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포퍼 원전+번역문

인간의 멸종과 인간의 진보 (수정본)

이윤진이카루스 2025. 8. 5.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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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멸종과 인간의 진보

 

야수들로의 복귀에 관한 나의 언급과 관련하여 여기서 마지막 주석이 추가될 것이다. 다윈의 학설이 인간의 문제에 침입한 (다윈이 비난 받지 말아야 하는 침입) 이래, 불충분한 신체적 경쟁과 정신의 노력에 의하여 신체를 보호하는 가능성으로 인하여 자연선택이 우리의 신체에 작용하는 것이 막혔기 때문에 인종은 신체적으로 쇠퇴하기 마련임을 증명한 많은 사회동물학자들이 있었다. 이 관념을 언명한 최초의 사람은 (그가 그 관념을 신뢰했다는 것이 아니다) 새뮤얼 버틀러(Samuel Butler)였는데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이 저술가가’ (에레혼의[Erewhonian] 저술가]) ‘이해한 한 가지 심각한 위험은 기계들이’ (그리고 일반적 문명을 우리는 추가할 것이다) ‘그렇게.. 경쟁의 심각성을 줄여서 열등한 체격을 지닌 많은 사람이 탐지를 피하여 그들의 열등성을 그들의 자손들에게 넘겨줄 터라는 것이었다.’ (에레혼[Erewhon], 1872‘ Everyman’s edition, 161쪽과 비교하라.) 내가 아는 한 이 주제에 관하여 부피가 큰 저서를 집필한 최초의 저술가는 현대 인종주의의 창시자 중 한 명인 W. 샬마이어(Schallmayer)였다 (12장의 주석65와 비교하라). 사실상 버틀러의 이론은 지속적으로 재발견되었다 (특히 위 5장의 의미에서 생물학적 자연주의자들에 의하여). 몇몇 현대 저술가들에 따르면 (예를 들어, G. H. 에스타브룩스[Estabrooks], 인간: 기계적 부적응[Man: The Mechanical Misfit], 1941) 사람은 문명화되었을 때, 특히 사람이 약자를 돕기 시작했을 때 결정적 오류를 저질렀다; 이것 전에 사람은 거의 완벽한 인간-야수였다; 그러나 문명이 약자를 보호하는 자체의 인위적 방법들로써 쇠퇴를 초래했고 그리하여 틀림없이 궁극적으로 자체를 파괴한다. 그런 주장들에 대한 답변으로, 인간은 어느 날 이 세상으로부터 사라지기 쉽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거의 완벽할뿐인 야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가장 완벽한 야수들에게도 이것은 또한 참이라고 우리가 부언해야 한다. 인류가 약자들 돕는 치명적 오류를 저지르지 않았더라면 인류가 혹시 다소 더 오래 살 것이라는 이론은 매우 의문스럽다; 그러나 그것이 참일지라도 ㅡ 단순히 인종의 생존 길이가 실제로 우리가 원하는 유일한 것인가? 아니면 거의 완벽한 인간-야수가 그렇게 두드러지게 귀중해서 약자를 돕는 우리의 실험보다 그의 존재 연장을 우리가 선호해야 하는가 (그는 아무튼 아주 오랫동안 정말로 존재했다)?

인류는 그렇게 나쁘게 행동하지 않았다고 나는 믿는다. 반란이나 그 반란의 지성적 지도자들 몇몇에도 불구하고, 교육에서 플라톤 방식의 마비적 효과들과 정치의 파멸적 결과들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놀라운 성공들이 있었다. 많은 약한 자들이 도움을 받았고 거의 1백 년 동안 노예제도가 실제로 폐지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제도가 곧 다시 도입될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더 낙관적으로 느낀다; 그리고 결국 그것은 우리에게 의존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다시 틀림없이 없어질지라도 그리고 우리가 거의 완벽한 인간-야수로 돌아가야 할지라도 이로 인하여 한때 (시간이 짧았을지라도) 노예제도는 지구의 표면에서 정말로 사라졌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을 터이다. 이 업적과 그 업적에 대한 기억으로 인하여, 기계적이든 다른 방식이든 우리의 모든 부적응에 대하여 우리 몇몇이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그것들로 인하여, 우리의 선조들이 모든 변화를 중지시키는 ㅡ 닫힌 사회의 둥지로 돌아가서 영원히 영원히 거의 완벽한 원숭이들의 동물원을 설립하는 ㅡ 황금 기회를 놓쳤을 때 그 선조들에 의하여 저질러진 치명적 오류에 대하여 우리 몇몇이 심지어 보상받을 것이다.

ㅡ 칼 포퍼, ‘열린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 I, 1971, 317-8쪽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