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시작
3 철학의 시작
철학적 사색은 이오니아인들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상정된다: 밀레토스(Miletus)의 탈레스(Thales)와 그의 제자이자 친척인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er)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상정된다. 그리고 정말로 매우 새롭고 중요한 것이 이 두 사람에 의하여 추가되었다. 그들은 비판적 접근방식 즉, 비판적 전통을 추가했다: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로부터 기인하는 우주의 모형과 같은 설명적 신화를 비판적 눈으로 보는 전통. 초기 그리스 철학이나 초기 그리스 과학이 신화 만들기에 추가한 것은 다음과 같은 한 가지 새로운 태도라고 나는 제안한다: 비판에 비추어 설명적 신화를 변경하는 태도인 비판적 태도. 합리성으로서 다소 느슨하게 기술될 것의 특징으로서 내가 간주하는 것은, 진리에 더 근접하려는 희망에서 수행되는 설명적 이야기들이나 설명적 이론들에 대한 이 비판적 검토이다. 그리고 이 신화들에서의 변화를 설명하고 신화 만들기로부터 과학을 매우 많이 닮은 것으로 놀라울 정도로 빠른 발전을 설명하는 것이 이 비판적 검토이다. 이론들은 사색적으로 남는다; 그러나 엄격한 비판의 영향을 받아서 이론들은 점점 더 큰 등급의 진리유사성을 드러낸다. 이 발전이 설명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비판적 태도가 이오니아 철학파에게 전통이 되었다는 추측에 의해서이다.
탈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여 그리스 철학의 창시자로서 인정되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안에 따르면, 또 다른 호메로스의 전통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 바다의 신(神) 오케아노스(Oceanus)라는 호메로스의 신화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다. 바다는 신(神)들의 최초 아비였고, 그리고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바 신(神)들이 물에 의하여 혹은 더 정확하게 말해서 강(江)의 여신 스틱스(Styx)에 의하여 맹세하는 이유이다. 이유인즉 아리스토텔레스가 서술하는 바, ‘매우 오래된 것은 가장 존경을 받는다; 그리고 가장 존경을 받는 것은 그것에 의하여 사람이 맹세하는 것이다’이기 때문이다. 이 설명이 옳든 그르든, 탈레스에 따르면 물이 만물의 근원이고 땅은 물 위에 떠 있다는 말을 우리가 듣는다. 이제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유사한 설명적 신화가 고대 이집트에서 흔했다.
여기서 나의 흥미를 자극하는 것은 땅이, 선박처럼, 물 위에 놓여있다는, 혹은 물 위에 떠있다는 이론이다 ㅡ 예를 들어 지진을 설명하려고 고안되었던 것으로 보이는 이론.
땅이 바다에 의하여 지탱된다는 탈레스의 이론은 흥미롭고, 순전히 합리적 관점에서 보면 그 이론은 심각한 내재적 비판에 노출되어 있다: 그 이론은 무한회귀를 유발한다. 이유인즉 그 이론에 의하여 ‘바다는 무엇에 의하여 지탱되는가?’라는 의문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바와 같이, 그런 이론을 제시하면 ‘{처음 사례에서} 땅 자체에 대하여 제기된 바와 같이 땅을 지탱하는 물에 관하여 동일한 의문이 제기될 것임을 잊는 것이다.’
이것이 정확하게 탈레스의 친척이자 제자였던 아낙시만드로스가 탈레스의 이론에 반대하여 당초에 제기했던 비판일 개연성이 있는 듯하다; 그리고 믿을 수 없이 대담하고 중요한 아낙시만드로스의 사변적 이론이 최소한도 내가 전에 언급한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우주 모형에서 영감을 받았을 개연성도 있다.
이유인즉 아낙시만드로스가 ‘지구는 공중에 떠 있다. 지구를 지탱하는 것은 없다. 지구는 만물로부터 등거리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자기 위치를 지속한다’고 가르쳤다고 우리가 듣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낙시만드로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표현하는 바와 같이, ‘평형 때문에 지구가 정지해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 속한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계속해서 말하는 바, ‘이유인즉 극단까지 평형적 관계를 지닌 중심에 {우주의} 확립된 물체에 아래나 {아마도} 옆보다는 위로 움직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물체가 반대 방향으로 동시에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지해있다.’
지탱되지 않고 자유롭게 매달려있는 지구라는 이 이론은, 원거리에서 지구에 작용하는 힘의 균형에 의하여 지구가 자기 자리를 지키는데, 자체의 대담성에서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 이론은 뉴튼의 이론 쪽으로 첫걸음이 된다; 그리고 나의 견해로 아낙시만드로스의 대담한 이론이 없었다면 뉴튼을 낳고 뉴튼을 초월하는 과학적 사고의 발전이 아마도 없었을 터라고 우리가 말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과학으로 향하는 이 숨이 막힐 지경인 단계는, 그렇게 많은 경험론자들이 아는 바와 같이, 관찰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고 오히려 지구의 근원과 올림포스 신(神)들의 음모에 대한 상상적 이야기를 지닌 신화적 운문인 호메로스(Homer)의 일리아드(Iliad)와 헤시오도스(Hesiod)의 신통기(神統記:Theogony)에 대한 비판적 수정에 근거했다.
우주에 대한 아낙시만드로스의 새로운 모형이 구형(球形) 형체를 지구에 아니라 하늘에 귀속시킨 것은 매우 흥미롭다. 이유인즉 아낙시만드로스의 이론에 따르면 지구의 형체가 ‘자체의 높이는 자체 너비의 3분의 1인 북의 {혹은 짧은 원통의} 형체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나중의 보고서는 지구의 형체가 구형[球形]이라는 교설을 아낙시만드로스에게 귀속시키지만, 이 보고서가 오류라는 것이 지금은 일반적으로 수용된다.) 지구가 원반의 형체가 아니라 구형(球形) 형체를 지니고 있다고 최초로 선언했던 위대한 사상가는, 이 가설을 달까지 확대했고 아마도 모든 천체에 확대했는데, 엘레아(Elea) 출신의 파르메니데스(Parmenides)였던 듯하다.
ㅡ 칼 포퍼 저, 아르네 피터슨 편집, “파르메니데스의 세계”, 2007년, 109-111쪽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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