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메니데스의 세계 논문 6 부록
(번역 수정본)
파르메니데스 우주론의 근원에 대한
역사관련 추측
여신으로 하여금 정교한 우주론을 그녀가 말하는 진리의 길에 덧붙이도록 파르메니데스가 만든 이유는, 파르메니데스 자신이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er),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크세노파네스(Xenophanes)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는 전통적 노선에 위에서 이 흥미롭고 고도로 창조적인 우주론의 창조자였기 때문이라고 나는 제안한다.
파르메니데스는 어느 정도 자신의 우주론을 완료한 후에야 헤라클레이토스를 알게 되었다고 나는 추측한다; 이유인즉 파르메니데스의 우주론이 완료된 아낙시만드로스의 우주론을 더 닮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해결될 문제는 이렇다: 파르메니데스의 우주론에 크세노파네스의 영향이 없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크세노파네스의 회의론이 지닌 충격이, 두 사람 모두 구형(球形) 이론을 완료한 이후에야 두 사람 모두에게 떠올랐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재구성이 있다:
1 파르메니데스는 단편 글 B10에서부터 계속해서 서술한다 (B16 없이);
2 크세노파네스는 구형성(球形性) 없이 자신의 신학을 완성한다;
파르메니데스와의 토론;
3 파르메니데스는 크세노파네스가 말하는 회의론의 영향을 받는다;
4 크세노파네스는 파르메니데스의 지구와 천체들의 구형론(球形論)을 수용하여
그 이론을 신학에 적용한다;
5 파르메니데스는 회의론이 야기하는 결과 전체를 깨닫는다;
이 부록은 브랜다이스 대학(Brandeis University)으로부터 1969년 11월 12일과 24일 아르네 F. 피터슨(Arne F. Petersen)에게 송부된 두 편의 편지에 근거한다. {크세노파네스와 헤라클레이토스 및 파르메니데스에 대한 칼 라인하르트의 시기 설정에 대한 비판적 언급은 이제 현재 원문의 2절에 포함되었는데 아마도 칼 포퍼, 추측과 논박(Conjectures and Refutations), 런던, 3차 수정본을 (1969년) 위하여 준비되었지만 그 수정본에 포함되지 않은 비평이 없는 각주로부터 유래한다, 편집자.}
6 파르메니데스는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하는 변화 문제의 영향을 받는다;
7 파르메니데스의 위기의 최고점;
8 합리주의에로의 전환: ‘있는 것은 진정으로 존재한다’는 논박 불가능한
명제이다.
그렇다면 파르메니데스의 우주론에 대한 역사관련 기원은 아마도 다음과 같이 개괄될 것이다.
(1) 우리가 지닌 중요하지만 그다지 신뢰될 수 없는 전거 중 한 명인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Diogenes Laertius)는, 파르메니데스를 크세노파네스의 제자로 부른다. 그러나 디오게네스는, ‘파르메니데스가 크세노파네스를 순종적으로 따르지 않았지’만 (혹은 파르메니데스가 ‘크세노파네스에게 의지하지 않았다’) ‘소티온(Sotion)에 따르면 파르메니데스가 또한 피타고라스학파인 아메이니아스(Ameinias)와도 교류가 있었다’고 부언한다. 파르메니데스가 처음에 함께 공부한 사람은 아메이니아스였을 것이다. (아메이니아스가 사망하자 파르메니데스는 ‘그에게 사당[祠堂]을 세웠다... 파르메니데스로 하여금 관조적[觀照的] 접근방식을 취하도록 유도한 사람은 크세노파네스가 아니라 아메이니아스였다’고 디오게네스는 서술한다.)
그래서 자신의 최초 스승인 아메이니아스의 영향 아래서 파르메니데스는, 아낙시만드로스와 피타고라스와 페레키데스(Pherecydes) 그리고 아마도 헤시오도스의 사상을 결합하여 초월한 최초의 우주론 번안을 집필했을 것이다. 아낙시만드로스가 미완성으로 남긴 것을 파르메니데스가 완성했기 때문에 그 우주론은 매우 중요하고도 독창적인 작품이었다.
비록 우리에게 이 우주론에서 남겨진 극소수의 단편 글과 그다지 신뢰될 수 없는 몇 가지 보고서만 있을지라도 그 우주론이 틀림없이 몇 가지 새롭고 중요한 우주론적 가설을 포함하고 있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이 가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J. 보프레(Beaufret)가 (파르메니데스의 시[Le Poème de Parménide], 파리, 1955년, 8쪽) ‘그리스어로 쓰인 가장 아름다운 연(聯) 중의 하나’라고 지칭한 달에 관한 단편 글 B14와 B15에 언명되었다고 나는 제안한다:
밤에 외계의 빛을 받아 빛나며
지구의 주위를 그녀는 배회하네.
