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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메니데스의 시

이윤진이카루스 2024. 11. 24.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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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르메니데스의 시

 

파르메니데스의 시는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문체를 모방하여 집필되었는데 그의 언어는 자주 그들을 암시한다. 그 시는 파르메니데스가 여신(女神) 디케(Dikē)로부터 받은 계시를 기술한다. 여신이 명시하는 바와 같이 그 계시는 두 가지 구별되는 부분으로 나뉜다. 1부에서 여신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에 관하여 진리를 ㅡ 전체 진리를 ㅡ 계시한다: 실재와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물체들의 세계에 관하여 진리를 ㅡ 전체 진리를 ㅡ 계시한다. 2부에서 여신은 현상의 세계에 관하여, 죽을 운명을 지닌 인간의 망상적 세계에 관하여 말한다. 그녀는 2부의 첫머리에서 이제부터 그녀의 말이, 다른 설명보다 더 진리와 같을지라도, 참이 아니라 기만적이고 심지어 사기성이라고 파르메니데스에게 경고한다.

파르메니데스의 계시를 두 부분으로 이렇게 분리하는 것은, 통상적으로 진리의 길견해의 길로 구별되는데, 파르메니데스의 작품에 관하여 최초이자 가장 큰 미해결 문제를 야기한다. 여신의 계시가, 그녀가 명시적으로 말하는 바와 같이, 우주에 대한 참인 설명뿐 아니라 참이 아닌 설명도 포함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란 기묘하고 난해하다. 이것으로 인하여 논평자에게 ㅡ 파르메니데스의 저술을 이해하여, 가능하면 설명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ㅡ 핵심적인 문제가 부과된다고 나는 제안한다.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 계시의 두 부분을 살펴보아야 한다.

2부는 의견의 (또한 흔히 견해[doxa]로 불린다) 길로 지칭되는데 참이 아닌 것으로서 그래서 기만적인 말을 포함하는 것으로서 여신 자신에 의하여 기술되고 죽을 운명을 지닌 인간에게 나타나는 세계에 대한 우주론과 우주기원론을 설명한다. 그것은 틀림없이 파르메니데스 자신의 고도로 독창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2부가 강력하게 이원론적일지라도, 다소 전통적인 노선 위에 있다: 이오니아의 철학자들이 그랬던 바와 같이 하나의 건축자재를 상정(想定)하는 대신, 파르메니데스는 현상의 세계이자 우리의 평범한 세계인 부단히 변화하는 세계이며 죽은 운명인 인간의 세계에 건축자재의 이중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서 그 세계에 두 가지 건축자재가 필요한데, 그 자재는 (night)’으로 지칭된다. 위 논문 4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그는 이 변화의 세계에 있는 만물이 빛과 밤의 혼합물에 의하여 생성된다고 가정한다. 이 혼합물로부터 지구와 천체가 필연의 여신인 아난케(Anankē)의 감독을 받아서 발생하며, 아난케는 모든 것을 조종한다고 언급된다.

여신의 계시 중 2부인 견해의 ㅡ 죽을 운명인 인간의 습관적 견해의 ㅡ 길은 아낙시만드로스, 헤라클레이토스, 그리고 아마도 피타고라스(Pythagoras)와 같은 파르메니데스의 선배의 노선을 다소 따르는 우주론이다; 그러나 그 2부는 지구가 공 모양이라는 교설과 달에 대한 이론과 같은 중요한 독창적인 관념을 포함한다. 그러나 이 계시의 1부인 진리의 길은 독창적일 뿐 아니라 혁명적이기도 하다. 1부가 그렇게 독창적이고 대담하여 그 이론이 몇몇 비평가들에 의하여 미친 짓에 근접하는 것으로서 기술되어 철학사에서 독특하다고 언급될 수 있다. 그러므로 비평가들은 1부가 우주론적 전통에 속하는 것으로서 간주되어서는 안 되며, 1부가 우주론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내가 보기에 오류다. 2부인 견해의 길이 우주론이라면 1부도 틀림없이 그렇다; 이유인즉 분명히 파르메니데스가 여신의 계시인 이 두 부분을, 서로 대립하는 두 가지 반대되는 것과 같은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는 1부를 실재에 관하여, 실재적 세계 질서인 실재적 우주에 관하여 진리를 말하는 것으로서 간주했다; 그리고 2부를, 현상의 세계를 ㅡ 죽을 운명인 인간에게 나타나는 바와 같은 세계 ㅡ 기술하는 기만적 견해를 보고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그리하여 나는 진리의 길이 우주론을 포함한다고 제안한다: 견해의 길은 진리를 기만적으로 닮은 것으로 밝혀지는 것을 기술하는데 그 닮은 것은 진리에 훨씬 미치지 못하여 망상으로 기술될 것인 반면 진리의 길은 실재적 우주인 세계의 실재적 질서에 관한 실재적 진리를 밝힌다.

