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와 괴테의 오류가능성주의
III
이 단계에서 나는 오류가능주의에 대한 반론을 토론하고 싶다; 나의 의견으로 오류가능주의를 지지하는 논증으로서 거의 이용될 수 있을 터인 반론.
이것은, 지식이란 견해나 억측과 달리 본질적으로 권위의 문제라는 반론이다; 그리고 나아가 일반적인 언어적 용법이 지식의 권위적 본성 이론을 뒷받침한다는 반론. 그리하여 다음 세 가지 것이 존재할 때 ‘나는 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문법적으로 올바를 따름이다: 먼저, 내가 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의 진리; 두 번째, 그 진리의 확실성; 그리고 세 번째, 그 진리에 관한 충분한 근거들의 이용 가능성.
그런 분석들은 철학적 토론에 흔히 들을 수 있고 철학 저서들에서 읽힐 수
있다. 그리고 이 분석들로 인하여, 우리가 매일 ‘지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의미하는 것이 실제로 밝혀진다. 그 분석들로 인하여, 내가 지식의 고전적 개
념으로 부르고 싶은 개념이 분석된다: 이 지식의 고전적 개념은, 알려진 것이
진리이며 확실하다고 암시한다; 그리고 또한 그것이 참이라고 믿을 충분한 이
유들이 우리에게 있다.
소크라테스가 ‘내가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ㅡ 게다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라고 말할 때 그가 이용하고 있던 것은 바로 이 고전적 지식의 개념이다. 그리고 괴테는 파우스트로 하여금 다음과 같이 말을
시킬 때 지식에 대하여 동일한 고전적 개념을 이용하고 있다:
참된 지식은 이룩되지 않음을 나는 알지
그래서 나의 심장은 거의 찢어지지!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또는 거의 항상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과 그래서 우리는 ‘지식’의 고전적 의미에서 아는 것이 없거나 극도로 조금 안다는 것을 강조하는 오류가능성이라는 교설인 오류가능주의에 의하여 또한 사용되는 것은 정확하게 지식에 대한 이 고전적 개념인 지식에 대한 일상적 언어의 개념이다; 혹은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바와 같이, ‘훌륭한 것’을 알지 못한 것을 강조하는. 오류가능성이라는 교설.
우리가 ‘훌륭한 것’을 혹은 더 직역하여 ‘아름답고 훌륭한 어떤 것’을 알지 못한다고 소크라테스가 말했을 때 (변명[Apology] 21 D) 그는 무엇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던 것일까?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특히 윤리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결코 윤리적 지식이 불가능하다고 선언하고 있지 않다; 반대로 그는 윤리적 지식에 대한 근거를 찾으려고 시도했다. 그가 그렇게 하는 방식은 비판적 방식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보였던
여하한 것도 비판했다. 그를 오류가능주의로 이끌었던 것과 그와 다른 사람들
이 결코 윤리적 문제들에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통찰로 이끌었던 것은
이 비판적 방식이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도덕철학에서 선구자였다. 우리가 삶에 관하여 타당하고 중요한 규칙을 지닌 것은 그로부터 그리고 그의 동시대인 데모크리토스(Democritus)로부터였다: ‘불의를 가하는 것보다 불의를 당하는 게 낫다.’
ㅡ 칼 포퍼, ‘나은 세상을 찾아서’, 1996년, 33-4쪽 ㅡ
'칼포퍼 원전+번역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생물학의 발전 (0) | 2025.09.09 |
|---|---|
| 진리에 대한 기준은 없지만 과학적 진보에 대한 기준은 있다 (0) | 2025.09.06 |
| 뉴튼의 중력이론과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 (0) | 2025.09.06 |
| 위대한 과학자들의 겸손 (0) | 2025.09.06 |
| 소크라테스의 지식론과 플라톤의 지식론 (0) | 2025.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