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량적(定量的: quantitative) 방법
9 정량적(定量的: quantitative) 방법
직관적 이해라는 교설과 연계하여 통상적으로 강조되는 반대와 대비 가운데서 다음이 역사주의자들에 의하여 빈번히 강조되었다. 물리학에서 사건은, 정량적 용어들로 그리고 수학적 공식들의 도움을 받아서 엄격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설명된다고 언급된다. 다른 한편 사회학은 정성적(定性的: qualitative) 용어들로 역사적 전개상황을 더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예를 들어, 상충하는 경향들과 목표들이라는 용어들로 역사적 전개상황을 더 이해하려고 시도한다.
정량적이고 수학적 방법의 적용가능성에 반대하는 논증은 역사주의자들에게 고유한 것은 전혀 아니다; 그리고 정말로 그런 방법은 때때로 심지어 강력한 반(反)-역사주의적 견해를 지닌 저술가들에 의하여 거부된다. 그러나 정량적이고 수학적 방법에 반대하는 가장 설득적 논증 중 몇 가지 논증은, 내가 역사주의로 지칭하는 관점을 매우 잘 제시해서 여기서 이 논증들이 토론될 것이다.
사회학에서 정량적이고 수학적 방법의 사용에 대한 반대를 우리가 고려할 때, 강력한 반론이 틀림없이 우리에게 즉각 떠오른다: 이 태도는, 정량적이고 수학적 방법이 사회과학 중 몇몇 사회과학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실제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과 충돌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것에 직면하여, 그 방법들의 적용 가능성이 어떻게 부인될 수 있는가?
이 반론에 반대하여, 정량적이고 수학적 관점에 대한 반대는 역사주의적 사고방식에 특징적인 몇 가지 논증에 의하여 뒷받침될 것이다.
역사주의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당신의 비평에 완전히 동의한다; 그러나 사회과학의 통계적 방법과 물리학의 정량적-수학적 방법 사이에서 엄청난 차이점이 여전히 남는다. 사회과학은, 물리학의 수학적으로 정식화되는 인과적 법칙에 비교될 수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
예를 들어 (주어진 파장을 지닌 광선에 대하여) 광선이 통과하는 구멍이 작을수록, 회절각(the angles of diffraction)이 점점 커진다는 물리법칙을 고려하라. 이런 유형의 물리법칙에 다음 형태가 있다: ‘특정 조건에서, 규모 A가 특정 방식으로 변한다면, 규모 B 또한 어떤 예측될 수 있는 방식으로 변한다’. 다시 말해서 그런 법칙은, 한 가지 측정될 수 있는 정량(定量: quantity)의 또 다른 한 가지 측정될 수 있는 정량(定量: quantity)에 대한 의존을 표현하여, 전자(前者) 정량이 후자(後者) 정량에 의존하는 방식은 정확한 정량적 관계로 주장된다. 물리학은 이런 형태로 자체의 모든 법칙을 성공적으로 표현했다. 이것을 이룩하기 위하여, 물리학의 첫 번째 과제는 모든 물리적 특징을 정량적 용어들로 바꾸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그 과제로 인하여 특정 종류의 광선이 ㅡ 예를 들어 밝은 황록색 광선 ㅡ 정량적 묘사에 의하여 대체되어야 했다: 특정 파장과 특정 강도를 지닌 광선. 물리적 특징을 정량적으로 기술하는 그런 절차는 분명히, 인과적인 물리학적 법칙을 정량적으로 정식화하는 데 필수적 전제조건이다. 그 법칙으로 인하여 우리는 어떤 일이 발생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구멍의 너비와 굴절각 사이의 관계에 관한 법칙의 전제하에, 구멍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통하여 우리는 굴절각의 확대에 대한 인과적 설명을 제시할 수 있다.
역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바, 인과적 설명은 틀림없이 사회과학에 의해서도 시도된다. 예를 들어 사회과학은 산업 확장을 통하여 제국주의를 설명하는 일을 떠맡는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사례를 참작하면, 사회학적 법칙을 정량적 용어들로 표현하는 것이 절망적 시도임을 우리는 즉각 안다. 왜냐하면 우리가 ‘영토 확장을 향한 경향은 산업화의 강도(强度)와 비례하여 증가한다’와 같은 어떤 그런 정식화를 (혹시 사실들에 대한 참인 묘사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이해될 수 있는 정식화) 고려하면, 그 확장이나 산업화의 강도를 향한 경향을 우리가 측정할 수 있을 방법이 우리에게 없다는 것을 우리가 곧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정량적-수학적 방법에 반대하는 역사주의적 논증을 요약하면, 예를 들어 국가나 경제체제 혹은 정부 형태와 같은 사회적 실체에 의하여 역사 과정에서 경험되는 변화에 대하여 인과적 설명을 제시한다는 것은 사회학자들의 과제이다. 정량적 관계로 이 실체들의 특징을 표현하는 알려진 방법이 없기 때문에, 정량적 법칙이 정식화될 수 없다. 그리하여 사회과학의 인과적 법칙은, 여하한 것이라도 존재한다면 정량적이고 수학적이라기보다 정성적이기 때문에, 물리학의 법칙과 특징에서 틀림없이 크게 다르다. 사회학적 법칙이 어떤 것의 등급을 결정한다면, 그 법칙은 매우 모호한 용어들로 그렇게 할 것이어서 기껏해야 매우 개략적인 측정을 허용할 것이다.
특징은 ㅡ 물리학적이든 아니면 비-물리학적이든 ㅡ 직관에 의하여 평가될 수 있을 따름이다. 우리가 여기서 토론한 논증들은 그리하여, 직관적 이해라는 방법을 선호하여 제시된 논증들을 뒷받침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ㅡ 칼 포퍼, ‘역사주의의 빈곤(The Poverty of Historicism)’. 1976년, 24-6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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