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반(反)-자연주의적 교설에 대한 비판
19 본 비판의 실용적 목표
과학적 탐구의 참된 동기가, 알고자 하는 갈망 다시 말해서 순전히 이론적이거나 ‘한가한’ 호기심인지 아니면 오히려 삶을 위한 투쟁에서 출현하는 실용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서 과학을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지는 여기서 결정될 필요가 없는 문제이다. ‘순수하’거나 ‘근본적’ 연구를 수행하려는 권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과학적 연구는 건전한 투자로 판명되는 조건으로만 정당화된다는 편협한 견해이자 불행하게도 다시 유행하는 견해에 대항하는 자신들의 싸움에서 모든 응원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인정될 것이다. 그러나 심지어, 인간이 지금까지 알고 있는 가장 위대한 정신적 모험 중 한 가지 모험으로서 과학이 매우 중요하다는 다소 극단적인 견해는 (내가 개인적으로 경도되는), 응용적이건 순수한 것이건, 과학의 진보를 위한 실용적 문제와 실용적 시험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과 결부될 것이다; 이유인즉 실용은, 자극과 통제 모두로서, 과학적 사유를 위하여 무한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칸트의 다음 언급을 인식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실용주의를 옹호할 필요가 없다: ‘모든 호기심이라는 변덕에 따르는 것, 그래서 탐구를 위한 우리의 열정이 우리의 능력 한계만에 의하여 억제되도록 허용하는 것, 이것이 학문에 합당한 정신적 열의를 드러낸다. 그러나 드러나는 셀 수 없이 많은 문제 가운데서 그 해결책이 인류에게 중요한 문제를 선택하는 장점을 갖춘 것은 지혜이다.’
생물과학에 대하여 그리고 아마도 훨씬 더 많이 사회과학에 대하여 이것이 적용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생물과학에 대한 파스퇴르의 개혁은 고도로 실용적인 문제의 자극을 받아서 수행되었는데 그 문제들은 부분적으로 산업과 관련되고 농업과 관련된 것이었다. 오늘날 사회연구에, 심지어 암 연구를 능가하는 실용적 시급성이 있다. 하이에크(Hayek) 교수가 말하는 바와 같이, ‘경제 분석은, 사회적 현상의 원인에 관한 초연한 지적(知的) 호기심의 산물이 아니라 심각한 불만을 야기하는 세계를 재건하려는 강력한 충동의 원인에 관한 초연한 지적(知的) 호기심의 산물이다’; 경제학을 제외하고 아직 이 전망을 채택하지 않는 사회과학 중 몇몇 사회과학에 의하여, 그 과학들이 낳는 쓸모없는 성과 때문에 그 과학들에 대한 사유가 얼마나 시급하게 실용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는지가 밝혀진다.
우리가 과학적 탐구 방식에 관한 연구를 그리고 더욱 특히 우리가 여기서 관심을 두는 사회과학을 일반화하거나 이론화하는 방법에 관한 연구를 고려할 때, 실용적 문제를 자극할 필요가 동등하게 분명하다. 방법에 관한 더 생산적인 논쟁은 항상, 연구자들이 맞대면하는 특정 실용적 문제에 의하여 고취된다; 그리고 그렇게 고취되지 않는 방법에 관한 거의 모든 논쟁으로 인하여 실용적 연구자들과 함께 방법론이 악평에 빠지고 그 모든 논쟁은 쓸데없는 미묘함이라는 분위기에 의하여 규정된다. 더 실용적 종류의 방법론적 논쟁은 유용할 뿐 아니라 필수적이라고 인식되어야 한다. 과학 자체의 발전과 향상에서와 같이, 방법의 발전과 향상에서 우리는 시행착오에 의해서만 배우기에 우리의 실수를 발견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다른 사람의 비판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비판은 더 중요한데 왜냐하면 새로운 방법의 도입은 근본적이고 혁신적 특징을 띤 변화를 의미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수학적 방법을 경제학에, 혹은 소위 ‘주관적’이거나 ‘심리학적’ 방법을 가치이론에 도입하는 것과 같은 사례에 의하여 예시될 것이다. 더 최근의 사례는, 이 이론의 방법들을 통계적 방법들과 결합한 것이다 (‘수요 분석’). 방법에서의 이 마지막 혁신은, 부분적으로 오래 지체되고 주로 비판적 논쟁의 결과였다; 방법 연구를 옹호하는 사람이 틀림없이 격려받는 사실.
사회과학과 그 과학의 방법 모두의 연구에 대한 실용적 접근 방법은, 역사주의적 방법을 사용함에 의하여 자신들이 정치가의 손아귀에서 사회과학을 강력한 도구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하는 역사주의 추종자 중 많은 추종자에 의하여 옹호된다. 역사주의자와 역사주의자를 반대하는 사람 중 몇몇 사람 사이에서 토론을 위한 공통적 토대 같은 것을 제공하는 것이 사회과학의 실용적 과제에 대한 이 인식이다; 그리고 역사주의를, 자체가 약속하는 결과를 낳을 수 없는 빈곤한 방법으로서 비판하기 위하여 나는 이 공통적 토대에 관하여 나 자신의 의견을 낼 준비가 되어있다.
20 사회학에 대한 기술적(技術的: TECHNOLOGICAL) 접근
내 견해로 성공적이었고 내가 추천하는 추가적이고 더 의식적인 저 방법들이 아니라 내가 동의하지 않는 방법의 교설인 역사주의가 나의 주제일지라도, 독자에게 나 자신의 사견을 밝혀서 나의 비판의 기초를 이루는 견해의 요점을 설명하기 위하여 성공적 방법을 먼저 개괄적으로 다루면 유용할 것이다. 편의상, 나는 이 방법을 ‘점진적 기술(漸進的 技術: piecemeal technology)’로 지칭하겠다.
‘사회적 기술(技術: technology)’이라는 용어는 (그리고 다음 절에서 소개될 ‘사회적 공학[工學: engineering]’이라는 용어는 훨씬 더) 의심을 불러일으켜서 그 용어가 집단주의적 계획자들의 혹은 아마도 심지어 ‘기술 관료들(technocrats)’의 ‘사회적 청사진’을 상기시키는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불러오기 쉽다. 나는 이 위험을 이해하고 그래서 바람직하지 못한 연상 작용을 상쇄하고 ‘점진적 땜질하기(piecemeal tinkering)’가 (때때로 그것이 지칭되는 바와 같이) 비판적 분석과 결합되어 자연과학에서뿐 아니라 사회과학에서도 실용적 결과를 낳는 주요한 방식이라는 나의 확신을 표현하기 위하여 나는 ‘점진적’이라는 단어를 추가했다. 사회과학은 크게 주로 사회의 향상을 위한 제안에 대한 비판을 통하여, 혹은 더 정확하게 어떤 특정 경제적이거나 정치적 행위가 기대되거나 바라던 결과를 낳을 것 같은지 아닌지를 알아내려는 시도를 통하여 발전했다. 이 접근방식은 아마도 정말로 고전적 접근방식으로 지칭될 것인데 내가 사회과학에 대하여 기술적(技術的: technological) 접근방식이나 ‘점진적인 사회적 기술(技術: technology)’를 언급할 때 염두에 두는 것이다.
사회과학 분야에서의 기술적(技術的: technological) 문제는 ‘개인적’이 아니면 ‘공적인’ 특징을 띨 것이다. 예를 들어 사업경영의 기법 조사나 생산량에 대한 향상된 작업조건의 효과를 조사는 첫 번째 범주에 속한다. 교도소 개혁이나 국민건강보험의 효과에 대한 조사, 혹은 가령 소득 평등에 근거한 조사위원회를 통한 가격 안정이나 새로운 수입 관세의 도입 및 기타 등등의 효과에 대한 조사는 두 번째 범주에 속한다; 그리고 경기 순환을 통제하는 가능성과 같은 당시의 가장 긴급한 실용적 문제 중 몇 가지 문제도 그러하다; 혹은 생산의 국가 통제라는 의미에서 중앙집권적 ‘계획’이 행정부에 대한 효과적인 민주주의적 통제와 양립될 수 있는지의 문제; 혹은 민주주의를 중동에 수출하는 방법에 관한 문제.
실용적인 기술적(技術的: technological) 접근방식에 대한 이 강조에도 불구하고, 실용적 문제에 대한 분석으로부터 나타날 이론적 문제 중 어떤 문제가 배제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반대로, 기술적(技術的: technological) 접근방식이 순전히 이론적 종류의 중요한 문제를 야기하는 데 유용할 것으로 판명될 것 같다는 것이 나의 주요 요점 중 한 가지 요점이다. 그러나 문제를 선택하는 근본적 과제에서 우리를 돕는 것 외에, 기술적(技術的: technological) 접근방식은 우리의 사변적 경향에 (고유한 사회학의 분야에서 특히 우리를 형이상학의 영역으로 이끌어가기 쉬운) 규율을 부과한다; 이유인즉 그 접근방식이, 명징성이나 실용적 시험가능성의 기준과 같은 확정된 기준에 우리의 이론들 부치라고 우리에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기술적(技術的: technological) 접근방식에 관한 나의 요점은 아마도, 사회학은 (그리고 아마도 일반적 사회과학) 정말로 ‘자체의 뉴튼 같은 사람이나 자체의 다윈 같은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더 정확하게 자체의 갈릴레오 같은 사람이나 파스퇴르 같은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말함에 의하여 밝혀질 것이다.
이것과, 사회과학의 방법 및 자연과학의 방법 사이의 유추에 대한 나의 이전 언급은 ‘사회적 기술(技術: technology)’ 및 ‘사회공학(工學: engineering)’과 (‘점진적’이라는 단어에 의하여 표현되는 중요한 제한사항에도 불구하고 이것) 같은 용어를 우리가 선택하는 만큼 반대론을 야기하기 쉽다. 그래서 나는, 독단적 방법론적인 자연주의나 ‘과학주의(scientism)’에 (하이에크[Hayek] 교수의 용어를 이용하여) 반대하는 싸움의 중요성을 나는 전적으로 인식한다고 말하는 게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추가 특정 분야에서 크게 오용되었고 오해되었음을 우리가 인식할지라도, 그 유추가 생산적인 한 왜 우리가 그 유추를 이용해서는 안 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게다가, 이 독단적 자연주의자들에 대항하여 그 자연주의자들이 공격하는 방법 중 몇몇 방법이 근본적으로 자연과학에서 사용되는 방법과 동일하다고 밝히는 논증보다 더 강력한 논증을 우리가 제시할 수 없다.
우리가 기술적(技術的: technological) 접근방식으로 명명하는 것에 반대하는 겉보기에 반론은, 그 접근방식이 사회질서에 대하여 ‘활동주의적’ 태도 채택을 암시한다는 것과 (1절 참조) 그리하여 그 접근방식이 반(反)-개입주의적이거나 ‘수동주의적’ 견해에 반대하여 우리에게 편견을 주입하기 쉽다는 것이다: 우리가 현존하는 사회적 상황이나 경제적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면 그것은 우리가 그 상황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와 왜 능동적 개입이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들 따름일 터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견해. 이제, 내가 틀림없이 이 ‘수동주의적’ 견해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것과 심지어 보편적 반(反)-개입주의라는 정책이 옹호될 수 없다고 내가 믿는다고 ㅡ 그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개입을 막는 것을 겨냥한 정치적 개입을 추천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심지어 순전히 논리적 근거를 토대로 ㅡ 나는 인정해야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적(技術的: technological) 접근방식 같은 것은 이 문제에서 중립적이고 (그 접근방식이 정말로 틀림없이 그런 것과 같이) 반(反)-개입주의와 전혀 양립불가능하지 않다. 반대로, 반(反)-개입주의는 기술적(技術的: technological) 접근방식을 포함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유인즉 개입주의가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주장하면, 특정 정치적 행위가 특정 효과를 내지 않을 ㅡ 다시 말해서, 바라던 효과를 내지 않을 ㅡ 터라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룩될 수 없는 것을 지적하는 것은 기술(技術: technology)의 가장 특징적 과제 중 한 가지 과제이다.
