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의 역사주의에 실제로 발전이 없다
‘사회가, 자체의 움직임을 결정하는 자연법칙을 발견했을 때, 심지어 그때도 사회는 자체의 진화에 관한 자연적 단계들을 건너뛸 수도 없고 펜을 휘둘러 세계로부터 그 단계들을 회피할 수도 없다. 그러나 사회는 이만큼만 할 수 있다: 사회는 산고(産苦: birthpangs)를 줄여서 경감할 수 있다.’ 마르크스에게서 기인하는 이 정식화는 역사주의적 입장을 탁월하게 대변한다. 그 정식화가 활동하지 말라고도 가르치지 않고 실제적 운명론을 가르치지도 않을지라도, 역사주의는 임박한 변화를 변경시키려는 여하한 시도도 무익함을 가르친다; 말하자면 역사의 추세에 관한 운명론으로 운명론의 기이한 변종이다. 인정되는 바와 같이, ‘철학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했을 따름이다: 그러나 요점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라는 ‘활동주의적’ 촉구로 인하여 변화에 대한 자체의 강조 때문에 역사주의자들에 많은 공감이 발생할 것이다 (여기서 ‘세계’는 인간사회의 발전을 의미한다고 알기 때문에). 그러나 그 촉구는 역사주의의 가장 중요한 교설과 충돌한다. 이유인즉 우리가 지금 아는 바와 같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주의자는 사회발전을 해석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그 발전을 도울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그의 요점은, 아무도 그 발전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ㅡ 칼 포퍼, ‘역사주의의 빈곤(The Poverty of Historicism), 1976년, 51-2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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