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측이 과학이 되는 방식
버넷(Burnet)은 예전에, 우리가 파르메니데스를 칸트 이전의 칸트로서 해석해서는 (테오도르 곰페르츠[Th. Gomperz]가 했던 바와 같이) 안 된다고 말했다 (논문 4, II절 참조): 우리가 두 가지 길을 실재 대(對) 현상으로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것이 정확히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다. 차이점은 주로 칸트가 뉴튼 이후의 파르메니데스였다는 것과, 뉴튼 이후 현상의 세계가 단순히 망상으로서 더 이상 포기되거나 비난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견해(doxa)의, 현상의 세계는 과학적 ‘진리’의 영역이 되었다.
파르메니데스는, 자신의 초기 발견들에 대한 자신의 순진한 신뢰가 흔들리자마자, 그 발견들을 과학이나 지식 혹은 진리로서 선언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 훌륭한 과학자여서 그 발견들을 몽땅 버릴 수 없었다. 그는 다른 인간들보다 자신이 진리에 더 가까이 왔음을 알았다.
사상사에는 (그리고 과학사) 많은 유사한 태도의 사례가 있다. 보어(Bohr)의 대응 논증; 슈뢰딩거(Schrödinger)의 쇼펜하우어주의; 일반상대성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견해 (자신이 고도로 비판적이었던); 심지어 원격작용에 대한 뉴튼의 태도와 면적 법칙에 대한 케플러의 혐오는 모두, 위대한 과학자들이 자신들이 더 큰 진리 유사성을 향하여 한 걸음 전진했다고 합당하게 느꼈을지라도 그 과학자들이 그 진리를 믿지 않았던 어떤 업적을 발표했던 경우들로서 언급될 것이다.
우리가 파르메니데스의 작품에 (DK B8: 60) 있는 eoikotα를 위에 논증된 바와 같이 크세노파네스에 의하여 ‘진리와 유사한’이라는 의미로 처음 사용된 용어로서 수용한다면, 파르메니데스가 (혹은 여신이) 말하는 것은 견해의 길을 집필한 이유들 중 한 가지 이유가 그 길의 우주론이 지닌 우월한 진리 유사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가, 과학에 대한 자신의 커다란 공헌과 과학에 대한 자신의 커다란 관심에도 불구하고, 견해의 길과 자신이 이전에 지녔던 우주론인 자연과학에 의하여 기술된 세계를 진지하게 배격했음을 ㅡ 슈뢰딩거가 현상의 세계를 배격한 것과 꼭 마찬가지로 ㅡ 우리는 수용해야 한다. 방금 칸트에 대하여 언급된 바와 같이 나의 논지는, 파르메니데스와 가령 슈뢰딩거 사이의 차이점이 이런 면에서 단지 뉴튼 이래 과학(= 견해)이 성공을 거두어 그리하여 배격하기가 쉽지 않아졌다는 것이다.
당분간 파르메니데스의 두 가지 길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이만큼만 하자. 나의 추측이 진리의 길을 (세 번째 길에 대한 암시들이 있는) 어느 정도 조명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요점은 ‘오직 하나의 진리만 있다’는 논지인데 그 논지에 의하여 파르메니데스가 오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는 것보다 견해의 길에 더 많은 것이 ㅡ 나는 더 많은 진리를 의미한다 ㅡ 있다. 아무튼 견해의 길이 물리학에서 수학적 방정식들을 사용하여 연구하는 기초가 되었기 때문에 견해의 길은 이론물리학에 대한 가장 중요한 공헌이었다.
ㅡ 칼 포퍼 저, 아르네 피터슨 편집, “파르메니데스의 세계‘, 2007년, 143-144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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