이 요점은 더 세밀하게 고찰할 가치가 있다. 내가 다른 곳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런저런 것은 발생할 수 없다고 주장함에 의하여 모든 자연법칙은 표현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다음과 같은 격언의 형태로 된 문장에 의하여: ‘체로 물을 운반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다음과 같이 표현될 수 있다: ‘영원히 움직이는 기계를 만들 수 없다’; 그리고 엔트로피 법칙은 다음과 같이: ‘100% 효율적 기계를 만들 수 없다.’ 자연법칙을 언명하는 이런 방식은, 자연법칙을 명백하게 만드는 방식이고 그리하여 그 방식은 자연법칙의 ‘기술적(技術的: technological) 형태’로 지칭될 것이다. 우리가 반(反)-개입주의를 이런 관점에서 이제 고찰한다면, 반(反)-개입주의는 다음과 같은 형태의 문장에 의하여 표현될 것을 우리가 즉각 안다: ‘이런저런 결과는 이룩될 수 없다,’ 혹은 아마도, 이런저런 부수적 결과 없이 이런저런 목표는 이룩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하여, 반(反)-개입주의가 전형적으로 기술적인(技術的인: technological) 교설로 지칭될 수 있다고 밝혀진다.
물론 반(反)-개입주의는 사회과학의 영역에서 유일한 기술적(技術的: technological) 교설이 아니다. 반대로, 반(反)-개입주의로 인하여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사이에서 실제로 근본적 유사성이 주시된다는 사실에 우리 분석의 중요성이 놓여있다. 자연과학의 법칙이나 가설과 비슷한 사회학적 법칙이나 가설의 존재를 나는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런 사회학적 법칙이나 가설의 (소위 ‘역사관련 법칙’을 제외하고) 존재가 흔히 의문시되었기 때문에, 이제 나는 몇 가지 사례를 제시하겠다: ‘농산물 관세를 도입하면서 동시에 생계비를 낮출 수 없다.’ ㅡ ‘산업사회에서 특정 생산자 압력단체만큼 효과적으로 소비자 압력 단체를 조직할 수 없다. ㅡ ‘중앙집권적 계획 사회에 가격 경쟁이라는 주요 기능을 충족하는 가격 체계가 있을 수 없다.’ ㅡ ‘물가상승 없이 완전 고용이 있을 수 없다.’ 권력 정치의 영역에서 또 다른 사례의 무더기가 도출될 것이다: ‘겨냥된 목표의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몇 가지 결과를 (그리하여 그 결과를 조심하라) 야기하지 않고 정치적 개혁을 시작할 수 없다.’ ㅡ ‘개략적으로 개혁의 범위에 비례하는 정도까지, 반대 세력을 강화시키지 않고 정치적 개혁을 도입할 수 없다.’ (이것은, ‘현재 상태와 연관된 이해관계가 항상 있다’라는 기술적인[技術的인: technological] 당연한 추론이라고 언급될 것이다.) ㅡ ‘반-혁명을 일으키지 않고 혁명을 실행할 수는 없다.’ 이 사례들에 두 가지 사례를 우리는 더 추가할 것인데 그 사례는 각각 ‘플라톤의 혁명 법칙’과 (국가[Republic])의 8권으로부터) 액튼 경(Lord Acton)의 부패 법칙으로 지칭될 것이다: ‘지배 계급이 내부 불화나 전쟁 패배에 의하여 약화되지 않으면 성공적 혁명은 성취될 수 없다.’ ㅡ ‘사람에게 권력을 오용하도록 유혹하지 ㅡ 휘두르는 권력의 양에 개략적으로 비례하여 증가하는 그리고 저항하는 사람이 없는 유혹 ㅡ 않고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는 권력을 사람에게 줄 수 없다.’ 여기서 이 가설들을 뒷받침하여 이용될 수 있는 증거의 힘에 관하여 아무것도 전제되지 않으며, 그 가설들의 언명은 틀림없이 개선의 여지를 많이 남긴다. 그 가설들은, 점진적 공학이 토론하여 증명하려고 시도할 종류의 서술에 관한 사례일 따름이다.
21 점진적 공학 대(對) 유토피아적 공학
‘공학’이라는 용어에 부착되는 혐오스러운 연상에도 불구하고, 점진적 기술(技術: technology)의 결과를 실용적으로 적용함을 서술하기 위하여 나는 ‘점진적 사회공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 어떤 목표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사용 가능한 모든 기술적(技術的: technological) 지식을 의식적으로 사용하는 공적(公的)일 뿐 아니라 사사로운 사회적 활동을 포함하는 용어에 대한 필요가 있기 때문에 그 용어는 유용하다. 점진적 사회공학은, 기술(技術: technology)의 영역을 넘는 것으로서 목적에 관하여 물리 공학을 닮는다. (목적에 관하여 기술[技術: technology]이 언급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목적들이 서로 양립 가능한지 혹은 실현 가능한지 아닌지이다.) 이 점에서 점진적 사회공학은 역사주의와 다른데 역사주의는 인간 활동의 목적을 역사적 힘(forces)에 의존하여 역사주의 영역 안에 있는 것으로서 간주한다.
물리공학자의 주요 과제가 기계들을 고안하여 그 기계들을 개조하고 유지와 보수하는 것임과 꼭 마찬가지로, 점진적 사회공학자의 과제는 사회제도를 고안하여 이미 존재하는 저 사회제도를 재구축하여 운영하는 것이다. ‘사회제도’라는 용어는 여기서, 공적 및 사사로운 특징을 띤 집단을 포괄하기 위하여 매우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그리하여 나는 그 용어를 사용하여, 작은 가게건 보험회사건 사업을 그리고 똑같이 학교나 ‘교육제도’나 경찰력 혹은 교회나 법정을 서술한다. 점진적 기술자나 공학자는, 사회제도 대부분이 인간 행위가 낳은 의도되지 않은 결과로서 다만 ‘성장한’ 반면 소수의 사회제도만 의식적으로 고안된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 중요한 사실에 의하여 아무리 강력하게 그가 인상을 받을지라도, 공학자나 기술자로서 그는 ‘기능적’이거나 ‘도구적’ 관점에서 사회제도를 바라볼 것이다. 그는 사회제도를 특정 목적에 대한 수단으로서, 혹은 특정 목적을 수행하는 데로 전환될 수 있는 것으로서 볼 것이다; 유기체로서라기보다 기계로서. 이것은 물론, 그가 제도와 물리적 도구 사이의 근본적 차이점을 간과할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반대로, 기술자는 틀림없이 유사점뿐 아니라 차이점도 연구하여 자신이 얻은 결과를 가설의 형태로 표현한다. 그리고 정말로 다음 사례에 의하여 밝혀지는 바와 같이, 제도에 관한 가설을 기술적(技術的: technological) 형태로 정식화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무오류의 제도를, 다시 말해서 그 작동이 매우 크게 사람들에게 의존하지 않는 제도를 구축할 수 없다: 제도는, 기껏해야, 제도가 고안되는 목적을 위하여 일하는 그리고 그들의 개인적 행동력과 지식에 성공이 주로 의존하는 사람들을 도움에 의하여 개인적 요소라는 불확실성을 감소시킬 수 있다. (제도는 요새와 같다. 제도는 잘 고안되어야 하고 동시에 합당한 인사 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점진적 공학자의 특징적 접근방식은 이렇다. 혹시 그가 ‘전체로서’ 사회에 관련하는 몇 가지 이념을 ㅡ 아마도 사회의 일반적 복지 ㅡ 귀중하게 여길지라도, 그는 전체로서 사회를 다시 고안하는 방법을 신뢰하지 않는다. 그의 목적이 무엇이든, 지속적으로 개선될 수 있는 작은 조정과 재조정에 의하여 그 목적을 이룩하려고 그는 노력한다. 그의 목적은 다양한 종류일 것인데 예를 들어, 특정 개인들이나 특정 집단들에 의한 부(富)나 권력의 축적이다; 혹은 부(富)나 권력의 분배; 혹은 개인이나 집단이 가진 특정 ‘권리’ 보호, 기타 등등. 그리하여 진보적일 뿐 아니라 전체주의적인 가장 다양한 경향이 공적이거나 정치적 사회공학에 있을 것이다. 점진적 개혁을 위한 포괄적인 진보적 강령의 사례가 W. 리프먼(Lippmann)에 의하여 ‘진보주의의 의제(The Agenda of Liberalism)’라는 제목으로 제시되었다. 점진적 공학자는, 소크라테스처럼, 우리가 얼마나 아는 게 없는지를 안다. 그는, 우리가 우리의 실수로부터만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그는, 조심스럽게 기대된 결과를 이룩된 결과와 비교하면서 그리고 개혁이 낳는 불가피하게 원치 않는 결과를 항상 조심하면서 점진적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가 원인과 결과를 분리하여 자신이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복잡성과 범위에 대하여 개혁 실천을 피할 것이다.
그런 ‘점진적 땜질하기’는, 많은 ‘활동주의자’의 정치적 기질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 활동주의자들의 강령은 ‘사회공학’의 강령으로서 또한 서술되기도 했는데 ‘전체론적’이거나 ‘유토피아적 공학’으로 지칭될 것이다.
전체론적 혹은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은, 점진적 사회공학과 반대로, ‘개인적’ 특징을 띠는 적이 없고 항상 ‘공적(public)’ 특징을 띤다. 그 공학은 확정된 계획이나 청사진에 따라서 ‘사회 전체’의 개조를 겨냥한다; 그 공학은 ‘주요 요직을 장악하는 것’과 ‘국가가 거의 사회와 동일하게 될 때까지... 국가권력’ 확대를 겨냥하며 나아가 그 공학은 이 ‘주요 요직’으로부터 발전하는 사회의 미래를 주조하는 역사적 힘(forces)의 통제를 겨냥한다: 이 발전을 중단시킴에 의해서나 아니면 그 발전의 과정을 예견하여 사회를 그 과정에 조정함에 의하여.
아마도 여기서 서술된 점진적 접근방식과 전체론적 접근방식이, 우리가 점진적 접근방식의 범위에 한계를 두었음을 고려하여, 근본적으로 다른지가 의문시될 것이다. 이 접근방식이 여기서 이해되는 바와 같이, 예를 들어 헌법 개정은 그 범위에 충분히 속한다; 또한 일련의 점진적 개혁이 아마도 예를 들어 소득의 더 큰 평준화를 향한 경향인 한 가지 일반적 경향에 의하여 고취될 것이라는 가능성을 나는 배제하지 않겠다. 이런 방식으로, 점진적 방식은 통상적으로 ‘사회의 계급구조’로 지칭되는 것에서 변화를 야기할 것이다. 더 야심찬 이런 종류의 점진적 공학과 전체론적이거나 유토피아적 접근방식 사이에 차이점이 있는가? 라는 질문이 생길 것이다. 우리가 어떤 제시된 개혁에서 생길 결과를 평가하려고 시도할 때 점진적 공학자가 사회 ‘전체’에 미치는 어떤 조치의 결과를 측정하려고 틀림없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우리가 고려한다면 이 질문은 훨씬 더 유관하게 될 것이다.
