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론의 발전
IV
나는 몇 분 동안 우주론에 관하여 이야기할 예정인데 우주론은 논증될 수 있는 바와 같이 모든 과학 중에서 가장 철학적으로 중요하다.
우주론은 과거 30년에 걸쳐서 믿기 어려운 발전을 거쳤다. 심지어 그 이전에도 뉴튼이 여전히 세계의 체계라고 부르던 태양계가 국지적 현상이 되었다. 칸트에 의하여 크게 정식화된 최초의 현대적 우주론인 행성 체계 및 은하수 체계들에 대한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이론들과 행성 거리들을 추산하는 허블의 새로운 방식들의 영향을 받아서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서 발전했다; 그리고 확장하는 우주라는 허블의 이론은 확립된 듯이 보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영국과 호주에서 최초로 발전한 전파천문학이 이룩한 결과들은, 처음에 이 구조에 잘 맞아떨어지는 듯이 보였다. 확장하는 우주라는 이론 한 가지는 (나의 견해로 매우 좋고 유망한 이론) 본디(Bondi)와 골드(Gold) 그리고 호일(Hoyle)에 의하여 제시되었는데 심지어 전파천문학의 방식들을 이용하여 시험될 수 있다고 판명되었다; 그리고 그 이론은 (더 오래된) 빅뱅 확장 이론을 선호하여 반증된 듯이 보인다. 그러나 허블 상수(Hubble Constant)는 10분의 1로 감소되었고 최대 은하수의 확장은 150배로 늘어났다. 많은 다른 결과에도 전파천문학에 의하여 의문이 제기되었다; 우리가 평화를 추구하는 과제에 직면했을 때 우리가 정치에서 느끼는 것처럼, 완벽하게 혁명적인 이 결과 몇몇에 직면하여 우주론 분야에서 우리는 거의 무력한 듯이 보인다. 미증유의 질량과 밀도를 지닌 별-같은 대상들이 존재하는 듯이 보이고, 모든 방향으로 평화롭게 산포하는 은하수라는 우리의 이전 개념들은 아마도 드물지만 부단히 재발하는 파멸들이라는 이론에 의하여 곧 대체될 것이다.
아무튼, 모든 기대에 반하여 전파천문학은 우주론의 역사에서 매우 흥미진진하고 혁명적 일화를 재현한다. 그 혁명은 갈릴레오가 발명한 망원경에 의하여 시작된 혁명에 비견될 수 있다.
여기서 일반적 비평이 합당할 것이다. 과학적 발견의 역사는 새로운 기구들을 순전히 기술적으로 발명한 것들에만 (혹은 주로) 의존한다고 흔히 주장된다. 대조적으로 과학의 역사는 본질적으로 관념들의 역사라고 나는 믿는다. 갈릴레오가 확대경들을 천문 망원경에 사용하겠다는 생각을 갖기 전에도 오랫동안 확대경들은 여러 곳에 있었다.
전파천문학은 유사하게 지체되었다. 전파는 1888년에 하인리히 헤르츠(Heinrich Hertz)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그러나 아마도 별인 대상들로부터 나오는 새로운 방사선을 찾으려는 대안이었던 소위 우주 광선들을 빅토르 헤스(Victor Hess)가 1912년에 발견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파천문학이 시작되고 그 천문학에 필요한 기구들이 발명되기까지는 20년이 더 걸렸다. 그 지체에 대한 개연적 설명은, 어떤 천문학자도 전파를 이용하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관념이 출현하자마자, 그 관념으로 인하여 새롭고 혁명적 발전이 이루어졌다 (그 관념의 생존을 위한 얼마간의 싸움이 지나서). 그리고 새로운 기구들의 구축이 제안된 것은 새로운 관념에 의해서였다; 거대한 인공적 감각기관들과 같은 것.
V
아무튼 뉴튼의 시대 이래 우주론은 물리학의 일부였고 칸트, 마흐, 아인슈타인, 에딩튼(Eddington)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우주론을 그와 같이 취급했다. 아인슈타인, 에딩튼, 에르빈 슈뢰딩거 그리고 볼프강 파울리(Wolfgang Pauli)는 (파울리는 슈뢰딩거처럼 비엔나에서 태어났다) 특히 한편 물질과 원자 구조와 다른 한편 우주론 사이의 관계들에 관하여 흥미로운 언급들을 내놓았다. 그것이 40년 전이었고 그 후 몇몇 위대한 물리학자, 특히 아인슈타인과 디랙(Dirac) 그리고 하이젠베르크 및 코르넬리 란초슈(Cornelius Lanczos)가 지속적으로 물리이론의 통합을 다루었지만, 이 관념들은 다소 포기되었다.
그러나 중성미자 장들(fields)과 중력의 연계에 관한 파울리의 가설들이 최근에 다시 다루어졌는데 왜냐하면 태양 중성미자의 유동이 표면적으로 결핍됨에 관한 예기치 않은 실험적 결과들 때문이다. 포츠담 출신인 우주론자이자 물리학자인 한스-위르겐 트레더(Hans-Jürgen Treder)는, 1934년에 파울리에 의하여 제안된 가설을 사용하여 자신이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으로부터 해석하여 이 부정적 실험 결과를 도출하려고 시도했다. 바라건대, 이것이 물질과 우주론의 더 근접한 연계를 조성하려는 시도들의 새로운 단계를 촉발했을 것이다. 아무튼 이 새로운 시도가, 실험적으로 반증된 어떤 기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ㅡ 칼 포퍼, ‘나은 세상을 찾아서(In Search of a Better World)’, 1996년, 58-60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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