항상 그녀는 그리워하며 주위를 살펴서
태양의 빛을 찾지.
Bright in the night with an alien light
Round the Earth she is erring.
Always she wistfully looks round
For the rays of the Sun.
이 시행(詩行)들에 달의 상(相)은 달이 빌려온 빛에 의하여 설명될 수 있다는 이론이 분명하게 언명되어 있다; 그리하여 달은 구형(球形)이라는 것이 함축되어 있는데 이유인즉 그래야만 달의 상(相)이 설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구형[球形] 진흙 모형의 도움을 받아서 쉽게 검증될 수 있다.)
달의 형체와 달의 상(相)에 관한 이 이론은 천문학의 위대한 돌파구 중 하나였다: 아낙시만드로스는 그 이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 이론은 태양 또한 (아낙시만드로스가 가르친 바와 같이, 불로 가득 찬 원통 모양을 지닌 마차 바퀴의 구멍이라기보다) 구형(球形) 몸체였다는 이론을 낳았다. 지구 주위를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것은, 아낙시만드로스의 방식과 유사한 방식으로 파르메니데스에 의하여 설명되었다: 원통 모양의 바퀴는 너무 어두워서 (혹은 너무 투명해서) 보이지 않는 왕관이나 화환에 의하여 대체되는데 그 왕관이나 화환 위에 회전하는 천체가 고정되어 있었다.
(2) 크세노파네스의 일신론의 영향력이 개입했던 곳은 여기이다. 이유인즉 내가 보기에 그런 영향력이 있었다는 것이 매우 개연적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 들 중에 뚜렷한 용어사용법적 유사성들이 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오늘날의 소위 상대론자였던 반면, 크세노파네스는 절대적 진리를 신뢰했다. 그러나 크세노파네스는 확실성이 ㅡ 확실한 진리 ㅡ 죽을 운명을 지닌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고 가르쳤다 (단편 글 B34에서):
그러나 확실한 진리에 대해서 아무도 그 진리를 알지 못했고,
아무도 그 진리를 알지 못할 것이다; 신(神)들에 대해서도 그렇고
내가 말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도 그렇다.
그리고 우연히 누가 완벽한 진리를 발설할지라도
그 자신은 그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이유인즉 모든 것이 상상으로 짜인 거미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But as for certain truth, no man has known it,
Nor will he know it; neither of the gods
Nor yet of all the things of which I speak.
And even if by chance he were to utter
The perfect truth, he would himself not know it.
For all is but a woven web of guesses.
이 운문은 진리가 절대적이고 객관적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확실성이자 확실한 진리는 우리에 의하여 도달될 수 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는데 이유인즉 지식은 확실성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크세노파네스에 따르면 인간의 지식으로 보이는 모든 것은 상상의 작품일 따름이다; 인간의 지식은 추측성 지식이다.
여기에 크세노파네스로부터 인용된 운문은, 크세노파네스가 주창한 매우 새롭고 매우 독창적인 신학에 대한 자기 자신의 체념적인 언급이라고 내가 생각한다. 나는 그 운문이 비상한 정도의 합리적 자기-비판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유인즉 그의 새로운 신학이 처음에 계시로서, 신(神) 자신이 허용한 전언으로서 틀림없이 그에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 신학이 단지 자신의 상상이라는 깨달음은, 진리를 위한 독특한 자제력의 행위였다. 여기 크세노파네스의 단편 글을 (B23; B26; B25 및 24) 내가 거의 직역한 것이 있다:
신(神)들 가운데 홀로 그리고 인간들 가운데 홀로 하나의 신(神)이
가장 위대한데,
그는 정신에서도 육체에서도 인간을 닮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고 항상 한 장소에 그는 머문다.
이제 여기로 저제 저기로 방황하는 것은 그에게 또한 어울리지 않는다.
노력하지 않고 단지 생각과 의도로써 그는 모든 것을 휘두른다.
그의 모든 것은 시각이다; 모든 것은 지식이다; 그리고 모든 것은
청각이다.
One God, along among gods and alone among men, is
the greatest,
Neither in mind nor in body does he resemble the mortals.
Always in one place he remains, without ever moving.
Nor is it fitting for him to wander now hereto and now thereto.
Effortless he swings the All, by mere thought and intention.
All of him is sight; all is knowledge; and all is hearing.
