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과학적 이론을 결코 정당화할 수 없다
과학적 비판인 합리적 비판은 진리라는 규제적 개념에 의하여 감독을 받는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과학적 이론들을 정당화할 수 없는데 이유인즉 그 이론들이 허위로 판명되지 않을지를 우리가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론들을 비판적 검토에 부칠 수 있다: 합리적 비판이 정당화를 갈음한다. 비판은 상상을 제어하지만, 상상을 구속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상상은 예술이든 신화든 과학이든 모든 창조적 활동에 공통적인 반면, 과학은 진리라는 개념에 의하여 영향을 받는 합리적 비판에 의하여 규정된다. 그래서 나는 이어지는 것에서, 상상과 합리적 비판이라는 이 요소들 모두가 특히 드러나는 발전들에 나 자신을 국한하겠다.
III
나는 수학에 관하여 언급하면서 시작하겠다.
학생으로서 나는 비엔나의 저명한 수학자 한스 한(Hans Hahn)에게 강력한 영향을 받았는데 그는 자신의 역할에서 화이트헤드(Whitehead)와 러셀의 위대한 작품인 수학원리(Principia Mathematica)에서 영향을 받았다. 이 저술이 지닌 흥미진진한 이념적 내용은, 수학이 논리로 환원될 수 있다는 혹은 더 정확하게 수학이 논리로부터 논리적으로 연역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틀림없이 논리인 것으로써 시작한다; 그다음 우리는 엄격하게 논리적인 연역을 통하여 나아가고 그렇게 하면서 우리는 틀림없이 수학인 것을 획득한다.
이것은 대담한 계획인 것만은 아닌 듯하다. 수학원리(Principia Mathematica)에서 이 연구 강령은 성취된 듯이 보인다. 수학원리(Principia)는 연역의 논리, 명제계산(propositional calculus)그리고 제한적 함수계산(restricted functional calculus)으로써 시작했다. 이로부터 류들(classes)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지 않고 류들(classes)의 계산이 연역되었다. 그다음 추상적 집합이론이 연역되었는데 그 이론은 19세기에 게오르크 칸토어(Georg Cantor)에 의하여 확립되었다. 게다가 수학원리(Principia)는, 미적분이 집합이론의 일부로서 구축될 수 있다는 논지를 증명하는 데로 많은 일을 했고 그 논지는 심지어 지금도 논쟁거리가 아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화이트헤드와 러셀의 수학원리(Principia)는 엄격한 비판을 받았고 약 40년 전에 상황은 여전히 다음과 같았다. 사상과 관련하여 세 가지 학파가 구분될 수 있을 터이다. 먼저 수학이 논리로 환원될 수 있다고 주장한 논리주의(logicism)로 불리는 학파가 있었는데 버트런드 러셀에 의하여 지도되었고 비엔나에서 한스 한(Hans Hahn)과 루돌프 카르납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두 번째로 나중에 형식주의(formalism)로도 지칭된 공리학(axiomatics) 학파가 있었는데 그 학파는 집합이론을 논리학으로부터 연역하지 않고 집합이론을 유클리드 기하학과 유사한 공리들의 형식적 체계로서 도입하기를 원했다; 이 견해를 믿은 사람들에는 힐베르트(Hilbert), 체르멜로(Zermelo), 프랑켈(Fraenkel), 버네이스(Bernays), 아커만(Ackermann), 겐첸(Gentzen) 그리고 폰 노이만(von Neumann)이 포함되었다. 세 번째 학파는 소위 직관론자들의 학파였는데 푸앵카레, 브로우베르(Brouwer) 그리고 나중에는 헤르만 바일(Hermann Weyl)과 하이팅(Heyting)이 속했다.
그것은 매우 흥미로운 상황이었지만, 처음에는 희망이 없어 보였다. 논쟁에 관련된 두 명의 가장 탁월하고 가장 연구를 많이 한 수학자들인 힐베르트와
브로우베르 사이에 강력하게 개인적인 고음을 내는 적의가 전개되었다. 많은 수학자는 수학의 토대에 관한 그 논쟁을 쓸데없는 것으로서 간주했을 뿐 아니라 기본적 계획 전체를 배척하기도 했다.