이 질문에 답변하면서, 나는 두 가지 방식 사이에 정확한 구분선을 그으려고 시도하지 않겠지만 전체론적 공학자와 점진적 공학자가 사회 개혁이라는 과제를 바라보는 매우 다른 관점을 제시하려고 나는 시도하겠다. 전체론자는, 점진적 접근방식을 너무 겸허한 것으로서 배척한다. 그러나 그들이 그 접근방식을 거부하는 것은, 그들의 관행에 부합하지 않는다; 이유인즉 실제로 그들은, 야심적이고 무자비할지라도, 본질적으로 점진적인 방식인 것을 그 방식이 지닌 신중하고도 자기-비판적 특징 없이 다소 무계획적이고 서투르게 적용하기에 항상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유는, 사실상 전체론적 방식이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된다는 것이다; 전체론적 변화가 더 크게 시도될수록, 그 변화가 낳는 의도되지 않고 주로 기대되지 않은 결과로 인하여 전체론적 공학자는 점진적 즉흥 조치라는 미봉책을 쓸 수밖에 없다. 사실상 이 미봉책은, 더 겸허하고 신중한 점진적 개입보다 중앙집권적이거나 집단주의적 계획에 더 특징적이다; 그리고 이 미봉책으로 인하여 유토피아적 공학자는 지속적으로 자신이 수행하려고 의도하지 않았던 것을 실행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그 미봉책은 계획되지 않은 계획이라는 악명 높은 현상을 야기한다. 그리하여 유토피아적 공학과 점진적 공학 사이의 차이점은 사실상 규모와 범위에서의 차이점이라기보다 불가피한 예기치 않은 사건에 대한 신중함과 대비 태세에서의 차이점으로 판명된다. 실제로 두 가지 방식은 규모와 범위에서와 다른 면에서 다르다고 ㅡ 우리가 합리적 사회 개혁에 대한 합당한 방법에 관하여 두 가지 교설을 비교한다면 우리가 기대하도록 영향을 받는 것과 반대로 ㅡ 우리는 또한 말할 수 있을 터이다. 이 두 가지 교설 중에서, 다른 하나가 허위여서 회피될 수 있고 심각하기도 한 오류를 야기하기 마련인 반면, 하나는 참이라고 내가 믿는다. 두 가지 방식 중에서, 다른 하나가 존재하지 않을 뿐인 반면 하나는 가능하다고 내가 믿는다: 다른 하나는 불가능하다.
그리하여 유토피아적이거나 전체론적 접근방식과 점진적 접근방식 사이의 차이점 중 한 가지 차이점은 이런 방식으로 서술될 것이다: 점진적 공학자가 개혁의 범위에 관하여 열린 정신으로 자신의 문제를 공격할 수 있는 반면,
전체론자는 이렇게 할 수 없다; 이유인즉 전체론자는 완벽한 재건축이 가능하며 필요하다고 사전에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광범위한 결과를 낳는다. 이 사실로 인하여, 제도적 통제에 대하여 한계를 서술하는 특정 사회학적 가설에 반하여 유토피아주의자는 편견을 갖게 된다; 예를 들어 이 절의 위에서 언급된 한 가지 제도적 통제인데 개인적 요소인 ‘인간적 요인’에서 기인하는 불확실성을 표현한다. 그런 가설을 선험적으로 배척함에 의하여, 유토피아적 접근방식은 과학적 방법의 원칙을 위반한다. 다른 한편, 인간적 요인의 불확실성과 연관된 문제로 인하여 유토피아주의자는 좋든 싫든 제도적 수단에 의하여 인간적 요인을 어쩔 수 없이 통제하려 시도하고 계획에 따라서 사회변혁뿐 아니라 인간변혁도 포함하기 위하여 자신의 강령을 확대한다. ‘그리하여 정치적 문제는, 인간이 지닌 충동이 자체의 에너지를 올바른 전략적 요점에 겨누어 바라는 방향으로 발전의 전체 과정을 이끌 방식으로 인간이 지닌 충동을 조직하는 것이다.’ 좋은 의도를 지닌 유토피아주의자가 심지어 이 강령을 개시하기도 전에 이 강령이 실패 인정을 함축한다는 것은 그 유토피아주의자에게 닿지 않는 듯이 보인다. 이유인즉 그 강령이, 이 남녀들이 살기에 적당한 새로운 사회를 우리가 건설해야 한다는 그 유토피아주의자의 요구를, 그 유토피아주의자가 만드는 새로운 사회에 알맞도록 우리가 이 남녀들을 ‘주조해야’ 한다는 요구로 대체하기 때문이다. 이것으로 인하여 분명히, 새로운 사회의 성패를 시험하는 기회가 제거된다. 이유인즉 그 사회에서 살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리하여 자신들이 그 사회에서 살기에 아직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지닌 ‘인간적 충동’이 더 ‘조직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정할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험의 가능성이 없다면 ‘과학적’ 방법이 사용되고 있다는 여하한 주장도 사라진다. 전체론적 접근방식은 진정으로 과학적 태도와 양립될 수 없다.
유토피아적 공학은 이 연구의 주제 중 하나의 주제가 아니지만, 그 공학이 다음 3가지 절에서 역사주의와 함께 고찰될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집단주의적 (혹은 중앙집권적) 계획이라는 명칭 하에서 그 공학은 ‘점진적 기술(技術: technology)’과 ‘점진적 공학’으로부터 예리하게 구분되어야 하는 매우 유행성 교설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유토피아주의는 점진적 접근방식에 대한 자체의 적대감에서 역사주의를 닮을 뿐 아니라 자주 역사주의적 이념과 힘(forces)을 합치기도 하기 때문이다.
22 유토피아주의와의 비-신성(非-神聖) 동맹
내가 ‘점진적 기술(技術: technology)’과 ‘역사주의’로 지칭한 두 가지 방법론적 접근방식 사이에 대립이 있다는 것은 밀(Mill)에 의하여 분명하게 인식되었다. ‘두 가지 종류의 사회학적 탐구가 있다’라고 그는 서술했다. ‘첫 번째 종류에서, 제시된 질문은,... 예를 들어, 현재 사회의 상태에서 보통 선거권을 도입하는... 효과는 무엇일 터인가?... 그러나 두 번째 탐구도 있다... 이것에서 질문은, 사회의 특정 상태에서 주어진 원인의 효과가 무엇일지가 아니라 사회의 상태를 일반적으로... 유발하는 원인이 무엇인가? 이다.’ 밀(Mill)이 말하는 ‘사회의 상태(States of Society)’가 우리가 ‘역사적 기간들’로 지칭한 것과 정확하게 일치함을 고려하면, ‘두 가지 종류의 사회학적 탐구’를 그가 구분한 것은 우리가 점진적 기술(技術: technology)이라는 접근방식과 역사주의라는 접근방식을 구분하는 것에 부합한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콩트[Comte]의 영향을 받아서) 밀(Mill)이 첫 번째 종류의 사회학적 탐구보다 더 우월하다고 선언하는 그리고 밀(Mill)이 자신이 ‘역사적 방법’으로 지칭하는 것을 이용하는 것으로서 서술하는 ‘두 번째 종류의 사회학적 탐구’에 대한 밀(Mill)의 서술을 우리가 더 면밀하게 추적한다면, 이것은 훨씬 더 명백해진다.
앞에서 (1, 17 및 18절)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역사주의는 ‘활동주의’의 반대가 아니다. 역사주의적 사회학은 심지어 새로운 역사적 기간의 ‘산고(産苦: birth pangs)를 줄이고 경감하는’ 데 도움을 줄 (마르크스가 그것을 표현하는 바와 같이) 일종의 기술(技術: technology)로서 해석될 수 있다. 그리고 정말로, 역사적 방법에 대한 밀(Mill)의 서술에서 이 관념이 마르크스의 관념과 뚜렷하게 유사한 방식으로 정식화됨을 우리가 발견한다: ‘이제 규정되는 방법은, 그 방법에 의하여... 사회진보의... 법칙이 추구되어야 하는 방법이다. 그 방법의 도움에 의하여 우리는, 여기서부터 인류의 미래 역사를 멀리 앞으로 조사하는 데뿐 아니라 인위적 수단이 유익한 한 자연적 진보를 가속하기 위하여... 어떤 인위적 수단이 사용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에서도 성공할 것이다... 그런 실용적 지침은 사변적 사회학의 최고 분야에 근거하는 데 정치 기술의 가장 고귀하고도 가장 유익한 부분을 형성할 것이다.’
이 구절에 의하여 지적되는 바와 같이, 나의 접근방식과 역사주의적 접근방식 사이의 차이점을 표시하는 것은 기술(技術: technology)이라는 사실이라기보다 점진적 기술(技術: technology)이라는 사실이다. 역사주의가 기술적(技術的: technological)인 한, 그 접근방식은 점진적이 아니라 ‘전체론적’이다.
밀(Mill)의 접근방식은, 그가 ‘사회의 상태’에 (혹은 역사적 기간) 의하여 의미하는 것을 설명할 때, 매우 명백하게 밝혀진다: ‘사회의 상태라고 지칭되는 것은... 더 큰 모든 사회적 사실이나 현상의 동시적 상태이다’라고 그가 서술한다. 이 사실에 대한 사례는 다른 것들 가운데서: ‘산업의, 부(富)와 부(富)의 분배의 상태’이다; 사회를 ‘계급들로 나누는 것과 서로에 대한 저 계급들의 관계들이다; 그 계급들이 주목하는 공통적 믿음이다...; 정부에서 그 계급들의 형태, 그리고 그 계급들의 법률과 관습 중 더 중요한 것이다.’ 요약하면서 밀(Mill)은 사회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사회의 상태는 물리학적 틀에서 다양한 시대와... 같다; 그 상태는, 한 가지 혹은 몇 가지 기관(器官: organs)이나 기능에서 상황이 아니라 전체 유기체의 상황이다.’
점진적 기술(技術: technology)로부터 역사주의를 매우 근본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그리고 역사주의가 특정 유형의 전체론적이거나 유토피아적 사회공학과 연합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이 전체론이다.
이것은 틀림없이 다소 기묘한 연합이다; 이유인즉 사회공학에 의하여 우리가 계획에 따른 사회제도의 구축을 이해한다면, 우리가 안 바와 같이 (15절에서) 역사주의자의 접근방식과 사회공학자나 사회 기술자의 접근방식 사이에 매우 확정적인 충돌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주의의 관점에서 역사주의적 접근방식은, 꼭 기상학자의 접근방식이 비를 내리게 하는 마술사의 접근방식과 반대가 되는 만큼, 여하한 종류의 사회공학과도 근본적으로 반대가 된다; 따라서 사회공학은 (심지어 점진적 접근방식도) 역사주의자들에 의하여 유토피아적이라고 공격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질서를 위한 청사진’이나 ‘중앙집권화된 계획’이라는 관념과 같은 전체론적이거나 유토피아적 공학에 전형적인 바로 저 관념들과 매우 빈번하게 연합되는 역사주의를 우리가 발견한다.
