅡ 놓여있다고 그가 믿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인문주의적’ 접근방식의 교육적 우선순위를 인정한 준비가 되어 있는 반면, 자연과학들에 대한 그라시-살루타티 이론의 ㅡ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직접적으로 도출되는 이론 ㅡ 타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 자연과학들이 제1철학(First Philosophy)으로부터 나온 자체의 원리들을 맹목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도 내가 그 진실성을 수용할 수 없는 교설이다. 그라시는 자연과학들이 자체의 ‘원리들’을 의문시하고, 비판하고 그리고 대체할지도 모른다고 인정함에 의하여 (내가 보기에 살루타티와 아리스토텔레스를 포기하는 것에 해당하는 인정), 그리고 다양한 자연과학들이 틀림없이 맹목적으로 상정(想定)하는 것은 (α) 과학의 목적들과 (b) ‘원리’에 대한 개념이라고 (자연과학들의 다양한 원리들이라기보다는) 주장함에 의하여 이 비판에 대처하려고 시도한다 (52쪽). 그러나 이 입장은, 살루타티의 논증이 근거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와 양립될 수 없지는 않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견해와 전혀 다르다.
문제의 실상은 이렇게 보인다. 의학이 우연히 기술인 ‘기예(技藝: art)라 할지라도, 자연과학들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생각될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면 오류이다; 이유인즉 의학이 순수과학이라기보다는 응용과학이기 때문이다. 순수과학에 관해서 자연과학이 순수수학과 반대로, 지식(scientia 혹은 epistēmē)이 아니라는 데 나는 동의한다; 그러나 자연과학이 기술(technē)이기 때문이 아니라 억측(doxa)의 영역에 속하기 ㅡ 그라시가 그렇게 높이 올바르게 평가하는 신화(神話)들과 꼭 마찬가지로 ㅡ 때문이다. (자연과학이 억측[doxa]의 영역에 속하지만 상당히 최근까지 지식[epistēmē]으로서 오해되었다고 깨달으면 이념들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이롭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하여 자연과학의 위상과 중요성을 살루타티가 우월하게 이해한 데로 우리가 돌아가야 한다는 그라시의 핵심적 주장은 내가 보기에 근거 없다. 게다가 적어도 영국에서는, 그라시가 재확립하려고 시도하는 문제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적) 견해는 영향력을 잃은 적이 없고 그리하여 그 견해는 재론할 ㅡ 심지어 타당한 논증들을 사용하여 재론할 ㅡ 필요가 없다.
투레 폰 우엑스퀼(Thure von Uexküll)이 저술한 저서의 두 번째 부분은 새로운 과학이론을 개발하려는 흥미진진하게 독창적인 시도이다 ㅡ 생물학적으로 지향하는 인식론이다. 아름답게 명료한 글이자 아마도 내가 회상할 수 있는 동시대 독일 산문의 최고 작품으로, 그 저서의 두 번째 부분은 저자의 아버지인 야코프 폰 우엑스퀼(Jakob von Uexküll)에게서 유래한 관념들의 새로운 전개인 생물학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법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이 접근방식의 근본적 범주는 (248쪽) 생물학적 행동(action: Handlung)의 범주이다. 그 범주를 설명하기 위하여, 자연과학이 다양한 상황에서 사물의 행태를, 그리고 특히 이 행태에서 발견될 질서나 규칙성을 기술(記述)하여 설명하려고 시도한다는 명백한 사실로부터 우리가 아마도 시작할 것이다. 이것은 물리학과 화학 그리고 생물학에서도 사실이다. 생물과학들에서 우리는 기관(器官: organs)과 조직(tissues) 및 세포 그리고 물론 전체 유기체들의 행태에 관심을 갖는다. 우엑스퀼 생물학의 핵심적 관념은, 전체 유기체의 행태를 기술(記述)하는 가장 성공적인 방법이 특정 ‘도식(schemata)’ 즉, 도식적 형태를 따르는 행동들을 통해서라는 것과, 이 ‘행동의 도식’과 ‘게임의 규칙들’이 소수의 근본적인 도식들과 규칙들을 정밀화하고 수정하는 것으로서 이해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 관념은 처음 보기에, 그 관념 자체가 결실 맺는 것을 증명할 때까지 사람들이 판단을 유보하는 경향을 지닐지라도, 그다지 놀라운 것은 아니지만 매혹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관념의 결실은, 우엑스퀼이 그 관념을 유기체의 부분들의 (기관, 조직, 기타 등등) 행태에 대한 문제에, 그리고 ‘생물학 내부에서의 물리적 및 화학적 방법들의 중요성’을 (166쪽) 매우 흥미롭고 진정으로 혁명적으로 분석한 것에, 탁월하게 적용함에 의하여 증명된다고 나는 믿는다.