크세노파네스에 대하여 그가 신(神)을 우주와 동일시했다고 흔히 보고되어서 이 보고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Metaphysics)에 (986b20-5) 있는 언급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크세노파네스가 이 동일시(同一視)를 실행했다고 믿지 않는다. 이유인즉 우리가 안 바,
노력하지 않고 단지 생각과 의도로써 그는 모든 것을 휘두른다
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내가 ‘모든 것’이라고 번역한 단어는 분명히 ‘하늘’ 즉, ‘우주’를 의미한다; 그래서 분명히 신(神) 자신이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지구에 상대적으로 우주를 신(神)이 휘두르기 때문에, 신(神)은 움직이는 모든 것인 하늘과 동일시될 수 없다. (그러나 그 운문은, 다양하고 내가 믿기에 수용될 수 없는 방식으로 또한 해석되었다.)
자신의 저서 파르메니데스와 그리스 철학사(Parmenides und die Geschichte der griechischen Philosophie)에서 (1916년; 2판, 프랑크푸르트-암-마인, 1959년, 221쪽 이하) 칼 라인하르트 (Karl Reinhardt)는 헤라클레이토스가 파르메니데스보다 더 어렸고 파르메니데스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혁명적인) 이론을 옹호한다. 그는 크세노파네스가 파르메니데스의 관념들을 대중화시킨 장본인이었다고 또한 추측한다.
라인하르트가 자신의 논증을 크게 강조하여 제기할지라도 라인하르트는 적어도 동등하게 강력한 반증을 고려하지는 않는다. 이유인즉 그의 추측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크세노파네스는 (기원전 570년에 태어난) (a) 매우 늙은 시기에 파르메니데스의 완벽하게 혁명적인 사고방식을 이해하여 귀중하게 여겼다고 믿어지며, (b) 이 새로운 이론을 우주론과 신학의 새로운 문제에 철저히 독립적이고 전례가 없이 적용하였다고 믿어지고, (c) 그 새로운 이론을 매우 독창적으로 회의적-비판적으로 왜곡했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라인하르트의 핵심적인 논증과 모순이 되는데 그 논증은 정교하고도 거의 상황적인 증거로 구성되어 확신을 주면서 제시되어, 크세노파네스가 진지하지도 않고 독창적이지도 않은 사상가였을 수 있음을 증명하려고 시도한다. 위에 개괄된 반대-논증은 내가 보기에 라인하르트의 요점을 철저히 파괴하고 전통적 견해를 새로운 힘으로 재정립한다: 크세노파네스에 의하여 창립된 엘레아학파의 존재라는 새로운 힘으로 재정립한다. 이유인즉 파르메니데스와 크세노파네스 두 사람이 밀접하게 연결되어있었다는 라인하르트의 논증이 답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헤라클레이토스가 파르메니데스를 시대적으로 앞섰다는 전통적 견해를 라인하르트가 전복을 시도한 것에 대한 중요한 암시가 지금까지 언급된 것에 있다; 헤라클레이토스에 대한 초창기 시대 표시에는 분명히 몇 가지 잘 알려진 난제가 있는 반면 매우 강하게 제시되고 아마도 방금 언급된 첫 번째 논증보다 훨씬 더 강력한 라인하르트의 논증 중 두 번째 논증은, 파르메니데스보다 크세노파네스가 더 나이가 많다고 주장한다. 기원전 540년으로 알려진 엘레아의 건설 연도뿐 아니라 소피스트(Sophist) 242d에서 헤라클레이토스와 엠페도클레스(Empedocles)를 (분명히 파르메니데스보다 어렸던) 비교하는 플라톤의 방식 또한 이 두 사람을 거의 동시대적으로 만들고 옹호하여 말한다; 그러나 헤라클레이토스의 나중 단편 글이 그가 노인이 된 가령 기원전 473년에 (소크라테스가 태어나기 3년 전) 쓰였고 엠페도클레스의 시(詩)는 가령 기원전 445년경에 쓰였다고 우리가 가정한다면, 플라톤의 언급은 (엠페도클레스가 헤라클레이토스를 곧장 승계한다고 말하는) 오늘날 데카르트와 로크(Locke)를 비교하는 유사한 언급보다 훨씬 더 자연스러울 터이다.
