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이론과학과 역사관련 과학
과학적 방법의 통일이라는 주장은, 이론적 과학에 대한 그 적용을 내가 방금 옹호하고 있었는데, 특정 한계가 있으나 심지어 역사관련 과학의 분야까지 확대될 수 있다. 게다가 이것은, 이론과학과 역사관련 과학에 대한 ㅡ 예를 들어, 한편 사회학이나 경제이론 혹은 정치이론과 다른 한편 사회, 경제 그리고 정치 역사에 대한 ㅡ 근본적 구분을 (최고의 역사가들에 의하여 그렇게 자주 그리고 강조하여 재차 확언되는 구분) 포기하지 않고, 실행될 수 있다. 그것은, 보편법칙에 관한 관심과 특정 사실에 관한 관심의 구분이다. 역사주의자들에 의하여 구식으로서 그렇게 자주 공격받는 역사는 법칙이나 일반화에 관한 관심이라기보다 실제적이거나 단칭적 혹은 구체적 사건에 대한 역사 자체의 관심에 의하여 규정된다는 견해를 나는 옹호하고 싶다.
이 견해는 앞 절들에서 제시된 과학적 방법의 분석 그리고 특히 인과적 설명의 분석과 완벽하게 양립될 수 있다. 상황은 단지 이렇다: 이론과학이 주로 보편법칙을 발견해서 시험하는 데 관심을 두는 반면, 역사관련 과학은 모든 종류의 보편법칙을 당연시하고 주로 단칭명제를 발견하여 시험하는 데 관심을 둔다. 예를 들어 특정 단칭 ‘피설명항(被說明項: explicandum)’이 ㅡ 단칭 사건 ㅡ 제시되면 역사관련 과학은 (흥미롭지 않을 모든 종류의 보편법칙과 함께) 저 피설명항(被說明項: explicandum)을 설명하는 단칭 초기조건을 찾을 것이다. 아니면 역사관련 과학은, 다른 단칭명제와 함께, 저 피설명항을 한 가지 초기조건으로서 이용함에 의하여 그리고 이 초기조건으로부터 (다시 흥미롭지 않은 모든 종류의 보편법칙의 도움을 받아서) 먼 과거에 발생했고 경험적 증거와 ㅡ 혹시 서류나 비문, 기타 등등 ㅡ 대조될 수 있는 사건을 서술할 어떤 새로운 ‘예측’을 연역함에 의하여 주어진 단칭 가설을 시험할 것이다.
이 분석의 의미에서, 단칭 사건에 대한 모든 인과적 설명은, ‘원인’이 항상 단칭 초기조건에 의하여 서술되는 한 역사관련이라고 언급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어떤 일을 인과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이 그 사건이 어떻게 그리고 왜 발생했는지를 설명하는 것 다시 말해서 그 사건의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라는 대중적 관념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단칭적 사건에 대한 인과적 설명에 관심을 두는 것은 단지 역사에 관해서 뿐이다. 이론과학에서 그런 인과적 설명은 주로 다른 목적에 ㅡ 보편법칙을 시험하기 ㅡ 대한 수단이다.
이 고찰이 옳다면, 구식 역사를 무시하고 그 역사를 이론과학으로 개혁하고 싶어 하는 몇몇 진화론자와 역사주의자에 의하여 밝혀진 근원의 문제에 대한 불타는 관심은 다소 위치선정이 잘못된 것이다. 근원에 대한 문제는 ‘어떻게 그리고 왜’ 문제이다. 그 문제는 이론적으로 비교적 중요하지 않고 통상적으로 구체적 역사와 관련해서만 관심을 둔다.
역사관련 설명에 대한 나의 분석에 반대하여, 역사는 보편법칙에 여하한 관심도 두지 않는다고 그렇게 많은 역사가가 강조하여 선언한 것과 반대로 역사는 그 법칙을 정말로 이용한다고 논증될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우리는, 단칭적 사건은 몇 가지 보편법칙과 관련해서만 또 다른 단칭적 사건의 ㅡ 그 단칭적 사건의 결과 ㅡ 원인이라고 답변할 것이다. 그러나 이 법칙은 매우 하찮고 우리가 지닌 흔한 지식의 매우 많은 부분일 것이기에 그 법칙을 언급할 필요가 우리에게 없고 그 법칙을 주목할 필요도 없다. 지오르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가 죽은 원인이 화형대에서 화형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우리가 말한다면,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는 강력한 열에 노출될 때 죽는다는 보편법칙을 언급할 필요가 우리에게 없다. 그러나 그런 법칙은 우리의 인과적 설명에 암묵적으로 전제된다.
