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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주의는 사회과학에서 예측이 어렵다고 논증한다

이윤진이카루스 2025. 10. 12.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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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주의는 사회과학에서 예측이 어렵다고 논증한다

 

5 예측의 부정확성

역사주의에 예측의 중요성을 과학의 과제 중 한 가지 과제로서 강조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역사주의의 친()-자연주의적 교설에 대한 토론에서 밝혀질 것이다. (이런 면에서, 역사관련 예언이 사회과학의 과제 중 한 가지 과제라고 내가 믿지 않을지라도 나는 그 과제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예측은, 사회적 구조의 복잡성 때문만이 아니라 예측과 예측되는 사건 사이의 상호연계로부터 출현하는 고유한 복잡성 때문에도 틀림없이 매우 어렵다고 역사주의는 논증한다.

예측이 예측되는 사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념은 매우 오래된 관념이다. 오이디푸스(Oedipus)는 전설 속에서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친아버지를 죽였다; 그리고 이것으로 인하여, 그의 친아버지는 그 예언의 직접적 결과로써 그를 버렸다. 이것이, 예측되는 사건을 야기하는 경향이 그 영향에 있든 그 사건을 예방하는 경향이 그 영향에 있든, 예측되는 사건에 대한 예측의 영향에 관하여 (혹은 더 일반적으로, 정보가 언급하는 상황에 대한 정보 항목의 영향에 관하여) 내가 오이디푸스 효과(Oedipus effect)라는 명칭을 제안하는 이유이다.

역사주의자들은 최근에, 이런 종류의 영향이 사회과학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 영향이 정확한 예측을 실행하는 어려움을 증대시켜서 그 예측의 객관성을 위협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회과학이 모든 종류의 사회적 사실과 사건에 대하여 정확한 과학적 예보를 허용할 정도로 언젠가 크게 발전될 수 있을 터라는 전제로부터 터무니없는 결과가 귀결될 것이라고 그리하여 이 전제는 순전히 논리적 근거들을 토대로 반박될 수 있다고 역사주의자들은 말한다. 이유인즉, 그런 참신한 종류의 과학적인 사회적 달력이 구축될 수 있어서 알려질 수 있다면 (그 달력은 원칙적으로 누군가에 의하여 발견될 수 있을 터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비밀로 유지될 수 없을 터이다) 그 달력으로 인하여 그 달력이 예측하는 것을 뒤엎을 터인 행동이 틀림없이 나타날 터이다. 예를 들어 주가가 사흘 동안 올랐다가 그다음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되었다고 가정하라. 분명히, 시장과 관련된 모든 사람은 세 번째 날에 매각하여 그날 가격하락을 부채질하여 예측을 오류로 판정할 터이다. 요컨대 사회적 사건에 대하여 정확하고 상세한 달력이라는 관념은 자기-모순적이다; 그리고 정확하게 상세한 과학적인 사회적 예측은 그리하여 불가능하다.

 

6 객관성과 평가

사회과학에서 예측의 난관을 강조하여 역사주의는, 예측되는 사건에 대한 예측의 영향 분석에 근거한 논증을 개진하는 것을 우리가 알았다.

그러나 역사주의에 따르면, 특정 상황에서 이 영향으로 인하여 예측하는 관찰자가 심각한 반향을 경험할 수 있다. 심지어 물리학에서도 유사한 고찰이 역할을 수행하는데 물리학에서 모든 관찰이 관찰자와 관찰되는 것 사이에서 에너지 교환에 근거한다; 이것으로 인하여 통상적으로 무시될 수 있는 물리학적 불확실성이 생기는데 그 불확실성은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하여 서술된다. 이 불확실성이 관찰되는 대상과 관찰하는 주체 사이의 상호작용에 기인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가능한데 왜냐하면 두 가지 모두가 행위와 상호작용의 동일한 물리적 세상에 속하기 때문이다. 보어(Bohr)가 지적한 바와 같이, 물리학에 이 상황에 대한 다른 과학들 특히 생물학과 심리학에서 유사점이 있다. 그러나 과학자와 그의 대상이 사회과학에서보다 더 큰 중요성을 띠는 동일한 세계에 속한다는 사실은 어디에도 없는데 사회과학에서 그 사실로 인하여 예측의 불확실성이 생겨나고 (밝혀진 바와 같이) 그 불확실성은 때때로 커다란 실천적 중요성을 띤다.