라인하르트는,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의 견해 사이에 얼마간의 의존이 있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러나 다시 그는 헤라클레이토스가 파르메니데스에게 의존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가 아테네에 왔을 때 소크라테스가 22살이었다고 우리가 말한다면, 이것은 파르메니데스가 가령 기원전 513년에 태어나서 헤라클레이토스가 자신의 저서를 집필했을 때 35살이 되었음을 의미할 터이다. 그렇다면 파르메니데스가 헤라클레이토스에 반대하여 아마도 논증했을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서시에서 그가 말하는 것에도 불구하고, 그 서시는 매우 젊은 사람의 작품은 아니었다. (물론 그가 서시에서 기술하는 계시는 자신의 글보다 날짜가 앞설 것이다.) (3) 그러므로 크세노파네스는 새로운 우주론을 전개하려는 자신의 초기 노력이 진리가 아니라 겨우 견해를 (크세노파네스가 표현하는 바와 같이 ‘상상으로 짜인 그물’) 낳을 수 있었음을 파르메니데스에게 확신시켰고, 이것은 파르메니데스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그로 인하여 그의 사고에 위기가 닥쳤으며 그는 얼마 동안 자신의 관심을 우주론적 (즉, 과학적) 사색에서 인식론적 사색으로 전환했다: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어떻게 우리가 알 수 있는가?
이것으로 인하여 그는 이성과 감각을 예리하게 구분하게 되었다: 그의 우주론적 사색은 확실히, 우리의 감각세계를 설명하려는 (합리적으로) 시도였다. 그러므로 이성은 감각보다 틀림없이 더 나은 도구인데 이유인즉 우리의 감각세계를 설명하도록 고안된 우리의 우주론적이자 신학적인 사색에 우리가 도전할 수 있기 (크세노파네스처럼) 때문이다.
이 위기는 계시에 의하여 해결되었다: 우리가 이성의 ㅡ 합리적 논증의 ㅡ 지침만을 고수하기로 결심하기만 하면 우리는 실재 세상에 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존재에 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떻게 우리의 감각 세계가 구성되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저 사이비-지식을, 견해를 우리는 단념해야 한다; 그 지식의 최고 형태에서도 그 지식은 포기되어야 한다; 심지어 파르메니데스 자신이 자신의 우주론을 표현하는 형태로도 포기되어야 한다.
(4) 크세노파네스는 자신이 말하는 하나의 신(神)의 형체가 공 모양이라고 또한 가르쳤던 듯하다: 전통적인 증인들은 이 요점에 관하여 거의 만장일치로 동의한다. (W. K. C. 거스리[Guthrie]의 그리스 철학사[A History of Greek Philosophy], 1권, 케임브리지, 1962년, 376쪽 이하 참조)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구의 공 모양에 대한 파르메니데스의 초기 발견에 관하여 배웠을 때 크세노파네스가 이 관념에 도달했다고 우리가 추측할 것이다. 크세노파네스는 분명히 ‘신(神)들은 태어나지 않는다’고 (B14) 가르쳤는데, 그 말은 문맥상 ‘창조되지 않는다’를 의미한다.
(5) 자신의 초기 발견들에 대한 그의 순진한 신뢰가 흔들리자마자 파르메니데스는 그 발견들을 과학이나 지식 혹은 진리로서 선언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훌륭한 과학자였기 때문에 그 발견들을 몽땅 버릴 수는 없었다. 그는 자기에 앞서서나 혹은 자신의 시대에 다른 인간들보다 자신이 진리에 더 가까이 갔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버린, 즉 포기한 우주론인 진리에 가장 가까웠던 한 가지 거짓 우주론을 ㅡ 사례로, 견해의 길로부터 나온 가능한 최고의 사례로 가장하여 ㅡ 완전히 설명한다; 여하한 인간이 당시까지 도달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진리에 근접한 우주론.
여신은 그 모든 것이 한 가지 결정적인 실수에서 기인하는 것으로서 설명한다: 진리의 길에 있는 동안 그녀는 존재가 틀림없이 하나이어서 분리되지 않았다고 우리에게 말하는 반면, 이제 그녀는 한 가지 실재보다 두 가지를 (실재적 물체) 상정하여 그 물체에게 이름을 (‘빛’ 그리고 ‘밤’과 같은 것인데 두 가지 모두 물질이 그러한 것처럼 실재적이 아니다) 부여함으로써 ㅡ 물론 명칭-부여는 규약적이다 ㅡ 우리가 이미 잘못된 길인 감각주의와 규약주의 및 거짓으로 향하는 위험한 비탈을 타고 있음을 밝힌다.
자신의 동시대인인 핀다로스(Pindar)와 함께 파르메니데스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대립을 그리스 사상에 도입했다:
자연이나 진리 대(對) 규약이나 거짓.
