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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성을 발견하려는 선천적 의향이나 욕구, 헬렌 켈러의 경우

이윤진이카루스 2025. 12. 9.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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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성을 발견하려는 선천적 의향이나 욕구, 헬렌 켈러의 경우

 

규칙성과 규칙을 발견하기 위한 선천적 의향이나 욕구의 중요성은, 많이 연구된 과정인 어린이의 언어 학습인 많이 연구되었던 과정에서 알려질 것이다. 그것은 물론 일종의 모방에 의한 학습이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것은, 바로 이 초기 과정이 시행과 비판적 오류제거의 과정이라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비판적 오류 제거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이 발전에서 본질적 의향과 요구의 힘은, 자신들의 청력 상실로 인하여 자신들의 사교적 환경에서 말을 하는 상황에 정상적 방식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어린이들에게서 제일 잘 보일 수 있다. 가장 확신적인 경우는 아마도 로라 브리지먼(Laura Bridgman)처럼 ㅡ 혹은 헬렌 켈러인데 그녀에 대하여 나는 나중에 들었을 따름이다 ㅡ 청력손상과 동시에 시력을 잃은 어린이들이다. 인정되는 바와 같이, 이 경우에도 우리는 사교적 접촉을 발견하고 ㅡ 헬렌 켈러는 자기 스승과의 접촉 ㅡ 우리는 모방도 또한 발견한다. 그러나 심지어 헬렌 켈러가 스승이 그녀의 손에 쓴 철자를 모방한 것은, 그 의사소통적 기능이 심지어 개(dog)에 의해서도 이해될 수 있고 반응될 수 있는 소리인 긴 기간에 걸쳐 들려준 소리를 평범한 어린이가 모방하는 것과 동떨어진다.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들 사이의 커다란 차이점으로 인하여, 언어습득에 중요한 환경적 요소가 틀림없이 있다고 밝혀진다. 게다가 어린이의 언어습득은 거의 전적으로 모방에 의한 학습의 사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어가 지닌 다양한 생물학적 양상을 숙고하면 유전적 요인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밝혀진다. 그리하여 조지프 처치(Joseph Church)의 다음 언급에 나는 동의한다: “유아기에 발생하는 변화의 어떤 부분이 육체적 성숙을 통하여 설명될 수 있는 반면, 성숙은 경험에 대하여 순환적 정보(feedback) 관계에 있음을 ㅡ 생명체가 수행하고 느끼고 그 성숙에 대하여 수행한 것 ㅡ 우리가 안다. 이것은 성숙의 역할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성숙을 미리 운명이 정해진 생물학적 특징의 단순한 만개로서 간주할 수 없음을 주장하는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방출하는 신호와 그 신호를 수용하는 경험보다 유전적으로 확립된 성숙 과정이 훨씬 더 복잡하고 훨씬 더 큰 영향력을 지닌다고 주장하여 처치(Church)와 의견을 달리한다; 의심의 여지 없이 만개를 자극하기 위하여 이것의 어떤 최소한도가 필요할지라도, “(water)”이라고 철자된 단어가 헬렌 켈러가 손으로 느낄 수 있어서 그녀가 그렇게 잘 알고 있었던 것을 의미했음을 그녀가 이해했다는 것은 (처치[Church]에 의하여 언급되지 않은) “각인(imprinting)”과 어떤 유사점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또한 차이점도 많다. 유사점은, 그녀에게 일어난 지워질 수 없는 각인(imprinting)과 단 한 번의 경험이 억압된 의향과 욕구를 방출한 방식이었다. 명백한 차이점은, 경험으로 인하여 그녀에게 개방되었고 궁극적으로 그녀가 언어에 숙달하게 된 엄청난 변화의 범위였다.

이것에 비추어 나는 다음과 같은 처치(Church)의 언급이 합당한지 의심한다: “아기의 걷기 작동장치(walking mechanism)’가 만개했기 때문에 아기가 걷는 것이 아니라, 걷기가 가능한 행동 방식이 되는 일종의 공간지향을 아기가 성취하기 때문에 걷는다.” 내가 보기에 헬렌 켈러의 경우 그녀 스승의 손가락이 건드리면 물(water)을 표시했음을 발견하기 전에 그리고 그 스승의 특정 손가락 건드림이 표시적이거나 참고적 의미를 지녔을 것이라는 결론으로 그녀가 도약하기 전에 언어적 공간에 지향이 없었거나 아무튼 극도로 희소했다. 그곳에 틀림없이 있었던 것은, 신호들을 해석하려는 결기이자 의향이자 욕구였다; 그리고 모방에 의하여, 시행착오의 방법에 의하여 (-무작위적 시행들과 철자 오류들을 비판적으로 제거함에 의하여) 이 신호를 배우려는 욕구이자 결기.