우엑스퀼의 이론에 따르면, 각종 유기체에 대하여 확정된 숫자의 행동 도식이 존재하는데, 그 도식 각각은 특정 ‘방출-신호(release-signal: Auslöser)에 의하여 방출되고, 그 신호의 본성은 모의 장치(imitative contraption: Attrappe: dummy)를 구축함에 의하여, 실험에 의하여 발견될 수 있다. 이것들은 대부분의 경우에 놀라울 정도로 단순한 도식적 재현으로 환원될 수 있다. 비엔나의 생물학자 콘라트 로렌츠(Konrad Lorenz)는 예를 들어 (162쪽) 특정 종류의 거위들이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자신들이 조우하는 첫 번째로 움직인 물체를 따라감을, 그리고 심지어 자신들의 친어미를 만났을 때도 그 거위들은 계속해서 그렇게 함을 발견했다. 다른 어떤 새끼 새들에 대하여서는 (169쪽) 평범한 행동들을 (주둥이 벌리기) 위한 방출 신호로서 작동함에 의하여 부모를 대신할 모의 장치는, 부모 새의 머리와 몸체에 관한 일반화된 실루엣과 같은 것을 내놓는 둥근 판지 두 조각들이나 철판 조각으로만 구성된다. ‘그런 모의 장치의 도움을 받아서 우리는 몇몇 동물들의 생활 장면으로 들어갈 수 있다. 예민한 정신이 이 세상의 기묘함을 깨닫는 것은 감동적이고 심지어 충격적인 경험이다. 이 실재의 매혹적이고 위협적인 특징으로 인하여, 그 인상(印象: impression) 앞에서 자연에 대하여 우리가 지녔던 모든 옛 관념들과 개념이 틀림없이 작동하지 않는 인상(印象: impression)이 생긴다’ (169쪽). 이 접근방식을 생체조직-반응의 문제까지, 그리고 물리적 및 화학적 방법들의 사용 문제까지 우엑스퀼이 확대하는 것은 가장 흥미롭다고 나는 되풀이하여 말할 수 있을 따름이다. 우리가 생화학에서 실제로 수행하는 것은, 기관들이나 생체조직들의 행동에 대한 방출 신호들로서 사용될 수 있는 모의 장치들을 (dummies) 구축하는 것이라고 그는 제안한다. 이것이 몇 가지 난처한 질문들을 크게 조명할 것 같은, 크게 장래성이 있는 관념이라고 나는 믿는다. (예를 들어, ‘종판 전위[end-plate potentials]’의 측정과 같은 심지어 그런 미묘한 시험들에 직면한 몇 가지 신경-근육의 반응들에서 특정 화학적 및 전기적 자극의 기능적 등가[等價: equivalence] 문제를 내가 염두에 두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아마도 우엑스퀼의 요점을 예시하는 데 사용될 많은 경우들 중에서 또 다른 경우는, 세균 발육 억제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던 유명한 가설이다: 박테리아는 자신들이 흡수할 수 없는 어떤 화학물을 음식으로서 여기고 흡수한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다시 말해서 그 화학물은 모의 장치처럼 행동하고 행동을 받는다.)
우엑스퀼이 자신의 관념들을 생물학에 적용하는 것에 관하여 말해야 하는 모든 것은 칭찬을 넘어선다. 그의 이론들이 참인지 나는 모르지만 그 이론들은 두드러지게 독창적이다. 그 이론들에는 엄청난 설명력이 있을 뿐 아니라, 익숙한 것들을 완전히 새롭게 조명하는 힘도 있다; 그래서 어느 날 ㅡ 물론 실험가들이 이 새로운 관념들과 거의 생물학 모든 분야에 걸친 무수한 적용사례들을 주목한다면 ㅡ 그 이론들은 생물학적인 사고(思考)에서, 특히 생리학과 생화학 분야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다.
그러나 우엑스퀼은 이 저서에서 생물학자로서 (그리고 생물학의 방법론자) 뿐 아니라 철학자로서 말한다.
아마도 자신의 생물학적 적용사례들에 의하여 용기를 얻어 우엑스퀼은 자신의 근본적인 범주들을 지식 이론에 관한 전체 문제에 적용하려고 시도한다. 사물들을 ‘본질적으로(in themselves)’ 아는 것이 가능한지의 칸트(Kant)적 문제에서 시작하여, 자연 자체의 가장 깊은 내부(das Innere der Natur) 비밀을 발견하려는 물리학의 숙원들과, 이 숙원들의 실패를 그가 논의한다; 그리고 생물학적 행동의 세상에서 물리학의 역할을 결정하려는 상세한 시도 다음에 (그러나 나는 성공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생물학적 존재론에 ㅡ (우리의 세상인 우리들에-관한-실재만이 될 수 있는) 실재는 행동들의 구조라는 교설 ㅡ 도달한다; ‘다양한 종류와 다양한 확대 행동’에 관한 구조라는 교설 (248쪽); 그리고 그는 본질적인 세상에 대한 우리의 지식이라는 문제를, 세상인 행동들의 구조에 우리가 참여하는 문제에 의하여 대체한다.