이 연합과 관련된 두 명의 특징적 대표자는 플라톤과 마르크스이다. 비관론자인 플라톤은, 모든 변화는 ㅡ 혹은 거의 모든 변화 ㅡ 부패라고 믿었다; 이것이 그의 역사 발전 법칙이었다. 따라서 그의 유토피아적 청사진은 모든 변화를 중지시키는 것을 겨냥한다; 오늘날 그것은 ‘정역학(靜力學: static)’으로 지칭될 터이다. 다른 한편 마르크스는 낙관론자였고 아마도 (스펜서[Spencer]처럼) 역사주의적 도덕론을 옹호한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의 유토피아적 청사진은 정지된 사회에 대한 청사진이라기보다 발전적이거나 ‘역동적’ 사회에 대한 청사진이었다. 그는, 정치적이거나 경제적 강압이 없는 이상적 유토피아에서 최고조에 달하는 발전을 예언하여 능동적으로 그 발전을 확대하려고 시도했다: 국가는 소멸하고, 개인은 자기 능력에 따라서 자유롭게 협동하여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충족된다.
역사주의와 유토피아주의의 연합에서 가장 강력한 요소는, 의심할 바 없이, 두 가지 모두에 공통적인 전체론적 접근방식이다. 역사주의는 사회생활의 면모의 발전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사회’의 발전에 관심을 둔다; 그리고 유토피아적 공학은 유사하게 전체론적이다. 두 가지 모두는, 다음 절에서 증명될 사실을 ㅡ 이런 의미에서 ‘전체’는 결코 과학적 탐구의 대상일 수 없다는 사실을 ㅡ 간과한다. 두 가지 당파는 ‘점진적 땜질하기’와 ‘계획 없이 어느 정도 성공하기’에 만족하지 못한다: 두 가지 당파는 더 급진적인 방법을 채택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역사주의자와 유토피아주의자 모두는, 변화하는 사회적 환경에 대한 경험에 (흔히 놀랍고 때때로 ‘사회적 붕괴’로 서술되는 경험) 의하여 인상을 받고 심지어 깊이 당혹하는 듯이 보인다. 따라서 그들 모두는, 한 사람은 사회발전의 과정을 예언함에 의하여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변화가 엄격하고 완벽하게 통제되거나 심지어 변화가 완전히 정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함에 의하여, 이 변화를 합리화하려고 시도한다. 그 통제는 완벽해야 하는데 이유인즉 그렇게 통제되지 않는 사회생활의 어떤 분야에 보이지 않는 변화를 야기하는 위험한 힘(forces)이 잠복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역사주의자와 유토피아주의자 사이의 또 다른 연결 고리는, 두 사람 모두 자신의 목표나 목적이 선택이나 도덕적 결정의 문제라고 믿지 않고 그 목표나 목적이 자신들의 탐구 분야 안에서 자신들에 의하여 과학적으로 발견될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들은 정확하게 물리 공학자와 다른 만큼, 점진적 공학가 및 기술자와 다르다.) 역사주의자와 유토피아주의자 모두는, 자신들이 ‘사회’의 참된 목표나 목적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사회의 역사적 경향을 결정함에 의하여, 혹은 ‘자기들의 시대에 필요한 것’을 진단함에 의하여. 그리하여 그들에게 특정 종류의 역사주의적 도덕이론을 채택하는 경향이 있다 (18절 참조). 유토피아적 ‘계획하기’를 옹호하는 저술가 대부분이 역사가 나아가는 방향 때문에 계획하기는 불가피하다고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우리는 계획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동일한 역사주의적 표현방식으로, 이 저술가들은 자신들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퇴행적이라고 꾸짖으며 ‘낡은 사고 습관을 깨뜨리고 변하는 사회를 이해하는 새로운 비결을 발견하는 것’이 자신들의 주요 과제라고 믿는다. 우리가 점진적 접근방식이나 ‘“계획 없이 어느 정도 성공하기”라는 정신’을 포기할 때까지 사회 변화의 추세가 성공적으로 영향을 받거나 심지어 방향 전환이 될 수도 없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새로운 ‘계획하기 수준에서 사유’는, 전체론이 플라톤에서부터 계속하여 상당히 고대 사고의 특징이었던 듯이 보이기 때문에 그 사유가 예상되는 만큼 참신한지 의심스러울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유의 발전에서 높은 수준이거나 최근 단계와 그렇게 동떨어진 전체론적 사유 방식이 (‘사회’에 관해서건 ‘자연’에 관해서건) 과학 이전의 단계에 특징적이라는 견해에 대하여 상당히 훌륭한 사례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23 전체론에 대한 비판
나 자신의 편향을 밝혀서, 한편 점진적 접근방식과 다른 한편 역사주의 및 유토피아주의 사이의 대립뿐 아니라 나의 비판의 기초를 이루는 관점을 개괄한 후 나는 이제 역사주의적 교설에 대한 검토라는 나의 주요 과제로 나아가겠다. 나는 전체론에 대한 간략한 비판으로써 시작하겠는데 왜냐하면 전체론이 공격받는 이론의 가장 결정적 입장 중 한 가지 입장으로 이제 판명되었기 때문이다.
최근의 전체론적 문헌에서 ‘전체’라는 단어를 사용함은 근본적으로 애매모호하다. 그 단어는 (α) 사물의, 특히 사물의 구성적 부분 사이에서 성립하는 모든 관계의 모든 속성이나 양상 전체를, 그리고 (b) 문제의 물체의 어떤 특별한 속성이나 양상을, 즉 사물이 ‘단순한 무더기’라기보다 조직된 구조로 보이게 만드는 특별한 속성이나 양상을 의미하는 데 사용된다. (b)의 의미에서 전체는 특히 심리학의 소위 ‘형태(Gestalt)’ 학파에 의하여 과학적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유기체나 전기장(電氣場: electrical fields)이나 기계와 같은 특정 사물에서 발견될 수 있는 구조의 규칙성으로서 (예를 들어, 대칭) 우리가 그런 양상을 연구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정말로 없다. 형태(Gestalt) 이론이 표현하는 바와 같이, 그런 구조를 지닌 사물에 대하여 그 사물은 집합체 이상이라고 ㅡ ‘그 사물의 부분들의 단순한 총화 이상’ ㅡ 언급될 것이다.
형태(Gestalt) 이론의 사례 중 어떤 사례도, (b)의 의미에서의 전체는 (a)의 의미에서의 전체와 매우 다르다는 것을 밝히는 데 사용될 것이다. 멜로디는 단일한 음악 음들의 단순한 집합이나 배열 이상이라는 것을 형태(Gestalt) 이론가와 함께 우리가 참작한다면, 우리가 참작하려고 선별하는 것은 음들(sounds)의 이 배열이 띠는 양상 중 하나의 양상이다. 그것은, 이 음 중 첫 번째 음의 절대 높이나 그 음들의 평균적 절대 강세와 같은 다른 양상과 분명하게 구분될 양상이다. 그리고 예를 들어 멜로디의 리듬인 멜로디의 양상보다 훨씬 더 추상적인 형태(Gestalt) 양상이 있다; 이유인즉 리듬을 참작함에 의하여 우리는 심지어 상대적 음높이를 무시하는데 상대적 음높이는 멜로디와 관련하여 중요하다. 그렇게 선택적이 됨에 의하여 형태(Gestalt)에 대한 연구 및, 그 연구와 함께 (b)의 의미에서의 전체에 대한 연구는 전체성에 대한 즉, (α)의 의미에서의 전체에 대한 연구와 뚜렷이 구별된다.
(b)의 의미에서 전체가 과학적으로 연구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리하여 틀림없이, (α)의 의미에서 전체들이 그렇게 연구될 수 있다는 전혀 다른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도움이 되지 않는다. 후자(後者) 주장은 배척되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연구하고 싶어 하면 우리는 그 사물의 특정 양상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세계의 전체 조각이나 자연의 전체 조각을 관찰하거나 서술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사실상 심지어 가장 작은 전체 조각도 그렇게 서술되지 않을 것인데 왜냐하면 모든 서술은 반드시 선택적이기 때문이다. (α)의 의미에서 전체는 과학적이든 다른 것들이든 어떤 활동의 대상이 결코 될 수 없다고 심지어 언급될 것이다. 우리가 어떤 유기체를 잡고 또 다른 장소로 그 유기체를 옮긴다면, 우리는 그 유기체가 지닌 양상 중 많은 양상을 무시하면서 그 유기체를 물리적 물체로서 다룬다. 우리가 그 유기체를 살해한다면 우리는 그 유기체가 지닌 속성 중 특정 속성을 파괴했지만, 결코 그 속성 모두를 파괴하지는 않았다. 사실상 우리가 그 유기체를 박살하거나 태울지라도 우리는 도저히 그 유기체가 지닌 속성의 전체와 그 유기체가 지닌 부분의 모든 상호-관계 전체를 파괴할 수 없다.
그러나 총합이라는 의미에서 전체는 과학적 연구의 대상 혹은 통제나 재건축과 같은 다른 활동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심지어 일반적으로 과학이 선택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전체론자들에게도 이해되지 않았던 듯이 보인다. 그들은 형태(Gestalt) 심리학이라는 전례에 의존하기 때문에 사회적 전체들에 (총합들이라는 의미에서) 대하여 과학적 파악이 가능함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유인즉 형태(Gestalt) 접근방식과, ‘한 시대의 모든 사회적 및 역사적 사건의 구조’를 포함하는 (α)의 의미에서의 사회적 전체들에 대한 처리 사이의 차이점은, 사회적 전체들이 ‘일별해서 이해되기에는 너무 미묘하여’ 그 전체들은 ‘오랫동안 생각한 다음에 겨우 점진적으로 파악되고 그 오랜 생각에서 모든 요소가 주목되고 비교되어 결합되는’ 반면 형태(Gestalt)는 직접적인 직관적 감지에 의하여 파악될 것이라는 사실에 놓여있다고 그들이 믿기 때문이다. 요컨대 전체론자들은, 형태(Gestalt) 감지가 (α)의 의미에서의 전체들과 관련이 없을 따름이라는 것과 직관적이건 논증적이건 모든 지식은 틀림없이 추상적 양상을 띤다는 것과 우리는 결코 ‘사회적 실재 자체의 구체적 구조’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 요점을 간과한 다음, ‘사소한 세부 사항’에 대한 전문가의 연구는 ‘전체 과정’을 재구축하는 것을 겨냥하는 ‘통합적’이거나 ‘종합적’ 방법에 의하여 보완되어야 한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리고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전체로서 보기를 거부한다면 사회학은 계속해서 본질적 질문을 무시할 것’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이 전체론적 방법은 반드시 단순한 강령으로 남는다. 전체에 대한 과학적 서술의 한 가지 사례로서 구체적인 사회적 상황이 인용된 적이 없다. 그리고 그 상황은 인용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모든 그런 경우 무시된 양상을 지적하는 것이 항상 쉬울 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문맥에서 매우 중요할 양상을 지적하는 것이 항상 쉬울 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론자들은, 불가능한 방법에 의하여 전체 사회를 연구할 계획을 세울 뿐 아니라 그들은 또한 ‘전체로서’ 우리의 사회를 통제하여 재구축할 계획을 세운다. 그들은, ‘국가의 힘은 국가가 거의 사회와 동일하게 될 때까지 증가하기 마련이라고’ 예언한다. 이 구절에 의하여 표현되는 직관은 매우 명백하다. 그것은 전체주의적 직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직관을 전달하는 것과 별개로, 예언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회’라는 용어는 물론 모든 개인적 관계를 포함하여 모든 사회적 관계를 포괄한다; 모친과 자녀 둘 중 하나에 대한 아동복지사의 관계만큼 자녀에 대한 모친의 관계를 포괄한다. 이 관계 모두를 혹은 ‘거의’ 모두를 통제한다는 것은 많은 이유 때문에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단지 사회적 관계에 대한 모든 새로운 통제로써 우리가 통제될 많은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야기하기 때문이라면 이 관계 모두를 혹은 ‘거의’ 모두를 통제한다는 것은 많은 이유 때문에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요컨대, 그 불가능성은 논리적 불가능성이다. (시도하면 무한회귀[無限回歸: infinite regress]가 발생한다; 그 입장은, 사회의 전체를 연구하려는 시도의 경우에서 유사하다 ㅡ 그것은 틀림없이 현재의 연구도 포함할 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토피아주의자들이 정확하게 불가능한 것을 시도하려고 계획한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있을 리 없다; 이유인즉 그들이 우리에게, 다른 것들 가운데서 ‘개인적 교제를 더 실재론적 방식으로 주조하는 것’이 심지어 가능할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b) 의미에서의 전체들이 (α) 의미에서의 전체들과 반대로, 주조되거나 통제되거나 심지어 창조될 수 있다는 것을 아무도 물론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예를 들어 멜로디를 창조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전체적 통제를 실행하려는 유토피아적 꿈들과 관계가 없다.)