사회과학에서 관찰자와 관찰되는 것 사이인 주체와 대상 사이의 완벽하고도 복잡한 상호작용과 우리가 직면한다. 아마도 미래 사건을 만들어낼 경향의 존재에 대한 인식과, 나아가, 예측 자체가 아마도 예측되는 사건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인식은 예측의 내용에 반향을 일으키기 쉽다; 그리고 그 반향은 아마도 사회과학에서 예측의 그리고 다른 연구 결과의 객관성을 위중하게 훼손하는 그런 종류일 것이다.

예측이란, 다른 사회적 사건과 그리고 그 사건 가운데서 예측이 예언하는 사회적 사건과 상호작용을 수행할 사회적 사건이다. 우리가 안 바와 같이 예측은 이 사건을 재촉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예측이 다른 방식들로 이 사건에 영향을 미칠 것임을 알기 쉽다. 예측은, 극단적 경우에, 심지어 자체가 예언하는 사건을 일으킬 것이다: 그 사건은 예언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전혀 발생하지 않았을 터이다. 다른 극단에서 임박한 사건에 대한 예측은 그 사건의 예방을 야기할 것이다 (그리하여 의도적으로나 태만하게 그 사건에 대한 예측을 하지 않음에 의하여 사회과학자는 그 사건을 야기할 수 있을 터이거나 그 사건이 발생하도록 만들 터이다). 이 양 극단 사이에 분명히 많은 중간적 경우들이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을 예측하는 행위와 예측을 하지 않는 행위는 아마도 모든 종류의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제 사회과학자들이 틀림없이 궁극적으로 이 가능성을 인식하게 될 것임은 명백하다. 예를 들어 사회과학자는 자기의 예측이 어떤 것을 발생하도록 만들 것이라고 예견하면서 그것을 예언할 것이다. 혹은 특정 사건이 예상될 수 있음을 사회과학자는 부인하고 그리하여 그 사건을 예방할 것이다. 그리고 두 가지 경우 모두에서 그는, 과학적 객관성을 보장하는 듯이 보이는 원칙을 준수하고 있을 것이다: 진리를 그리고 진리만을 말하는 원칙을 준수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과학자가 진리를 말했지라도, 그가 과학적 객관성을 준수했다고 우리가 말할 수 없다; 이유인즉 예측을 (목전의 사건이 완수하는) 실행함에서 그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선호한 방향으로 저 사건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주의자는, 이 묘사가 다소 도식적임을 인정할 것이지만, 그 묘사가 사회과학의 거의 모든 장()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한 가지 요점을 선명하게 드러낸다고 그는 주장할 것이다. 과학자의 선언과 사회생활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인하여, 우리가 그런 선언의 진실성뿐 아니라 미래 발전사항에 미치는 그 선언의 실제적 영향 또한 고찰해야 하는 상황이 거의 변함없이 출현한다. 사회과학자는 진실을 발견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틀림없이 사회에 확정적 영향을 항상 미치고 있다. 그의 선언이 정말로 영향을 발휘한다는 바로 그 사실로 인하여 그 선언의 객관성이 파괴된다.

우리는 지금까지, 사회과학자가 진실을 그리고 진실만을 발견하려고 실제로 노력한다고 전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역사주의자는, 우리가 서술한 상황이 우리의 전제에 있는 난제를 불러온다고 지적할 것이다. 이유인즉 편향과 관심이 과학적 이론의 내용과 예측에 그렇게 영향을 미치는 곳에서 편견이 결정되어 회피될 수 있는지가 틀림없이 매우 의심스러워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물리학에서 만나는 객관적이고 이상적 진리 추구를 닮은 것이 사회과학에 없음을 발견하고 놀랄 필요가 우리에게 없다. 우리는, 사회생활에서 발견될 수 있는 만큼 많은 경향을 사회과학들에서 발견하리라 기대해야 한다; 관심이 있는 만큼 많은 관점을 발견하리라 기대해야 한다. 이 역사주의적 논증이, 객관성과 진리라는 이상이 함께 성공만이 ㅡ 정치적 성공 ㅡ 결정적일 수 있는 사회과학에서 적용될 수 없다고 믿는 저 극단적 형태의 상대주의를 야기하지 않는지가 질문될 것이다.

ㅡ 칼 포퍼, ‘역사주의의 빈곤(The Poverty of Historicism)’, 1976, 12-6쪽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