이것은 많은 부분이 실용주의 및 조작주의 그리고 도구주의의 특정 형태를 기억나게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형이상학적 세상을 세우려는 쇼펜하우어와 베르그송 이후 가장 독창적인 시도들 중 하나이며 현대과학을 수용할 수 있는 시도이다. 이 새로운 시도는 존경심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 시도는 확신을 주지 못한다. 반대로 우엑스퀼의 지식 이론과 존재론은 오류에 근거하여 세워진 것임이 내가 보기에 분명하다. 관념론적 인식론의 함정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저질러진 그 오류가 존재하는 것을 알려진 것과 동일시하는 오류와 틀림없이 유사하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것이다; 즉, esse = sciri로 동일시하는 것. 이것으로 인하여 헤겔의 존재하는 것은 개념적으로 포착되는 것(esse = concipi)뿐 아니라 버클리(Berkeley)의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esse = percipi)이 발생하며, 이제 생물학자에게 지식이 옳게 일종의 행동인 존재하는 것은 행동이 가해진 것(esse = agi )이라는 다시 말해서 ‘실재’는 행동의 대상이거나 행동의 길에 놓인 대상물이거나 우리의 생물학적 행동들에 관한 도식의 요인이라는 ㅡ 상황적 요인 ㅡ 교설에 생물학자가 다다른다.
더 상세하게, 세 가지 오류들이 우엑스퀼의 논증에서 적시될 것이다. 첫 번째 오류는 물리학의 열망이 실패함을 기술(記述)하는 그의 분석에서 발견될 수 있다. 이 분석은 내가 보기에 상대성 이론에 대한 전형적 및 대중적 오해 몇 가지를 드러내는 것이다. (상대론적 우주가 지속적인 시간이나 지속적인 공간을 알지 못하고 ‘섬 같은[islandlike] 시공 관련들’만 알고 있다는 주장은 오류이다; 그리고 준거 체계의 등가 원리로부터 실재의 상대화를 추론하는 것도 오류이다: 반대로, 상대성은 시공 간격의 실재와 불변성 양쪽을 가르친다.) 현대 물리학은 (하이젠베르크[Heisenberg]에게 실례지만) 우주의 그림을 우리에게 제공하려고 정말로 노력한다; 이것이 잘 그려졌는지 잘못 그려졌는지는 물론, 아주 다른 문제이다. 우리가 이것을 깨닫는다면, 소위 해체되는 물리학의 세계관을 생물학의 새로운 세계관으로 우리가 대체해야 한다는 제안은 자체의 힘을 많이 잃는다.
두 번째 오류는 극도로 흥미롭다. 그 오류는 순환적으로 추리함 때문에, 그리고 로렌츠(Lorenz) 자신의 (그리고 우엑스퀼의) 새로운 생물학적 견해의 전체 결과를 이해하지 못함 때문에, 우엑스퀼이 로렌츠(Lorenz)를 비난하는 곳에서 (201쪽 이하) 저질러진다. 행동 도식들은 (‘생물학적 경험’의 도식들을 포함하여) 시행착오의 방식에 의하여 자체를 외부 세계에 적응시킴에 의하여 발전했다고 로렌츠는 믿는다고 그가 우리에게 말한다. 이 견해는 우엑스퀼에 의하여 배격된다. ‘우리들 주변의 세상이, 우리의 감각들에 주어지는 것으로서 생물학적 방출 신호의 총화일 따름이어서, 그리하여 우리의 생물학적 행동의 도식들에 대한 요인으로서만 존재한다는 발견의 결과인 새로운 태도를 로렌츠는 이해하지 못한다’고 (부분적으로 로렌츠 자신 때문에) 그는 주장한다 (202쪽). 로렌츠의 순환적 논증들이 ‘고전물리학의 우주 그림이 근거한 객관주의적인 상정(想定)들을 자신에게서 제거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우엑스퀼은 주장한다 (203쪽).
순환적 논증에 대한 비난이 우엑스퀼에 의한 것임과, 그의 틀린 추론이 적어도 부분적으로 옹호될 수 없는 현대물리학에 대한 그의 주관주의적 해석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이유인즉 자신의 전체 생물학적 분석이 (다소) 객관주의적인 접근방법의 가능성을 상정(想定)한다는 사실을 우엑스퀼이 간과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의 분석에 의하여 어미 새의 기능을 떠맡는 ‘모의 장치’에 대하여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그런 접근방식일 따름이다. 그것은 우리가 ㅡ 새의 ‘주관적’ 세상을 초월하는 우리의 ‘객관적’ 세상에서 ㅡ 새의 친어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장치가 무엇인지를 우리가 알기 때문일 뿐이어서, 동물 B가 그러지 못하는 반면 동물 A가 자신의 행동들에 의하여 친어미와 특정 종류의 모의 장치를 분별한다면, 동물 A는 저 정도까지 더 큰 분별력을 지녔고, 동일한 정도까지 가능한 특정 환경적 상황에 더 잘 적응한다고 우리가 말할 수 있다.