유토피아주의에 대해서 이만큼만 하자. 역사주의에 관한 한, 그 입장은 유사하게 절망적이다. 역사주의적 전체론자들은 흔히, 역사적 방법은 총합들이라는 의미에서 전체를 다루기에 적합하다고 함축적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오해에 근거한다. 이 주장은, 이론과학에 반대되는 것으로서 역사가 추상적인 일반적 법칙에 관심을 두기보다 구체적인 개별적 사건 및 개별적 인격에 관심을 둔다는 올바른 믿음과 역사가 관심을 두는 ‘구체적’ 개인들이 (α)의 의미에서의 ‘구체적’ 전체들과 동일시될 수 있다는 그릇된 믿음을 결합함으로부터 생긴다. 그러나 구체적 개인들은 (α)의 의미에서의 구체적 전체들과 동일시될 수 없다; 이유인즉 역사는, 다른 종류의 탐구와 같이, 역사가 관심을 두는 대상들에서 선택된 측면을 다룰 수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유기체의 전체’나 ‘한 시대의 모든 사회적 및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는 ‘사회의 상태’에 대한 역사인 전체론적 의미에서의 역사가 있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오류다. 이 관념은, 인류의 역사를 거대하고 포괄적 발전의 흐름으로서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유래한다. 그러나 그런 역사는 서술될 수 없다. 서술되는 모든 역사는, 이 ‘전체’ 발전의 특정 협소한 측면에 대한 역사이어서 어떤 정도로든 심지어 선택된 특수하고 불완전한 측면에 대해서도 매우 불완전한 역사이다.
유토피아주의에 대한 그리고 역사주의에 대한 전체론적 경향은 다음의 특징적 서술에서 통합된다: ‘오늘날 우리의 사회에 대하여 실행할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이 완벽하게 우리가 자연의 전체 체계를 세워서 지시해야 했던 적은 없고 그리하여 우리는 자연의 개별적 세계들의 역사와 구조에 침투해야 했던 적이 없다. 인류는... 두 번째 자연의 창조를 떠맡으려고 시도한 적이 없을지라도 자체의 사회생활 전체를 규제하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 서술은, 전체론자들로서 우리가 ‘자연의 전체 체계를 완벽하게’ 다루기를 소망한다면 역사적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그릇된 믿음을 예시한다. 그러나 이 방식을 채택한 지구과학과 같은 자연과학은 자기 주제의 ‘전체 체계’를 파악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이 서술에 의하여 또한 예시되는 것은, (α)의 의미에서의 전체들을 ‘세우거’나 ‘지시하거’나 ‘규제하거’나 ‘창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옳지 않은 견해이다. ‘우리가 자연의 전체 체계를 세워서 지시해야 했던 적은 없다’라는, 우리가 심지어 단 한 개의 물리적 기구 조각을 그 조각의 ‘전체’로 세워서 지시할 수 없다는 이유로만, 틀림없이 참이다. 그런 것들은 수행될 수 없다. 그런 것들은 유토피아적 꿈이거나 아마도 오해이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실행하도록, 즉 사회의 전체 체계를 세워서 지시하고 사회생활의 전체를 규제하도록 강요당한다고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유토피아적 계획하기를 불가피하게 만드는 ‘역사적 힘(forces)’과 ‘임박한 전개 상황’으로써 우리를 위협하려는 전형적 시도일 뿐이다.
부언하면 인용된 서술은, 전체론적 공학에 대하여 혹은 상응하는 ‘과학’에 대하여 물리적으로 유사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으로서 흥미롭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사이에서 유사한 것을 추적하면 그리하여 여기서 쟁점을 설명하는 데 틀림없이 도움이 된다.
우리가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도록 격려받는 토대인 전체의 논리적 위상은 그런 것이다.
(b)의 의미에서의 전체들에 비판적 언급이 추가될 것인데 그 전체들을 나는 과학적 위상으로 수용했다. 내가 말한 것을 철회하지 않고, 전체는 자체의 부분들의 총화 이상이라는 서술의 모호함뿐 아니라 하찮음이 이해되는 적이 없어 보인다고 나는 지적해야 하겠다. 심지어 접시 위에 놓인 세 개의 사과도, 그 사과들 사이에 특정 관계가 틀림없이 있는 한 (가장 큰 사과는 다른 것들 사이에 있거나 있지 않을 것이다, 기타 등등), ‘단순한 총합’ 이상이다: 세 개의 사과가 있다는 사실로부터 귀결되지 않는, 그래서 과학적으로 연구될 수 있는 관계가 틀림없이 있는 한 ‘단순한 총합’ 이상이다. 또한 많이 광고되는 ‘원자론적’ 접근방식과 ‘형태(Gestalt)’ 접근방식 사이의 대립도, 적어도 원자물리학에 관한 한, 전혀 근거가 없다: 이유인즉 원자물리학이 자체의 기본입자들을 ‘합산할’뿐 아니라 (b)의 의미에서의 전체들과 매우 확정적으로 관련된 관점에서 입자 체계를 연구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형태(Gestalt) 이론가들이 분명히 주장하고 싶어 하는 것은 두 가지 종류의 물체인데 하나는 ‘무더기들(heaps)’로 그것들 안에서 우리는 어떤 질서를 감지할 수 없고 다른 것은 ‘전체들’인데 그 안에서 질서나 대칭 혹은 규칙성이나 체계 또는 구조적 계획이 발견될 것이다. 그리하여 ‘유기체는 전체이다’와 같은 문장은 스스로, 유기체에서 우리가 어떤 질서를 발견할 수 있다는 하찮음으로 환원된다. 게다가 소위 ‘무더기(heap)’에 통상적으로, 흔히 인용되는 전기장(電氣場: the electrical field)이라는 사례만큼 정확하게, 형태(Gestalt) 양상이 또한 있다. (돌의 무더기 안에서 압력이 증가하는 규칙적 방식을 고려하라.) 그리하여 구분은 하찮을 뿐 아니라 극도로 모호하다;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물체에 적용될 수 없고 다만 동일한 물체들의 다양한 양상에 적용될 수 있다.
24 사회적 실험에 대한 전체론적 이론
전체론적 사유는 특히, 자체가 사회적 실험에 대한 역사주의적 이론에 미치는 영향에서 해롭다 (위 2절에서 설명된). 대규모나 전체론적인 사회적 실험이 조금이라고 가능할지라도 과학적 목적에 극도로 부적당하다는 역사주의적 견해에 점진적 공학자가 동의할지라도, 실재론적이 되기 위하여 역사주의와 유토피아주의 모두에게 공통적인 사회적 실험이 사회 전체를 개조하려는 유토피아적 시도의 특징을 띠어야 한다는 전제를 그 공학자는 강력하게 부인할 것이다.
우리의 토론을, 유토피아적 강령에 대한 매우 분명한 반론 즉, 그런 과업을 위하여 필요한 경험적 지식을 우리가 지니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토론으로써 시작하면 편리하다. 물리공학자의 청사진은 실험적 기술(技術: technology)에 근거한다; 물리공학자의 활동의 기초를 이루는 모든 청사진은 실용적 실험에 의하여 시험된다. 그러나 사회공학자의 전체론적 청사진은 비교 가능한 실용적인 경험에 근거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물리공학과 전체론적 사회공학 사이에서 주장되는 유추는 붕괴한다; 전체론적 계획하기는 ‘유토피아적’으로서 올바르게 서술되는데 왜냐하면 자체의 계획에 대한 과학적 토대가 어디에도 없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이 비판에 직면하여, 유토피아적 공학자는 실용적 경험에 대한 그리고 실험적 기술(技術: technology)에 대한 필요성을 인정할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사회적 실험을 수행하는 것으로부터 혹은 유토피아적 공학자의 견해로 동일 한 것에 해당하는 것인 전체론적 공학으로부터 위축된다면 우리는 이 문제에 관하여 결코 아무것도 알지 못할 것이라고 유토피아적 공학자는 주장할 것이다. 우리가 지닌 지식이 크건 작건 우리는 그 지식을 모두 사용하면서 시작해야 한다고 유토피아적 공학자는 주장할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항공기 디자인에 관하여 얼마간의 지식이 있다면 그것은 이 지식을 지니지 않았던 어떤 개척자가 감히 항공기를 디자인하여 그 항공기를 시험했기 때문일 따름이다.
그리하여 유토피아주의자는, 자신이 옹호하는 전체론적 방식은 사회에 적용되는 실험적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고 심지어 주장할지도 모른다. 이유인즉 그는, 역사주의자와 공동으로, 공장에서나 마을에서나 심지어 지역에서 실행되는 사회주의 실험과 같은 소규모 실험들이 전적으로 결정적이 아닐 터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고립된 ‘로빈슨-크루소 실험들’은 ‘거대한 사회(Great Society)’에서 현대 사회생활에 관하여 우리에게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그 실험들은 심지어 ‘유토피아적’이라는 별명을 ㅡ 이 용어가 역사적 경향에 대한 무시를 함축하는 (마르크스적) 의미에서 ㅡ 받을 자격이 있다. (이 경우에서 함축은, 증가하는 사회생활의 상호 의존성을 향한 경향이 무시되고 있다는 것일 터이다.)
유토피아주의와 역사주의가, 사회적 실험은 (그런 것이 있다면) 전체론적 규모로 실행된다면 가치를 띨 수 있을 터라는 견해에서 일치함을 우리가 안다. 이 널리 믿어지는 편견은, 사회적 분야에서 ‘계획된 실험’을 실행할 입장에 우리가 놓이지 않는다는 그리고 이 분야에서 지금까지 실행된 ‘우연한 실험’의 결과에 대한 보고서를 얻기 위하여 우리가 역사를 참작해야 한다는 믿음을 포함한다. 나는 이 견해에 대하여 두 가지 반론을 가지고 있다: (α) 이 견해가, 과학적일 뿐 아니라 과학 이전이기도 한 모든 사회적 지식에 근본적인 저 점진적 실험을 간과한다는 것; (b) 전체론적 실험은 우리가 지닌 실험적 지식에 크게 기여할 것 같지 않다는 것; 그래서 그 전체론적 실험은, 이 실험이라는 용어가 획득된 결과를 기대되는 결과와 비교함에 의하여 지식을 습득하는 수단을 지적하는 데 사용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 결과가 불확실한 행위와 동의어라는 의미에만 ‘실험’으로서 지칭될 수 있다는 것.