정치역사가가 전제하는 이론 가운데 물론 사회학의 ㅡ 예를 들어 권력의 사회학 ㅡ 특정 이론이 있다. 그러나 역사가는 이 이론을 의식하지 않고도 심지어 그 이론을 통상적으로 이용한다. 역사가는 그 이론을 주로, 자기가 자신의 구체적 가설을 시험하는 데 도움을 주는 보편법칙으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용어 선택법에서 함축된 것으로서 이용한다. 정부, 민족, 군대를 이야기하면서 그는 과학적이거나 과학 이전의 사회학적 분석에 의하여 제공된 ‘모형’을 통상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이용한다 (앞 절 참조).
역사관련 과학은 보편법칙을 대하는 자체의 태도에서 완전히 동떨어져 있지 않다고 언급될 것이다. 우리가 단칭적이거나 구체적 문제에 과학을 실제로 적용함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유사한 상황을 발견한다. 예를 들어 주어진 특정 화합물을 ㅡ 가령, 돌 한 조각 ㅡ 분석하고 싶어 하는 실용화학자는 보편법칙을 고려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아마도 많이 생각하지 않고, 논리적 관점에서 ‘이 화합물이 유황을 포함하고 있다’와 같은 단칭적 가설에 대한 시험인 특정 일상적 기술을 적용한다. 그의 관심은 주로 역사관련 관심이다 ㅡ 구체적 사건의 한 가지 집합에 관한 혹은 한 가지 개별적인 물리학적 물체에 관한 서술이다.
이 분석으로 인하여 역사의 방법을 연구하는 특정 사람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몇 가지 쟁점이 설명된다고 나는 믿는다. 한 역사주의적 단체는, 역사는 사실을 열거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어떤 종류의 인과적 연결로 제시하려고 시도하는데 역사관련 법칙의 정식화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왜냐하면 인과성은 근본적으로 법칙에 의한 결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단체도 역사주의자를 포함하는데, 심지어 단지 한번 발생하여 자체 사건에 관하여 ‘일반적인’ 것이 없는 사건인 ‘독특한’ 사건도 다른 사건의 원인일 것이라고 그리고 역사가 관심을 두는 것은 이런 종류의 인과성이라고 논증한다. 이제 우리는, 두 가지 단체 모두가 부분적으로 옳고 부분적으로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편법칙과 구체적 사건은 인과적 설명을 위하여 함께 필요하지만, 이론과학 외부에서 보편법칙은 통상적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이것으로 인하여 우리는 역사관련 사건의 독특함이라는 문제에 다다른다. 우리가 전형적 사건에 대한 역사관련 설명에 관심을 두는 한 그 사건은 반드시 전형적으로서, 사건의 종류나 집합에 속하는 것으로서 다루어져야 한다. 이유인즉 그런 경우에만 인과적 설명에 대한 연역적 방법이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는 구체적 사건에 대한 설명에 뿐 아니라 구체적 사건과 같은 것에 관한 서술에도 또한 관심을 둔다. 역사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한 가지 과제는 의심할 바 없이 흥미로운 사건을 그 사건의 특수성이나 고유성으로 서술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과적으로 무관한 사건의 ‘우연한’ 동시 발생과 같이, 인과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하지 않는 양상을 포함하는 것이다. 역사의 이 두 가지 과제인 인과적 실타래 풀기와 이 실타래가 뒤얽힌 ‘우연한’ 방식에 관한 서술은 두 가지 모두 필요하고 그 과제를 서로 보충한다; 어느 때는 사건이 전형적인 것으로서 간주될 것이고, 다시 말해서 그 사건에 대한 인과적 설명이라는 관점에서 다른 때는 독특한 것으로서 간주될 것이다.
이 고찰은 3절에서 토론된 참신성이라는 문제에 적용될 것이다. ‘배열의 참신성’과 ‘본질적 참신성’을 그곳에서 구분한 것은, 현재 인과적 설명이라는 관점과 독특함의 인식이라는 관점의 구분과 일치한다. 참신성이 합리적으로 분석되어 예측될 수 있는 한, 참신성을 결코 ‘본질적’일 리가 없다. 이것으로 인하여, 본질적으로 참신한 사건의 출현이라는 문제에 사회과학이 틀림없이 적용될 수 있다는 역사주의적 교설은 ㅡ 궁극적으로 예측에 대한 그리고 인과적 설명에 대한 불충분한 분석에 의존한다고 언급될 주장 ㅡ 추방된다.
ㅡ 칼 포퍼, ‘역사주의의 빈곤(The Poverty of Historicism)’, 1976년, 143-7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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