로렌츠의 견해는 (여러 해 동안 나도 그 의견을 공유했다) 방어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유한 인간적 상황을 ㅡ 동물의 ‘지식’을 무비판적이고, 말하자면, 우연한 적용과 반대로, 인간 언어인 비판적 지식의 논증적 이용에 근거한 현상 ㅡ 이해하는 데 필요하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으로 인하여 나는 우엑스퀼의 논증에서 세 번째 오류에 도달한다; 칸트를 찬양하는 사람에게서 이해하기 매우 힘든 오류에 도달한다. 그것은 그 저서의 가장 위태로운 오류이고, 칸트와 우엑스퀼 모두가 저지르는 오류이다. 그것은 인간의 이성을 ㅡ 신화(神話)들의 (신화들의 중요성은 그라시에 의하여 매우 잘 강조된다) 상상적 발명에 의해서 뿐 아니라, 인간 자신의 상상적 발명품들에 대한 합리적 비판에 의해서도 성장하는, 자신을 초월하는 인간 능력을 ㅡ 그들이 철저히 (그리고 거의 적대적으로 보인다) 무시하는 것이다. 이 창작품들은, 어떤 언어로 언명된다면, 다른 생물학적 행동들과 처음부터 다소 다르다; 이것은, 다르지 않다면 구분될 수없는 두 가지 생물학적 행동들의 도식 각각이 반대편 신화에 모순되는 신화를 (가령, 세상의 기원에 관한) 포함할 것이라는 사실로부터 알려질 것이다. 이유인즉 우리의 믿음 몇 가지가 실행과 즉각적으로 관련될지라도, 다른 믿음들은 조금이라도 실행과 관련되지만 오직 동떨어져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믿음들의 차이점들로 인하여 그 믿음들은 충돌할 것이고 그 믿음들의 상대적 소원함으로 인하여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합리적 비판이 발전할 것이고, 합리성의 표준과 ㅡ 첫 번째 상호주관적인 표준들 중 몇 가지 ㅡ 객관적 진리라는 관념이 발전할 것이다. 그리고 이 비판은 시간이 지나면 다른 사람들의 이론들과 믿음들에서 그리고 또한 자신의 이론들과 믿음들에서 약점과 오류를 발견하는 체계적 시도들로 발전할 것이다. 비록 점진적으로만 일지라도 인간이 생물학적 방출 신호의 세상과 관련된 주관성을 돌파할 수 있고, 이것을 넘어 인간 자신의 상상적 창작품에 있는 주관성과 이 창작품들이 부분적으로 의존할 역사적인 우연과 관련된 주관성을 돌파할 수 있는 것은 이 상호비판을 통해서이다. 이유인즉 합리적 비판과 객관적 진리에 관한 이 표준들에 의하여 인간이 지닌 지식이 그 지식의 진화적 이전 지식들과 구조적으로 달라지기 (그 지식을 어떤 생물학적이거나 인류학적 행동 도식에 포함시키는 일이 항상 가능한 상태로 남아있을지라도) 때문이다. 개별 인간의 존엄성을 창조하는 것은 이 표준들의 수용이다; 개별 인간을 지적(知的)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책임감을 지니도록 만드는 것은 이 표준들의 수용이다. 개별 인간을 합리적으로 행동하도록 만들뿐 아니라, 상충하는 이론들을 숙고하여 판단하고 차별하도록 만들기도 하는 것은 이 표준들의 수용이다.
객관적 진리와 비판에 관한 이 표준들로 인하여 개별 인간은 다시 시도하고, 다시 생각하는 것을 배울 것이다; 자기 자신의 결론에 도전하는 것과, 자기 자신의 결론들이 잘못되었는지 그리고 어디에서 잘못되었는지를 발견하려고 노력하면서 자신의 상상력을 사용하는 것을 배울 것이다. 이 표준들로 인하여 개별 인간이 모든 분야에서, 특히 과학에서 시행착오 방법 적용을 배울 것이다; 그리하여 개별 인간이 자신의 오류들로부터 어떻게 배우는지와 어떻게 그 오류들을 찾는지를 배울 것이다. 이 표준들은 개별 인간 자신이 얼마나 아는 게 없는지, 그래서 개별 인간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발견하는 데 개별 인간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이 표준들은 개별 인간이 지식에서 성장하는 데, 그리고 또한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 표준들은 자신의 성장이 다른 사람들의 비판에 기인한다는 사실 그리고 합리성은 비판을 경청하려는 마음가짐이라는 사실을 개별 인간이 인식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방식으로 이 표준들은 개별 인간이 동물적인 과거를 초월하는 데, 그리고 그와 함께 낭만적이고 비합리주의적인 철학들이 그를 포로로 붙잡아 두려고 시도할 주관주의와 주의주의(主意主義: voluntarism)를 초월하는 데 심지어 도움을 줄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정신이 성장하여 정신 자체를 초월하는 방식이다. 인문주의가 인간 정신의 성장과 관련된다면, 비판과 합리성의 전통이 아니라면 인문주의의 전통이 무엇이란 말인가?