이 중요한 구분은 문화충돌의 결과였다. 단편 글 B16과 B15에 있는 크세노파네스의 언급으로 인하여, 비판적인 즉, 논증적인 사고를 깨우치는 데서 문화충돌이 얼마나 큰 역할을 수행하는지 매우 분명해진다. 처음에 발견되는 것은 다양한 민족들의 법률과 신(神)들이 다소 다르다는 것이다: 그것들은 규약적이다; 그것들은 진리가 (틀림없이 하나인) 아니라 많은 다른 규약들로 구성된다.
이런 방식으로 다양성은 (말하자면 ‘많음’) 거짓과 규약성의 지표가 된다. 유사하게, 다양한 민족들은 많은 다양한 견해들을 태양 아래 거의 모든 주제에 관하여 지니고 있지만 ㅡ 그들이 현상의 세계인 감각의 세계에 몰두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ㅡ 이 모든 것은 단지 견해로 순전히 규약이다. 그래서 명칭 부여하기는 규약적이다. (다양한 민족들이 지닌 다양한 언어의 어휘가 규약적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우리는 이것을 해석할 것이다.)
이제 최소한의 ‘많음’은 두 가지이다: 그러므로 이원적 세계상은 규약적임과 동시에 거짓의 심연으로 향하는 첫 번째 걸음이다. 그래서 진리의 (일원적) 길로부터 한 걸음만 벗어남에 의하여 우리는 진리가 아닌 견해로 귀착되게 마련이다. 우리의 지성적 타락의 첫 번째 걸음은 여신에 의하여 기술되고 분석되는데, 여신은 ‘어떻게 그것이 발생하게 마련이었는지’ ㅡ 다시 말해서, 규약주의 대하여 최소한의 양보라도 하자마자 ‘어떻게 기만적인 (즉, 규약적인) 견해가 승리하기 마련이었는지’ ㅡ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것은 감각과 규약에 의하여 오염된 규약적인 사고 전체를 내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더 높은 지평으로, 초인간적 수준으로 솟아오르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계시를 여신 디케(Diké)에게로 가는 여행으로 기술하는데 여신은 그다음 그에게 진리를 계시한다. 여신은 또한 인간의 지성적 타락 이야기를 그에게 들려준다: 이유인즉 여신은 그 이야기가 단순히 그런 상태로 배척되도록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신은 진리를 밝혀야 한다, 그래서 여신은 ‘어떻게 기만적 견해가 실재로서 오인되었고 그리하여 승리하게 되어 모든 것을 관통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말한다. 그리하여 이런 방식으로 여신은 파르메니데스 자신의 초기 우주론을 ㅡ 물론 진리로서가 아니라 인간 견해의 더 우월한 형태로서 ㅡ 말할 수 있다: 그 우주론은 인간들의 모든 다른 개념보다 진리에 대하여 나은 근사치 ㅡ 더 진리 같은 ㅡ 이다; 그러나 여전히 그 우주론은 거짓이다.
여기 위 (3)과 (4)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자신의 지식론적 위기 동안에, 파르메니데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글을 읽어서 (혹은 그에 대하여 들어서) 이런 방식으로 변화의 문제를 알게 되었다고 나는 추측한다. 그리하여 그의 합리주의는 두 가지 문제를 ㅡ 진리의 문제와, 변화에 관한 우주론적 문제로 자체의 계시적 특징에 기여했다 ㅡ 해결했다.
(6) 파르메니데스가 자신의 시에 기술된, 여신의 계시를 경험할 때 틀림없이 놓여있었던 문제 상황을 재구성하기 위하여 여신이 밝히는 모든 요점이 틀림없이 한 가지 커다란 수수께끼에 대한 계시적 답변들이었다는 가정으로부터 우리가 출발해야 한다. 나는 여기서 그 수수께끼가 순전히 지성적이었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그 수수께끼에 틀림없이 감정적인 측면이 있었다.