그다음 44년 전에 오스트리아 수학자인 쿠르트 괴델(Kurt Gödel)이 논쟁에 참여했다. 괴델은 비엔나에서 공부했는데 그곳에서 논리주의는 강력한 지원을 받았지만, 그곳에서 나머지 두 가지 움직임들도 역시 매우 진지하게 고려되었다. 괴델의 첫 번째 주요 업적인 제한적 함수계산에 대한 완벽한 증명은 힐베르트에 의하여 언명된 문제들에 근거하였고 아마도 형식주의에 귀속될 수 있었다. 그의 두 번째 업적은 수학원리(Principia Mathematica)의 그리고 수이론(the theory of numbers)의 불완전성을 그가 확실하게 밝혀 증명한 것이었다. 경쟁하는 세 학파 모두는 이 업적에 대하여 다소 공로를 인정받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상 종말의 ㅡ 다시 말해서, 사상과 관련한 이 세 학파의 종말 ㅡ 시작이었다. 나의 견해로 이것은 또한 새로운 수리철학의 시작을 공표했다. 사태가 당시 유동적이었지만, 아마도 다음과 같이 요약될 것이다:
러셀의 환원이론, 다시 말해서 수학은 논리로 환원될 수 있다는 이론은 배척되어야 한다. 수학은 완벽하게 논리로 환원될 수 없다; 사실상 수학은 심지어 논리학을 상당히 정제했고 논리학을 비판적으로 수정했다고 언급될 것이다: 우리의 논리적 직관을 비판적으로 수정했다고 그리고 우리의 논리적 직관은 전혀 그렇게 신뢰될 만하지 않다는 우리의 비판적 통찰을 불러왔다고. 다른 한편 직관은 매우 중요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또한 밝혀졌다. 창조적 개념의 다수는 직관들 통하여 발생한다; 그리고 그렇게 발생하지 않는 창조적 개념들은 직관적 개념들에 대한 비판적 반증의 결과이다.
수학의 근본적 원리들에 대한 한 가지 체계가 있는 듯이 보이지 않고 수학을 구축하는 다양한 방법들이나 수학의 다양한 분야들이 있는 듯이 보인다. 나는 ‘확립(establishing)’이 아니라 ‘구축(constructing)’을 말하는데 왜냐하면 수학의 근본적 원리들에 대하여 궁극적 확립이나 안전장치가 없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취약한 체계들의 경우에서만 우리가 구축한 것의 일관성을 우리가 증명할 수 있다. 그리고 타스키(Tarski)로부터, 수학의 주요 분야들이 근본적으로 불완전함을, 다시 말해서, 이 체계들이 강화될 것이지만 결코 우리가 그 체계들 안에서 참이고 유관한 모든 서술을 증명할 수 있다는 정도까지 강화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가 안다. 수학적 이론 대부분은, 물리학이나 생물학에 관한 이론들 대부분처럼, 가설적-연역적이다: 그리하여 순수수학은 자체가 심지어 최근에 생각되었던 것보다, 그 가설들이 추측인 자연과학들에 훨씬 더 근접한 것으로 판명된다.
괴델과 코언(Cohen)은, 소위 연속체 가설(continuum hypothesis)이 지금까지 이용된 집합이론의 방법들로써 반증될 수도 없고 증명될 수도 없다는 증명들을 성공적으로 또한 제시했다. 이 유명한 가설은, 칸토어와 힐베르트가 훗날 증명하기를 소망했는데 현재 이론과 독립적임이 밝혀졌다. 물론 그렇게 이론을 강화하여 (추가적 전제들을 사용하여) 가설이 증명될 수 있게 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그렇게 이론을 강화하여 가설이 반증되는 것도 동등하게 가능하다.
ㅡ 칼 포퍼, ‘나은 세상을 찾아서(In Search of a Better World)’, 1996년, 54-6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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