이 분야에서 협동하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선천적 의향들이 틀림없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랑하고, 동정하고, 움직임을 모방하고, 모방된 움직임을 제어하여 수정하려는 의향; 그 움직임을 이용하려는 그리고 그 움직임의 도움을 받아서 의사소통하려는 의향; 언어에 반응하려는 의향; 명령, 요청, 충고, 경고를 수신하려는 의향; 기술적(記述的: descriptive) 서술을 해석하여 그런 서술을 생성하려는 의향. 헬렌 켈러의 경우 (정상적 어린이의 경우와 반대로) 현실에 대하여 그녀가 받은 정보 대부분은 언어를 통했다. 결과적으로 그녀는 우리가 아마도 소문으로 지칭할 것을, 경험과 심지어 그녀 자신의 상상과 당분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없었다: 이 세 가지 모두는 동일한 기호적 암호를 통하여 그녀에게 다가왔다.

언어습득의 사례로 인하여, 비판적 단계가 뒤따르는 독단적 단계로 구성되는 나의 자연스러운 배열의 도식이 너무 간단하다고 나는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 점차 소멸하는 수정하려는 선천적 의향이 (다시 말해서, 오류를 제거하려고 신축적이고 비판적이 되는) 언어습득에 분명히 있다. “생쥐들(mice)”이라고 말하기 배운 다음에 어린이는 (house)”의 복수형으로 “hice"를 사용할 때 규칙성을 발견하려는 의향이 작동하고 있다. 어린이는 곧, 아마도 어른이 내놓는 비판의 영향을 받아서 자신을 수정할 것이다. 그러나 언어습득에 언어구조가 경직되는 ㅡ 아마도 위 3 (c)에서 설명된 바와 같이 자동화의 영향을 받아서 ㅡ 한 단계가 있는 듯이 보인다.

그 사례로부터 모방이 시행과 오류제거 방식의 특별한 경우라고 우리가 알 수 있는 사례로서만 나는 언어습득을 사용했다. 그것은 또한 한편 독단적인 이론 형성, 기대 형성이나 행태적 규칙성의 형성 단계들과 다른 한편 비판 단계들 사이의 협력에 대한 사례이다.

그러나 비판적 단계가 이어지는 독단적 단계라는 이론이 너무 간단할지라도, 중요한 것이 ㅡ 기대, 행태의 규칙성 ㅡ 형성되어 오류 제거가 그것을 다루기 시작할 수 있는 단계인 앞선 독단적 단계가 없으면 비판적 단계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 견해로 인하여 흄(Hume)이 심지어 논리적 근거를 토대로 귀납을 배척한 이후에도 집착한 이론인 귀납에 의한 학습이라는 심리학적 이론을 내가 배척하게 되었다. (습관에 관한 흄[Hume]의 견해에 대하여 추측과 논박[Conjectures and Refutations]에서 내가 말한 것을 나는 반복하고 싶지 않다.) 그로 인하여 나는 또한, 편향되지 않은 관찰 같은 것은 없음을 알게 되었다. 모든 관찰은, (적어도 모호하게 추측된 어떤 규칙을 발견하거나 조사하려는) 목표를 지닌 활동이다; 문제에 의하여 그리고 기대의 맥락에 (내가 나중에 그 맥락을 기대의 지평[horizon of expectation]”으로 지칭한 바와 같이) 의하여 영향받는 활동이다. 수동적 경험과 같은 것은 없다; 각인된 관념에 대하여 수동적으로 각인된 연상 작용은 없다. 경험은 생명체가 능동적으로 탐사한 결과로, 규칙성이나 불변자를 탐색한 결과이다. 이해관계와 기대의 그리하여 규칙성이나 법칙의 맥락에서를 제외하고 지각(知覺: perception)과 같은 것은 없다.

이 모든 것으로 인하여 나는, 추측이나 가설이 틀림없이 관찰이나 지각에 선행한다는 견해에 다다랐다: 우리에게 선천적 기대가 있다; 우리에게, 능동적 탐사에 몰두하는 동안 통상적으로 우리가 반응하는 자극에 의하여 활성화되는, 잠재적 기대의 형태로 된 잠재적 선천적 지식이 있다. 모든 학습은, 특정 이전 지식을 그리하여 종국적으로 어떤 선천적 지식을 수정하는 것이다 (모든 학습은 그 이전 지식에 대한 반증일지도 모른다).

ㅡ 칼 포퍼, ‘끝없는 탐구(Unended Quest)’, 1993, 49-52쪽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