그 수수께끼가 ‘헤라클레이토스의 문제’라고 우리가 부를 것에 의하여 표현될 수 있다고 나는 잠정적으로 제안한다:
변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그것은 또한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물체가 변한다면 변화 이전의 물체와 변화 이후의 물체는 틀림없이 다르다: 그렇지만 그 물체는 동일한 것이어야 한다: 그 물체는 심지어 동일하게 같은 물체로 남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 물체가 변했다고 우리는 말할 수 없을 터이다. 그래서 바로 그 변화의 가능성은, 변화 이후의 물체는 동시에 변화 이전의 물체와 동일한 동시에 동일하지 않다는 모순을 포함한다. 다른 한편으로 변화는 물체를 자체와 반대가 되는 것으로 변화시킨다. 그래서 헤라클레이토스가 가르치는 바와 같이, 대립하는 것들은 동일하다:
‘그것들은 모두 동일하다, 살아있는 것과 죽은 것, 깨어있는 자들과
잠들어 있는 자들, 젊은 것과 늙은 것. 이유인즉 이것들이 저것들로
변하고 저것들이 이것들로 변하기 때문이다.’ (B88) 차가운 것은
따뜻해지고, 따뜻한 것은 차갑게 된다; 축축한 것은 마르고, 마른 것은
축축해진다.’ (B126)
‘They all are the same, the living and the dead, those who are
awake and asleep, young and old. For these turn into those and
those into these.' (B88) ‘The cold becomes warm, the warm cold;
the moist dry, the parched wet.' (B126)
대립하는 것들이 동일한 것이라는 관념은 헤라클레이토스에 의하여 다른 역설을 얻기 위하여 적용된다:
‘신(神)은 낮과 밤, 겨울과 여름, 전쟁과 평화, 포만과 배고픔이다.’
(B67) ‘전체와 비-전체, 동질성과 이질성, 통일성과 이원성이
연결되어, 모든 것이 하나가 되고 하나는 모든 것이 된다.’ (B10)
‘우리는 존재하는 동시에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B49a)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길은 하나이자 같다.’ (B60) ‘선과 악은
동일하다.’ (B58)
'God is day and night, winter summer, war peace, satiety
hunger.' (B67) 'Connected are wholes and non-wholes,
homogeneity and heterogeneity, unity and duality, all becomes
one and one becomes all.' (B10) 'We are and we are not.'
(B49a) 'The way up and down is one and the same.' (B60)
'Good and evil are the same.' (B58)
이제 헤라클레이토스의 이 역설들은, 논리적으로 불가피한 것으로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내될 수 없는 것으로서 파르메니데스에게 보였다고 나는 제안한다. 그러나 그는 갑작스러운 계몽을 발견했다: 또 다른 역설이지만, 경험으로부터 우리가 아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과 충돌할지라도 합리적으로 옹호될 수 있는 역설:
대립하는 것들은 존재할 필요도 없는 동시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움직임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하나로 불변하면서 동시에 구분되지 않은 하나의 통합이다.
Opposites need not and do not exist.
Movement does not exist.
All is one, one unchanging and undifferentiated unity.
다른 모든 것은, 죽을 운명을 지닌 인간이 지닌 많이 실수를 저지르는 감각들에서 기인하는, 망상이다; 또는 그 감각들이 만드는 창작품이다 (혹은 아마도 언어적 규약이다): 아무튼 그것은 인간이 지닌 기만적 견해이다. 우리를 유혹해서 오도하는 것은 감각이다: 감각들로 인하여 우리는 이중으로 보고, 이중으로 들으며 이중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감각으로 인하여 우리는, 우리가 지닌 많이 오류를 범하는 감각과 그 감각이 만들어내는 혼란을 진정한 사고로서, 참된 이성으로서, 오해한다.
물론 인간은 자기가 지닌 모든 지식이 감각 감지에서 기인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단편 글 B34에서 나오는 바와 같이 저것은 부분적으로 심지어 크세노파네스의 견해였다 그러나 여신은 파르메니데스에게 이 많이 사용되는 큰길에 의하여 현혹당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B7):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득세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탐구방식으로부터 너의 사고를 억제하라; 많은 사람이 걷는
큰길인 경험이 너를 현혹하지 않도록 하라; 그리고 너의 가린 눈이나
먹은 귀나 심지어 너의 혀가 그 길을 따라 방황하지 않도록 하라!
그러나 이성에 의하여만 내가 여기서 너에게 반증으로서 설명하는
자주-논쟁되는 논증을 결정하라.
Never shall it prevail that things that are not are existing.
Keep back your thought from this way of inquiry; don't let
experience,
Much-walked highways, seduce you; and do not let wander
your blinded
Eye, or your deafened ear, or even your tongue, along this
way!
But by reason alone decide on the often-contested
Argument which I have here expounded to you as disproof.
그러나 진정한 지식은 감각 감지의 산물이 아닐지라도, 많이 실수를 저지르는 인간의 감각 안에 이전에 들지 않았던 것이 많이 실수를 저지르는 인간의 지성 안에 들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은 많이 실수를 저지르는 인간에게 정말로 성립한다. 여신이 인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는 바와 같이:
한때 많이-실수를 저지르는 감각 기관의 혼합물 안에 있는 것,
저것이 인간에게 확립된 지식으로 보인다; 이유인즉 인간은 사람의
지적(知的) 정신과 감각 기관의 본성이나 내용을 동일한 것으로서
수용하기 때문이다.
