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포퍼 원전+번역문

바그너의 음악

이윤진이카루스 2025. 12. 15.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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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의 음악

 

음악에, 내가 역사주의적으로 지칭했던 (1935년이나 그 무렵) 진보 관념을 도입하고 그리하여 작품의 주요 악당 노릇을 했다고 내가 여전히 믿는 사람은 바그너(Wagner)였다. 그는 또한 완전히 이해되지 않은 천재라는 무비판적이고 거의 신경질적 관념을 후원했다: 자기 시대의 정신을 표현할 뿐 아니라 실제로 자기 시대에 앞서는천재; 몇몇 진보한전문가를 제외하고 자신의 모든 동시대인에 의하여 일반적으로 잘못 이해되는 지도자.

나의 논지는, 자기-표현으로서의 예술이라는 교설은 ㅡ 자기-중심적 태도와 과대망상증을 쉽게 초래할 것일 때 진지하게 고찰되지 않으면 반드시 사악하지는 않을지라도 ㅡ 하찮고 멍청하고 공허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천재가 틀림없이 자기 시대에 앞선다는 교설로 인하여, 예술의 세계는 거의 전체적으로 허위이고 사악하며, 예술의 가치와 관계가 없는 평가에 노출된다.

지성적으로 두 가지 이론 모두가 그렇게 낮은 수준에 있었기 때문에 진지하게 고려된 적이 있다는 것은 놀랍다. 첫 번째 이론은, 순전히 지성적 근거를 토대로 심지어 예술 자체를 더 자세하게 쳐다보지도 않고 하찮고 뒤죽박죽인 것으로서 묵살될 수 있다. 두 번째 이론은 ㅡ 예술은 자기 시대에 앞선 천재의 표현이라는 이론 ㅡ 천재들 시대의 예술에 대한 많은 후원자에 의하여 진정으로 완전히 이해되는 천재들에 대한 무수한 사례에 의하여 반증될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위대한 화가 대부분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많은 위대한 음악도 그러했다. 바흐는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왕에게 평가받았다 ㅡ 게다가 그는 자기 시대에 앞서지 않았다 (아마도 델레만[Telemann]이 앞섰던 것처럼): 그의 아들 칼 필립 에마누엘(Carl Phillip Emanuel)은 그가 구식이라고 생각했고 그를 습관적으로 늙은 트집쟁이(The Old Fusspot)”라고 (“der alte Zopf”) 불렀다. 모차르트는 가난 속에서 죽었을지라도 유럽 전체를 통하여 평가받았다. 예외는 아마도 슈베르트인데 비엔나에서 비교적 친구들의 작은 동아리에 의해서만 평가받았다; 그러나 심지어 그도 그가 요절했을 때 더 널리 알려지고 있었다. 베토벤이 자신의 동시대인들에 의하여 평가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허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서 성공은 주로 행운의 문제라고 나는 여기서 다시 말하고 싶다 (10절의 주석4748 사이의 원문 참조). 그 성공은 장점과 상호관련 사항이 없고, 삶의 모든 분야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훌륭한 장점을 지닌 많은 사람이 항상 있었다. 그리하여 이것이 과학이나 예술에서도 또한 발생했다고 기대될 수 있을 따름이다.

위대한 선구적 예술가들과 동시에 예술이 진보한다는 이론은 허구일 따름이다; 그 이론으로 인하여, 자신들의 선전기구를 동원하여 정당이나 교파를 거의 닮은 패거리나 압력단체가 형성되었다.

바그너 앞에 패거리들이 있었다고 인정된다. 그러나 바그너주의자들과 완전히 같은 것은 (나중에 프로이트주의자들이 아니라면) 없었다: 압력단체, 정당, 의식을 치르는 교회 같은 것은 없었다

ㅡ 칼 포퍼, 끝없는 탐구(), 1993, 70-1쪽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