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에 대한 기준은 없지만 과학적 진보에 대한 기준은 있다
IX
지식은 진리 탐구이다; 그리고 우리의 이론 중 많은 이론이 사실상 참이라는 것은 전적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그 이론들이 참일지라도 우리는 결코 이것을 확실하게 알 수 없다.
이것은 시인이자 음유시인이었던 크세노파네스(Xenophanes)에 의하여 이미 깨우쳐졌는데 그는 소크라테스보다 약 100년 앞서서 그리고 예수의 탄생보다 5백 년 앞서서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나의 번역):
그러나 확실한 진리에 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했고,
아무도 그것을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신(gods)에 대해서도,
내가 말하는 모든 것에 대해서도.
그리고 우연히 누가 완벽한 진리를 발설할 터이라도
그 자신은 그 진리를 알지 못할 터이다:
이유인즉 모든 것을 추측들로 짜인 그물일 따름이기 때문.
그러나 심지어 당시에도 크세노파네스는, 우리의 진리 탐구에서 진전이 있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유인즉 그가 다음과 같이 서술하기 때문이다:
신들(gods)은 처음부터 밝히지 않았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탐구를 통하여 우리는 배우고 사물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인용한 크세노파네스의 이 단편 글들은 아마도 다음 두 가지 논지로 요약될 것이다:
1. 진리에 대한 기준은 없다; 심지어 우리가 진리에 도달했을 때도 우리는 결코 그것을 확신할 수 없다.
2. 진리 탐구에는 진전에 대한 합리적 기준이 있고 그리하여 과학적 진보에 대한 기준이 있다.
두 가지 논지 모두가 옳다고 나는 믿는다.
그러나 진리 탐구에서 무엇이 과학적 진보에 대한, 우리의 가설들에서의, 우리 추측들에서의 진보에 대한 합리적 기준인가? 언제 한 가지 과학적 가설이 또 다른 과학적 가설보다 나은가?
답변은: 과학은 비판적 활동이다. 우리는 우리의 가설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우리는 그 가설들을 비판하여, 오류들을 제거하고 그리하여 진리에 더 근접하려는 희망에서 우리가 오류들을 발견한다.
예를 들어 새로운 가설인 한 가지 가설이 다음 세 가지 요건들을 충족한다면. 우리는 그 가설이 또 다른 가설보다 나은 것으로 간주한다. 먼저, 새로운 가설은 옛 가설이 성공적으로 설명한 모든 것들을 설명해야 한다. 저것이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요점이다. 두 번째, 새로운 가설은 적어도 옛 가설의 오
류 중 몇 가지 오류를 피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가설은 가능한 곳에서 옛 가설이 통과할 수 없었던 비판적 시험 중 몇 가지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세 번째, 새로운 가설은 가능한 곳에서 옛 가설에 의하여 설명되거나 예측될 수 없었던 것들을 설명해야 한다.
그리하여 이것이 과학적 진보의 기준이다. 그 기준은 특히 자연과학에서 매우 널리 그리고 보통 무의식적으로 이용된다. 적어도 앞선 가설에 의하여 성공적으로 설명된 모든 것을 설명한다면 그리고 게다가 새로운 가설이 옛 가설의 특정 오류들을 피하기를 약속하거나 새로운 예측들을 ㅡ 가능한 곳에서, 시험될 수 있는 예측들 ㅡ 내놓는다면 새로운 가설은 진지하게 고려될 따름이다.
X
진보에 대한 이 기준은 진리에 대한 근사치의 기준으로서 또한 간주될 수 있다. 이유인즉 가설이 진보의 기준을 충족한다면 그리하여 적어도 앞선 가설이 통과한 만큼 잘 우리의 비판적 시험들을 통과한다면, 우리는 이것을 우연의 일치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설이 비판적 시험들을 더 훨씬 더 잘 통과한다면 그 가설은 앞선 가설보다 진리에 더 근접한다고 우리가 전제한다.
그리하여 진리는 과학의 목표이다: 과학은 진리 탐구이다. 그리고 크세노파네스가 안 바와 같이, 우리가 이 목표를 성취했는지 우리가 알 수 없을지라도 우리가 진리에 더 근접했다고 생각할 매우 훌륭한 이유들이 우리에게 있다; 혹은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바와 같이, 우리가 올바른 길에 있다고 생각할 매우 훌륭한 이유들이 우리에게 있다.
ㅡ 칼 포퍼, ‘나은 세상을 찾아서’, 1996년, 38-40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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