1부인 진리의 길에 계시된 우주론은 간단하지만 냉혹하다: 그것은 죽은 세계이자 변화도 움직임도 없는 우주다. 이 우주는 완벽하게 동질성이자 구조가 없는 아주 둥근 하나의 구형 덩어리로 구성된다. 이 우주에는 부분이 없다: 그 우주는 하나다. 그 우주에는 기원이 없고 그리하여 우주기원론도 없으며 그 우주는 항상 존재했고 존재하며 항상 변화도 없고 색깔도 없이 정지 상태에 있을 것이다.

진리의 길이라는 교설은 파르메니데스 이전 모든 우주론과 또한 파르메니데스가 진리의 길과 대비시키고 싶어 하는 견해의 길이라는 우주론과 완벽하게 다르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가 밝히는 진리의 길이라는 교설이, 우주론적 전통과 공유하는 몇 가지 측면이 있다.

파르메니데스는 의식적으로 실재와 현상을 대립시켜 변화하는 현상 뒤에 변화하지 않는 참된 한 가지 실재를 의식적으로 상정(想定)한 최초의 사상가였다. 그러나 그의 선배들 또한, 덜 급진적이고 아마도 의식적으로 유지되지는 않았을지라도, 매우 유사한 차별성을 이용하여 암묵적으로 사색했다. 탈레스(Thales)는 만물이 이라고 말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만물의 근원이나 원리인 아르케(αrchē)가 무한하고 비확정적인 것인 아페이론(Apeiron)이라고 말했다; 그의 후계자 아낙시메네스(Anaximenes)는 그 원리가 공기라고 말하고,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이 불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피타고라스는 만물이 숫자라고 말했고 아마도 우주의 원리는 숫자 1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이것들을 언급하면서 그들 각자는 현상 뒤에 있는 숨겨진 참된 실재를 상정했다. 이것으로 인하여 파르메니데스가 밝히는 진리의 길이, 파르메니데스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의 선배들보다 더 급진적일지라도, 우주론적 전통의 과정을 따름이 밝혀진다.

유사한 언급이 일원론에 대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방금 언급된 파르메니데스의 모든 우주론적 선배들은 일원론자들이었는데, 이원론자였을 피타고라스는 제외가 가능하다. 파르메니데스는, 자신의 일원론에서 자신의 선배들보다 훨씬 더 급진적이었을지라도, 역시 일원론자였다; 그는 자신의 선배들을 그 선배들의 이론체계가 진정으로 일원론적이 아니었음을 깨닫지 못한다고 비난했던 듯하다: 논리적으로 그 선배들의 이론체계가 견해의 길에서 여신이 그러는 바와 같이 최소한도 두 가지 원리를 ㅡ 빛과 밤(night)처럼 ㅡ 이용하여 작동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고 비난했던 듯하다.

다르고 아마도 더 중요한 요점은 이렇다. 여신은, 진리의 길을 계시함에 의하여, 파르메니데스의 선배들이 또한 묵시적으로 조우했던 문제이자 헤라클레이토스의 핵심적 문제로서 기술될 문제인 변화의 문제에 대하여 해결책을 묵시적으로 제공한다. 그 문제는 다음과 같이 표현될 것이다. ‘변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ㅡ 다시 말해서, 논리적으로 가능한가? 물체는 자신의 정체를 잃지 않고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가? 물체가 동일한 상태로 남아있다면 그 물체는 변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물체가 동일하게 남아있지 않다면 그 물체는 더 이상 변화한 물체가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한 헤라클레이토스의 해결책은 안정된 물체는 없다는 것과, 표면적인 모든 물체는 화염처럼 실제로 과정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오직 변화만 있다. 파르메니데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해결책을, 나중에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랬던 바와 같이, (논리적으로) 수용될 수 없는 것으로서 간주했던 듯하다. 파르메니데스 자신의 해결책은 매우 급진적이고 진리의 길에서 여신에 의하여 자신에게 계시되는데, 변화는 망상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변화는 없다. 그리하여 진리의 길에 의하여 우주론적 전통에서 발생하는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해결된다. 변화하지 않는 덩어리 우주라는 이론이 한 가지 우주론이다.

ㅡ 칼 포퍼 저, 아르네 피더슨 편집, “파르메니데스의 세계”, 2007, 111114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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