(α)에 관하여 사회적 실험에 대한 전체론적 견해로 인하여, 우리가 사회생활에 대하여 많은 양의 실험적 지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는다고 지적될 것이다. 경험이 있는 사업가와 경험이 없는 사업가나 조직가 또는 정치가나 장군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 그 차이점은 그들이 사회에서 경험한 것에서의 차이점이다; 그리고 관찰을 통해서 혹은 자신들이 관찰한 것을 숙고함에 의해서 뿐 아니라 어떤 실용적 목표를 성취하려는 노력에 의하여 습득된 경험한 것에서의 차이점이다. 이런 방식으로 습득된 지식은 통상적으로 과학 이전의 종류이고, 따라서 신중하게 고안된 과학적 실험에 의하여 습득되는 지식보다 우연한 관찰에 의하여 습득되는 지식과 더 유사하다고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의 지식은 단순한 관찰에 근거한다기보다 실험에 근거한다는 것을 부인하기 위한 이유는 아니다. 새로운 가계를 개업하는 식료품업자는 사회적 실험을 실행하고 있다; 그리고 심지어 극장 앞에서 줄을 서는 사람도, 다음번에 자신의 좌석을 예약함에 의하여 자신이 이용할 실험적인 전문적 지식을 얻는데 그 지식은 다시 사회적 실험이다. 그리고 실용적 실험만이, 시장에서 구매자와 판매자에게 가격은 모든 공급 증가에 의하여 낮아지기 마련이고 모든 수요 증가에 의하여 인상되기 마련이라는 교훈을 가르쳤음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된다.
다소 더 큰 규모의 점진적 실험에 관한 사례는, 자신의 생산품 가격을 바꾸려는 독점자의 결정일 터이다; 개인 보험회사에 의해서건 공공 보험회사에 의해서건 새로운 유형의 건강 및 고용 보험의 도입; 혹은 경기순환과 싸우려는 새로운 판매세나 정책의 도입. 이 모든 실험은 과학적 목적이라기보다 실용적 목적을 참작하여 실행된다. 게다가 대기업의 이익을 즉각적으로 증대시키려는 목적 때문이라기보다 시장에 대한 대기업의 지식을 증대시키려는 (물론 더 나중 단계에서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하여) 의도적 목적 때문에 몇몇 대기업에 의하여 실험이 실행되었다. 그 상황은, 조선이나 항해술과 같은 문제에서 우리의 기술적(技術的: technological) 지식이 최초로 습득된 물리공학 및 과학 이전의 방법에 대한 상황과 매우 흡사하다. 이 방법이 개선되어 궁극적으로 더 과학적인 경향을 띠는 기술(技術: technology)에 의하여 대체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없는 듯하다; 다시 말해서, 실험에 근거할 뿐 아니라 비판적 사고에 근거하여 동일한 방향으로 더 체계적인 접근방식에 의하여 대체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없는 듯하다.
이 점진적 견해에 따라서 과학적 방법 즉, 비판적 방법을 점점 더 의식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크게 중요할지라도 과학 이전의 접근방식과 과학적인 실험적 접근방식 사이에 뚜렷하게 표시된 구분선이 없다. 두 가지 접근방식 모두는 근본적으로, 시행착오라는 방법을 이용하는 것으로서 서술될 것이다. 우리는 시도한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단순히 관찰한 것을 등재하지 않고 몇 가지 다소 실용적이고 확정된 문제를 해결하려고 능동적으로 시도한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실수들로부터 배울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리고 그 조건으로만 우리는 진보를 이룩한다: 우리가 저지른 오류를 독단적으로 계속하는 대신 그 오류를 인정하고 비판적으로 이용하려고 준비가 되어 있다면. 이 분석이 하찮게 들릴지라도 이 분석은 모든 경험과학의 방법을 서술한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가 더 자유롭고 의식적으로 시도의 위험을 무릅쓸 준비가 되어있을수록 그리고 더 비판적으로 우리가 항상 저지르는 오류를 우리가 비판적으로 찾을수록 이 방법은 점점 더 과학적 특징을 띤다. 그리고 이 공식은 실험의 방법뿐 아니라 이론과 실험 사이의 관계도 포함한다. 모든 이론은 시도이다; 모든 이론은 그 이론이 작동하는지를 알려고 시험되는 잠정적 가설이다; 그리고 실험에서 밝혀지는 모든 입증은, 우리의 이론이 어디에서 틀렸는지를 알아내려는 시도에서 비판적 정신으로 실행된 시험의 결과일 따름이다.
점진적 공학자나 기술자에게 이 견해들은, 그가 과학적 방법을 사회연구에 그리고 정치에 도입하고 싶어 한다면 매우 필요한 것은 비판적 태도 및 시행뿐 아니라 착오도 필수적이라는 깨달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오류를 기대하는 것뿐 아니라 오류를 의식적으로 탐색하는 것도 배워야 한다. 우리 모두에게 항상 옳다는 것이라는 비과학적 약점이 있고, 이 약점은 전문 및 아마추어 정치인 가운데 특히 일반적인 듯이 보인다. 그러나 과학적 방법과 같은 것을 정치에서 적용하는 유일한 길은,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인 결점이 없는 정치적 조치는 있을 리가 없다는 전제를 기초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 결점을 찾고 이 결점을 발견하여, 이 오류를 공개해서 이 오류를 분석하고 이 오류로부터 배우는 것, 이것이 정치과학자뿐 아니라 과학적 정치가가 실행해야 하는 것이다. 정치에서 과학적 방법은, 실수를 무시하고 실수를 숨겨서 그 실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실수를 우리가 저지르지 않았다고 우리 자신이 확신하는 커다란 기법(技法: art)을 더 큰 기법에 의하여 대체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 더 큰 기법은 그 실수에 대한 책임을 수용하여 그 실수로부터 배우려고 노력하여 이 지식을 적용하여 우리가 미래에 그 실수를 피할 기법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전체론적 실험으로부터 혹은 더 정확하게 전체론적 꿈에 근접하는 규모로 수행되는 조치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견해에 대한 비판인 요점 (b)로 (내가 앞 절에서 밝힌 바와 같이, 그 전체론적 실험이 ‘사회 전체’를 개조한다는 급진적 의미에서 전체론적 실험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선회한다. 우리의 주요점은 매우 단순하다: 우리 자신이 저지르는 실수에 대하여 비판적이 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많은 사람의 생명을 포함하는 우리의 행동이 야기하는 실수를 향하여 우리가 비판적 태도를 지속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것을 달리 표현하면, 매우 큰 실수로부터 배우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것에 대한 이유는 두 가지이다; 그 이유는 도덕적일 뿐 아니라 기술적(技術的: technological)이기도 하다. 한 번에 그렇게 많은 일이 실행되기 때문에, 어떤 특정 조치가 결과 중 어떤 결과에 책임이 있는가를 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혹은 더 정확하게, 우리가 특정 결과를 특정 조치에 정말로 귀속시킨다면 우리는 문제의 전체론적 실험으로부터가 아니라 이전에 습득된 어떤 이론적 지식을 토대로만 그렇게 할 수 있다. 이 전체론적 실험은 특정 결과를 특정 조치에 귀속시키는 데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이 실험에 ‘전체 결과’를 귀속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든, 평가하기는 틀림없이 어렵다. 이 결과에 대하여 많은 정보를 지니고 독립적이며 비판적 서술을 확보하려는 심지어 가장 큰 노력도 성공적으로 판명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그런 노력이 실행될 개연성이 적다; 반대로, 전체론적 계획과 그 계획의 결과에 관한 자유로운 토론이 용인되지 않을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 이유는, 대규모로 계획하려는 모든 시도가 부드럽게 표현하면 많은 사람에게 그리고 상당한 기간에 걸쳐서 상당한 불편을 틀림없이 초래하는 과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계획에 반대하고 계획에 대하여 불평하는 경향이 항상 있을 것이다. 이 불평 중 많은 불평에 유토피아적 공학자는, 자기가 조금이라도 진전을 이루기를 원한다면, 귀를 막을 것이다; 사실상 비합리적 반론을 억누르는 것이 그의 업무의 일부일 것이다. 그러나 비합리적 반론들과 함께 그는 틀림없이 합리적 비판도 변함없이 억누른다. 그리고 불만 표현이 억제되어야 한다는 단순한 사실로 인하여 심지어 가장 열정적인 만족 표현도 감소하여 무의미해진다. 그리하여 사실, 다시 말해서 개별 시민에 대한 계획의 결과를 발견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이 없다면 과학적 비판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전체론적 계획하기와 과학적 방법을 결합하는 난제는 지금까지 지적된 것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다. 전체론적 계획자는, 권력을 집중시키는 것은 쉽지만 많은 개별적 사람의 정신에 분배되어 집중된 권력을 현명하게 사용하기 위하여 필수적일 터인 모든 저 지식을 집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그러나 이 사실은 광범위한 결과를 낳는다. 그렇게 많은 개인의 정신 속에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없어서, 개인적 차이점을 제거함에 의하여 전체론적 계획자는 틀림없이 자신의 문제를 단순화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틀림없이 교육과 정치선전에 의하여 이해관계와 신념을 통제하여 정형화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정신에 권력을 행사하려는 이 시도는 사람들이 실제로 생각하는 것을 알아낼 가능성을 파괴하는데 이유인즉 그 시도가 사유의 자유로운 표현, 특히 비판적 사고의 자유로운 표현과 분명히 양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그 시도는 틀림없이 지식을 파괴한다; 그래서 권력 장악이 클수록 지식 실종이 클 것이다. (그리하여 정치권력과 사회적 지식은 보어[Bohr]가 사용하는 용어의 의미에서 ‘상보적’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서술하기 어렵고 유행하는 이 용어에 대하여 유일하게 명백한 예시로 심지어 판명될 것이다.)
모든 이 언급은 과학적 방법이라는 문제에 국한된다. 그 언급으로 인하여, 계획하는 유토피아적 공학가가 지닌 근본적 선의(善意)를 질문할 필요가 우리에게 없다는 놀라운 전제가 함축적으로 허용되는데 그 공학가에게 적어도 독재 권력에 근접하는 권위가 주어진다. 토니(Tawney)는 다음과 같은 말로 루터(Luther)와 그의 시대에 대한 토론을 마친다: ‘유니콘과 불의 요정의 존재에 대하여 회의적이어서, 마키아벨리와 헨리 VIII 세의 시대에 저 드문 괴물인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군주에 대한 숭배를 쉽게 믿는 자양분이 생겼다.’ 여기서 ‘유니콘과 불의 요정’이라는 단어들을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군주’로 대체하라; 두 가지 명칭을 그 명칭들에 대한 더 명백한 명칭들로 대체하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군주’라는 표현을 ‘자애로운 계획 권위자’로 대체하라: 그러면 여러분 시대를 너무 쉽게 믿는 것에 대한 서술이 여러분에게 있다. 이 너무 쉽게 믿는 것은 여기서 반론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계획자가 지닌 무제한적이고 변함없는 자애로움을 전제하면서, 그 계획자들이 자신들의 조치가 야기하는 결과가 자신들의 선한 의도와 일치하는지를 언제고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을 우리의 분석이 밝힌다고 언급될 것이다.
