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은 신화일 뿐이다
1. 여론이라는 신화
우리는, 흔히 무비판적으로 용납되는 ‘여론’에 관한 몇 가지 신화를 경계해야 한다.
먼저 대중의 목소리는 신(神)의 목소리(vox populi vox dei)라는 고전적 신화가 있는데 그 신화는, 대중의 목소리에, 일종의 최종적 권위와 무제한적 지혜를 부여한다. 현대에 그 신화의 등가물은, 신화적 인물인 ‘보통 사람’, 그의 투표권,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궁극적으로 옳다는 상식에 대한 신뢰이다. 두 가지 경우 모두에서 명사의 복수형을 쓰지 않은 것은 특징적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느님 감사합니다, 한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리고 다양한 거리에 사는 다양한 사람은, 회의실에 모인 주요 인사들(VIPs)만큼 다양하다. 그래서 때때로 사람들이 다소 같은 목소리를 정말로 낸다면, 그들이 말하는 것은 반드시 현명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옳을지도 모르고 틀릴지도 모른다. ‘목소리’는 매우 의심스러운 문제들에 매우 단호할지도 모른다.
이 논문은 1954년 9월 베네치아에서 열린 Mont Pèlerin 협회(Society)의 6차 집회에서 강독되었다; 이 논문은 1955년 Il Politico, 20에 (이탈리아어로) 그리고 1956년, Ordo, 8에 (독일어로) 실렸다. 영어본은 저자가 작성했다.
(사례: ‘무조건적 항복’ 요구를 거의 만장일치로 그리고 묻지 않고 수용하는 것.) 그리고 목소리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문제들에 관하여 주저할지도 모른다. (사례: 정치적 갈취와 대량 학살을 용납할 것인지의 문제.) 그것은 의도가 좋을지는 모르지만 경솔할 것이다. (사례: 호어-라발 협정[Hoare-Laval plan]을 파괴한 대중의 반응) 아니면 그것은 의도가 좋은 것도 아니고 또한 매우 신중한 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사례: 런시먼 사절단[Runciman mission]에 대한 승인; 1938년의 뮌헨 협정[Munich agreement of 1938]에 대한 승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중의 목소리(vox populi)라는 신화에 일말의 진실이 숨겨져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아마도 그것을 다음 방식으로 표현할 것이다: 단순한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제한된 정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기들 정부보다 흔히 더 현명하다; 그리고 더 현명하지 않을지라도, 그렇다면 낫고 더 너그러운 의도들에 의하여 고취된다. (사례: 뮌헨 협정 전야에 싸우려는 체코슬로바키아인들의 각오; 다시 호어-라발 반발.)
내가 보기에 특별히 흥미롭고 중요한 그 신화의 ㅡ 혹은 아마도 그 신화 배후에 있는 철학의 ㅡ 한 가지 형태는, 진리는 명백하다는 교설이다. 이 교설에 의하여 내가 의미하는 바는, 오류는 설명될 (선의가 없기 때문에, 혹은 편향에 의해서거나 편견에 의하여) 필요가 있는 것일지라도 진리가 억압되지 않으면 항상 자체를 드러낼 것이라는 교설이다. 그리하여 자유로 인하여, 억압과 다른 장애물을 제거하면 필연적으로 틀림없이 진리와 선함이 ㅡ 콩도르세(Condorcet)의 인간 정신 진보의 역사적 그림에 대한 개괄(Sketch for a Historical Picture of the Progress of the Human Mind)에서 끝맺는 문장의 단어들로, ‘이성에 의하여 창조되고, 인류에 대한 사랑에게 알려진 가장 순수한 쾌락으로 은총을 받은 천국’ ㅡ 지배한다는 믿음이 나타난다.
나는 의식적으로 이 중요한 신화를 과대하게 단순화했는데 그 신화는 또한 다음과 같이 언명될 것이다: ‘진리가 제시되면 누구도 그 진리를 인식한다.’ 이것을 ‘합리주의적 낙관론’으로 지칭하자고 나는 제안한다. 그것은 정말로 계몽사조가, 자체의 정치적 후손 대부분 및 자체의 지성적 조상 대부분과 공유하는 이론이다. 대중의 목소리(vox populi)라는 신화처럼, 그것은 또 다른 만장일치 목소리의 신화이다. 인간이 우리가 숭배해야 하는 본질이라면 인류의 만장일치 목소리는 우리의 최종적 권위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신화임을 배웠고 그래서 우리는 만장일치에 대한 불신을 배웠다.
이 합리주의적이고 낙관주의적 신화에 대한 반응은 대중의 목소리(vox populi)라는 이론의 낭만적 해석이다 ㅡ 대중적 의지라는, ‘일반적 의사(volonté générale)’라는, 민중 정신이라는, 민족의 천재성이라는, 집단정신이라는 혹은 혈통의 본능적 권위와 고유성이라는 교설. 칸트 및 다른 사람들이 ㅡ 그들 중 한 명이 나 자신 ㅡ 진리 파악에 대한 합리적인 이 교설들을 겨냥한 비판을 반복할 필요가 여기서 나에게 없는데 그 교설들은, 진리를 본능적이거나 직관적으로 파악하는 도구로서 우리의 열정을 이용하는 이성의 간계(the cunning of reason)라는 헤겔의 교설에서 끝난다; 그리고 그 교설들로 인하여, 특히 사람들이 자기 이성이라기보다 자기 열정을 따른다면, 사람들이 틀릴 수 없다.
ㅡ 칼 포퍼, ‘나은 세상을 찾아서(In Search of a Better World)’, 1996년, 151-3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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