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주의는 극복될 수 있다
개별적 과학들을 위해서 뿐 아니라 철학을 위해서 인식론이 중요하다고, 그리고 우리 시대의 종교적 및 철학적 불안은 틀림없이 우리 모두에게 관련되는데 주로 인간 지식의 철학에 관한 불안이라고 나는 믿는다. 니체는 그것을 유럽의 허무주의라고 불렀고 방다(Benda)는 지식인의 배반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것을,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소크라테스의 발견의 결과로서 규정하고 싶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결코 우리의 이론들을 합리적으로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
그러나 이 중요한 발견은, 많은 다른 불안 가운데서, 실존주의라는 불안을 만들어냈는데 발견의 절반일 따름이다; 그리고 허무주의는 극복될 수 있다. 이유인즉 우리의 이론들을 우리가 합리적으로 정당화할 수 없고 심지어 그 이론들이 개연적임을 증명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는 그 이론들을 합리적으로 비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 나쁜 이론들로부터 나은 이론들을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심지어 소크라테스 이전에도 이것은 크세노파네스(Xenophanes)에게 알려졌는데 그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들(gods)은 처음부터 밝히지 않았다,
모든 것을 우리에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탐구를 통하여 우리는 배우고 사물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ㅡ 칼 포퍼, ‘나은 세상을 찾아서(In Search of a Better World)’, 1996년, 80-1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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