점진적 방법에 대하여 상응하는 비판이 제시될 수 있다고 나는 믿지 않는다. 이 방법은, 어떤 궁극적 선(善: good)을 추구하고 그 선(善: good)을 위하여 싸우기보다 (전체론자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 하는 바와 같이) 사회의 가장 크고 가장 시급한 악(evils)을 찾아내어 대항해서 싸우기 위하여 더욱 특히 이용될 수 있다. 그러나 확정된 악행에 대항하는, 구체적 형태의 불의와 착취에 그리고 궁핍이나 실업과 같이 피할 수 있는 고통에 대항하는 체계적 싸움은 사회에 대한 멀고도 이상적인 청사진을 실현하려는 것과 매우 다른 것이다. 성공과 실패는 더 쉽게 평가되어서 이 방법이 권력의 축적을 그리고 비판 억압을 틀림없이 야기한다는 자연발생적 이유가 없다. 또한 구체적 악행과 구체적 위험에 대항하는 그런 싸움은, 유토피아 건설이 그 계획자들에게 이상적으로 보일지라도 유토피아 건설을 위한 싸움보다 대다수의 지지를 받을 개연성이 더 크다. 공격을 준비하거나 침략 전쟁을 수행하는 국가에서 침략을 방어로 선전함에 의하여 공공의 지지를 동원할 목적으로 대중의 비판이 통상적으로 억압되는 반면, 침략에 대항하여 자신들을 방어하는 민주 국가에서 대중의 비판을 억압하지 않고도 필요한 포괄적 조치를 (심지어 전체론적 특징을 띨) 위하여 충분한 지지가 기꺼이 제공될 것이라는 사실은 이것에 의하여 아마도 조명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자신의 방식이 사회학 분야에서 적용되는 참된 실험적 방법이라는 유토피아주의자의 주장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이 주장은 우리의 비판에 의하여 축출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리공학과 전체론적 공학 사이의 유추에 의하여 이것은 더욱 예시될 수 있다. 물리적 기계가 청사진을 그리고 청사진과 함께 그 기계의 생산을 위한 전체 공장, 기타 등등을 통하여 성공적으로 설계될 수 있다고 인정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많은 점진적 실험이 사전에 수행되었다는 이유로만 가능하다. 모든 기계는 매우 많은 작은 개선의 결과이다. 모든 모형은 틀림없이, 시행착오의 방법에 의하여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조정에 의하여 ‘발전’된다. 생산 공장의 설계에도 동일한 것이 성립한다. 표면적으로 전체론적 계획은, 모든 종류의 실수를 우리가 이미 저질렀다는 이유로만 성공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계획이 커다란 오류를 낳는다고 기대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리하여 물리공학과 사회공학 사이의 유사점은, 더 세밀하게 조사된다면, 전체론자를 반대하게 되고 점진적 사회공학자를 선호하게 된다. ‘사회공학’이라는 표현은 이 유사점을 암시하는데 일말의 권리도 없이 유토피아주의자에 의하여 무단으로 점거되었다.
이것으로써 나는 유토피아주의에 대한 나의 비판을 끝내고, 이제 유토피아주의의 동맹인 역사주의에 대한 나의 공격에 집중하겠다. 사회적 실험은 정확하게 유사한 조건에서 반복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실험은 쓸모가 없다는 논증을 제외하고, 사회적 실험에 관한 역사주의자의 주장에 내가 이제 충분히 답변했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는 이제 이 논증을 고려할 것이다.
25 실험적 조건의 변화가능성
역사주의자는, 사회적 분야에서 우리가 정확하게 유사한 실험적 상황을 마음대로 재생할 수 없기 때문에 실험적 방법이 사회과학에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것으로 인하여 우리는 역사주의적 입장의 핵심에 조금 더 접근한다. 이 주장에 중요한 것이 있다고 나는 인정한다: 의심할 바 없이 여기 물리학적 방법과 사회학적 방법 사이에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주의적 방법은, 물리학의 실험적 방법에 대한 중대한 오해에 근거한다고 나는 주장한다.
먼저 이 방법을 고찰하자. 모든 실험 물리학자는, 정확하게 유사한 조건으로 보이는 것에서도 매우 유사하지 않은 일들이 발생할 것임을 안다. 두 개의 철사는 첫눈에 보기에 정확하게 같게 보일 것이지만, 한 가지 철사가 한 조각의 전기 도구에서 다른 철사와 교환되면 결과적으로 발생하는 차이점은 매우 클 것이다. 더 세밀하게 조사하자마자 (가령, 현미경을 통하여) 그 철사들은 처음에 보였던 것처럼 유사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아마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흔히 다양한 결과를 야기하는 두 가지 실험의 조건에서 차이점을 탐지하는 것은 정말로 매우 어렵다. 어떤 종류의 유사성이 유관하고 어느 정도의 유사성이 충분한지를 발견하기 위하여, 이론적일 뿐 아니라 실험적인 장기적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이 연구는, 우리가 우리의 실험을 위하여 유사한 조건을 확보할 수 있기 이전에 그리고 우리가 심지어 이 경우에 ‘유사한 조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기 이전에 수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의 방법은 항상 적용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유사한 조건’으로서 서술될 수 있는 것이라는 문제가 실험의 종류에 달렸고 실험을 이용함에 의해서만 답변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아무리 뚜렷할지라도 관찰된 차이점이나 유사성에 관하여 그 차이점이나 유사성이 실험을 재현하는 목적에 유관할 것인지 아닌지를 선험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실험적 방법이 스스로 처리되도록 허용해야 한다. 정확하게 유사한 고찰이, 방해하는 영향으로부터 실험을 인위적으로 격리시킨다는 많이 논쟁된 문제에 성립한다. 분명히 우리는 모든 영향에 대하여 한 가지 실험기구를 격리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물리학적 실험에 미치는 행성이나 달의 위치의 영향이 상당한지 미미한지를 우리는 선험적으로 알 수 없다. 필요하다면 어떤 종류의 인위적 격리가 필요한지는 실험의 결과로부터만 혹은 그다음 실험에 의하여 시험되는 이론으로부터 우리가 알 수 있다.
그런 고찰에 비추어, 사회적 실험은 사회적 조건의 변화가능성에 의하여 그리고 특히 역사적 전개 상황에 기인하는 변화에 의하여 치명적으로 방해받는다는 역사주의적 항변은 자체의 힘을 잃는다. 역사주의가 그렇게 심하게 정신이 팔려있는 두드러진 차이점, 다시 말해서 다양한 역사적 기간에서 우세한 조건 사이의 차이점으로 인하여 사회과학에 고유한 난제가 야기될 필요가 없다. 우리가 갑자기 또 다른 역사적 기간으로 옮겨진다면 우리는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수행된 점진적 실험을 토대로 형성된 우리의 사회적 기대 중 많은 기대가 좌절됨을 우리는 틀림없이 발견할 것이라고 인정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시험은 예견치 않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회적 조건에서 변화를 발견하도록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실험일 터이다; 실험으로 인하여 우리는 특정 사회적 조건이 역사적 기간에 따라 달라짐을 배울 터이다; 실험으로 인하여 끓는 물의 온도가 지리적 위치에 따라 달라질 것임을 물리학자가 배운 것과 꼭 마찬가지로. 다시 말해서, 역사적 기간 사이의 차이점이라는 교설은 사회적 실험을 불가능하게 만들기는커녕, 또 다른 기간으로 이전된다면 우리가 틀림없이 지속적으로 우리의 점진적 실험을 수행하지만 놀랍거나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는다는 전제를 표현한 것일 뿐이다. 사실상 다양한 역사 기간에서 다양한 태도에 대하여 우리가 뭔가를 안다면 그것은 우리의 상상 속에서 수행된 실험으로부터이다. 역사학자는 특정 기록을 해석하면서 난제를 발견하거나 혹은 자기 선배 중 몇몇이 어떤 역사적 증거를 잘못 해석했음을 밝히는 사실을 발견한다. 이 역사 해석의 난제는, 역사주의자가 염두에 두고 있는 역사적 변화의 종류에 대하여 우리가 지닌 유일한 증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난제는, 우리의 사고 실험의 기대된 결과와 실제적 결과 사이의 격차에 지나지 않는다. 시행착오라는 방법에 의하여 생소한 사회적 조건을 해석하는 우리의 능력을 향상시킨 것은 이 놀라운 결과와 실망스러운 결과이다. 그리고 역사 해석의 경우에서 사고 실험에 의하여 우리가 달성하는 것은, 인류학자들에 의하여 실제적 현장 연구에서 달성되었다. 자기들의 기대를 아마도 석기시대의 조건보다 전혀 멀지 않은 조건에 조절하는 데 성공한 저 현대 연구가들은 자기들의 성공을 점진적 실험과 관련시킨다.
몇몇 역사주의자는 그런 성공적 조절의 가능성을 의심한다; 그리고 그들은 심지어, 외딴 역사 기간에 옮겨질지라도 우리의 사회적 실험 중 너무나 많은 실험이 실망을 초래할 터라는 논증에 의하여 사회적 실험이 쓸모없다는 자신들을 교설을 옹호한다. 우리의 사유 습관을 그리고 특히 사회적 사건을 분석하는 우리의 습관을 이 당혹스러운 조건에 우리가 틀림없이 조절할 수 없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런 두려움은 내가 보기에 역사주의적 과잉 반응의 ㅡ 사회적 변화의 중요성에 대한 강박관념 ㅡ 일부이다; 그러나 선험적 근거를 토대로 저 두려움을 해소하는 것이 어려울 터라고 나는 틀림없이 인정한다. 결국, 자신을 새로운 환경에 조절하는 능력은 사람에 따라서 달라서 역사주의자가 (그런 패배주의적 견해를 지닌) 자신의 정신을 사회적 환경의 변화에 성공적으로 적응시킬 것이라고 우리가 역사주의자에게 기대해야 할 이유가 없는 듯하다. 또한 문제들은 새로운 환경의 특징에 의존할 것이다. 사회연구가가 시행착오에 의하여 식인종 습관에 자신을 조절하는 데 성공하기 전에 자신이 잡아먹히는 것을 알게 될 가능성은, 어떤 ‘계획된’ 사회에서 자기 연구가 강제수용소에서 끝날 가능성만큼 배제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언급이 물리학 영역에서 성립한다. 물리학자에게 생존 기회를 혹은 자신을 시행착오에 의하여 이 조건에 조절하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물리학적 조건이 팽배한 많은 장소가 세상에 있다.
요컨대 역사적 조건의 변화가능성 때문에 실험적 방법을 사회의 문제에 적용할 수 없게 된다는 그럴듯한 역사주의적 주장에 혹은 이 요점에서 사회연구는 자연 연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주장에 근거가 없는 듯하다. 실제로 사회학자가 자신의 실험적 조건을 마음대로 선택하여 변경하는 것이 흔히 매우 어렵다고 우리가 인정할 것인지는 아주 다른 문제이다.