이 혼동에서 득세하는 것이 각각의 사람과 모든 사람에게서 ‘사고’라고
지칭된다.
What is, at any one time, in the much-erring sense
organs' mixture,
That seems established knowledge to men; for they take as
the same thing
Man's intellectual mind, and the sense organs' nature
or content.
'Thought' is called what in this muddle prevails, in each
man and all.
이 단편 글 B16은 그 시의 가장 중요한 글 중의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글은 ‘이전에 감각에 들지 않았던 것은 지성에 들지 않는다’는 경험주의적 견해를 조롱하고 비꼰다. 그래서 경험주의적 문구인 이와 같은 경험주의적 요약문은 파르메니데스에 앞서거나 파르메니데스의 조롱을 반대함에 의해서 혹은 파르메니데스의 조롱을 이해하지 못함에 의하여 출현했다고 (아마도 프로타고라스가 주장하는 인간 만물척도론의 형태로) 나는 제안한다.
(7) 내가 틀리고 크세노파네스가 정말로 우주를 자신의 신(神)과 동일시했다면, 파르메니데스가 이 관념에 의하여 또한 영향을 받았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이유인즉 그렇다면 매우 기묘하고 매우 추상적인 교설로 그가 자신의 위기 정점에서 도달했던,
우주는 움직이지 않고, 생성되지 않으며, 공 모양이고 단연코 하나이다
가 파르메니데스가 말하는 진리의 길에서뿐 아니라 크세노파네스에게서도 발견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는 파르메니데스의 가르침과 크세노파네스의 가르침 사이의 유사성이 정말로 매우 두드러지다고 생각하며 ㅡ 플라톤에서부터 계속해서 많은 그리스 철학자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소피스트[Sophist] 242c-d) ㅡ 내가 그의 것이라고 위 (2)에서 그에게 귀속시킨 교설을 크세노파네스가 가르치지 않고 ‘우주’가 ‘신(神)’과 동일시되는 곳에서 또 다른 교설을 가르쳤다면 훨씬 더 그렇다.
그래서 파르메니데스가 자신의 새로운 전언인 자신의 진리의 길을, 크세노파네스의 새로운 일신론적 신학에서 발견했을 개연성이 높다; 크세노파네스의 그 일신론적 신학을 읽음에 의해서나, 더욱 개연적으로 그 신학이 암송되는 것을 청취함에 의하여 자신의 진리의 길을, 크세노파네스의 새로운 일신론적 신학에서 발견했을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철저히 새롭고 정말로 신적(神的) 계시로서 그에게 떠오른 것은 그 전언이라기보다, 적어도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저 부분을 추론함에 의하여만 자신의 새로운 전언이 증명될 수 있다는 통찰이었다.
그 전언은 존재의 본성으로부터 연역적으로 증명될 수 있다.
내가 아는 한, 그것은 세계에 대한 최초의 연역적 이론으로 최초의 연역적 우주론이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이론물리학이 탄생하고 원자론이 탄생한다.
(8) 내가 옳다면 파르메니데스의 핵심적 문제는 변화의 문제이다. 이 견해는 우세한 교설과 충돌하는데 이유인즉 통상적으로 그의 문제로 수용된 것이 존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존재의 문제는 그가 변화의 불가능성을 옹호해야 했던 결과일 따름이라고 내가 믿는다. 이것으로 인하여 첫째 감각 경험을 거부하게 되었고 그다음 순전히 합리적 논증들에 의존할 필요성이 생겼다. 그리고 거꾸로 ‘단지 존재하는 것만 존재한다’는 이론을 야기한 것은 이 필요성이다: 결코-변하지 않는 덩어리 우주에 대한 합리적 증거가 획득되는 이론.
나의 견해가 옳다면 파르메니데스는 자신의 선배들이 그랬던 바와 같이, ‘존재론자’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우주론자이다; 그가 아낙시만드로스의 이론을 (그가 크세노파네스의 보고서로부터 알았을) 멀리 뛰어넘었던 이론을 전개했을 때 그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우주론자; 파르메니데스에게 변화의 문제를 제시함에 의하여 파르메니데스에게 도전했던 헤라클레이토스가 우주론자였던 것처럼 우주론자. 그리고 자신이 주창한 전대미문의 일신론인 자신이 주창하는 움직이지 않는 공 모양의 신(神)과 함께, 파르메니데스의 핵심적 문제에 전대미문의 해답에 대한 암시를 파르메니데스에게 주었을 크세노파네스처럼 우주론자.
