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견해는 항상 자기-이익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혹은 철학적 편견에 관한 한 가지 다른 사례를 고려하라. 사람의 견해는 자신의 자기-이익에 의하여 항상 결정된다는 편견이 있다. 이 교설은 (이성은 열정의 노예이고 노예이어야 한다는 흄의 교설의 타락한 형태로서 기술될 것인) 통상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이것은 흄에 의하여 수행되었는데 그는 자기 자신이 지닌 이성의 능력을 포함하여 우리가 지닌 이성의 능력과 관련하여 겸손과 회의론을 가르쳤다); 그러나 이 교설은 통상적으로 다른 동료에게 ㅡ 그의 견해가 우리의 견해와 다른 ㅡ 적용될 뿐이다. 이 교설로 인하여, 우리 자신의 견해에 반대가 되는 견해를 우리가 인내하여 경청하지 못하고 우리가 그 견해를 다른 동료의 ‘이익’에 의하여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견해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하여 합리적 토론이 불가능해진다. 이것으로 인하여 우리의 자연스러운 호기심인 사물에 관하여 진리를 발견하려는 우리의 관심이 악화된다. ‘이 문제의 진실은 무엇인가?’라는 중요한 질문의 자리에, 이것으로 인하여, 다음과 같은 단연코 덜 중요한 또 다른 질문이 놓인다: ‘당신의 자기-이익은 무엇인가, 숨겨진 당신의 동기들은 무엇인가?’ 이 교설은, 우리 자신의 견해들과 다른 견해를 지닌 사람으로부터 우리가 배우는 것을 막고 이 교설은 우리가 지닌 공통적 합리성에 근거한 통합인 인류 통합의 와해를 초래한다.
ㅡ 칼 포퍼, ‘나은 세상을 찾아서(In Search of a Better World)’, 1996년, 181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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