물리학자는 자신 또한 때때로 유사한 난제에 직면할지라도 나은 입장에 놓인다. 그리하여 변하는 중력장에서 혹은 극단적 기온 조건에서 실험을 수행하는 가능성은 매우 제한된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물리학자에게 개방된 많은 가능성이 얼마 전까지 비실용적이었는데 물리학적 난제 때문이 아니라 사회학적 난제 때문이었음을 즉, 연구를 위하여 필요한 자금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회학자는 매우 다른 위치에 놓인 반면, 매우 많은 물리학적 연구가 바랄 것이 없는 실험적 조건에서 이제 수행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매우 바람직할 터인 많은 실험은, 그 실험들이 유토피아적 특징이 아니라 점진적 특징을 지닌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미래의 꿈으로 남을 것이다. 실제로 사회학자는 정신적으로 수행되는 실험에, 그리고 과학적 관점에서 바랄 것이 많은 조건 및 방식으로 수행되는 정치적 조치의 분석에 틀림없이 의존한다.
26 일반화는 기간에 국한되는가?
사회학적 법칙이나 이론 혹은 가설이나 ‘일반화’를 상세하게 토론하기 전에 내가 사회적 실험에 대한 문제를 토론했음은 사실이지만, 관찰이나 실험이 이런저런 정도로 논리적으로 이론에 앞선다고 내가 생각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반대로 실험이 이론적 문제와 관련해서만 유의미하다는 의미에서, 이론은 실험에 뿐 아니라 관찰에도 앞선다고 나는 믿는다. 또한 관찰이나 실험이 답변을 제공하는 방식에서 우리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우리가 희망할 수 있기 이전에 우리는 틀림없이 문제를 경험한다. 혹은 시행착오 방식의 관계로 그것을 표현하면, 시행이 틀림없이 착오보다 앞선다; 그리고 우리가 안 바와 같이 (24절에서), 관찰과 실험은 이론이 틀린 곳을 밝힘에 의하여 이론의 오류를 제거하는 데 우리를 돕는 반면, 이론이나 가설은 항상 잠정적이면서 시행의 일부이다. 그리하여 ‘일반화의 방법’을, 다시 말해서 과학이 어떤 일반화나 귀납의 과정에 의하여 자체의 이론을 도출하는 관찰로써 시작한다는 견해를 나는 신뢰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찰과 실험의 기능은 우리의 이론을 시험하는 데 그리고 시험을 견디지 못하는 이론을 제거하는 데 우리를 돕는 더 겸손한 기능이라고 내가 믿는다; 이 오류제거의 과정이 이론적 사념을 제한할 뿐 아니라 그 사념이 다시 시도하도록 ㅡ 그리고 흔히 다시 오류를 저질러 새로운 관찰과 실험에 의하여 다시 반증되도록 ㅡ 자극도 한다고 인정되어야 할지라도.
사회과학에서 모든 일반화의 혹은 적어도 가장 중요한 일반화의 타당성은, 유관한 관찰이 수행된 구체적 역사 기간에 국한된다는 역사주의적 주장을 (1절 참조) 나는 이 절에서 비판하겠다. 소위 ‘일반화의 방법’이 옹호될 수 없다는 나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그 방법이 옹호될 수 있는지 혹은 없는지의 문제를 먼저 토론하지 않고 나는 이 주장을 비판하겠다; 이유인즉 그 역사주의적 주장은 이 방법이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밝히지 않고도 반증될 수 있다고 내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방법에 관한 그리고 일반적 이론과 실험 사이의 관계에 관한 나의 견해에 대한 토론은 그리하여 연기될 것이다. 그 토론은 28절에서 다시 거론될 것이다.
특정 역사 기간에서 살아가는 사람 대부분은, 자신들이 주변에서 관찰하는 규칙성이 사회생활에 관한 보편법칙으로 모든 사회에 유효하게 성립한다는 그릇된 믿음에 경도될 것이라고 인정함으로써 나는 그 역사주의적 주장에 대한 나의 비판을 시작한다. 정말로 외국에서 음식과 우리의 인사 예절(greeting-taboos), 기타 등등에 관한 우리의 습관이 우리가 순진하게 전제했던 것과 매우 같은 정도로 수용될 수 없는 것을 우리가 왕왕 발견할 때 우리가 그런 믿음을 간직하고 있음을 주시할 따름이다. 우리가 지닌 다른 일반화 중 많은 일반화가, 우리가 또 다른 역사 기간으로 여행할 수 없기 때문에 변함없이 남을지라도, 의식적으로 간직되었건 아니건 동일한 종류일 것임은 다소 명백한 추론이다. (이 추론은 예를 들어 헤시오도스[Hesiod]에 의하여 도출되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특정 기간에만 특징적인 많은 규칙성이 우리의 사회생활에 있을 것임과 이 한계를 간과하는 경향이 우리에게 있다고 인정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특히 급격한 사회변혁의 시기에) 우리가 자체의 타당성을 잃은 법칙에 의존했다는 것을 우리가 배우고 유감스러워질 것이다.
역사주의자의 항변이 이것보다 더 멀리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가 다소 사소한 요점에 고생한다고 우리는 그를 비난할 수 있을 따름일 터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역사주의자는 더 많은 것을 주장한다. 상황 때문에, 자연과학에서 발생하지 않는 난제가 발생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그리고 더욱 특히, 자연과학과 대조적으로 사회과학에서 정말로 보편법칙이 과거에 항상 유효했는지를 우리가 결코 알 수 없기 (이유인즉 우리가 지닌 기록이 불충분할 것이어서) 때문에 혹은 그 법칙이 미래에도 항상 유효할 것인지를 우리가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그 법칙을 발견했다고 전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런 주장에 반대하여, 서술된 상황이 조금이라도 사회과학에 고유하다거나 그 상황이 특정 난제를 야기한다고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반대로 우리의 물리학적 환경에서 발생하는 변화로 인하여, 우리의 사회적 혹은 역사적 환경에서 발생하는 변화로부터 발생하는 경험과 완전히 유사한 경험이 분명히 발생한다. 밤과 낮의 연결보다 더 명백하고 일반적 규칙성이 있을 수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극지 지역을 건널 때 그 규칙성은 붕괴한다. 물리학적 경험과 사회학적 경험을 비교한다는 것은 아마도 다소 어렵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런 붕괴는 사회적 영역에서 아마도 발생할 붕괴만큼 매우 충격적일 것이다. 또 다른 사례를 들면, 서기 1900년 크레타의 역사적 환경이나 사회적 환경 그리고 3,000년 전 크레타의 역사적 환경이나 사회적 환경은 크레타와 그린란드의 지리적이나 물리학적 환경보다 더 다르다고 언급될 수 없다. 한 가지 물리적 환경이, 준비되지 않을 상태로 다른 물리적 환경으로 급작스럽게 격리된다면 사회적 환경에서의 상응하는 변화보다 더 치명적인 결과가 발생할 것 같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양한 역사 기간 사이의 다소 현격한 차이점을 역사주의자가 과장한다는 것과, 과학적 재능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한다는 것은 내가 보기에 분명하다. 케플러에 의하여 발견된 법칙이 행성 체계에만 성립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법칙의 타당성은 케플러가 살았던 그리고 케플러가 관찰했던 태양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관성 법칙의 중요성을 알기 위하여 중력이나 다른 힘(forces)의 영향을 받지 않는 움직이는 물체들을 자신이 관찰할 수 있는 우주 일부로 후퇴할 필요가 뉴튼에게 없었다. 다른 한편 태양계에서 아무도 이 법칙에 따라서 움직이지 않을지라도, 이 법칙은 태양계에서 자체의 중요성을 잃지 않는다. 유사하게, 모든 사회적 기간에 중요한 사회학적 이론을 우리가 틀림없이 만들 수 없는 이유가 없는 듯하다. 이 기간들 사이의 현격한 차이점은, 크레타와 그린란드 사이의 현격한 차이점이 두 지역 모두에게 성립하는 물리학적 법칙이 없다고 증명할 수 없는 것처럼, 그런 법칙이 발견될 수 없다는 징표가 되지 않는다. 반대로 이 차이점은, 적어도 몇 가지 경우에서, 상대적으로 피상적 특성을 띠는 것으로 (습관에서, 인사 및 의식[儀式: ritual], 기타 등등에서의 차이점이 그런 것과 같이) 보이며, 특정 역사적 기간이나 특정 사회에 특징적이라고 언급되는 (그리고 지금은 몇몇 사회학자에 의하여 매개 원리[媒介 原理: principia media]로 지칭되는) 저 규칙성에도 다소 동일하게 성립하는 듯하다.
이것에 대하여, 사회적 환경에서 차이점은 물리학적 환경에서 차이점보다 더 근본적이라고 역사주의자는 답변할 것이다; 이유인즉 사회가 변한다면 사람도 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규칙성에서 변화를 암시하는데 왜냐하면 모든 사회적 규칙성이 사회의 원자인 사람의 본성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답변은, 물리학적 원자도 물리학의 법칙에 저항해서가 아니라 이 법칙에 따라서 자기들의 환경에 따라 (예를 들어, 전자기장의 영향에서, 기타 등등) 변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소위 인간 본성의 변화에 관한 중요성은 의심스럽고 평가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제 사회과학에서 진정으로 보편적인 법칙의 타당성 성립이, 그 법칙의 성립을 우리가 관찰한 기간을 넘어서 확대되는지 우리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보편법칙을 우리가 발견했다고 우리가 결코 전제해서는 안 된다는 역사주의적 주장으로 우리는 선회한다. 이것은 인정될 것이지만, 단지 이것이 자연과학에도 또한 적용되는 한에서이다. 자연과학에서 우리의 법칙이 실제로 보편적으로 타당한지 아니면 그 법칙이 특정 기간에만 (혹시 우주가 팽창하는 기간에만) 혹은 특정 지역에서만 (혹시 비교적 약한 중력장이 있는 지역에서) 성립하는지를 우리가 결코 완전히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 법칙의 유효성을 확신할 가능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연법칙을 우리가 저렇게 정식화하면서, 그 법칙이 성립하는 것으로 관찰되었던 기간에만 혹은 아마도 ‘현재 우주론적 기간’ 안에서만 그 법칙이 주장된다고 말하는 조건을 우리는 추가하지 않는다. 그런 조건을 우리가 추가할지라도 칭찬받을만한 과학적 조심성의 징표는 아닐 터이지만 우리가 과학적 절차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징표일 터이다. 이유인즉 무제한적 타당성의 영역으로써 우리가 법칙을 탐구해야 한다는 것은 과학적 방법의 중요한 공준(公準: postulate)이기 때문이다. 자체가 변화에 좌우되는 법칙을 우리가 인정하면, 변화는 법칙에 의하여 결코 설명될 수 없을 터이다. 변화는 기적적일 따름이라고 인정될 터이다. 그리고 그것은 과학적 진보의 종말일 터이다; 이유인즉 예기치 않은 관찰이 발생할지라도 우리의 이론을 수정할 필요가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법칙이 변했다는 임시방편적 가설을 만들면 모든 것이 ‘설명될’ 터이다.
이 논증은 자연과학에 대해서보다 조금도 못지않게 사회과학에도 성립한다.
이것으로써 나는 역사주의의 반(反)-자연주의적 교설 가운데서 더 근본적인 교설에 대한 나의 비판을 끝낸다. 덜 근본적인 역사주의의 반(反)-자연주의적 교설 중 몇 가지 교설을 토론하는 데로 나아가기 전에, 나는 다음에서 친(親)-자연주의적 교설 중 한 가지 교설, 즉 우리는 역사 발전의 법칙을 탐구해야 한다는 교설로 선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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