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망과 유행은 예술과 관련없다
위대한 작품을 쓰려는 야망에 중요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야망은 정말로, 많은 위대한 작품이 자기 작품을 잘 만들려는 야망 외에 어떤 야망도 없이 만들어졌을지라도, 위대한 작품을 창조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대를 앞서는 그리고 가능하면 너무 일찍 이해되지 않을 작품을 ㅡ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줄 ㅡ 쓰려는 야망은, 많은 예술 비평가가 이 태도를 조성하여 이 태도를 대중화할지라도, 예술과 관련이 없다.
유행은 많은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술에서 불가피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자신의 예술에 대한 거장일 뿐 아니라 독창성이라는 재능으로 축복받은 저 희귀한 예술가들이 유행을 따르려고 조바심하지 않고 유행의 선도자가 되려고 노력한 적이 없다는 것은 틀림없이 분명하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나 모차르트 혹은 슈베르트도 음악에서 새로운 유행이나 “양식”을 만들어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실행한 사람은 재능과 매력을 지니고 잘-훈련받은 음악가였던 ㅡ 그리고 위대한 거장들보다 창안 독창성이 덜한 ㅡ 칼 필립 에마누엘 바흐(Carl Philipp Emanuel Bach)였다. 이것은, 원시주의(primitivism)의 ㅡ 원시주의가 단순성에 대한 선호에 의하여 부분적으로 동기화될지라도 ㅡ 유행을 포함하여 모든 유행에 대하여 성립한다; 그리고 쇼펜하우어의 최고로 현명한 언급 가운데서 한 가지 언급은 아마도 그의 가장 독창적 언급이 아닐지라도 다음과 같다: “모든 예술에서... 단순성은 본질적이다; 적어도 단순성을 무시하면 항상 위험해진다.” 그가 의미했던 것은 우리가 특히 위대한 작곡자들의 주제에서 발견하는 종류의 단순성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예를 들어 후궁으로부터의 유괴(Seraglio)에서 우리가 이해할 바와 같이, 최종적 결과는 복잡할 것이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요제프 황제에게 그 안에 하나의 음표도 너무 많이 들어있지 않다고 자랑스럽게 여전히 답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행이 불가피할지라도, 그리고 새로운 양식이 출현할지라도 우리는 유행이 되려는 시도를 경멸해야 한다. “현대주의(modernism)”는 ㅡ 어떤 대가를 치르고라도 자기 시대에 앞서고 “미래의 예술 작품(The Work of Art of the Future)”을 (바그너가 쓴 수필의 제목) 생산하려고 새롭거나 달라지려는 소망 ㅡ 예술가가 귀중히 여겨야 하고 창조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과 관련이 없다.
예술에서 역사주의는 오류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역사주의를 도처에서 발견한다. 심지어 철학에서도 우리는, 철학화하는 혹은 “새로운 건반에서 철학(Philosophy in a New Key)”이라는 새로운 양식에 ㅡ 마치 문제가 되는 것이 연주되는 선율이라기보다 건반인 양, 그리고 건반이 낡았는지 새 것인지가 중요한 양 ㅡ 대하여 듣는다.
물론 나는, 새로운 것을 말하려 애쓰는 것에 대하여 예술가나 음악가를 비난하지 않는다. 내가 많은 “현대” 음악가를 비난하는 것은 그들이 위대한 음악을 ㅡ 위대한 거장들과 그들의 기적적인 작품들로, 아마도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것들 ㅡ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ㅡ 칼 포퍼, ‘끝없는 탐구(Unended Quest)’, 1993년, 71-2쪽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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