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에 참신성이 있지만 물리과학에 없다
3 참신성
방금 언급된 논증에 상세한 설명을 부여할 가치가 있다. 정확하게 유사한 환경에서 대규모 사회적 실험을 반복하는 가능성을 역사주의는 부인하는데 왜냐하면 두 번째 실험의 환경이, 그 실험이 이전에 실시되었다는 사실에 의하여 틀림없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했다. 이 논증은, 사회가 생명체처럼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회의 역사라고 지칭하는 것에 대하여 일종의 기억을 지닌다는 관념에 의거한다.
생물학에서, 우리는 어떤 생명체의 생명-역사를 말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생명체는 과거의 사건에 의하여 부분적으로 조건이 지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사건이 반복된다면, 경험하는 생명체에 관하여 그 사건에 참신함이라는 자체의 특징이 없어지고 습관이 퍼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정확하게, 반복되는 사건에 대한 경험이 원래 사건에 대한 경험과 동일하지 않은 이유이다 ㅡ 반복에 대한 경험이 새로운 이유이다. 그리하여 관찰된 사건의 반복은, 관찰자에게서 새로운 경험의 출현에 부합할 수 있다. 그 반복으로 인하여 새로운 습관이 형성되기 때문에, 반복으로 인하여 새롭고 습관적 상황이 생겨난다. 동일한 생명체에 관하여 우리가 특정 실험을 반복하는 상황의 ㅡ 내부적 및 외부적 ㅡ 총계는 그리하여, 우리가 진정한 반복을 언급하기에 충분히 유사할 리가 없다. 이유인즉 심지어 환경적 상황의 정확한 반복도 생명체 안에서 내부적 상황과 결합될 터이기 때문이다: 생명체는 경험에 의하여 배운다.
역사주의에 의하면, 사회에 대해서도 동일한 것이 참으로 성립하는데 왜냐하면 사회도 또한 경험하기 때문이다: 사회에도 역시 자체의 역사가 있다. 사회는 자체 역사의 (부분적) 반복들로부터 서서히 배울 따름일 것이지만, 사회가 자체의 과거에 의하여 부분적으로 조건이 주어지는 한, 사회가 정말로 배운다는 것은 의심될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전통과 전통적 충성심 및 원한, 신뢰와 불신은 사회생활에서 자체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을 터이다. 그리하여 실제적 반복은 사회의 역사에서 틀림없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것은, 본질적으로 새로운 특징을 지닌 사건이 출현할 것이라고 우리가 기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는 반복할지도 모른다 ㅡ 그러나 특히 관련된 사건이 역사적 중요성을 띤다면, 그리고 그 사건이 사회에 지속적 영향을 미친다면 동일한 수준에서 결코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물리학에 의하여 서술되는 세계에서 진정으로 그리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은 발생할 수 없다. 새로운 엔진이 발명될 것이지만 우리는 항상 그 엔진을 새롭지 않은 것인 원소들의 재배치로서 분석할 수 있다. 물리학에서의 새로움은 배치(arrangements)나 결합(combinations)의 새로움일 따름이다. 이것과 정반대로, 사회적 새로움은 생물학적 새로움처럼 근본적 종류의 새로움이라고 역사주의자는 주장한다. 그 새로움은 배치(arrangements)의 참신함으로 환원될 수 없는 실제적 새로움이다. 이유인즉 사회생활에서 새로운 배치 내의 동일한 옛 요인들이 결코 실제적으로 동일한 옛 요인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정확하게 반복되지 않는 곳에서 실제적 참신함이 틀림없이 항상 출현하고 있다. 이것은, 역사의 새로운 단계나 기간의 전개를 고려하면 중요한 것으로 믿어지는데 그 단계나 기간 각각은 본질적으로 서로 다르다.
실제로 새로운 기간의 출현보다 더 큰 중요성을 띤 것은 없다고 역사주의는 주장한다. 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회생활의 면모는, 물리학이라는 영역에서 참신한 것을 익숙한 요소들의 재배치(re-arrangements)로서 간주함에 의하여 우리가 그 참신한 것을 설명할 때, 우리가 따르는 데 익숙해진 노선을 따라서 조사될 수 없다. 물리학의 통상적 방법이 사회에 적용될 수 있을지라도, 그 방법은 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징에 결코 적용될 수 없을 터이다: 사회를 기간들로 구분하는 것, 그리고 참신함의 출현이라는 특징에 결코 적용될 수 없을 터이다. 우리가 사회적 새로움의 중요성을 파악하자마자, 통상적인 물리학적 방법을 사회학의 문제에 적용하면 사회적 전개라는 문제를 우리가 이해하는 데 도움받을 수 있다는 관념을 우리가 포기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새로움에 추가적 면모가 있다. 사회생활에서 모든 개별적 사건인 특정 모든 사회적 사건은 어떤 의미에서 새롭다고 언급될 수 있음을 우리가 알았다. 그 사건은 다른 사건들과 함께 분류될 것이다; 그 사건은 특정 면모에서 저 사건들을 닮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건은 매우 확정적 정도로 항상 독특할 것이다. 이것으로 인하여, 사회학적 설명에 관한 한 물리학에서의 상황과 두드러지게 다른 상황이 생긴다. 사회생활을 분석함에 의하여 특정 사건이 어떻게 그리고 왜 발생했는지를 우리가 직관적으로 발견하여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될 수 있다; 그 특정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ㅡ 그 사건과 다른 사건들에 미친 그 사건의 영향을 야기한 힘(forces) ㅡ 우리가 분명하게 이해할 것이라고 상상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반적 용어들로 그런 인과적 연결고리들에 대한 서술로서 기능할 터인 일반적 법칙을 우리가 정식화할 수 없음을 우리는 발견할 것이다. 이유인즉 우리가 발견한 특정 힘(forces)에 의하여 올바르게 설명될 수 있을 터인 것은 단지 한 가지 특정 사회학적 상황이고 다른 사회학적 상황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힘(forces)은 독특할 가능성이 높다: 그 힘(forces)은 이 특정 사회적 상황에서 단지 한번 출현할 것이고 다시 출현하지는 않을 것이다.
ㅡ 칼 포퍼, ‘역사주의의 빈곤(The Poverty of Historicism)’, 1976년, 9-11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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