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은 어떻게 절제되어야 하나
여론으로 지칭되며 파악될 수 없고 모호한 실체로 인하여, 정교하지 못한 명민함 혹은 권력을 쥔 정권의 도덕적 감수성보다 우월한 도덕적 감수성이 더 전형적으로 때때로 드러난다. 그러나 여론이 강력한 자유주의적 전통에 의하여 절제되지 않으면 여론은 자유에 위협이 된다. 여론은, 취향의 중재자로서 위험하고 진리의 중재자로서 용납될 수 없다. 그러나 여론은 때때로 계몽된 정의의 중재자로서 역할을 맡을 것이다. (사례: 영국 식민지들에서 노예해방.) 불행하게도 여론은 ‘관리될’ 수 있다. 이 위험들은 자유주의적 전통을 강화함에 의해서만 상쇄될 수 있다.
여론은 자유롭고 비판적 토론의 공공성과 구분되어야 하는데 그 공공성은 과학에서 규칙이고 (혹은 규칙이어야 한다), 정의(正義: justice) 및 다른 도덕적 논쟁이라는 문제들에 대한 토론을 포함한다. 여론은 이런 종류의 토론에 영향을 받지만, 그 토론의 결과도 아니고 그 토론의 지배를 받지도 않는다. 그 토론들에 초래하는 유익한 영향은, 이 토론들이 더 솔직하고 간단하고 분명하게 수행될수록, 더 커질 것이다.
ㅡ 칼 포퍼, ‘나은 세상을 찾아서(In Search of a Better World)’, 1996년, 160쪽 ㅡ
'칼포퍼 원전+번역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국가는 필요악 그리고 자유주의적 원칙들 (0) | 2025.09.26 |
|---|---|
| 자유 토론에 대한 자유주의적 이론 (0) | 2025.09.26 |
| 나은 세상을 찾아서, II부 역사에 관하여 10장 지식을 통한 해방 (번역 수정본) (2) | 2025.09.25 |
| 칸트와 지식을 통한 자기-해방 (0) | 2025.09.25 |
| 삶의 의미와 역사의 의미 (0) | 2025.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