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과 과학의 관심
우리가 물리학적 원자에 대하여 지닌 직접적 지식보다 ‘인간의 원자 내부’에 대하여 우리가 더 직접적인 지식을 지닌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지식은 직관적이다. 다시 말해서, 어떤 다른 사람에 관하여 혹은 모든 사람에 관하여 가설을 정식화하기 위하여 우리는 틀림없이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이용한다. 그러나 이 가설은 시험되어야 하고 그 가설은 제거에 의한 선택이라는 방법에 부쳐져야 한다. (직관으로 인하여 어떤 사람은 누군가가 아마도 초콜릿을 싫어할 수 있을 터라고 심지어 상상하지도 못한다.) 물리학자가 원자에 관하여 자기 가설을 정식화할 때 그런 직접적인 관찰에 의하여 도움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리학자는, 자신이 심지어 ‘원자의 내부’를 ㅡ 심지어 원자의 변덕과 편견 ㅡ 아주 잘 안다고 느끼도록 쉽게 만들 어떤 종류의 동조적 상상력이나 직관을 매우 자주 이용한다. 그러나 이 직관은 사사로운 일이다. 과학은, 물리학자의 직관이 고취했을 가설에만, 그다음 그 가설에 결론이 풍부하다는 조건으로만 그리고 그 가설이 합당하게 시험된다는 조건으로만 그 가설에 관심을 둔다.
이 몇 가지 언급은 또한, 8절에서 설명된 역사주의적 교설이 ㅡ 다시 말해서, 사회과학은 직관적 이해라는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교설 ㅡ 비판되어야 하는 방식을 가리킬 것이다.
ㅡ 칼 포퍼, ‘역사주의의 빈곤(The Poverty of Historicism)’, 1976년, 138쪽 ㅡ
'칼포퍼 원전+번역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인간 진보의 최고 원인은 고유함과 다양성 및 다름이다 (0) | 2025.11.06 |
|---|---|
| 데카르트, 푸앵카레, 뒤엠(Duhem)에 대한 비판 (0) | 2025.11.06 |
| 자연과학의 방법과 사회과학의 방법은 근본적으로 동일하지만 차이점은? (0) | 2025.11.06 |
| 역사주의의 빈곤 III장 반-자연주의적 교설에 대한 비판 (번역 수정본) (15) | 2025.10.24 |
| 일반화는 기간에 국한되는가 (수정본) (0) | 2025.1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