파르메니데스가 진리의 길을 우주론으로서 ㅡ 전대미문의 우주론 ㅡ 바라보았다는 조건만으로 그가 말하는 거짓인 (그러나 두 번째로 훌륭한) 망상적 견해의 길에 대한 그것의 관련성이 조금이라도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망상적 견해의 길이 정말로 그 자신의 이론이라는 ㅡ 그 자신에 의하여 배격되었지만 한번 진지하게 제시된 ㅡ 조건만으로 그가 여신으로 하여금 그 이론을 두 번째로 훌륭한 이론으로서 그리고 경고로서 보존하도록 한 것에 요점이 있다.
그것은 나에게 그렇게 보인다. 그러나 물론 이것 또한 모두 ‘상상으로 짜인 거미줄’이다.
역사관련 추측에 관한 언급
버넷(Burnet)은 예전에, 우리가 파르메니데스를 칸트 이전의 칸트로서 해석해서는 (테오도르 곰페르츠[Th. Gomperz]가 했던 바와 같이) 안 된다고 말했다 (논문 4, II절 참조): 우리가 두 가지 길을 실재 대(對) 현상으로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것이 정확히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다. 차이점은 주로 칸트가 뉴튼 이후의 파르메니데스였다는 것과, 뉴튼 이후 현상의 세계가 단순히 망상으로서 더 이상 포기되거나 비난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견해(doxa)의, 현상의 세계는 과학적 ‘진리’의 영역이 되었다.
파르메니데스는, 자신의 초기 발견들에 대한 자신의 순진한 신뢰가 흔들리자마자, 그 발견들을 과학이나 지식 혹은 진리로서 선언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너무 훌륭한 과학자여서 그 발견들을 몽땅 버릴 수 없었다. 그는 다른 인간들보다 자신이 진리에 더 가까이 왔음을 알았다.
사상사에는 (그리고 과학사) 많은 유사한 태도의 사례가 있다. 보어(Bohr)의 대응 논증; 슈뢰딩거(Schrödinger)의 쇼펜하우어주의; 일반상대성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견해 (자신이 고도로 비판적이었던); 심지어 원격작용에 대한 뉴튼의 태도와 면적 법칙에 대한 케플러의 혐오는 모두, 위대한 과학자들이 자신들이 더 큰 진리 유사성을 향하여 한 걸음 전진했다고 합당하게 느꼈을지라도 그 과학자들이 그 진리를 믿지 않았던 어떤 업적을 발표했던 경우들로서 언급될 것이다.
우리가 파르메니데스의 작품에 (DK B8: 60) 있는 eoikotα를 위에 논증된 바와 같이 크세노파네스에 의하여 ‘진리와 유사한’이라는 의미로 처음 사용된 용어로서 수용한다면, 파르메니데스가 (혹은 여신이) 말하는 것은 견해의 길을 집필한 이유들 중 한 가지 이유가 그 길의 우주론이 지닌 우월한 진리 유사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파르메니데스가, 과학에 대한 자신의 커다란 공헌과 과학에 대한 자신의 커다란 관심에도 불구하고, 견해의 길과 자신이 이전에 지녔던 우주론인 자연과학에 의하여 기술된 세계를 진지하게 배격했음을 ㅡ 슈뢰딩거가 현상의 세계를 배격한 것과 꼭 마찬가지로 ㅡ 우리는 수용해야 한다. 방금 칸트에 대하여 언급된 바와 같이 나의 논지는, 파르메니데스와 가령 슈뢰딩거 사이의 차이점이 이런 면에서 단지 뉴튼 이래 과학(= 견해)이 성공을 거두어 그리하여 배격하기가 쉽지 않아졌다는 것이다.
당분간 파르메니데스의 두 가지 길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이만큼만 하자. 나의 추측이 진리의 길을 (세 번째 길에 대한 암시들이 있는) 어느 정도 조명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요점은 ‘오직 하나의 진리만 있다’는 논지인데 그 논지에 의하여 파르메니데스가 오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는 것보다 견해의 길에 더 많은 것이 ㅡ 나는 더 많은 진리를 의미한다 ㅡ 있다. 아무튼 견해의 길이 물리학에서 수학적 방정식들을 사용하여 연구하는 기초가 되었기 때문에 견해의 길은 이론물리학에 대한 가장 중요한 공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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