ㅡ “추측과 논박, 과학적 지식의 성장”, 1989년, 칼 포퍼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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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ISM AND REASON
THE FIRST of a series of books, Studia Humanitatis, published in Switzerland, is written in Germany by two friends, Ernesto Grassi, an Italian scholar interested in the 'Humanist' writers of the Renaissance, and Thure von Uexküll, son of the German biologist Jakob von Uexküll, famous for his Theoretical Biology. The book which deals with The Origin and the Limits of the Moral and the Natural Sciences, is part of a movement of considerable interest that aims at re-awakening the spirit of the humanists. This neo-humanist movement is characteristically Central European, born of the disasters suffered by the Continent during this century; and although the book under review is not only scholarly but also serene, some of its moods, and some of the conclusions drawn, may not easily be appreciated by those who have no personal knowledge of the shattering experience of social disintegration through which it was the lot of these European thinkers to live. The neo-humanist movement is inspired by the conviction (shared by a number of other movements) that it knows both the causes and the cure of the widespread depravity and perversion of everything human which Central Europe has had to witness. Its message is that only the understanding of man and his 'essential nature' - his cultural creativity - can bring relief to our ills; and it tries, as is made clear by Grassi's 'Introductory Remark', to take up again the task of
This review, written in 1951, appeared first (with considerable cuts, made by the Editor, to save space) in The Philosophical Quarterly, 2, 1952.
developing a philosophy of man and of that important human activity, science. Science, according to this philosophy, is to be reinterpreted as a part of 'humanism'; consequently a meaning of 'humanism' and of 'humanistic' which confines humanism to the 'humanities' - that is, to historical, philosophical and literary studies - is rejected as too narrow.
The book may thus be said to aim at a new philosophy of man which puts both the humanities and the natural sciences in their proper place. It consists of two parts - On the Origin and the Limits of the Humanities (Geisteswissen-shaften) by Grassi, and On the Origin of the Natural Sciences, by Uexküll. The two parts are loosely connected by a vague relativistic pragmatism (reminiscent of F. C. S. Schiller, who also called himself a humanist) combined with a repudiation of pragmatist views. No doubt the authors will disagree with this opinion which they may take as proof that the reviewer is incapable of seeing their main point; but their various attempts to stress the identity of their views appear somewhat forced. This, however, does not diminish the value or the interest either of the whole or of its two parts.
The first part, Grassi's contribution, is a philosophical essay on the essence of humanism. Its main topic is indicated by the German word Bildung (often translated by 'culture'), which is here understood as the growth, the development, or the self-formation of the human mind; and it attempts to reestablish an educational ideal of mental growth designed to meet the criticisms raised against the old humanistische Bildungsideal (the educational aim of the humanities) which, according to Grassi, has become pointless owing to the disappearance of the social and cultural traditions in which it was rooted. The text on which Grassi's neo-humanistic sermon is based is a disputation concerning the relative merits of legal and medical science, C. Salutati's De nobilitate legum et medicinae. (Written in 1390, it was published in the middle of the fifteenth century; a critical edition by E. Garin was published in 1947 by the Instituto di studi filosofici in Florence. Together with Petrarch's famous attack on medical men it is perhaps the earliest ancestor of Kant's Streit der Fakultäten). Grassi takes this as a discussion of the relative merits of the humanities and the natural sciences, and as a vindication of the claim of the humanities to superiority. This superiority, he says, was much better understood at the time when the natural sciences were founded than it is today.
The superiority claimed is threefold. First, it is claimed that the various natural sciences have the character of 'arts' (in the sense of artes = technai) rather than of science or knowledge (scientia or epistēmē); this means, in Salutati's view, that they have to take their 'principles' (corresponding to Bacon's 'middle principles') from elsewhere, i. e. from philosophical knowledge, and that they are therefore logically inferior to those disciplines which establish their own principles. (This view derives from Aristotle and was shared by contemporaries of Salutati as well as by later thinkers such as Leonardo.) Secondly, it is claimed (with Francis Bacon) that the natural sciences are arts (artes) in the sense of techniques or rather technologies - that they give us power; but such power is not, as Bacon thought, knowledge, for true knowledge springs from first principles rather than from secondary or middle principles. Thirdly, although these technologies may be the servants of man, and although they may be of some help to him in his ultimate and essential task of furthering his mental growth, they cannot carry him on to the fulfilment of this task; for they inquire into reality only within the narrow limits of their particular secondary principles without which their efforts would be pointless.
