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필요악 그리고 자유주의적 원칙들
III. 자유주의적 원칙들: 논지들
1. 국가는 필요악이다: 국가권력은 필요한 것 이상으로 확대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아마도 이 원칙을 ‘진보론적 면도날’로 부를 것이다. (오캄의 면도날[Ockham’s Razor], 다시 말해서, 실체들이나 본질들은 필요한 것 이상으로 확대되어서는 안 된다는 유명한 원칙과 유추하여.)
국가의 필요성을 밝히기 위하여 나는, 인간에 대한 홉스(Hobbes)의 사람은 사람에게 늑대다(homo-homini-lupus)라는 견해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 반대로 사람은 사람에게 고양이다(homo homini felis)라고 혹은 사람은 사람에게 천사다(homo homini angelus)라고 우리가 전제할지라도 ㅡ 다시 말해서 인간의 친절함과 천사와 같은 선량함 때문에, 아무도 다른 사람을 해코지하는 적이 없을지라도 ㅡ 국가의 필요성은 밝혀질 수 있다. 그런 세상에도 여전히 약자들과 강자들이 존재할 터이고 약자들에게 강자들에 의하여 허용되는 법률적 권한이 없을 터여서 강자들이 약자들을 관용하도록 그렇게 친절함에 대하여 약자들은 강자들에게 감사할 터이다. 이것이 만족스럽지 못한 사태라고 생각하는 그리고 모든 사람이 살아갈 권리를 지녀야 한다고 그리고 모든 사람은 강자들의 힘에 대항하여 보호될 법률적 청구권을 지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강자이든 약자이든) 모든 사람의 권리들을 보호하는 국가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국가는 필요한 것이지만, 틀림없이 부단히 위험하고 혹은 (내가 감히 그렇게 지칭하는 바와 같이) 사악한 것임은 알기 쉽다. 이유인즉 국가가 자체의 기능을 완수할 수 있을지라도 국가는 틀림없이 아무튼 사사로운 개별적 시민이나 대중적 결사보다 더 권력을 지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권력들이 오용될 위험을 최소화하는 제도들을 우리가 혹시 고안할지라도, 우리는 결코 그 위험을 완벽하게 제거할 수 없다. 반대로 사람들 대부분은, 세금의 형태로뿐 아니라 심지어 예를 들어 위협하는 관료들의 손에서 당하는 수모의 형태로, 국가의 보호에 대하여 항상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보호에 대하여 너무 무겁게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것이다.
2. 민주주의와 독재의 차이점은, 민주주의에서 정권이 피를 흘리지 않고 제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재에서 정권은 그렇게 제거될 수 없다.
3. 민주주의와 같은 제도는 시민에게 혜택을 공여할 수 없고 그런 제도가 혜택을 공여할 수 있다고 기대되어서도 안 된다. 사실상 민주주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ㅡ 민주주의의 시민만 (물론, 정권을 구성하는 저 시민을 포함하여) 행동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다소 조직되어 일관적 방식으로 행동할 체제를 제공할 따름이다.
4. 다수가 항상 옳기 때문이 아니라 민주주의적 전통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최소한으로 사악한 전통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민주주의자들이다. 다수가 (혹은 ‘여론’) 독재를 선호하기로 결정하면, 민주주의자에게 그리하여 자신의 견해들에 있는 어떤 치명적 불합리성이 밝혀졌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민주주의자는 더 정확하게, 자신의 국가에서 민주주의적 전통이 충분히 강력하지 않았다고 깨달을 것이다.
5. 전통에 의하여 조절되지 않으면 제도들만으로 결코 충분하지 않다. 강력한 전통에 없으면 제도들이 또한 의도된 목표에 반대인 목표에 부합할 것이라는 의미에서, 제도들은 항상 양면적(兩面的)이다. 예를 들어 의회의 야당은, 개략적으로 말해서, 다수당이 납세자들의 돈을 훔쳐 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러나 이 제도의 양면성을 예시하는 유럽 동남부 어느 국가에서 발생한 사건을 나는 잘 기억한다. 그 나라에서 야당은 전리품을 다수당과 나누어 가졌다.
요약하면: 전통은, 개인적 인간들의 제도들과 의도들 및 평가들 사이에서 일종의 고리를 형성하는 데 필요하다.
6. 자유주의적 유토피아는 ㅡ 다시 말해서, 전통이 없는 백지상태 위에 합리적으로 고안된 국가 ㅡ 불가능하다. 이유인즉 자유주의적 원칙은, 사회생활에 의하여 필수적이 되는 각자의 자유 제한이 가능한 한 최소화되고 평등화 되어야 한다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칸트). 그러나 어떻게 우리는 그런 선험적(a priori) 원칙을 실제 생활에 적용할 수 있을까? 피아노 연주자가 연습하는 것을 우리는 막아야 할까, 아니면 그의 이웃이 고요한 오후를 즐기는 것을 막아야 할까? 그런 문제들 전부는, 현존하는 전통들과 관습들의 그리고 정의에 대한 전통적 감각의 도움을 받아서만 실제로 해결될 수 있다; 영국에서 지칭되는 바와 같이 관습법(common law)의 그리고 공평에 대한 공정한 판사의 감식의 도움을 받아서 실제로 해결될 수 있다. 모든 법률은, 보편적 원칙들이기 때문에, 적용되기 위하여 해석되어야 한다; 그리고 구체적 실행에 관한 몇 가지 원칙이 해석에 필요한데 그 원칙들은 살아있는 전통에 의해서만 제공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자유주의의 고도로 추상적이고 보편적 원칙들에게 더욱 특히 성립한다.
7. 자유주의의 원칙들은, 현존하는 제도들을 대체하는 원칙들로서라기보다 현존하는 제도들을 평가하고 필요하면 수정하거나 변경하는 원칙들로서 기술될 (적어도 오늘날) 것이다. 자유주의가 혁명적 신조라기보다 진화적 신조라고 (자유주의가 독재정권과 맞닥뜨리지 않는다면) 말함에 의하여 우리는 이것을 또한 표현할 수 있다.
8. 전통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전통으로서 우리가 간주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사회의 ‘도덕적 체제’로서 (제도적 ‘법률적 체제’에 대응하는) 지칭할 것이다. 이것은, 정의나 공정함에 대한 혹은 사회가 도달한 도덕적 민감성의 등급에 대한 사회의 전통적 감성을 포함한다. 이 도덕적 체제는, 상충하는 이해관계들 사이에서 공정하고 공평한 타협이 필요한 곳에서 그 타협의 도달을 가능하도록 만드는 토대로서 작동한다. 그 도덕적 체제 자체가 물론 변경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체제는 비교적 느리게 변한다. 이 전통적 체제의 파괴가 나치즘에 의하여 의식적으로 겨냥되었던 바와 같이, 그 파괴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다. 종국적으로 그 체제가 파괴되면 냉소주의와 허무주의, 다시 말해서, 모든 인간적 가치들에 대한 무시와 해체가 발생할 것이다.
ㅡ 칼 포퍼, ‘나은 세상을 찾아서(In Search of a Better World)’, 1996년, 155-7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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