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포퍼 원전+번역문

역사주의는 희망이나 격려를 제공할 수 없다

이윤진이카루스 2025. 10. 1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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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주의는 희망이나 격려를 제공할 수 없다

 

역사주의는 나은 세상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이나 격려를 제공할 수 있는가? 본질적으로 더 합리적 사태를 향한다는 즉, 나은 사태를 향한다는 의미에서 사회발전이 본질적으로 훌륭하거합리적이라고 믿기에 사회발전에 대하여 낙관적 견해를 갖는 역사주의자만 그런 희망을 제공할 수 있을 터이다. 그러나 이 견해는 사회적 및 정치적 기적에 대한 신뢰에 해당할 터인데 왜냐하면 그 견해가 더 합리적 세계를 만들어내는 인간 이성의 능력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영향력을 지닌 몇몇 역사주의적 저술가들은 자유의 왕국이 도래함을 예언했는데 그 왕국 안에서 인간의 사건은 합리적으로 계획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인류가 현재 고통을 당하고 있는 필연의 왕국에서 자유와 이성의 왕국으로의 천이(遷移: transition)는 이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ㅡ 기적적으로 ㅡ 역사적 발전에 대한 맹목적이고 불변적 법칙에 의해서인 냉혹한 필연성에 의해서만 이룩될 수 있고 그 법칙에 우리가 복종하라고 그들은 충고한다.

사회생활에서 이성의 영향력 증대를 간구하는 사람들은, 역사발전의 법칙을 발견하기 위하여 역사를 연구하여 해석하라고 역사주의에 의하여 충고받을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런 해석이, 자신들의 간구에 답하는 변화가 임박했다는 것을 밝힌다면 그 간구는 합당한 간구인데 이유인즉 그 간구가 과학적 예측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임박한 발전이 또 다른 방향으로 향하게 된다면, 세상을 더 합당하게 만들려는 소망은 전혀 부당한 것으로 판명된다; 역사주의자들에게 그것은 그렇다면 유토피아적 꿈일 뿐이다. 행동주의(activism), 임박한 변화를 묵인하여 그 변화의 실현을 돕는다는 조건으로만 정당화될 수 있다.

ㅡ 칼 포퍼, ‘역사주의의 빈곤(The Poverty of Historicism)’, 1976, 50-1쪽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