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은 정량적(定量的: quantative)이고 수학적
사회학은 정성적(定性的: qualitative)이고 공감적
그것은, 자연과학의 방법에 반대가 되는 것으로서 적합한 사회과학의 방법이 사회적 현상을 친숙하게 이해하는 것에 근거한다는 교설이다. 다음 대조와 대비가 이 교설과 관련하여 통상적으로 강조된다. 물리학은 인과적 설명을 겨냥한다: 사회학은 목표와 의미에 대한 이해를 겨냥한다: 물리학에서 사건은 엄격하게 그리고 정량적으로(定量的으로: quantitatively) 그래서 수학적 공식의 도움을 받아서 설명된다: 사회학은, 더 정성적(定性的: qualitative) 용어들로 예를 들어 상충하는 경향이나 목표를 통하여 혹은 ‘국민성’이나 ‘시대정신’을 통하여 역사적 전개상황을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사회학은 공감적(sympathetic) 상상력의 도움을 받아 작용할 수 있을 따름인 반면, 이것이 물리학이 귀납적 일반화들로써 작용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사회학은 특정 이해관계와 경향 및 운명 내부에서 발생하는 독특한 사건에 대한 그리고 특정 상황에서 그 사건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직관적 이해로 틀림없이 만족하는 반면, 그것은 또한 물리학이 보편적으로 타당한 균일성(均一性: uniformities)에 도달하여 특정 사건을 그런 균일성에 관한 사례로서 설명할 수 있는 이유이다.
ㅡ 칼 포퍼, ‘역사주의의 빈곤(The Poverty of Historicism)’, 1976년, 19-20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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