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쟁 위험은 1962년 쿠바 위기로 일단 끝났다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한 귀하의 주장으로 돌아가서, 흐루쇼프가 실제로 비밀리에 수소폭탄을 배치하는 데 성공했다면 먼저 폭탄을 썼을 것이라는 무슨 증거가 있는가? 흐루쇼프는 미국과 대등한 발판에서 (터키에 있는 미국 미사일에 대항하는 쿠바에 있는 미사일) 회담을 열려는 목적을 가지지 않았던가?
미국과 합의를 이루기 위하여 쿠바로 114,000개의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위력을 지닌 폭탄들을 당신은 쿠바로 운반하지는 않는다; 저것은 완전히 터무니없는 짓이다. 흐루쇼프에게 발사할 준비가 된 폭탄들이 있었다면, 흐루쇼프는 그 폭탄들을 사용했을 터인데 이유인즉 미국인들이 가능한 한 빠르게 보복했을 터이기 때문이다. 소련의 지도자들은 케네디 대통령에게 ‘보시오, 나에게 당신들을 죽이기에 충분한 폭탄이 있소 ㅡ 그 폭탄들에 대하여 당신은 나에게 무얼 주겠소?’라고 말할 수 없었을 터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가능한 한 빠르게 자신들의 폭탄을 쿠바로 쏘는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분명하지 않은가? 미국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터이고 흐루쇼프는 틀림없이 자기 적이 자기 핵무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음을 알았을 터이다. 상황을 철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나 틀림없이 저것을 알 수 있다. 당신의 호주머니에 백만 불이 있음을 내가 알고 나에게 총이 있고 귀하에게도 총이 있어 나는 나의 총으로 당신을 공격한다. 그렇다면 ‘당신이 총을 소유하는지를 내가 당신과 토론하기 위하여 왔어’라고 나는 말할 수 없다. 그것은 누가 먼저 발사하는가의 문제일 따름이다.
귀하는 소련의 쇠퇴와 연결하여 사하로프와 1962년의 위기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귀하는 저 연결을 다소 더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귀하의 견해로, 흐루쇼프의 군사적 모험이 실패한 것은 종말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귀하는 1962년이 소련이 미국을 패퇴시키는 마지막 기회였다고 생각하는가?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그들이 사하로프가 만든 수소폭탄을 가지기 이전에는 그들에게 전쟁을 일으키지 ㅡ 그것은 살인을 말한다 ㅡ 않고 미국을 파괴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첫 번째 기회였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다시 나타난다면 미국인들은 망설이지 않을 것임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기회였다. 그리고 저것과 동시에 급격한 쇠퇴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귀하는 군사적 균형이 소련과 공산주의의 운명에 열쇠였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마르크스주의 교설로부터 남은 한 가지 기본적 관념인 유일한 기본적 관념은 자본주의가 파괴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독재정권의 지배계층은 자신을 자본주의가 파괴되고 세상을 구할 역사의 도구로서 보았다. 그러나 1962년 이후 그들은 사용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폭탄을 만들었다. 저것은 절대적으로 지성적 면에서 점수가 0이다. 그 후 그들의 희망은 계속해서 악화하였고 이제 우리는 폭탄 한 개가 적어도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3,000개의 위력을 갖는 1,400개의 폭탄을 가져서 적어도 합계 4백2십만 개의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있는 상황에 처했다. 이 폭탄 각각은 암시장에서 판매될 것이고 그 암시장에서 중국인들이 또한 아마도 경쟁적으로 구매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저것은 우리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실제로 무시무시한 상황이다.
ㅡ 칼 포퍼, ‘금세기의 교훈(The Lesson of This Century)’, 1997년, 27-8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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