As opposed to all this, legal science, which is political science, is the science of right and wrong. As such it is not only useful to man ('ius.. a iuvando', says Salutati), but useful in an essential sense, for it 'saves his humanity', it 'aims at his completion'. Only by leaving the primitive jungle or bush (hūlē) and settling in ordered political communities do men transcend the beasts, as Protagoras taught. This is the first step in their mental growth (Bildung), and the basis of all others; and 'human history is nothing but the success or failure of man-designed norms, enabling community life in the political and social spheres to proceed' (p. 106).
This is by no means a complete outline of Grassi's contribution, which deals at length with such problems as the Aristotelian doctrine that all poetry is imitation, with problems of the theory of tragedy, especially that of katharsis, and with the philosophy of time. Yet the discussions of these latter topics suffer severly from insufficient clarity and coherence; they do not, in my opinion, shed new light on the problems discussed, even though they contain some interesting asides. Outstanding among these are Grassi's emphasis on imaginative power (Phantasie) as an essential element in human nature and mental growth (이 문장에서는 emphasis를 복수 emphases로 표현하든지 are를 is로 고쳐야 한다. - 역자 주); but his hint (pp. 102-3) that its role in the natural sciences is confined to that of tracing out their framework does not appear to me to do justice to them. One of the most interesting remarks from the educational or self-educational point of view is contained in Grassi's analysis of the 'humanistic conception of mental growth' (Bildung). In trying to interpret a literary passage we may discover that in the context in question the words have an unusual and even a new meaning. 'This leads us to something new and unexpected. An unsuspected world opens itself before us - and thus we "grow" (und dabei "bilden" wir uns).'
Grassi very fairly concedes that the natural scientist's mind can 'grow' in precisely the same way when he finds himself compelled to adopt a new 'interpretation' of a natural phenomenon; but this concession seems to me to destroy his attempt to make use of Salutati's arguments to establish the educational priority of the humanities.
Returning to Grassi's central claim - the threefold superiority of the humanities - I admit that the natural sciences are in danger of stifling mental growth, instead of furthering it, if they are taught as technologies (the same is probably true of painting and of poetry); and that they should be treated (like painting and poetry) as human achievements, as great adventures of the human mind, as chapters in the history of human ideas, of the making of myths (as I have explained elsewhere), and of their criticism. Neither the possibility of such a humanistic approach to science, nor the need for it, is mentioned by Grassi; on the contrary, he seems to believe that salvation lies in the realization and explicit recognition of the inferior technological character of the natural sciences - in other words, in making them keep their place. But while I am ready to admit the educational priority of a 'humanist' approach, I cannot admit the validity of the Grassi-Salutati theory of the natural sciences - a theory which, of course, is directly derived from Aristotle. That the natural sciences have blindly to accept their principles from First Philosophy is a doctrine whose truth I cannot admit in any sense. Grassi tries to meet this criticism (p. 52) by conceding that the natural sciences may question, criticize, and replace their 'principles' (an admission which seems to me tantamount to a abandoning Salutati and Aristotle), and by asserting that it is (a) the aims of science, and (b) the conception of a 'principle' (rather than their various principles) which the various natural sciences must blindly presuppose. But this position, although not incompatible with the Aristotelian view on which Salutati's argument is based, is nevertheless completely different from it.
The truth of the matter seems to be this. Although medicine happens to be an 'art', a technology, it is a mistake to conclude that it may be taken as representing the natural sciences; for it is an applied rather than a pure science. As to the latter, I agree that natural science - as opposed to pure mathematics - is not scientia or epistēmē; not, however, because it is a technē, but because it belongs to the realm of doxa - just like the myths which Grassi rightly values so highly. (The realization that natural science belongs to the realm of doxa, but that it was usually mistaken, until fairly recently, for epistēmē is, I believe, fertile for understanding the history of ideas.) Thus Grassi's central claim that we ought to return to Salutati's superior understanding of the status and significance of the natural sciences seems to me unfounded. Moreover, in Britain at least, the (Aristotelian) view of the matter which Grassi tries to reestablish never lost its hold, and it is therefore hardly in need of a restatement - not even of a restatement that uses valid arguments.
The second part of the book, written by Thure von Uexküll, is an excitingly original attempt to develop a new theory of science - a biologically oriented epistemology. A beautifully clear piece of writing, perhaps the best piece of contemporary German prose I can recall, it introduces us to a new approach to biology, a new development of ideas which originated with the author's father, Jakob von Uexküll.
The fundamental category (p. 248) of this approach is that of a biological action (Handlung). To explain it, we may perhaps start from the obvious fact that the natural sciences try to describe and explain the behaviour of things under various conditions, and especially any order or regularity which may be discovered in this behaviour. This is true for physics, chemistry and biology. In the biological sciences we are interested in the behaviour of organs, tissues, cells, and, of course, whole organisms. The central idea of Uexküll's biology is that the most successful way of describing the behaviour of a whole organism is in terms of actions which follow certain schematic patterns of 'schemata', and that these 'schemata of action' and 'rules of the game' may be understood as elaborations and modifications of a small number of fundamental schemata and rules. This idea appears at first sight attactive if not very surprising, although one may be inclined to suspend judgment until it has proved its fruitfulness. But the fruitfulness of the idea is shown, I believe, by Uexküll's brilliant application of it to the problem of the behaviour of the parts of the organism (organs, tissues, etc.), and to a most interesting and truly revolutionary analysis of 'the significance of physical and chemical methods within biology' (p. 166).
According to Uexküll's theory, there exists for each kind of organism a definite number of action schemata, each of which is released by a certain 'release-signal' (Auslöser), whose nature can be found by experiment, by constructing an imitative contraption (Attrappe, dummy). These, in most cases, can be reduced to astonishingly simple schematic representation. The Viennese biologist Konrad Lorenz found, for example, that (p. 162) certain species of geese follow, as if it were their mother, the first moving object they encounter upon breaking their shells, and that they continue to do so even when they are confronted by their real mother. For certain other fledglings (p. 169) the imitative contraption which may replace the parent by operating as a release signal for normal actions (opening their beaks) consists simply of two round pieces of cardboard or sheet metal giving something like a generalized silhouette of the head and body of the parent bird. 'With the help of such imitative contraptions, we can make our entry into the scene of life of some animals. It is a moving and even a shattering experience for a sensitive mind to realize the strangeness of this world. The magical and threatening character of this reality creates an impression before which all our old ideas and conception of nature must fail' (p. 169). Uexküll's extension of this approach to the problem of tissue-reactions, and of the use of physical and chemical methods, is, I can only repeat, of the greatest interest. He suggests that what we actually do in biochemistry is to construct imitative contraptions (dummies) serviceable as release signals for the actions of organs or tissues. This, I believe, is an idea with a great future, likely to throw much light on some vexed questions. (I have in mind, for example, the question of the functional equivalence of certain chemical and electrical stimuli in some neuro-muscular reactions in the face of even such subtle tests as the measurement of 'end-plate potentials'. Another of the many cases which, I think, might be used to illustrate Uexküll's point is a well-known hypothesis which has been used to explain bacteriostasis: the bacteria, it is suggested, absorb a certain chemical which they cannot assimilate, mistaking it for food; that is, the chemical acts, and is acted upon, like a dummy.)
All that Uexküll has to say about the application of his ideas to biology is beyond praise. I do not know whether his theories are true, but they are strikingly original. They not only have great explanatory power, but also the power to put familiar things in a entirely new light; and one day, they may well open a new era in biological thinking, especially in the fields of physiology and biochemistry - provided, of course, that the experimentalists take notice of these new ideas and their countless applications in almost all fields of biology.
Yet Uexküll speaks in this book not only as a biologist (and methodologist of biology) but also as a philosopher.
Encouraged, perhaps, by his biological applications, Uexküll tries to apply his fundamental categories to the whole problem of the theory of knowledge. Starting from the Kantian question whether it is possible to know things 'in themselves', he discusses the old aspirations of physics to discover the innermost secret of nature itself (das Innere der Natur), and the failure of these aspirations; and after an elaborate (but I do not think successful) attempt to determine the role of physics in a world of biological actions, he ultimately arrives at a biological ontology - the doctrine that reality (which can only be our world, a reality-for-us), is a structure of actions; of 'actions of various kinds and various extension' (p. 248); and he replaces the problem of our knowledge of the world-in-itself by that of our participation in the structure of actions which is the world.
Although much of this is reminiscent of certain forms of pragmatism, operationalism, and instrumentalism, it is nevertheless one of the most original attempts since Schopenhauer and Bergson to erect a new metaphysical world, and one capable of accommodating modern science. This new attempt commands respect; but it does not carry conviction. On the contrary, it seems to me clear that Uexküll's theory of knowledge and his ontology are founded upon a mistake. Anybody acquainted with the pitfalls of idealistic epistemology will have no difficulty in seeing that the mistake made must be akin to that of identifying what is with what is known; or esse = sciri. This lead to Berkeley's esse = percipi as well as to Hegel's esse = concipi, and it now leads a biologist for whom knowledge is, rightly, a kind of action, to esse = agi, i. e. to the doctrine that 'reality' is the thing acted upon, or the object in the way of action, or a factor - the situational factor - of the schemata of our biological actions.
To be more specific, three mistakes may be pointed out in Uexküll's argument. The first can be found in his analysis describing the failure of the aspirations of physics. This analysis appears to me to exhibit some typical and popular misunderstandings of the theory of relativity. (It is a mistake to maintain that the relativist universe does not know continuous time or continuous space, but only 'islandlike space-time connections'; and it is a mistake to infer from the principle of the equivalence of reference systems the relativization of reality: on the contrary, relativity teaches both the reality and the invariance of spatio-temporal intervals.) Modern physics (pace Heisenberg) does not attempt to give us a picture of the universe; whether this is drawn well or badly is, of course, a very different question. If we realize this, the suggestion that we must replace an allegedly dissolving world-view of physics by a new world-view of biology loses much of its force.
The second mistake is an extremely interesting one. It is made at a point (pp. 201 ff.) where Uexküll blames Lorenz for reasoning in a circle, and for failing to realize the full consequences of his own (and Uexküll's) new biological attitude. Lorenz, he tells us, believes that the action schemata (including those of 'biological experience') have developed by adapting themselves to the external world by the method of trial and error. This view is rejected by Uexküll. Lorenz, he claims, 'fails to grasp the new attitude which is the result of the discovery' (due partly to Lorenz himself) 'that the world around us, as it is given to our senses, is only the sum total of the biological release signals, and that it exists therefore only as a factor of the schemata of our biological actions' (p. 202). Uexküll asserts that Lorenz's circular argument is due to his failure 'to rid himself of the objectivist assumptions upon which the picture of the universe of classical physics rests' (p. 203).
I have no doubt that the accusation of arguing in a circle falls back on Uexküll, and that his faulty reasoning is at least partly due to his untenable subjectivist interpretation of modern physics. For Uexküll overlooks the fact that his whole biological analysis presupposes the possibility of a (more or less) objectivist approach. It is only such an approach which enables us to speak, for example, of an 'imitative contraption' taking over the functions of a bird's mother. It is only because we know - in our 'objective' world, which goes beyond the bird's 'subjective' world - what its real mother is, and what a contraption is, that we can say that, if animal A differentiates by its actions between its real mother and an imitative contraption of a certain kind while animal B does not, then A has, to that extent, the greater powers of discrimination or differentiation, and is, to the same extent, better adapted to certain possible environmental situations.
Lorenz's view (which I have shared for many years) is not only defensible, but necessary for understanding the peculiar human situation - the phenomenon, based on the argumentative use of the human language, of critical knowledge, as opposed to the uncritical and, as it were, accidental adaptations of the animal's 'knowledge'.
And this brings me to the third mistake in Uexküll's argument; a mistake which is very hard to understand in one who admires Kant. It is the gravest mistake of the book, and one which both authors share. It is their complete (and it seems, almost hostile) neglect of human reason - of man's power to grow, to transcend himself, not only by the imaginative invention of myths (whose importance is so well emphasized by Grassi), but also by the rational criticism of his own imaginative inventions. These inventions, if formulated in some language, are from the start somewhat different from other biological actions; this may be seen from the fact that each of two schemata of biological actions which otherwise are indistinguishable may contain a myth (concerning, say, the origin of the world) which is contradictory to the other. For although some of our beliefs may be immediately relevant to practice, others are only remotely relevant to it, if at all. Their differences may make it possible for them to be argued about. In this way, rational criticism may develop, and standards of rationality - some of the first inter-subjective standards - and the idea of an objective truth. And this criticism may, in time, develop into systematic attempts to discover what is weak and untrue in other people's theories and beliefs, and also in one's own. It is by this mutual criticism that man, if only by degrees, can break through the subjectivity of a world of biological release signals, and, beyond this, through the subjectivity of his own imaginative inventions, and the subjectivity of the historical accidents upon which these inventions may in part depend. For these standards of rational criticism and of objective truth make his knowledge structurally different from its evolutionary antecedents (even though it will always remain possible to subsume it under some biological or anthropological schema of action). It is the acceptance of these standards which creates the dignity of the individual man; which makes him responsible, morally as well as intellectually; which enables him not only to act rationally, but also to contemplate and adjudicate, and to discriminate between competing theories.
These standards of objective truth and criticism may teach him to try again, and to think again; to challenge his own conclusion, and to use his imagination in trying to find whether and where his own conclusions are at fault. They may teach him to apply the method of trial and error in every field, and especially in science; and thus they may teach him how to learn from his mistakes, and how to search for them. These standards may help him to discover how little he knows, and how much there is that he does not know. They may help him to grow in knowledge, and also to realize that he is growing. They may help him to become aware of the fact that he owes his growth to other people's criticism, and that reasonableness is readiness to listen to criticism. And in this way they may even help him to transcend his animal past, and with it that subjectivism and voluntarism in which romantic and irrationalist philosophies may try to hold him captive.
This is the way in which our mind grows and transcends itself. If humanism is concerned with the growth of the human mind, what then is the tradition of humanism if not a tradition of criticism and reasonableness?
-"Conjectures and Refutations, The Growth of Scientific Knowledge", Karl R. Popp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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